신창 현감공 시제 봉행
2023년3월 19일 일요일 11세조 휘 희맹님의 시제를 후손 40여명이 참석하여 해남 가좌리 선영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봉행 했습니다.
[시조이신 한양조씨 11세 신창 현감 휘 희맹님의 행장]
신창 현감공파 종회는 현재 600여명의 후손들이 송남1자,송남5자,경정 3개의 지파로 구성 되어있다
- 공의 휘(태어날 때 받은 진짜 이름)는 희맹이여 자(성년이 되는관례때 받는 이름인관명과 함께 스스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짓는 새로운 이름)는 경순이며 성은 조씨요 본은 한양 이시다.
-공의 아버님은 한성판관,광주 판관을 거쳐 장예원사의, 도총부경력, 선공감,청정 내담사,예빈사 부정을 지내시고 원주 목사공을 역임하신 10세조휘 숭조(원주 목사공파)이시다.
-공의 어머님은 원주목사겸 중추 부첨지 상주 김씨 김사원님의 따님이시다.
-공은 4남 5녀중 네째 아드님으로 1530년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셨다.
-공은 일직 삼괘당 심종호선생(동국여지승람편찬)의 문하에서 수학하셨다
-공은 16세 : 명종원년 식년시에 응시하여 합격으로 초시가 되었다.
-공은 19세 : 명종 4년 기유 생원시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다,.
-공은 21세 : 제술과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다
-공은 백인걸,송세영,박은천등 여러 선비들과 친교하며 호연지기를 쌓으셨다.
-공의 학문과 덕행이 높고 너그러움에 그 인품이 널리 알려져 나라에서 중용코저 여러차례 불렀으나 중부님이신 정암 조광조님의 억울한 누명으로 능주적소에서 돌아가심을 통탄하여 조정의 첩지에 응하지 아니하시고 향리에서 동몽교관으로 후진들의 훈도와 교육에 전념하셨다.
-공은 39세 ;선조 2년(1569년)에 신창 현감을 제수받고 관직에 나가셨다.
공께서 공직에 임하심에 정직과 청렴을 바탕으로 직무에 성실하셨으며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공정 무사하게 처리하되 먼저 후덕을 앞세웠음에 무릇 공의 덕망과 인격을 존중하며 따랐다.
-공께서는 부모님과 조상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시어 자혜애친 하시었고 형제간의 정이 돈독하여 관상화평 하였으며 부부간의 쌓인 정또한 두터웠다.
-공의 부인은 검열,주사,군자감정등을 역임하신 순홍안씨 안처성님의 따님이 시다.
-공은 61세 : 선조 24년 두 내외분은 한평생 연분좋게 살으시다 천명을 다하셨다.
경기도 기흥면 신갈리 산 14번지 새능골 묘좌 지원에 유택지정하고 장례하였다.
6년뒤 배 숙인 안씨가 돌아가심에 공의 묘 왼편에 안장하였다.
-공과 배 숙인 안씨와의 사이에 4녀만 두셨다.
공과 측실 묘씨로부터 사이에 측생을 두셨다.
-이당시 사회제도나 가계승계제도가 적자 승계원칙으로 되어있어 서출생자나 척출생자는 가계상속이 불허했으며 적자가 없을 경우에는 양자로써 가계를 승계토록 하였다.
-더욱이 양반사회나 사대부 집안에서는 절대적으로 이 제도를 따랐다.이에 공의 가계 승계는 양절공의 2자인 자헌대부 한풍군 휘 완의 현손초당 수와옹 휘 관의 4자인 봉사공 휘 경정을 계자로 세워 계승하도록하여 자손이 성묘 봉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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