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은 큰 고개다.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백봉령과 함께 백두대간을 넘는 5대령 중의
하나로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 지방을 연결하는 길 중에서 가장 이용량이 많다.
대관령을 넘는 길은 세 곳이 된다.
첫째는 골짜기를 따라 단거리로 개설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대관령 옛길이며,
둘째는 차량을 위해 개설된 신작로가 1975년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확장된 도로다.
셋째는 대관령을 관통하는 일곱 개의 터널 구간을 통해 영동과 영서를 단번에
연결한 지금의 영동고속도로다.
대관령을 넘는 방법이 차량으로 바뀌면서 대관령 옛길은 일찍이 폐쇄되었다.
그러나 차도가 별도의 노선으로 개설되면서 도보로 올라야 하는
옛길은 다행히 옛 모습 그대로 남게 되었다.
대관령은 삼국시대부터 문헌에 지명이 기록된 곳으로 영동 사람들에게는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고개가 하도 높고 하늘이 낮아서 고개 위가 겨우 석자’라는 말이 전해지는 대관령은
고려시대 이래 주요 교통로로 수많은 민중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대관령의 명칭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곳 주민들은 예로부터 대관령의 고개가 워낙 험해서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대관령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영동 지방을 통과하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에서 대관령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에 별일 아니지만
옛날에는 매우 힘든 고행길이어서 그야말로 울고 넘는 고개로 이름이 자자했다.
대관령은 신라시대에는 대령(大嶺), 고려시대에는 대현(大峴), 또는 굴령(堀嶺)이라 했으며
조선시대 《태종실록(太宗實錄)》에서는 대령산(大嶺山)이라 불렀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대관령이라는 명칭이 나온다.
우리들이 어릴때는 대관령을 "대골령"이라는 사투리로 불렀었다.
대관령 옛길은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사이에 위치한 고갯길이다.
정상은 해발고도 832m이며 동쪽사면으로는 남대천이 발원하고 있다.
도보로 고개를 넘던 시절에 이용됐던 대관령 옛길은 성산면 어흘리로 들어가면 계곡으로
형성된 하천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은 원울이재를 지나 계속된다.
원울이재는 아래제맹이(하제민원)와 웃제맹이(상제민원) 사이에 있는데 강릉에 부임한
원님이 두 번 울었다는 고개다.
첫 번째는 한양에서부터 험한 고갯길을 지나온 원님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고,
두 번째는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원님이 강릉의 후한 인정에
감동해서 울었다는 것이다.
대관령은 강릉의 진산이기도 하다. 강릉 지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국사성황당이 위치한 곳으로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대관령은 영산(靈山), 신산(神山)으로 많은 전설과 민속이 전해진다.
신령스러운 장소인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4월 15일에 ‘대관령산신제’
‘국사성황제’가 열린다.
삼국 통일을 이룩한 김유신장군을 대관령 산신으로 모시고 있고
강릉 출신으로 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고승인 범일을 국사성황신으로 모시고 있다.
[강원 평창 대관령 옛길 산행지도]
[좌석배치]
1 문복강님 | 2 정명화님 | | 3 노태문님 | 4 권민경님 |
5 | 6 | | 7 김정식님 | 8 |
9 | 10 | | 11 | 12 |
13 | 14 | | 15 박우택님 | 16 |
17 이은자님 | 18 | | 19 | 20 |
21 | 22 정미화님 | | 23 | 24 |
25 | 26 | | 27 | 28 |
29 | 30 | | 31 | 32 |
33 | 34 해피송님 | | 35 | 36 |
37 노을님 | 38 하늘님 | | 39 | 40 |
41 | 42 | 43 | 44 류근규님 | 45 제창영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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