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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히 4:12-13
성경본문 히브리서 4:12-13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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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김상수목사
오늘은 종려주일이자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이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말씀을 시작하고자 한다. 동영상 내용은 우리들이 잘아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에서 주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부활하는 장면이다. 배경음악으로 “약한 나로 강하게”라는 곡을 영어찬양과 한국어 찬양으로 함께 편집했다. 이 영상과 찬양을 보면서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앞두고 나를 위해서, 나를 대신해서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를 잠시 묵상해 보자. 영상을 보면서 조용히 찬양을 부르실 뿐은 불러도 좋다. * 동영상 상영(6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일차적인 관심은 뭘까? 세상 사람들은 집의 평수나 자동차의 종류 , 든든한 직장이나 통장속의 잔액 같은 것들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다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일차적인 관심은 내가 무엇을 얼마만큼 가졌느냐 또는 무엇을 얼마만큼 했으냐의 문제 이전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에 있다. 이것이 우리들 인생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이것은 평신도나 저 같은 목회자의 삶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참예하는 삶 그리고 그러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복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의 삶의 자세이며, 교회의 본모습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우리 서산중앙성결교회는 참으로 하나님의 눈에 축복된 교회다운 교회, 교회의 본질을 간직한 주님의 사랑받는 교회라고 생각한다.
복음은 생명의 빛이다. 아무리 칠흑같은 어둠이라 할지라도 빛이 비춰지면 비춰지는 순간에 어둠은 물러간다. 성경 요한일서 1장 5절에 말씀에 보면 “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했다. 요한복음 8장 12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주님은 우리들을 향하여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가르쳐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이미 빛이다. 앞으로 빛이 될 것이다가 아니고 이미 빛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 빛을 사람들 앞에 비췸으로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다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은 이미 빛이고, 그 빛을 세상 속에서 비추는 일이 전도다. 성경을 배포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기드온협회나 우리들이 전도지를 돌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쓰는 방법은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모두가 복음의 빛을 비추는 일들이다.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 속에서 생명의 빛되신 주님의 복음이 들려지는 곳마다 그곳이 개인이든 가정이든 국가나 한 시대이든지간에 영혼육이 변하고 어둠의 세력이 쫒겨 갔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성경)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좌우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고 했고, 그 예리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수술도구가 되어서 우리의 심령과 몸의 모든 것을 찔러 쪼개고 심지어는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도 감찰하신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12절)
복음을 전하다 보면 ‘나는 말솜씨가 너무 엉성했는데 놀랍게 듣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적으로 영접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것은 내가 전한 말씀이 살아서 그 사람 심령에 뭔가 정곡을 찔렀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우리들이 말을 잘해서? 절대 아니다. 그럼 왜 이처럼 성경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어서 사람들을 변화를 일으킬까? 왜 우리들이 말씀의 빛을 비추면 그 말씀으로 인해서 변화가 일어날까? 그것은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은 사람의 책이 아니다. 인간의 언어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말씀의 저자는 성령님이시고, 그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전해준 전도지나 성경책이나 간증이나 어떤 형태든지 복음의 말씀을 전달하고, 들려줄 때, 살아있는 그 말씀이 그 사람의 심령을 터치하신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교회의 역사에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났고 지금도 우리들의 사역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우리 한국교회의 역사를 봐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한국교회 역사에서 최초의 순교자는 로버트 토마스(R.J.Thomas,1840-1866)라는 영국인 선교사이다. 토마스 선교사는 24세에 런던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선교를 위해서 그의 아내 캐롤라인과 함께 1863년에 상해로 건너왔다. 그런데 중국에 온 이후에 선임선교사와의 심한 갈등과 문화적인 이질감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러던 중에 중국입국 다음 해인 1864년 토마스가 선교 일로 얼마동안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아내인 캐롤라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캐롤라인은 그 당시에 임신상태였는데, 남편이 출장간 사이에 옆집에 살던 미국 선교사의 부인이 풍토병으로 죽는 것을 목격하면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유산하게 되었고, 유산 후에 돌보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그만 죽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서 토마스는 잠시 선교를 내려 놓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중국 옆에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미지의 조선 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은 다시 그의 마음은 뜨겁게 만드셨다. 그래서 그는 한문성경 등을 준비하고 마침내 1866년에 미국상선 제너널셔먼호에 승선한다. 겉으로는 통역관이었지만, 사실은 선교를 위한 입국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 쇄국정책을 썼던 조선은 평양 대동강변에 도착한 제너널셔먼호의 입국을 강력하게 막았다. 마침내 조선군대의 공격으로 대동강변에서 배는 불에 타고 침몰하고 만다. 이 사건은 후에 신미양요(1871)의 빌미가 된다. 이때 토마스선교사는 대동강으로 뛰어내려서 대동강 모레톱에서 미친듯이 ‘야소 야소’를 외치면서 자신이 가져온 성경책들을 주변의 조선 사람들에게 던졌다.
토마스선교사는 대동강변에서 최치량이라는 12살된 소년에게 3권의 성경책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고 칼을 든 박춘권이라는 조선군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한 권의 성경책을 주었다. 이때 겁이 난 소년 최치량은 그 성경책3권을 당시에 평양의 안주골 주사였던 박영식에게 주었다. 박영식은 한문으로 된 성경책을 모조리 뜯어서 자기 집의 도배지로 사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신의 방에 누워있을 때 온통 방안에 도배된 성경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감명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그는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하였는데, 이 교회가 바로 평양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교회이다. 박영식에게 성경책을 전달했던 최치량이라는 소년도 널다리골교회의 신자가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이 널다리골교회가 부흥이 되면서 장대현교회로 개명하였는데, 바로 이 교회에서 한국교회는 물론이고 세계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1907년 대부흥운동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칼을 휘둘렀던 박춘권도 이 무렵에 토마스선교사가 전해준 성경을 읽고, 스스로 마펫(S.A.Moffet 1864∼1939) 선교사를 찾아가서 세례를 받았다. 우리 교단은 바로 한반도에 대부흥운동이 일어나던 1907년에 창립되어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으니,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와 그가 대동강변에서 뿌린 성경책 그리고 그로인한 널다리교회와 장대현교회로 이어졌던 부흥운동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 신앙이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흘러온 것이다. 순교자의 피 그리고 마지막까지 야소 야소를 외치며 뿌렸던 성경책이 큰 부흥의 밀알이 된 것이다. 참으로 전율을 느낄만큼 놀랍고 정확하게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 초기에 있었던 이러한 놀라운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적게는 우리들 모두는 개인적으로도 성경을 읽음으로 나의 삶의 방향을 올바로 인도하신 많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중에 한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나는 십대 후반 고등학생 시절에 집형편이 어려워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학업을 했던 경험이 있다. 또 이러저런 사정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대전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2년 정도 일을 했던 적이 있다. 고3 어느날 새벽에 신문을 돌리면서 아직은 깜깜한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어느 골목을 지나가는데,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간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두운 골목 전봇대 밑에 누군가가 버린 것으로 보이는 성경책이었다. 얼마나 세게 내동댕이를 쳤는지 겉장은 저만치 떨어져 나갔고, 성경책은 구겨진 상태로 나딩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장면을 보면서 차마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자전거에서 내려서 잘 챙겼다. 그 성경책은 기드온협회에서 나온 찬송가 크기의 신약과 시편이 기록된 한영성경이었다.
그날 후로 틈날 때 마다 고3이지만 그 성경책을 읽었고, 대전식당에서 일할 때도 손님이 없을 때는 늘 식탁에서 그 성경책이 헤어지도록 읽으면서, 그 당시는 묵상이라는 단어 조차도 모르던 때였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주님은 음성을 깊이 들었다. 그 당시에 손님들 중에는 성경읽는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기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아마 그런 분들은 교회에 다니는 분들 같았다. 그런데 단골손님 중에 식당 근처에 있는 국립국악원 대전지부 원장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어느날 내가 성경읽는 모습을 보셨다. 그분이 다가 오셔서 내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하는 말씀이 “그래... 김군아!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넌 잘될 수 있어 잘하고 있다”그러면서 격려해 주셨다. 그래서 “원장님도 교회 다니시나 봐요?”라고 했더니, 멋쩍게 웃으시면서 하는 말씀이 “아니 난 안다녀. 그렇지만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잘된다는 것 정도는 알아”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3때 어두운 골목길에 버려진 성경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내렸던 모습, 식당에서 틈만 나면 성경을 읽던 그 모습을 주님은 다 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 말씀이 나를 지켜주었고, 내 앞을 지금까지도 인도하고 계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빛이다. 우리들 안에는 성령이 계시다. 이 성령님의 불을 소멸해서는 안된다. 계속해서 성령충만이 불타 올라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다. 오늘도 우리들 자신이 먼저 믿음으로 그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붙들고 기도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면 초대교회 때 일어났던 성령님의 능력은 지금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앞길을 인도받을 수 있다.
만약 불신자 전도대상자들이나 장결자, 가족, 잃어버린 양들이 돌아오기 원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의 성경말씀을 들을 수 있게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말씀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 만약 당장에는 직접적으로 예배드리기를 꺼려하거나, 귀를 막고 아예 성경책은 쳐다보지 않으려 한다면, 간접적인 방법들이라도 총동원해야 한다. 예를들어 핸드폰을 이용한 말씀문자 전송(부모님의 진심이 깃든 문자는 감동), 성경귀절이 적힌 종이를 냉장고나 컴퓨터 모니터 또는 방문에 붙이는 것, 식탁위에 성구를 놓는 것, 여행 중이라면 말씀낭송 테이프나 설교테이프 등을 켜 놓는 것, 기타 하나님이 주신 지혜대로 해보자. 그리고 성령님이 역사해 주시기를 간구하자.
혹시 지금 당장에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자. 추수할 때가 꼭 온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님의 검으로서 살아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상 수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듯이 우리와 우리의 기도대상자들을 반드시 변화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갈라디아6장9절과 고린도전서 15장58을 다같이 읽고 주님께 기도하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