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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 해의 결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추수감사절”이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와 가장 비슷한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이스라엘에는, 가장 큰 절기가 세 개 있습니다. 바로,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입니다. 첫번째, 유월절은, 한 해의 시작인 첫달 14일 저녁에 시작됩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장자재앙을 기억하는 겁니다. 그것은, 어린양을 잡아 집의 문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이 넘어갔던 상황을 되새기며,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해,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두 번째, 맥추절은, 유월절이 지나고, 50일이 되는 날로, 보리 추수가 끝난 것에 대해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신약에서는, 이 절기가, 50일이 지났다고 하여,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마가다락방에서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강림했던 사건이, 이 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이는, 한 해의 모든 추수를 끝마침에 대해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다른 말로는,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즉, “추수하여 저장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는, 파종과 추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추수를 한다는 것은, 광야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정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초막절기간이 되면, 이스라엘은 해마다, 집을 떠나 초막을 짓습니다. 어떤 이들은, 광야로 나가서 초막을 짓고, 그 곳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마당에 텐트를 치고, 그 곳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것은, 캠핑이 아닙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어려움 속에서 생활하던 것을 재현하는 것이며, 그러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되새기는 겁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축제 속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초막은 물론, 이웃의 초막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서로의 초막을 방문하며, 축제를 합니다. 이 축제는, 사람의 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제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축제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지내는 광야는,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며, 밤에는 급격히 온도가 떨어져, 체감온도는 영하를 방불케 합니다. 이러한 여건이었지만, 광야의 이스라엘은, 추위와 더위로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인도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네비게이션 역할 뿐 아니라, 냉난방 역할까지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들의 보호처가 되었고,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애굽에서 준비해온 음식이 다 떨어졌을 때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고, 식수가 떨어졌을 때는, 바위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초막생활을 하는 동안, 순간순간마다,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은혜의 순간을, 이들의 후손들이 되새기는 겁니다. 그러니, 초막절을 지킨다는 것이, 추수에게 대한 감사뿐이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지키는 세 절기에는, 당시의 이스라엘은 몰랐지만, 예수님이 오신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월절은, 사망에서 구원받음을 감사하는 절기라는 겁니다. 어린 양의 죽음이 없는 집 안에는, 장자와 첫 배의 가축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양의 죽음이 있는 집에는, 개도 혀를 헐떡거리지 않고, 평안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속하신, 천국을 소망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또, 맥추절인 오순절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강림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때의 성령사건을 “단회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령사건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불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이며, 태초의 하나님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이 시간,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에게도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초막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는 절기로, 마 13: 30을 보시면,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종말에,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심에 대해, 행 1: 11을 보시면,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으며, 예수님의 심판에 대해, 요 5: 30을 보시면,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고 합니다. 이를 볼 때, 오늘 우리가 지키는 추수 감사절은, 한 해에 대한 감사 뿐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는 절기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안다면, 우리는 일 년 365일을,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추수 감사절에는,
첫째, 축제의 요소가 있습니다.
본문 39 – 40을 보시면, “너희가 토지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초막절을 맞아, 이스라엘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초막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 초막에서 일주일을 지내며, 축제를 했습니다. 본문 40절을 보시면,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주변사람들은,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길거리나 성전 마당이나 지붕 위에, 초막을 짓고 거기서 한 주간을 보냅니다. 또, 성전은, 밤에는 낮처럼 환하게 등불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낮이든 밤이든 환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찬양대의 노랫소리와 사람들의 “호산나”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축제하기 위해, 축제의 첫날 동트기 전, 제사장들이 먼저, 나팔을 길게 붑니다. 그러면, 이와 함께, 사방에서, 화답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호산나”라며, 환호성을 지르면서, 축제가 시작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서, 때때로, 삶 속에서 의욕이 사라지고, 소외감이 솟아오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슬픔과 서러움이 몰아칠 때도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온 이스라엘이 돌을 들어 모세를 치려할 때,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시글락 성으로 돌아왔을 때, 다윗을 따르던 자들이, 일제히 돌을 들어 다윗을 치려할 때,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시 18: 2을 보시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다윗이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어떻게 나왔을지 생각해 보셨나요? 성구가 좋아서, 그냥, 흥얼흥얼 암송하며, 감상하기만 바쁘지 않았습니까? 예전에, “눈물의 빵을 먹어보지 않고,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렇듯, 다윗이 고난을 알지 못했다면, 이런 고백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다윗이 고난을 겪었기에, 스올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봤기에,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 안에서, 고난을 겪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모세나 다윗같이 수행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내가 고난 속에 있을 때, 어떤 자세로 있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자세로 있었습니까? 부정적으로 있지 않았습니까? 원망의 자세로 있지 않았습니까?
“즐거워하는 것”의 의미가 신 16: 13 – 15절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됩니다. 여기를 보시면,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고 합니다. 여기를 보면, 우리가 함께 즐거워해야 할 대상에, 가족들 뿐 아니라 노비와 객과 고아와 과부들까지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인, 추수감사절의 감사는, 우리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감사의 축제입니다. 시작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의 초막만 짓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초막도 지어주며, 그들과 함께 축제를 하듯, 주변의 이웃과 함께 기쁨과 감사의 축제를 해야 합니다.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며, 온전히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 즐거움은, 우리의 상황에 맞춰 적당히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즐거워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서 섬기라고 하죠? 이와 같이, 우리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라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열매와 우리의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새벽부터 밤까지 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그 결과로, 풍성한 결실을 거둡니다. 그러기에, 이 풍성한 결실이, 우리의 노력에 의한 댓가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풍성한 결실을 주신 이가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온전히 즐거워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시 107: 1을 보시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합니다. 또, 살전 5: 16 – 18을 보시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의 축제는,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축제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어떤 감정보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초막절의 축제는, 하나님을 앞세우는 가운데, 감정적인 믿음을 불러 일으켜서는, 그 믿음이 의지적인 믿음으로 승화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가운데, 우리의 감정, 우리의 흥만을 앞세워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주의 은혜를 나누는 축제의 추수 감사절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기억하여 감사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본문 42 – 43을 보시면,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합니다.
본문에 앞서, 34절을 보시면, “지킬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그”로, 그 의미는 “거룩한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초막절을 지키는 것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있어서, 초막절 즉, 감사절을 지키는 것이, 형식에 많이 그칩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설날과 추석” 중, 어느 명절이 큰 명절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우실 겁니다. 성경 속에서, 유월절과 초막절 중, 어느 절기가 더 중요한지를 찾으면, 이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평소에는, 유월절과 맥추절은 강조하면서도, 초막절에 대해서는 왠지 소홀합니다. 그것은, 초막절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초막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즉,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초막절을 지킴으로, 광야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조상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자손손 기억했습니다. 이를 볼 때, 오늘의 우리는, 자녀들에게,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만큼 전해주고 있습니까? 혹시, 원망, 불평, 불만만 전해주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축복을, 우리 자신부터가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초막절은, 고난 속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김과 함께, 그 은혜를 자자손손에게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영원토록 기억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제 3자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고,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 부모, 내 조상들이 직접 경험한, 사건의 이야기를, 자손들이 기억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초막절을 소홀하게 지낸다는 것은, 우리가 이때껏 지내오면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또, 도우심에 대해, 소홀하게 여겼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신앙생활 속에는, 하나님이 과거에 나를 지키고, 인도하신 것처럼, 나의 미래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소망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기에, 무조건, “구원받는다. 천국간다”는 안일한 생각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 7: 21을 보시면,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이 말씀을 지나치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언제나 안일한 상황 속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의 삶과 주어진 모든 것이, 다른 것의 도움이나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늘 함께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에 대한 고백이 희미한 겁니다. 찬 438장 3절을 보시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내 주 하나님이 그 곳에 함께 계십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든, 내 주 하나님께서 그 곳에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좌우 어디를 보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우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에, 기독공보에 실린, 교회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 교회는, 전남 고흥에 있는 “대봉교회”입니다. 이 교회에서 지난 11월 4일, 감격의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설립 91주년 감사예배와 함께, 시무장로 은퇴식이 있었는데, 이 은퇴식에서 원로장로로 추대된 박기열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은, 젊은 시절, 고향을 등지고, 논과 밭을 팔아, 서울로 상경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떠난 뒤에, 텅 빌 교회를 생각하며, 고향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서, 서울로 상경하려던 뜻을 접었다고 합니다. 박 장로님이 은퇴한 대봉교회는, 조부이신 박귀조 장로님이, 사랑채에서 몇몇 청년들과 예배를 드린 것을 시작으로, 교회를 설립하셨습니다. 그리고는, 31년 헌신하셨고, 부친이신 박병식 장로님은, 올해 95세로, 53년간 헌신하셨고, 박기열 장로님은 26년간 헌신했다고 합니다. 한 교회에서, 삼 대가, 장로로 헌신한 세월이, 110년입니다. 아들의 은퇴식에, 참석하기 힘든, 고령이신 박병식 장로님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대를 이어 이루어져 가는 것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한 교회에서, 삼대가 장로로 헌신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박 장로님 가정의 신앙을 보면서, 조부이신 박귀조 장로님의 신앙이, 후손에게까지 이어지는 내리신앙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생활의 편리를 추구하는 가운데, 신앙이 흐려지는 이 세대에,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신앙을, 굿굿하게 이어가는 계대신앙의 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추수 감사절을 지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기억하며, 그 은혜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며, 자자손손에게 전하심으로, 계대신앙을 이어가는 복된 가정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