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순(耳順)이 점점 가까워오면서 육체적 기능들이 저하됨을 확연히 느낀다. 그래도 친구들에 비해 노안도 늦고 이런저런 성인병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아마 동년배 친구들보다 부지런히 일하는 게 오히려 건강을 지탱해주는 동인인 것 같다. '일이 보배‘임을 요즘 정말 실감한다.
일찍 은퇴하고 쉬는 친구들은 여전히 일에 치이며 사는 필자를 무척 부러워한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지난주엔 시간이 넉넉한 대학교 동기들과 식사를 하고 왔다. 필자에게 몸보신 좀 시켜 달라며 졸라대던 친구들이다. 친구들과의 식사는 늘 즐겁지만 시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짱닭>은 평소 지인으로부터 실속 있고 가성비 높은 토종닭 전문점이라는 얘기는 들었다. 그러나 몸보신할 일이 없어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친구들 성화에 몸보신 메뉴로 뭐가 좋을까 궁리하다가 이 집이 떠올라 김포로 차를 몰았다.
김포 시내 외곽에 자리한 이 집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과거 각종 방송에 무려 5차례나 나올 만큼 알려진 집이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방송에 소개됐다는 홍보물이 하나도 안 보였다. 오히려 그런 점이 필자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조그만 자랑거리라도 부풀려 크게 알리고자 하는 게 요즘 사람들 심리다. 그런데 이 집 주인장은 그런 게 싫다고 한다. 이 집을 추천해준 지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토종닭에 7~8가지 버섯 우러난 국물이 보약
우리 일행은 당초 목적이었던 몸보신을 위해 ‘웰빙시래기닭매운탕’을 선택했다. 대자(5만원)와 소자(4만원) 두 가지 규격이 있는데 우리는 작은 것으로 주문했다. 토종닭은 준비하고 익히는 시간이 오려 걸려 미리 예약하고 가야 기다리지 않는다. 그 점을 간과한 죄로 우리는 좀 기다리면서 예전 학창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마침 구운 달걀을 줘 까먹는 재미와 맛이 쏠쏠했다.
드디어 웰빙시래기닭매운탕이 나오자 친구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비주얼이 무척 화려했다. 큼직한 대파를 기둥처럼 세우고 기둥(?)에 의지해 각종 진귀한 버섯들을 탑처럼 쌓았다. 그 모습이 볼만 했다. 역시 방송에 나올만한 음식이구나 싶었다.
토종닭에 시래기와 함께 은이, 표고, 느타리, 백만가닥, 황금송이, 새송이 등 버섯만 해도 7~8가지가 들어가는 거창한 음식이었다. 버섯은 공해에 찌든 현대인에게 좋은 식재료인데다 항암 효과도 있으니 우리 같은 중년들은 많이 먹어둬야 한다. 대부분 처음 먹어보는 버섯들이었다. 버섯 특유의 향이 물씬 풍겼다.
버섯을 실컷 건져 먹고 나면 냄비 밑에는 필자가 좋아하는 시래기가 푸짐하게 들었다. 강원도 평창과 경북 안동에서 구한 시래기들이다. 주인장이 직접 가위로 잘라주는데 구수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닭을 워낙 좋아하는 친구에게 고기는 모두 맡겨두고 버섯과 시래기를 원없이 건져먹었다. 버섯과 시래기 양이 푸짐해 먹어도 쉬 줄지 않았다.
토종닭이어서 그런지 닭고기 양이 적지 않았다. 예전에 고무줄처럼 질긴 토종닭을 먹은 기억이 있다. 그 이후 토종닭 고기는 안 먹었다. 그런데 친구가 자꾸 권해 먹어봤다.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온갖 버섯이 우러난 국물은 묵직한 감칠맛이 났다. 매운탕 국물임에도 짜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다채로운 채소들, 밥과 함께 날김에 싸서 ‘꿀꺽’
웰빙시래기닭매운탕을 작은 것으로 주문했음에도 양이 적지 않아 식사는 곱돌꽃시래밥(6000원) 두 그릇만 주문했다. 그런데 가격이 저렴해 기대하지 않았던 곱돌꽃시래밥 역시 색상이 화려하고 푸짐했으며 맛 또한 출중했다.
노란 강황밥을 돌솥밥 가운데 놓고 그 둘레에 새싹, 당근, 버섯, 숙주나물, 시래기 등 각종 신선 채소를 둘렀다. 보기만 해도 몸이 건강해질 것 같았다. 날김과 함께 부추를 썰어 넣은 양념간장을 내왔다. 날김에 여러 가지 채소와 강황밥을 얹고 간장을 적셔 싸서 먹었다. 파래가 살짝 섞인 날김은 바다 향기가 월등했다. 주인장에게 물어봤더니 전남 신안에서 수소문한 끝에 구한 김이라고 했다.
주부들이 봤더라면 더 좋아했을 텐데. 모두 시커먼 남자들끼리 둘러앉아 예쁘고 화려한 밥상을 대하노라니 좀 멋쩍었다. 모두들 술 생각이 간절했지만 오늘 만큼은 술을 자제하기로 했다. 그래도 친구들 모두 남은 날김에 밥과 나물을 얹으면서 한 마디씩 했다. 김포까지 오길 잘했다고. 올 겨울나기는 거뜬할 거라고. 친구 잘 둔 덕분에 모처럼 입이 호강했다고. 지출(4인기준) 웰빙시래기닭매운탕(소) 4만원+곱돌꽃시래밥 1만2000원(6000원X2)=5만2000원 <짱닭> 경기 김포시 운양로 64, 031-982-9954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