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가 강한 만큼 유연성이 없어지고, 그만큼 빨리 늙는다>
‘자아’를 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이미 형성된 뉴런들의 패턴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만나던 방식으로만 사람들을 만나고, 습관화되거나 비슷한 행동만을 하며, 이미 알던 대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려운 일, 귀찮고 힘든 일, 새로운 일을 가능하면 피하게 된다. 이는 뇌를 비롯해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최소한으로만 사용하는 방법이다. 즉 뇌가 갖는 유연성과 가변성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힘과 에너지 소모는 줄일 수 있다. 남아도는 에너지는 그저 살이 찌고 고집이 세지는 데 말고는 전혀 쓸모가 없다. 반면 자아의 경계가 유연하고 새로운 상황에 열려 있다면, 뇌와 다른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하게 해줄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뉴런망들을 만든다. 물론 에너지 소모는 많아지겠지만, 그렇게 사용된 에너지는 새로운 능력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자아가 강한 사람은 남의 얘기를 잘 듣지 않고,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패나 불화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아는 것으로 세상 모든 일을 분별하고 판단한다.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선 싫어하고 화를 낸다. 세상이 모두 자기 생각에 맞추어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 셈이다. 그러나 실제론 그리 될 리가 없으니, 이들의 삶은 힘들고 피곤하다. 이들 옆에 있는 사람, 이들이 만나는 사람들도 힘들고 피곤할 것이다.
이런 이들은 대부분 ‘권위적’이다. 자신이 아는 것이나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남들도 의당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시키는 대로 하지, 뭔 말이 이리 많아!” 이런 사람들은 나이와 무관하게 ‘노인’이 되기 쉽다.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이나 경험을 추구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사고능력을 확장하고 행동의 유연성을 늘려가려는 게 젊음의 특징이라면, 젊다는 것은 나이와 무관하다. 이렇게 유연하게 열려 있다면, 나이가 칠십, 팔십이 되어도 여전히 ‘젊다’고 할 것이다.
-<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p84~86까지 필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