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로 살거냐 병아리로 태어날거냐
자기의 본래 모습을 깨달은 사람은
출가자니 재가니 하는 구별이 따로 없습니다.
앉은 그대로 출가요,
고속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신나게 안 달려도
방에 있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눈이 밝지 못한 사람에게
출가는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생사의 관문입니다.
병아리가 알 속에 있으면 달걀이지 병아리는 아닙니다.
어미닭이 알을 품은 지 21일이 지나면
달걀은 눈도 갖춘 병아리가 됩니다.
그러나 알 속의 병아리는
아직 병아리 구실을 못하는 달걀,
그것도 먹지도 못하는 달걀일 뿐입니다.
알 속의 병아리가 그 연약한 부리로 껍질을 톡톡,
무수히 쪼아대면서 몸을 비틀면 그 때 어미닭은
그 어미닭은 단단한 부리로 밖에서 톡톡 건드려 줍니다.
그래야만이 병아리는
알을 깨뜨리고 넓은 세상으로 고개를 내밀게 됩니다.
비로소 한 마리의 병아리로 태어나 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요,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은
‘명명백초두明明白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라 했습니다.
온갖 풀끝에도 조사의 뜻 -
곧 진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일체중생이 모두 성품을 간직했다.”하시지 않았다 할지라도
본래부터 풀끝에 있던 분명한 그 성품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병아리는 제 아무리 눈과, 귀·코·혀를 갖추었다고 해도
알 속에 달걀일 뿐 병아리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기를 쓰고 껍질을 깨뜨리는 노력이 없으면
결국 썩은 달걀이 되고 만다는 얘기입니다.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 성품을 갖춘 부처라지만
그대로 부처라고 생각하면
달걀을 병아리로 하는 것과 같다는 얘기입니다.
마치 눈과 귀와 코와 부리와
발가락과 털을 다 갖춘 병아리라도
두꺼운 껍질을 쓰고 있으면 달걀인 것처럼
중생에게 불성이라고 하는
고귀한 성품이 완전히 갖춰져 있다고 할지라도
번뇌·망상의 두꺼운 무명의 껍질이 불성을 덮고 있는 한
부처가 아니라 중생일 뿐 입니다.
부처는 부처로되 무명의 껍질 속에 갇혀서
몸부림치는 부처에 불과한 것 입니다.
부처님이나 깨달은 이에게는
출가와 제가가 따로 없는 것 입니다.
삼천대천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손바닥이므로 나가고 들어갈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은 마치 알 속에 갇힌 병아리가
껍질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야만
삐약 삐약 소리도 지를 수 있고
마음껏 걸을 수도 있는 것처럼
중생들도 무명의 껍질을 뚫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넓은 세상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무명의 집을 깨뜨려 부수고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번뇌의 화택에 갇힌 주인공,
천 년 만 년을 거름더미 속에 묻어든 채
그 존재를 잊고 살아 온 ‘참 나’를 찾는 작업이
바로 알 속의 병아리처럼,
제 자신의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이요,
자기 자신의 번뇌의 껍질을 깨뜨리는 작업,
이것이 진정한 중생들의 출가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고
다름 날 시간이 되면 조금 더 이어 보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말입니다.
2024년 11월 14일 오전 06:20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