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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 그런지 예정된 기상시간보다 일찍 눈이 떠진다. 잠은 멀리 달아난 지라 간단하게 어제 갔던 곳의 답사기를 썼다. 기억의 한계때문에 답사기를 써야 다음에 오늘 느꼈던 것을 조금이나마 기억할 수 있다.
아침 식사 장소에서 산천초목님을 만났다. 이번에 정읍을 답사지에 정한 이유가 백양사를 오기 위해서였다. 산천초목님이 섭외를 해서 백양사를 찬찬히 살필 예정이다.
장성 원덕리 미륵불
올 때마다 절집이 점점 번창하는 것 같다. 절집 주변을 가꾸는 사람들이 많다. 역광이라 사진은 잘 나오지 않는다. 왼손을 아주 앙증맞게 새겼다. 세종아빠님은 거대한 불상은 곧 고려라고 생각하는 생각을 깨고 싶어 한다. 작은 보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장성 사거리 당간지주
네개의 길이 만난다는 네거리의 뜻이 아니라 지명 이 사거리이다. 이와 비슷한 곳이 창녕의 사리 광배이다. 여기는 사리는 부처님의 사리와 상관없는 지명이다.
한 쪽이 부러진 상태인데 남아 있는 상태를 보면 가공을 잘 한 편이다.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던 어르신이 이 당간지주의 사람 목숨을 뺏았았던 아주 슬픈 용도를 말씀하신다.
장성 백양사
주로 소요대사 탑을 보기 위해 왔었는데 이번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다.
1. 성보박물관
오늘의 메인답사지이다. 산천초목님이 성보박물관장님께 부탁하여 수장고에 있는 나한상을 비롯하여 일부 문화재를 친견하기로 약속을 했다. 성보박물관장님을 10시가 조금 되기 전에 만나서 성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각각의 유물들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들었다. 그냥 답사하면 알 수 없는 얘기들을 듣고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을 살폈다. 또한 수장고에 있는 문화재를 일부 친견할 수 있었다.
2.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며칠 전 갑사 대웅전에 있는 소조삼세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현진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제미나이가 갑사 불상이 현진 작이라고 하여 믿었는데 세종아빠님이 현진이 시주했고 불상은 다른 분이 만들었다고 정정하여 준다. 제미나이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물을 때는 늘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이 불상이 소조인지 목조인지에 대한 용어 정립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목불위에 진흙을 두텁게 바른 불상의 명칭은 목불인가 소조불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갈모산방님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물인데도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극락보전 안내판을 첨부한다. 이 절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3. 칠성각 칠원성군
칠원성군이 불화에는 자주 보이지만 원각상으로 있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런지 내 기억속에서는 이 곳이 처음인 듯 하다. 칠원성군이 그려져 있는 안동 지조암 벽화가 오버랩되어 지나간다.
4. 명부전 지장보살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명부전에서 갖춰야 할 존상들이 다 있고 그 순서도 맞다고 한다. 대부분의 명부전에서 시왕들은 거의 다 남았는데 귀왕, 판관, 사자, 장군 중 일부가 사라지거나 동녀상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은 완전한 형태로 있다. 시간이 지나면 보물로 지정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백양사 사하촌에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시간을 보니 서울팀들 기차시간까지 조금 시간이 남을 것 같아서 답사코스를 조정했다. 내장사가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 가야해서 빼는 대신 김제 금산사와 귀신사를 되는 대로 보기로 했다. 저녁은 건너 뛰게 되었다.
정읍 미륵사 석불좌상
원래 계획되었던 내장사를 건너 뛰고 다시 정읍으로 왔다. 여러 번 왔던 절집인데 절집 보살님이 아주 화통하시다. 석불좌상에 참배하고 보고 나왔는데 보살님이 음료수와 떡을 내어 주시며 우리 집에 문화재 부처님이 두분 계신다고 해서 다시 법당으로 들어 가니 한쪽 귀퉁이에 색난스님이 만든 보살상이 보인다. 들어가자 말자 미륵불의 모습만 눈에 들어 왔으니 답사 구력이 있어도 참 한심한 노릇이다. 발이 잘 보이지 않아서 좌상인지 물으니 법당 보살님이 아예 불단을 치워 주신다. 나오면서 법당보살님 칭송이 이어진다.
정읍 무성서원
어제 답사를 마칠 무렵에 갈모산방님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된 무성서원을 갈 수 있냐고 넌지시 물어 본다. 동선 상에 있으면 가 봅시다라고 말하고 지도에 찍어 보니 무성리 석탑 바로 아래이다. 사람이 많지 않는 답사는 언제든 동선의 변경이 가능하다..원래 계획된 4끼의 식사 중 오늘 아침에 먹은 식당을 제외하고 다 현장에서 바꾸었다.
도착해 보니 아는 곳이다. 석탑을 보러 가며 차창관광으로 스쳐 지나갔던 이름 모를 서원이었다. 평지에 조성되었고 기록에는 최치원의 생사당이 있었던 서원이라고 한다. 아마 그래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정읍 무성리 삼층석탑
햇살이 강렬하다. 한 여름 날씨 같다. 이리저리 돌아가며 탑을 돌아본다. 탑신석이 조금 비스듬하게 치석되어 있다. 농담삼아 탑이 삼굴자세를 하고 있다고 하니 다들 웃는다. 탑신석이 위아래 옥개석의 크기와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인다. 1층과 2층사이에 더 들어가 있어야 해서 원래 오층석탑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정읍 무성리 석불입상
탑이 있는 곳 바로 옆에 민가처럼 보이는 절집에 있다. 현판을 보니 법상종 사찰이다. 여러 번 왔었는데 올 때마다 사람이 없다. 그래도 법안 안은 잘 정리되어 있다. 오른 손에 보주를 들고 있다. 전에는 확인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승각기의 방향을 보니 고려전기 불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는 불상이든 탑이든 거의 기록하지 않아서 연대를 추정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몇 몇 양식적인 특징을 살펴서 추측할 수 밖에 없다.
김제 금산사
원래 계획에는 없던 곳이다. 백양사에서 생각보다 시간이 적게 걸려서 계획을 수정하여 왔다. 모두들 큰 절집에 답사를 오니 좋아라 한다. 개인적으로는 성보박물관이 상시개방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여전히 내부수리 중이다. 보기 힘든 문화재들을 교구본사 성보박물관에 잘 모셔 놓고 실제로 개방하고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답사를 다니면서 늘 아쉬운 지점이다.
1. 당간지주
모든 구성요소가 아주 잘 남아 있다. 크지는 않지만 아주 섬세하게 조각을 했다. 간공과 대석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가 소환된다. 전국을 다니면서 답사를 하면 그 날 답사하는 곳 뿐만 아니라 비교가 될 수 있는 모든 문화재들이 소환되어서 좋다. 세종아빠, 별바다, 김환대, 갈모산방, 단청님 등의 고수들이 함께 하는 답사에서는 어떤 분야든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2. 대장전 목조삼존불상과 광배
조선시대 석불에는 거의 광배를 대신하여 후불벽화나 탱화를 거는 것이 일반적인데 목조광배가 남아 있다. 여기서도 여수 흥국사의 삼존불 광배가 소환된다. 기억나는 목조광배는 봉화 축서사에도 있다. 자세히 살피니 광배를 너무 높이 올려서 신광과 두광의 위치가 맞지 않다. 아마도 광배를 좀 더 자세히 보라고 그렇게 해 놓은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광배를 낮춘다면 대략 불신과 크기가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3. 석등
간주석이 조금 특이해 보인다.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모양이다. 수직으로 자른다면 그 모습이 사다리꼴이다. 화사석도 정팔각형이 아니라 귀퉁이를 살짝 잘라낸 듯 한 부등변팔각형이다.
4. 노주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어서 노주라는 명칭으로 지정이 되어 있다. 노주가 되려면 상대석 위가 평면이어야 하는데 마치 깨진것 처럼 평행하지 않는 부분이 보인다. 그럼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장에서는 불대좌형 석탑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오간다. 안상에 이중 테두리가 되어 있다. 이런 곳이 몇 군에 있다.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의 야외전시장에도 있고 중박의 현화사 석등에도 있다. 다들 법상종 사찰이다. 법상종 사찰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옥개석아래를 장막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보인다.
5. 육각다층석탑
보통 청석탑이라고 불리는 탑이다. 전국적으로 10여기 이상이 존재한다. 청석탑의 경우 탑신석이 거의 사라지고 옥개석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탑은 2개의 탑신석이 남아 있다. 탑신석을 자세히 살피면 불상이 새겨져 있다. 햇빛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서 이리 저리 살피다 보니 탑신석만 새겨진 것이 아니라 옥개석 아래부분에도 뭔가가 새겨져 있어서 확인해 보니 겨우 보이는 부분은 비천이거나 화염보주로 보인다. 세종아빠님은 탑신석에 새겨진 불상의 특징이 고려말 조선초이기때문에 이 탑도 고려말 조선초로 편년을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나 또한 같은 의견이다. 청석탑을 모두 고려전기로 편년하는 것을 다시 고려해야 할 것 같다.
6. 오층석탑
방등계단 앞에 있는 오층석탑이다. 원래는 구층석탑이라고 하는데 어느 시기엔가 오층석탑으로 다시 만들어 진 듯 하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만 살펴봐도 비례가 잘 맞다. 현장에서는 노반석의 처마면이 사절되어 있어서 오층으로 만들 때 기존 옥개석을 노반으로 재활용한 듯 하다는 의견이다.
7. 미륵전 석고미륵불입상
불단 뒤쪽에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공양미를 시주해야만 갈 수 있다. 솥을 대좌 대신 사용하고 있다. 안가본 분들을 위해 세종아빠님이 대신 공양미를 사 주신다고 한다. 멀리서 오신 분들의 눈을 띄우기 위한 공양미를 사주시는 심청이의 마음인가 보다. 날이 더워서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김환대님은 종일 틱톡 방송 중이라 바쁘고 산천초목님은 한 컷이라도 더 카메라에 담기 위해 발을 재게 놀리며 다니고 계신다. 단청님과 친구분은 좀 지치는지 그늘에 앉아 쉬고 있고 세종아빠, 여여림, 갈모산방님은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땡볕을 분주히 다닌다.
8. 제 2주차장 근처 석조여래입상
전각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답사객들이라도 이곳에 석불입상이 있는지 잘 모른다. 대부분 차를 가지고 당간지주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서 이곳에 들르는 경우가 없다. 지난 번에 세종아빠님의 안내로 봤고 이번이 두번째다. 조명을 조명 비춰야만 옷주름이 보인다. 옷주름이 섬세한 것을 보면 아주 공을 들여 만든 부처님이다.
김제 귀신사
금산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서 서울팀들 저녁을 희생하여 들렀다. 동호회 답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보고 많이 느끼느냐라서 밥을 건너뛰는 것이 거의 일상이다. 특히, 헤어지는 날에는 최대한 보고 저녁은 알아서 해결하는 것으로 한다. 비구니 스님이 주석하시는 곳이라 절집이 아주 깔끔하고 군데군데 꽃이 심어져 있다.
1. 대적광전 소조비로자삼불좌상
백양사에서도 지정명칭을 소조로 하느냐 목조로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곳은 소조로 지정을 했다. 그 기준을 명확하게 모르겠다. 아직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되지 않는 시기라서 조선 전기의 특징이 좀 남아 있다고 한다. 왼쪽 팔에 주름이 접힌 부분이라든지 허리가 조금 긴 것이 그런 특징이라고 한다. 아직 조선 불상에 대해서는 긴간민가 하는 편이다. 계속해서 더 보다 보면 나아지리라 생각할 뿐이다.
2. 명부전 소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전에 와서 개별 사진을 다 찍었던 터라 오늘은 사진보다는 간단하게 살피는 데 집중을 했다. 아직 시왕상이나 나한상의 특징을 잘 몰라서 그저 특이한 표정이나 자세에 집중해서 살필 수 밖에 없다. 이 곳도 세트가 다 있는 것 같다.
3. 귀신사 석탑
백제계 석탑으로 분류되는 탑이다. 기단부가 제대로 있다면 좀 더 비례가 맞을 듯 한 탑이다. 어제도 언급했던 ㅍ자형으로 1층 면석을 결구했다. 우동마루가 두껍고 위 아래에 장식공을 뚫었는데 관통하지는 않았다. 그런 아래쪽에 풍탁을 다는 방식이 고리를 거는 것이 아니라 쇠덩이를 구멍에 바로 쳐서 넣는 방식으로 풍탁을 단다. 이련 예가 예산 향천사 구층석탑에 보면 잘 나타나 있다. 아래쪽에 하나의 구멍이 있으면 관통한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관통하는 경우가 일부 있고 아닌 경우가 더 많다.
4. 귀신사 석수
석탑옆에 있는 사자로 보이는 동물 위에 남근석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귀신사가 있는 지형이 여성의 성기모양이라서 음기가 쎄서 이렇게 남근석으로 음양을 조화를 이루었다고 한다. 절집에 남근석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웃으면서 살폈다.
5. 영산전 소조석가삼존상과 나한상
중앙에 원래 수기삼존이 있어야 하는데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이 어떤 이유로 사라져서 범천과 제석천을 놓았다. 세종아빠님 설명으로는 범천과 제석천이 천이라서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존재라 깨달음을 얻은 나한보다는 그 격이 낮다고 한다. 그래서 좌우에 있는 범천과 제석천이 16나한의 끝에 와야 하는데 이 전각에서는 마치 보살인 듯 착각하여 석가불의 좌우에 배치된 것 같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김제 청도리 삼층석탑
귀신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기차시간이 임박해서 못갈 것 같았는데 기차를 놓치더라도 가야 한다는 세종아빠님의 강력한 의지로 다녀왔다. 하층기단에 받침을 표현한 석탑이고 기단부에 각각 안상이 4개씩 있다. 작은 탑이라서 1층 탑신석을 하나의 돌로 만들 수도 있는데 큰 탑의 탑신석을 만들듯이 만들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1박 2일 간의 공식답사는 끝이 났다. 생각보다는 많은 곳을 갔고 생각보다는 많이 더웠다. 아직 여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벌써 여름이 성큼 온 것 같다. 밥을 건너뛰더라도 한 군데 더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늘 답사를 다녀오면 행복하다. 이 힘으로 또 살아가지는 것이다.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
멀리 창원까지 가야 하는 길이라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에 공기밥을 한 그릇 먹었다. 여여림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야간 조명신공을 해서 참 좋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조명신공 하고 싶은 곳으로 도전리 마애불상군을 꼽는다. 마침 산청근처를 지나는 길이라 바로 차를 돌렸다. 이곳은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면서 조명신공을 할 수 있는 곳이라 집에 조금 늦게 갈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조명을 비출 수 있는 곳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답배값보다 작다. 하나하나의 상을 비추고 찍고 살폈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으나 그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다.

첫댓글 답사때 마다 새로보이는 부분도 있고
더 아름답게 보여지는부분도 많습니다
이번답사에서는 그런 수확이 풍년인것 같습니다
다음에 가면 또 무엇이 달라져보일까?
아니 내가 또 무었을 창조할까?
그래서 살아가면서 답사도반님들과 한잔의 맥주도 나누고 새로운것을 발견하고 찾아가는것 아닐까요
노마드 대장님을 따라가면
모두가 함께 즐겁고 신나는 답사이고 멋진 삶을 창조하는것 같습니다
늘 감사한 말씀입니다..회원님들이 다들 수준이 높으셔서 함께 해서 더 좋은 답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