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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
성탄(星誕)이 아닌 성탄(聖誕)을 지키자
마태복음 2:6-12/하원식 목사
재산을 물려주고 싶었던 아버지가 있었다. 어떤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 줄까 생각하다 지혜를 하나 생각했다. '온 방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물건을 가져오너라' 어떤 아들은 솜, 어떤 아들은 모래, 어떤 아들은 물, 이런 것을 들고 왔다. 물론 이런 것은 아니었다. 한 아들이 등불을 가져와서 불을 붙였다. 온 방안이 빛이 가득 비추었다.
오늘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성탄 주일이다. 오는 토요일이 우리 주님이 온 인류의 죄악을 대속 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탄생하신 날이다. 그래서 이 날은 온 세계 사람들이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근래에 와서 이날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상업적으로 타락하고 변질이 되었어도 세계 구석구석 까지 이날을 축하하고 있다. 한때는 일 년 중 이 성탄절 날이 가장 술이 많이 팔리는 날이라고도 하고 악마가 바빠지는 날이라고 까지 하였다. 이런 현상이 일어 날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자숙하고 성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탄절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이 세상에는 많은 스타들이 있다. 연예인들이 스타가 된다. 스포츠 인들도 스타가 된다. 사람들은 대중의 별을 따라 다닌다. 이렇게 우리는 영화배우를 통해서 혹은 운동선수를 별로 만들어 가지고 그 별을 쳐다보며 우리의 감정을 해소해 보려고 하자마는 그 들 역시 우리와 똑 같은 문제 투성이의 인간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별이다. 흔히 우리가 사회적으로 성공이나 출세의 상징으로 말할 때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 "별"이다. 현대인들은 별을 좋아한다. 그리나 많은 사람들은 참된 별을 찾지 못하고 세상 적인 속된 별을 바라보고 소망이 있을까 하여 따라다니고 있다. 별 이야기를 전해 주었기 때문에 요셉은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 형들로 요셉을 섬기는 스타들로 부르셨다.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스타들 별들은 영원하지 않다. 별빛이 희미해져 올 때가 있다. 인기가 떨어질 때가 온다. 그러나 영원히 빛나는 별이 있다. 오늘 저는 결코 쇠하지 않고 결코 떨어지지 않는 별의 빛을 말씀드리려고 한다. 20세기의 성자 슈바이처는 "현대인이 하루에 몇분 만이라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우주를 생각했더라면 현대 문명이 이렇게 병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동방박사들이 이상한 별을 따라 오랫동안 먼길을 찾아와서 별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경배하고 돌아간 사실에서 신앙적 교훈을 얻게 된다.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했다. 그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은 "베들레헴"이였다. 베들레헴은 번역하면 "떡집"이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 "떡집"으로 찾아와서 참 생명의 떡이 되시는 아기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다. 이상한 별을 보고 찾아와서 별의 주인공이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고 돌아갔다는 말씀 가운데서 여러 가지 신앙적인 교훈을 얻게 된다. 영원히 변치 않는 희망의 별, 진리의 별을 따라서 그리스도 앞에 경배할 때 우리의 마음에 참 평화와 기쁨과 삶의 의미를 얻게 된다.
1. 하늘을 바라보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았다.
박사들은 항상 하늘을 바라보는 직업이었다. 하늘을 바라본 다는 것은 하나님을 앙망 하는 것을 말한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 성도들은 저 높은 곳 하나님 계신 곳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어두운 시대, 어두운 땅에 빛 되신 생명의 주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셨다. 그러나 그 별을 발견하였음에도 이 세 사람 외에는 그 별을 보고도 지나쳐 버렸다.
늘 뜨고 지는 별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 별을 보았지만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 동방의 박사들은 위를 바라보고 그 별을 따르는 삶을 결정했다. 우리에게 새벽 별은 언제나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그것은 어두운 밤이 곧 걷히고 밝은 아침이 온다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다. 온 인류가 어디로 가야할 지 방황하고 있을 때,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 위에 비추는 빛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깜깜한 인류의 빛으로 찾아 오셔서 인도하시기 위해 찾아오셨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 사람들은 정치의 별을 찾아 다닌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스타를 기다린다.
(2) 사람들인 대중의 별을 찾아다닌다.
영화 배우라든지 대중가요 스타들을 통해 우리의 감정을 해소해 보려고 하지만 그들 역시 우리들과 같은 문제 투성이의 인간이다. 이제 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참된 소망의 별, 인류의 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너무나도 땅에 속한 일차원적인 세계에 급급한 나머지 꿈도 없이 하늘을 우러러볼 만한 용기도 없이 참된 별을 찾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 대신 텔레비젼 속에 있는 별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많다. 바사의 동방 박사들은 홀연히 동쪽에 이상한 별이 나타나자 그 별을 따라서 떠난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달라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인간만이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헬라어로 안트로포스, 즉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고 한다. 하늘에 떠 있는 진리의 별을 볼 수 있을 때 우리에게 참된 희망과 기쁨이 찾아오는 것이다. 저 높은 별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찾자. 겸손하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진리의 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참된 기쁨과 소망을 얻게 될 것이다. 동방으로부터 출발한 박사들이 이상한 별을 보고 따라갔는데 그리고 꾸준히 끝까지 따라갔다. 이 동방박사들은 크고 이상한 별이 나타나면 왕이 나신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이 박사들은 알고서 왔다. 고생 많고 어려움 많은 인생여로에서 이 박사들같이 끝까지 꾸준히, 그리고 순수한 신앙의 동기로 경배하고자 하는 심정으로 따라가야 하겠다.
2. 별의 주인공을 찾아 경배했다
그들은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나왔다. 그들은 예수를 찾아 자신들의 소원을 구하고자 나오지 않았다. 아기 예수를 만난 그들은 그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제시하지 않았다. 단지 그에게 경배하고 자신들이 준비해 온 예물을 정성스레 드린 다음 자기들 갈 길로 돌아갔다. 우리는 예수께 많은 목적을 가지고 나온다. 어떤 이는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 어떤 이는 자녀의 문제를 위해서 어떤 이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이는 자신의 슬픔을 위로 받기 위해서 나온다. 우리는 먼저 주께 경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며 그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구해야 한다. 동방 박사들이 오로지 경배하기 위해 찾아 왔듯이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구하시며 우리를 자신의 친구와 아들로 삼아 주시는 그분을 찬양하기 위해 주께 나아가야 한다. 그들은 왕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고 달려온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왕을 만나 경배하러 왔을 뿐이다. 그런 분을 자신의 생애에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고, 순전한 마음으로 자신들이 준비해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그분 앞에 바쳤다.
그러므로 박사들의 헌신은 아름답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을 준비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들은 왕과 같은 귀한 분들에게 합당한 예물이다. 값비싼 귀중품이다. 동방 박사들은 그 별이 지시하는 곳에 가서 어린 아기 예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면서 경배했다. 11절 말씀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고 하였다. 이 보배 합을 연다는 것은 마지막 헌신을 뜻한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경배도 하고 기도도 하고 모든 것을 다 하면서도 보배 합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박사들이 올 때에 그냥 온 것이 아니라 귀중한 예물을 준비해 가지고 왔다. 이런 선물을 아기 예수께 드리기 위해서 가지고 왔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드린 예물은 황금, 유향, 몰약, 인데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이 되어있는 것들이다.
*황금 -왕께 드리는 예물이다.
예수님은 만 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예물로 황금을 드린 것이다. 금은 3가지 상징성이 있다.
1)으뜸 성이다. 2)불변성이다. 3)보배 성이다.
*유향 -제사장이 성전에서 분향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그분에게 합당한 예물로 유향을 드린 것이다. 유향은 예수그리스도의 제사장 권을 상징한다. 칼빈은 유향은 예수그리스도의 제사장 권을 상징한 것이라고 했다. 향의 영적 의미는 1)기도다. 계 5:8절에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고 했다. 2)치료제 의미가 있다.
*몰약 -시체에 바르는 방부제로서,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인류의 대속을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예물이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
의 장사되심을 상징한다"고 했다. 인간은 하나님께 경배할 때만 참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인생은 예배하는 대상을 찾기 전까지는 참된 기쁨을 느낄 수 없다. 선물은 인간생활에서 아름다운 마음의 표현일 때가 많다. 일년에 한번 맞는 이 기쁜 성탄에 우리도 동방 박사와 같이 정성으로 귀한 예물을 드리자
3. 그들은 주의 지시를 따라갔다.
12절에 “꿈에 혜롯에게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를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1) 두 지시(指示)
본문말씀에 보면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롯 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탄을 맞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죄악의 길로 가지말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길로 가야 된다. 진리의 길로 가야 한다. 세속적인 삶에서부터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다른 길을 따라 갔던 박사들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 뵈온 다음에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에 "지시하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누구의 지시를 받느냐, 누구의 조종을 받느냐, 누구의 지령을 받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진다. 죄와 유혹의 지령은 사단이 내린다. 그러나 믿음과 착한 행실의 지령은 하나님이 내리신다. 누구의 지시를 받느냐에 따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이 동방박사들에게는 두 가지 지시가 있었다. 그 하나는 혜롯 왕의 명령이다. 혜롯의 아기 예수 난 곳을 알면 꼭 알리라는 명령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박사들에게 헤롯왕에게 다녀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가라고 했다, 인생 길에는 언제나 이런 두 가지 명령이 따른다. 박사들이 헤롯왕의 명대로 그에게 갔더라면 수고했다고 토산품의 선물이라도 두둑하게 주었을는지 도 모른다.
(2) 주의 지시 따름
만일 박사들이 헤롯에게 가기만 하면 얼마 후 아기 예수의 가슴에는 칼이 꽃일 것이다. 그리나 이 박사들은 헤롯의 명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랐다. 하나님의 지시를 순종하니 자기들에게는 축복이요, 아기 예수는 위기를 면하였다. 동방박사들은 주의 지시를 따라 오지 않던 다른 길로 갔다. 예수를 만난 다음에 전보다 달라지는 생활양상의 길을 가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도 동방박사 같이 주의 지시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따르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성탄절을 지낸 사람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죄악의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진리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 성탄을 지킨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 우리는 말씀만을 따라 가야 한다. 이 말씀을 별로 보고 동방의 박사들처럼 따라 가야 한다. 본문에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던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 아니고 이방의 박사들이었다. 말씀을 안다는 것도 중요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혼탁한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신앙 인은 말씀대로 '실천하는 성도'다. 우주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일로 인하여 소동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그 날에 많은 불신자들이 재림하시는 주님 나팔 소리에 소동할 것이다. 이 땅 위에 사는 사람 중에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 잘못된 길에서 허덕이는 사람, 자기 생각대로 가보는 사람, 내친걸음이니 그냥 걸어가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 크리스마스 아침에 우리를 바로, 그리고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그 별,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란다. 베들레헴 마구간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세상의 희망' 을 발견하는 크리스마스가 되시기를 바란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을 보고 "아, 대단한 인물이 태어난 것이 틀림없구나"하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 별을 보고, 멀리서부터 베들레헴까지 갔다.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에 머물러 서게 될 때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다(9-10절). 잠시도 그들은 그 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빛이요, 치료의 빛이요, 진리의 빛이라고 했다. 이런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사는 것이다. 이게 우리가 사는 길이다.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이다.
① 별을 보면서 가는 사람들은 비젼이 있는 사람들이다.
비젼이란, 환상 꿈, 소망 등을 가르치는 말이다. 하늘을 바라볼 때 희망이 온다. 사람들이 희망을 말하지만...사실 세상에는 참된 희망이 없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절망적이고 참담한 인류의 가슴에...성탄절에 위로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총만이 유일한 세상의 희망이다.
② 별을 보면서 가는 사람들은 별과 같은 예수님을 닮게 마련이다. 동양교육에 태교가 있다. 존경하는 인물의 사진을 걸어놓고 이 어머니가 그분을 바라보며 흠모하고 묵상하면서 자연히 그 태 중에 있는 아이가 그분을 닮게 된다는 교육이다.
호오톤(Nathanael Hawthorn)이라는 미국의 19세기 문인의 단편소설 중에 큰 바위얼굴이 있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런 것이다. 미국 동북부 지방의 어느 산골 마을에는 높은 산에 사람의 얼굴을 한 큰 바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은 위엄이 있고 또한 온화하고 또 신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그 산골지역 사람들 사이에 이 바위얼굴에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언제인가 그 지방에 그 큰 바위얼굴과 꼭 같은 모습을 한 위대한 영웅이 출현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네의 한 가난한 과부와 어린 소년이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에른스트 였다. 그의 어머님은 대대로 내려오는 이 바위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어린 아들에게 들려주곤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린 에른스트의 눈은 빛났다. 언젠가 나타나게 될 그 영웅을 직접 만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흥분하는 것이었다. 에른스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이야기를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서 거의 매일 그 바위 얼굴을 쳐다보면서 언제인가 출현할 위대한 영웅을 상상하고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산골지역 사람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그 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지역 출신의 한 젊은이가 일찍이 넓은 세상으로 나갔었는데 그가 사업에 성공하여 큰 부자가 되어 금의환향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지역사람들은 그 소식에 들떠서 그가 태어난 고향마을로 돌아온다는 날 모두 길가에 나갔다. 길가에 운집한 시민들로부터 환호과 영광을 받으며 나타난 그 사업가는 과연 화려하고 고상한 차림을 한 귀인이었다. 그러나 그 사업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을 때 그는 큰 바위얼굴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크게 실망했던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바위얼굴의 주인공인 위대한 영웅이라고 환호하였다. 이 사업가는 그의 부모가 살았던 허술한 농가를 허물고 그 자리에 호화롭고 웅장한 저택을 짓고 그곳에 정착하여 부자로 살았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람들은 그가 그들이 기대했던 위대한 영웅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데 또 큰 바위얼굴의 주인공이 나타난다는 소식이 나돌았다. 이번에 나타난 사람은 위대한 장군이었다. 그러나 당당하고 무서운 그 장군도 그들이 기다리던 영웅은 아니었다. 얼마 후에 또 다른 위대한 영웅이 그 동네에 출현하게 되었다는 소식으로 다시 한번 그 지역은 흥분했다.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렸던 위대한 정치가가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그도 아니었다.
이렇게 하는 사이에 세월이 많이 흘렀다. 에른스트는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학자는 아니지만 그 큰 바위얼굴과의 깊은 친교를 통한 오랜 삶에서 그의 인격은 완숙하고 지혜와 덕과 심오한 사상으로 충만한 노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이 에른스트 와 함께 자라났고 살고 있던 같은 지역출신이고, 그와 동년배의 사람으로, 그 지역에서 이름이 알려지게 된 훌륭한 시인이 있었다. 에른스트는 그 시인의 시를 접하게 되었다. 영감이 가득 차 있는 훌륭한 시를 읽고서 그 시인이 혹 큰 바위얼굴의 인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에른스트는 그 시인의 얼굴과 큰 바위얼굴을 견주어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그 시인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큰 바위얼굴의 주인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여간 실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날 마침 그 지역에서 큰 집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그 시인과 함께 참석하기로 하였다. 사실은 에른스트는 그 날 모임에 연설자로 초청을 받았다. 에른스트가 지역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얼굴은 빛났다. 그리고 그의 말은 이상한 영적 힘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연설을 마쳤을 때 그 시인은 일어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보시오! 에른스트 는 큰 바위얼굴을 꼭 닮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주목했고 시인의 말에 동의하였다. 그 지역에 큰 바위얼굴을 한 위대한 영웅이 나타나리라는 예언이 바로 평생을 그 지역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왔던 에른스트라는 노인에게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그러나 에른스트 그 자신은 겸손하여 그가 그 바위얼굴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언젠가 그 자신 보다 더 지혜롭고 더 훌륭한 인물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희망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큰 바위 얼굴에서 우리는 그 큰바위를 바라보고 자랐던 사람이 큰 바위 얼굴을 닮았었다.
참으로 예수를 바라보고 흠모하고 닮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어 인류에게 하나님의 인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분이시다. 그는 인간으로서 가장 위대한 생애를 보냈다. 그는 가장 친절하고 부드럽고, 온화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으로 살았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셨다. 용서하여 주고, 도와주시기를 좋아하셨다. 그는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시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 주셨다. 그리고 인류를 대속하사 십자가를 져 주신 분이시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모범적이고 흠모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
우리 인류의 큰 별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자연히 예수님을 닮게 마련이다.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란다. 기독교인은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진리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희망을 지닌 사람들이다. 아름다운 하늘의 별과 같이 마음과 영혼에 아름다운 별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도 하늘의 별이 있듯이 내 마음에도 양심이라는 별이 있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을 볼 수 있다.
환풍기 수리공이 대 국민 오디션을 통해 인생역전을 이룬 허각이라는 슈퍼스타의 탄생을 보았다. 허각의 우승이 감동적인 이유는 인생역전 스토리 때문이다. 불우했던 환경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모습에 대중은 감동을 느꼈다. 그 역시 혼신의 힘이 담긴 무대로 보답하며 성공에 대한 집념과 노력을 보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슈퍼스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허각은 환풍기 수리공, 중졸 학력, 작은 키 등 모든 약점을 극복하고 영국에서 휴대폰 영업사원이 일약 스타가 되었던 것처럼 '한국판 폴포츠'가 되었다.
우리 이번 성탄절에는 진정한 구주가 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누구는 예수님을 슈퍼스타라고 하는데 나는 반대다. 예수님은 결코 슈퍼스타 지져스 크라이스트 라고 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던 뮤지컬이 있었는데 예수는 슈퍼스타가 아니고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예수님의 탄생은 타락한 세상의 변화와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셨다. 평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셨다. 진리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진리의 빛이 되셨다. 사랑을 갈구하는 자들에게 사랑을 부어주심으로 희망을 가지게 하셨다.
구원을 갈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하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산 소망의 빛이 되신 것이다. 베들레헴으로 인도하던 별이 동방박사들 앞에 비침으로 기쁨이 되고 소망을 주었던 것처럼 오늘날 예수님은 이 암흑으로 덮여있는 세계,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계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으리라"고 하였다. 여기 "나는 길이요" 한 말은 "오직 나만이 그 길이다"는 강한 뜻이 있다. 그리스도는 많은 길 중의 한길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그 길이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불안을 제거하고 기쁨을 주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죄로 말미암아 희망이 없는 개인이나 사회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쁨과 희망에 넘치는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하였다.
새벽 별은 밤이 지나고 새벽을 맞게 될 때 유난히도 빛난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어두운 밤에 광명한 새벽 별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새 희망을 가지자. 당신도 지금 그리스도를 바라며 이러한 영광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시오. 그러면 당신도 동방 박사들과 같이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제 별은 사라졌다. 동방의 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은 더 이상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별이 증언한 예수님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예수님을 찾아 왔던 동방의 박사들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이 만났던 그 예수님은 아직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그리스도를 증거 했던 수많은 설교자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이 증언한 예수님은 아직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불안을 제거하고 기쁨을 주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죄로 말미암아 희망이 없는 개인이나 사회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쁨과 희망에 넘치는 새 것이 된 사실을 인류 역사를 통해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가 얼마 전에 미국을 방문할 때였다. 그의 행차를 놓고 많은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며 경쟁하듯이 여왕의 의전품 목록에 대해 보도했다. 행사 때마다 2벌씩 갈아입을 옷을 가져갔고, 누가 죽었을 때를 대비해서 상복까지 가지고 갔으며 왕이 병이 들면 급하게 쓰려고 19L짜리 혈장 액을 들고 가고, 또 화장실에 들어가서 아무 변기에나 앉다가 세균에 오염될까 두려워서 변기 깔개까지 들고 간 것이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챙기다 보니 짐만 해도 2000kg이 넘었고, 이 여행에 들어간 경비가 우리 돈으로 무려 26억 원이나 되었다. 여왕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마다 유명하다는 사람은 다 모여서 그를 영접하느라고, 또 언론사들은 그 사실을 보도하느라고 이만저만 요란했던 것이 아니었다. 태양계는 그야말로 모래알보다 작다 그 태양계 중에서도 아주 작은 별 중에 하나인 지구, 그 중에서도 아주 작은 나라 중에 하나인 영국이라는 나라의 여왕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데도 그렇게 요란을 떠는데, 하나님의 아들, 그 크신 분이 오신 것에는 누구 하나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성탄절에는 슈퍼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성탄(星誕)이 아니라 진정한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인 성탄(聖誕)을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