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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懷讓 선사의 제4세 ①
앞의 위산潙山 영우靈祐 선사의 법손
원주袁州 앙산仰山 혜적慧寂 선사
그는 소주韶州 혜화懷化 사람으로서 성은 섭葉씨이다.
나이 열다섯 살에 출가하려 했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2년 후에 두 손가락을 끊고 부모 앞에 꿇어앉아서
바른 법을 구하여 노고에 보답하겠노라고 서원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화사南華寺 통通 선사에 의지하여 머리를 깎고,
미쳐 구족계를 받기 전에 행각을 떠났다.
처음에 탐원耽源을 만나서 현묘한 종지를 깨닫고,
나중에 위산潙山을 참문參問하여 당堂의 깊숙한 곳에 오르게 되었다.
위산潙山 영우靈祐가 물었다.
“그대는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대사(앙산)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서 서니,
영우는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고서 법을 일러 주었다.
대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참 부처가 사는 곳입니까?”
“생각하면서도 생각 없는 묘함으로써 신령한 불꽃의 무궁함을 돌이켜
생각하되,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면 성품[性]과 모습[相]이 항상 머무르고
일[事]과 이치[理]가 둘이아니라서 참 부처가 여여如如하리라.”
대사가 이 말끝에 단박에 깨달았다.
이로부터 시봉을 하다가
강릉江陵으로 가서 계를 받고 여름을 지내면서 율장律藏을 탐구했다.
나중에 암두巖頭를 뵈니,
암두가 불자拂子를 쳐들었다.
대사가 방석을 펴니, 암두가 불자를 들었다가 등 뒤에다 두었다.
대사가 방석을 어깨에 메고 나가자,
암두가 말했다.
“나는 그대가 놓아 버리는 것은 수긍하지 않는다.
다만 거두어들이는 것만을 수긍한다.”
또 석실石室에게 물었다.
“부처와 도道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도는 손을 편 것 같고, 부처는 주먹을 쥔 것 같다.”
그 길로 석실을 하직하니,
석실이 문까지 전송을 나왔다가 대사를 부르고 말했다.
“그대는 한결같이 가지만 말라.
이후에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라.”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알고자 하는가?
지금은 방으로 돌아갔다가 내일 다시 오라”고 하였다.]
위주韋宙가 위산潙山에게 가서 게송 하나를 써 달라고 하니,
위산이 말했다.
“얼굴을 빤히 보면서 전해 주어도 역시 모르는 둔한 무리이거늘,
하물며 종이나 먹으로 형용한다고 되겠느냐?”
그가 대사에게 와서 청하자,
대사는 종이 위에다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놓고는 이렇게 주注를 붙였다.
“생각해서 아는 것은 제2두頭에 떨어지고,
생각하지 않고서 아는 것은 제3수首에 떨어진다.”
어느 날 위산을 따라서 밭을 일구다가 물었다.
“여기는 이렇게 낮고, 저기는 저렇게 높습니다.”
“물은 능히 사물을 평평하게 하니, 단지 물로써 수평을 삼아라.”
“물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화상은 다만 높은 곳은 높은 대로
평평케 하고, 낮은 곳은 낮은 대로 평평케 하십시오.”
영우 위산이 옳다고 여겼다.
어떤 시주施主가 비단을 보냈는데, 대사가 물었다.
“화상은 시주의 이러한 공양을 받으시고, 무엇으로 보답하시겠습니까?”
영우靈祐가 선상禪床을 두드려 보이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뭇 사람의 물건을 자기 것으로 쓰십니까?”
영우가 갑자기 물었다.
“어디를 갔다 왔는가?”
“밭에 갔었습니다.”
“밭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대사가 삽을 꽂고 섰으니,
영우가 말했다.
“오늘 남산南山에서 여러 사람이 띠[茅]를 베더라.”
그러자 대사는 삽을 들고 가 버렸다.
[현사玄沙가 말하기를 “내가 보았더라면 삽을 차서 넘어뜨렸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경청鏡淸에게 묻기를 “앙산이 삽을 꽂은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자,
경청이 대답하기를 “개가 사서赦書를 물고 가니, 제후諸侯가 길을 피한다”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현사가 삽을 차서 쓰러뜨린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경청이 대답하기를 “배<船>를 어찌할 수 없어서 표주박을 때려 부셨다”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남산에서 띠를 벤다는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경청이 대답하기를 “이정李靖이 세 형제 중에서 가장 오랜 진陣을 쳤느니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경청이 이러한 판단을 한 것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이 화산禾山에게 묻기를 “앙산이 삽을 꽂은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화산이 대답하기를 “그대가 나에게 물어라”고 하였다.
스님이 다시 묻기를 “현사가 삽을 쓰러뜨린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화산이 대답하기를 “내가 그대에게 묻는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위산에서 소를 먹일 때에 제1좌座가 말했다.
“백억 털끝에 백억 사자師子가 나타났구나.”
대사가 대답하지 않고 돌아가서 (위산을) 모시고 섰는데,
제1좌가 문안을 올리러 왔다. 대사가 앞의 말을 들면서 물었다.
“아까 말하기를 ‘백억 털끝에 백억 사자가 나타났다’고 하시지 않았소?”
상좌가 말했다.
“그렇소.”
“그렇다면 나타날 때에는 털 앞에 나타났소, 아니면 털 뒤에 나타났소?”
“나타날 때는 앞뒤를 설하지 않소.”
대사가 그대로 밖으로 나가니,
영우가 말했다.
“사자의 허리가 부러졌구나.”
위산의 상좌上座가 불자拂子를 번쩍 들고 말했다.
“이 도리道理를 알아채는 이에게 이것을 주리라.”
대사가 대답했다.
“제가 도리를 알아채리니, 그래도 되겠습니까?”
“다만 도리를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자 대사가 불자를 빼앗아 가지고 갔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어디가 앙산의 도리인가?”라고 하였다.]
어느 날 비가 오자, 상좌가 말했다.
“좋은 비로구나, 혜적慧寂 사리闍梨여.”
“좋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상좌가 말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제가 말할 수 있습니다.”
상좌가 말했다.
“좋은 것이 어디에 있는가?”
대사가 비를 가리켰다.
위산이 대사와 함께 길을 가는데,
까마귀가 홍시紅柿 하나를 물어다가 앞에다 떨어뜨렸다.
위산이 그것을 주어서 대사에게 주니,
대사가 받아서 물로 씻어다가 위산에게 주었다.
영우(靈祐:潙山)가 물었다.
“그대는 이것을 어디서 얻었는가?”
“이것은 화상의 도덕道德이 감응한 바입니다.”
영우가 말했다.
“그대도 허탕을 칠 수는 없지.”
그리고는 반을 나누어 대사에게 주었다.
[현사玄沙가 말하기를 “못난 위산이 앙산의 한 방망이를 맞고
넘어져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는구나”라고 하였다.]
대사가 빨래를 하는데, 탐원耽源이 말했다.
“바로 이럴 때에 어떠한가?”
대사가 말했다.
“바로 이럴 때를 어디서 보았습니까?”
대사가 위산을 왔다갔다하기 15년 동안 무릇 배우는 무리들이
그의 말과 글귀[語句]에 승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위산의 비밀한 법인을 전해 받은 뒤에 무리를 이끌고
왕망산王莽山에 살았는데,
교화할 인연이 맞지 않아서 앙산仰山으로 옮기자,
배우는 무리가 많이 모여들었다.
대사가 상당하여 무리에게 보였다.
“그대들 모두가 제각기 광명을 돌이킬지언정 내 말을 기억하지 말라.
그대들은 비롯함이 없는 겁 이래로 밝음을 등지고 어두움에 던져진 탓에
망상의 뿌리가 깊어져서 단박에 뽑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임시로 방편을 시설하여 그대들의 거친 의식을 뽑아 버리려 하니,
마치 누런 낙엽[黃葉]을 가지고 황금이라고 속여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과 같거늘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또 어떤 사람이 갖가지 물건과 금과 보배로 가게 하나를 차려서 장사를 하는 것과 같으니,
다만 오는 자들의 경중輕重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두石頭는 진금포眞金鋪요,
나는 잡화포雜貨鋪라 말하겠다.
어떤 사람이 와서 쥐똥을 찾더라도 나는 주고,
어떤 사람이 순금을 찾더라도 나는 주리라.”
다른 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쥐똥은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화상께 청하나니, 진금을 주십시오.”
“활촉을 물고 입을 열려고 한다면, 나귀 해가 되어도 모를 것이다.”
스님이 대답하지 못하니,
대사가 말했다.
“찾고 부르면 거래[交易]가 있고 찾고 부르지 않으면 거래가 없다.
내가 禪宗을 설하려면 신변에 한 사람을 동반하는 것도 필요치 않거늘,
어찌 5백 명, 7백 명이 있을 수 있으랴?
내가 만일 이렇게[東] 말하고 저렇게[西] 말하면 앞을 다투어 주워 모으려고 하는데,
마치 빈주먹으로 아이들을 속이는 것과 같아서 도무지 진실함이 없다.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분명히 말하나니,
거룩한 쪽의 일에도 마음을 두지 말고,
오직 자기의 성품 바다를 향해 여실히 닦되 3명明과 6통通을 바라지 말라.
왜냐하면 이는 성인들의 아주 지말적인 일[末邊事]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마음을 알아채고 근본을 통달하는 것이니,
다만 그 근본을 얻을지언정 그 지말적인 것을 근심치 말라.
다른 때, 훗날에 저절로 갖추어지리라.
만일 근본을 얻지 못하면,
비록 망정을 가지고 배운다 할지라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대들은 보지 못했는가?
위산 화상이 말하기를 ‘범속함이나 거룩함의 감정이 다해서 체體가 참되고
항상함을 드러내면, 이理와 사事가 둘이 아닌 것이 바로 여여如如한 부처이다’라고 하셨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대사가 손으로 허공에다 원상圓相을 그리고,
그 안에 불佛자를 쓰니, 스님은 말이 없었다.
대사가 제1좌에게 말했다.
“선善도 생각지 않고 악惡도 생각지 않으면, 바로 이럴 때 어떠한가?”
“바로 그럴 때가 저의 몸과 목숨을 던져 버릴 곳입니다.”
“어째서 나[老僧]에게는 묻지 않는가?”
“바로 그럴 때에 화상이 계신다고 보지 않습니다.”
“나를 부축하면서도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구나.”
대사가 위산에 돌아가서 문안을 드리는데,
영우가 물었다.
“그대는 이미 선지식이라 불리니,
제방諸方에서 온 사람들이 앎이 있는지 앎이 없는지,
스승이 있는지 스승이 없는지,
의학義學을 배웠는지
현학玄學을 배웠는지를 어떻게 변별하는지 말해 보라.”
“제게는[慧寂] 시험하는 곳이 있습니다.
제방에서 온 스님을 보면 문득 불자를 세우면서 그에게 묻되
‘제방에서도 이것을 설하는가, 설하지 않는가?’라고 합니다.
또 말하되 ‘이것은 그만두고 제방의 노숙老宿들의 뜻은 어떠한가?’라고 합니다.”
영우가 탄복하였다.
“이는 예로부터 종문宗門의 (날카로운) 손톱이요, 어금니이다.”
어느 날, 위산이 물었다.
“대지大地의 중생이 업식業識이 망망茫茫해서 의거할 근본이 없는데,
그대는 어떻게 그에게 있고 없음을 아는가?”
“저에게 시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때마침 어떤 스님이 그 앞을 지나자, 대사가 불렀다.
“사리闍梨여.”
그 스님이 머리를 돌리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이시여,이것이 업식業識이 망망해서 의거할 근본이 없는것입니다.”
영우가 말했다.
“이는 사자師子의 젖 한 방울로 나귀의 젖 여섯 섬을 물리치는 것이다.”
상공相公인 정우鄭愚가 물었다.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들 때에는 어떠합니까?”
대사가 불자를 번쩍 세우자, 상공이 말했다.
“입入이란 한 글자를 요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입이란 글자 하나가 상공을 위하지도 않소.”
[법등法燈이 따로 말하기를
“상공은 번뇌를 일으키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유주幽州에서 옵니다.”
“내가 마침 유주의 소식을 알고 싶었는데 쌀값이 얼마인가?”
“제가 올 때에 까닭 없이 시장을 지나쳐 오다가
돌다리를 차서 부러뜨렸습니다.”
대사가 그만두었다.
대사가 어떤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불자를 번쩍 세우니,
그 스님이 할喝을 했다. 대사가 말했다.
“할喝을 한 것은 타당함이 없지 않으나,
노승老僧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라.”
“화상께서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합당치 않으십니다.”
대사가 그를 때렸다.
대사가 향엄香嚴에게 물었다.
“아우[師弟]의 요즘 견처見處는 어떠하오?”
“제가 갑자기 말하려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게송을 하나 바쳤다.
작년의 가난은 아직 가난이 아니었고 금년의 가난이 비로소 가난일세.
작년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더니 금년엔 송곳마저 없다네.
去年貧未是貧 今年貧始是貧 去年無卓錐之地 今年錐也無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여래선如來禪만을 얻었을 뿐, 조사선祖師禪은 얻지 못했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조사선祖師禪과 여래선如來禪은 다른 것인가, 다르지 않은 것인가?
말해 보라”고 하였다. 장경長慶이 말하기를 “일시에 꺾어 버렸다”라고 하였다.]
위산이 거울 하나를 봉해서 대사에게 보냈는데,
대사가 상당하여 이를 꺼내 들고 말했다.
“말해 보라. 이것이 위산의 거울인가, 앙산의 거울인가?
누군가가 바로 말하면 깨뜨리지 않겠다.”
대중이 아무런 대답도 없자, 대사가 박살을 내버렸다.
대사가 쌍봉雙峰에게 물었다.
“아우의 요즘 견처見處는 어떠하오?”
“저의 견처에 의거하건대,
실로 한 법도 정情에 해당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대의 견해는 아직 경계에 있구나.”
“제가 보는 바는 그렇지만, 사형께서는 어떠하십니까?”
“그대는 어찌하여 한법도 정에 해당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위산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혜적의 이 한마디가 천하 사람을 의혹으로 몰아넣는구나.”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금강경에 말하기를 ‘진실로 연등불然燈佛이 한 법도 나에게 수기를 주신 것이 없다’고 하였고,
그는 한 법도 정에 해당할 만한 법이 없다고 하였다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경계에 있다 하는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법신法身도 법을 해설하십니까?”
“나는 말할 수 없다. 따로 한 사람이 말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대사가 베개[枕子]를 내놓았다. 위산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혜적은 칼날 위의 일을 쓰는구나.”
대사가 눈을 감고 앉았는데, 어떤 스님이 가만히 와서 곁에 섰다.
대사가 눈을 뜨고 땅 위에다 원상圓相을 하나 그리고,
원상 안에다 수水자를 쓴 뒤에 그 스님을 돌아보았다.
그 스님은 말이 없었다.
대사가 지팡이 하나를 짚고 다니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대사가 문득 등 뒤에다 숨기니,
스님은 말이 없었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것을 잘 아는가?”
“점卜을 좀 압니다.”
대사가 불자를 번쩍 들고 말했다.
“이것은 64괘卦에서 어느 괘에 해당하는가?”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대신 대답했다.
“아까는 뇌천대장雷天大壯이더니,
이제는 지화명이地火明夷 뇌천대장雷天大壯은 활달한 괘요,
지화명이地火明夷는 옹색한 괘이다.
첫 번째 물음에는 자신 있게 답하고,
두 번째 물음에는 답하지 못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영통靈通입니다.”
“얼른 등롱燈籠 속으로 들어가게.”
“벌써 들어갔습니다.”
[법안法眼이 따로 말하기를
“무엇을 등롱燈籠이라고 하는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색色을 보면 문득 마음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선상禪床은 색인데, 화상께서는 색을 여의고서 학인學人의 마음을
가리켜 주십시오.”
“어떤 것이 선상禪床인지 가리켜 보라.”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홀연히 그가 선상禪床을 가리켜 냈다면
어떻게 대꾸해야 좋을까?”라고 하니, 어떤 스님이 말하기를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현각이 대신 손뼉을 세 번 치고 말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비로자나의 스승입니까?”
대사가 꾸짖으니, 그가 다시 물었다.
“무엇이 화상의 스승입니까?”
“무례하게 굴지 말라.”
대사가 한 스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그 곁에 있던 스님이 말했다.
“말하는 쪽은 문수文殊요, 침묵하고 있는 쪽은 유마維摩이다.”
대사가 말했다.
“말하지도 않고 침묵하지도 않는 이는 그대가 아닌가?”
스님이 잠자코 있으니,
대사가 말했다.
“어찌하여 신통을 나타내지 않는가?”
“신통을 나타내기는 사양치 않겠으나,
단지 화상께서 교학에 빠져들까 걱정입니다.”
“그대가 하는 짓을 비추어 보니, 교리 밖의 안목은 없구나.”
“천당과 지옥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대사가 주장자로 땅에다 한 획을 그었다.
대사가 관음원觀音院에 있을 때에 다음과 같은 방牓을 걸었다.
“경을 보는 동안에는 일을 묻지 말라.”
나중에 어떤 스님이 문안을 드리러 왔다가 대사가 경을 보는 것을
보고는 곁에 모시고 서서 기다렸다.
대사가 경을 덮고 물었다.
“알겠는가?”
“저는 경을 보지 못했으니,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이후에 차차 알게 될 것이다.”
[그 스님이 암두巖頭에게 가니, 암두가 묻기를 “어디서 왔는가?”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강서江西 관음원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니, 암두가 묻기를
“화상께서 무슨 말이 없던가?”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앞의 말을 이야기하니,
암두가 말하기를 “그 노장이 묵은 창호지 속에 파묻혔으리라 여겼는데, 아직도 살아있구나”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선종禪宗에서 단박에 깨달아서 필경 문門에 들어가는 뜻이어떠합니까?”
“이 뜻은 지극히 어렵다. 만일 조종祖宗 문하의 상근상지上根上智라면
하나를 듣고 천을 깨달아서 큰 다라니[大總持]를 얻겠지만,
이런 근기의 사람은 얻기 어렵다. 근기가 미약하고 지혜가 얕은 이가 있으니,
이 때문에 고덕古德이 말하기를 ‘만약 선禪의 정려靜慮에 안주하지 못하면
도달한 자는 그 속에서 몽땅 아득해진다’고 하였느니라.”
스님이 물었다.
“이러한 격외格外의 일을 제외하고 따로 학인들을 깨닫게 하는 방편이 있습니까?”
“따로 있건 따로 없건 그대의 마음을 안주하지 못하게 할 뿐이니라.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유주幽州 사람입니다.”
“그대는 그곳을 생각한 일이 있는가?”
“항상 생각합니다.”
“그곳에는 누각․궁전․숲․동산․사람․말 따위가 들끓는데,
그대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허다한 현상이 있는가?”
“제가 도달한 그 속에서는 일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대의 견해는 아직 경계에 머물러 있으니,
믿음의 경지[信位]에는 이르렀을지라도,
체득의 경지[人位]에는 이르지 못했구나.
그대의 견해에 의거하건대, 단지 하나의 현묘함만을 얻었으니,
자리를 얻어서 옷을 풀어헤치면, 뒷날에는 저절로 알게 되리라.”
그 스님은 절을 하고 물러갔다.
대사는 처음에는 앙산에서 시작했다가 나중에 관음원으로 옮겨서,
근기를 제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데 선종의 표준이 되었다.
임종하기 몇 해 전에 게송을 지어서 대중에게 보였다.
나이 일흔일곱을 채웠지만 바로 지금도 늙어가도 있다네.
성품에 맡겨 스스로 부침浮沈을 하노니양손으로 붙잡아 무릎을 굽히네.
年滿七十七 老去是今日 任性自浮沈 兩手攀屈膝
소주韶州 동평산東平山에서 입적하니, 나이는 77세였는데 무릎을
껴안고 임종하였다. 시호는 지통智通 대사 묘광妙光의 탑이라 하였고, 나중에 앙산仰山으로 탑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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