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6] 이정수(李貞壽) - 내 모든 것 하늘에 맡기고 3. 무주 고을에 내린 시련과 은사 - 1
1 그런데 7월 11일 새벽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쩐지 허전하고 마음 둘 곳을 몰라서 ‘아버지!’ 하며 중심을 잡으려고 하는데 밖에서 “꽝!” 하고 천지를 뒤흔드는 듯 벼락치는 소리가 들렸다.
2 불안한 마음으로 뛰어나와보니 우리 교회가 회오리바람 같은 먼지에 쌓여 허물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어느샌가 여기저기서 놀란 식구들이 모여들었다. 그 사건으로 기성교인들을 비롯하여 우리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벼락을 맞아 폭삭 내려앉았다”라고 조롱하면서 “이단 사교를 하늘이 징벌한 것이다”라고 야단을 쳤다.
3 그럴수록 우리 식구들은 한데 뭉쳤다. 그리고 더욱더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드리며 재기를 다짐하면서 인도자를 중심하고 성전이 쓰러진 터 위에서 100일 동안 광야예배를 보았다.
4 그러는 동안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쓰러진 성전 동쪽에 27평의 조그마한 터를 잡아 새로운 성전을 건축키로 결의했다. 밤이면 모든 식구들이 총동원하여 모래와 자갈과 돌을 머리에 이고 나르고 지게로 져 날랐으며, 낮에는 모두 목수와 미장이가 되어 소망 차게 일해 나갔다.
5 그리하여 1956년 10월 7일, 피와 땀과 눈물로 이뤄진 성전의 헌당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어렵게 성전을 건축해서 마음 놓고 예배를 볼 수 있게 되자 또 무서운 시험이 닥쳐온 것이다.
6 그것은 우리들의 지도자였던 김정락 씨가 뜻을 배반하고 돌아서 버리는가 하면, 교회 건물을 자기 소유라고 양모 씨를 통하여 자기 앞으로 등기를 내어 처분하려고 하였다.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7 처음에는 눈물을 머금고 설득도 했고 사정도 했지만 아랑곳 없이 약한 식구들을 찾아다니며 온갖 중상모략을 하는가 하면 우리 가정을 파탄시키고 말겠다고 협박을 해왔다.
8 그렇게 인자하고 뜻을 위해 온 정성을 다 쏟아왔던 그분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사나운 이리와 같이 변해 버렸다. 나는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도해 왔었지만 한 번 돌아선 그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신병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9 이러한 시련들을 하나 둘 넘기는 가운데 나의 가정복귀는 차츰 밝은 전망을 보여 나머지 식구들도 뜻 앞에 들어섰으며, 9월 15일에는 우리 집에서 모시고 있던 나의 친정아버지께서도 입교하였다.
10 당시 나의 친정아버지의 입교는 굉장한 힘이 되었다. 대서소를 운영하시며 무주 읍내에 유지로 계셨기 때문에 어지간한 문제들은 아버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11 1959년 4월 20일에는 선생님의 사택을 장만해 바쳤으며 1963년 3월 4일에는 선생님의 손길 아래 독신 축복을 받으셨다. 그리고 마지막 운명하시는 순간에는 내가 하계 전도에 나가서 없었기 때문에 지켜보지는 않았지만 ‘축복 때 입으셨던 예복을 입혀 달라’ 하시어 입으시고는 많은 식구들의 찬송과 기도 가운데 운명하셨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