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따라 읽기 이건희 에세이 (넷) 세이크핸드형 공격 탁구
나는 이따금 아이들과 탁구를 친다. 탁구는 누구에게나 무난한 스포츠여서 나도 부담 없이 즐기는 편이다. 하루는 아들이 평소 사용하던 펜홀더형 탁구채를 핸드세이크형으로 바꿨다. 웬일이지 하면서 게임을 했는데 평소 점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점수 차로 지고 말았다. 게임을 끝낸 후 아들과 얘기하며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탁구채를 잡는 데는 펜홀더형과 세이크핸드형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펜홀더형은 펜을 잡는 것처럼 잡는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고, 세이크핸드형은 잡는 방법이 꼭 악수하는 것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보통 세이크핸드형 탁구채는 공의 접촉면이 넓은 반면, 힘이 분산되는 약점이 있어 수비형 선수에게 적합한 것으로 통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힘이 좋은 유럽의 남자 선수 중 공격형 선수들이 세이크핸드형 탁구채를 사용해 스매싱의 파괴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80년대 후반 마침내 유럽의 신형 공격수들이 세계 최강인 중국 선수를 누르고 세계 정상에 올라섰다. 그 후로 세이크핸드형 러버를 수비수를 위한 러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 펜홀더형은 공격형, 세이크핸드형은 수비형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집어 상대 전략의 허를 찌르는, 다시 말해 공격과 수비의 구별 없이 공격 위주로 게임을 펼치는 쪽이 승리할 기회를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모든 스포츠에서 수비는 기본에 해당하지만,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공격이다. 세계 축구의 최강은 의심할 여지 없이 공격 축구의 대명사 브라질이다. 메이저리그 야구의 연봉 순위를 보아도 상위권은 모두 강타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투수의 비중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타자라는 얘기다.
나는 아들의 얘기를 듣고 개인의 생활이나 기업 경영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개인이나 기업이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수비적으로 웅크리고 있으면 결코 성장할 수 없다. 결국에는 있는 것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진다. 선취골을 따냈다고 수비에만 치중하다가 상대 팀의 줄기찬 공격에 무너지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축구 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지금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면서 고전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초일류 기업들의 성장 과정을 보더라도 숱한 난관을 공격적으로 이겨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실패를 무릅쓰고 공격적으로 변신하는 기회 선점 경영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