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병환을 관함
第三으로 병환의 경계를 관하는 것이다. 대저 몸이 있으니 바로 이것이 병인 것이다. 네 마리의 뱀[물질의 구성요소인 地水火風]의 성품이 다른 것으로서 水와 火가 서로 다르고, 올빼미와 부엉이는 같이 살고, 이무기와 쥐는 구멍을 같이 한다. [같은 구멍에서 산다는 말임] 독을 담은 그릇으로서 무거운 짐이며 모든 괴로움의 숲이다. 네 나라가 서로 이웃하여서 더욱 서로 침범하고 훼방하되, 힘이 균형을 이루면 바로 잠시 화평하다가도 허한 때를 타서 바로 합병하여 삼킨다. 四大의 휴식의 여부는 이 비유로써 가히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물으시고 찾으시는 법에서 말씀하셨다.
“잠시 병환인가? 조금 괴로운가?”
부처님께서는 사람과 법을 같게 하신 것인데, 사람이 이미 병이 있는 것이니 權敎에서도 병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잠깐[少, 또는 조금]”이라고 말씀하신 것뿐이다. [부처님께서 “조금 아픈가?”라고 물으신 것은 평소에는 無病하다가 지금 조금 괴로운가 하는 뜻의 물으심이 아니고, 인간은 늘 앓고 있는 것이면서도 두드러진 병이 나타나면 “어디 아픈가?”하는 문병의 말을 하는 것을 “조금 아픈가?”라고 인용하신 것이지, 특별히 多少에 뜻을 들어 물으신 것이 아니라는 말임] 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因 속의 진짜 병이고, 둘째는 果 위의 임시 병이다.「비야毘耶」[이것은 유마힐소설경에서 유마힐 거사가 있은 거실이 비아리의 굴에 있었기에 그 굴을 비아굴이라 하고 그 넓이에 인연되어져 方丈이라 하는데서 유래된 고사를 말함. 방장이라는 말이 선종에서 쓰는 말이 됨]에 드러누운 채 질병에 걸렸다고 하는 말에 의탁하여 敎를 일으킨 것은, 因을 몸의 병으로써 범속한 이들에게 訓示하여 소승을 물리치면서 대승을 나무란 것이다. 바로 문수보살과 함께 널리 因의 질병을 밝힌 것으로서 세 가지의 調伏이 있다. 널리 果의 질병을 밝힌 것에는 네 가지의 위유(慰喻; 위안으로 깨쳐주는 일)가 있다. 또한 여래께서는 “滅”에 붙여서 “常”을 말하시고는 병으로 말미암아서 “힘[力]”을 설하셨다. 이것은 모두 권교의 선교방편으로 “病”의 법문에 들어가서 모든 병고와 번뇌를 끌어낸 것이다. 이와 같은 權病[방편의 병]은 지금 여기에서 관하는 바는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관하는 바는 業報로서의 살아있는 몸이다.
네 마리의 뱀이 동작하면 성스러운 길의 수행을 폐하게 된다. 만일 능히 관찰하여서 더욱 더 用心을 더하여 나간다면, 上智의 예리한 기근은 앞의 安忍을 깨달아서 바로 병의 경계에 대해 통달하여 거듭 논하는 고생을 하지 않지만, 깨닫지 못한 자를 위하여 지금 다시 분별하겠다. 큰 나무를 무릎 꿇게 하는데 만 번 도끼질 하여야 넘어뜨릴 수 있는 것과 같고, 큰 돌을 쪼아 내는데 억 번 내려쳐야 바로 구멍 뚫을 수 있는 것과도 같으니, 따라서 거듭하여 설하는 것이다. 대저 오랜 병환이나 먼 여행은 선정에는 큰 장애다. 만약 몸이 질병에 오염되면 수행한 복덕을 잃고 무량한 죄를 일으킨다. 「경」에서 말하길
“부낭(浮囊)을 파괴하고 교량을 걷어치우니 正念을 망실한다.”
고 하였으니, 병 때문에 계율을 무너뜨리는 것이 부낭을 파괴하는 것과 같고, 선정을 파하는 것이 교량을 걷어치우는 것과 같으며, 그릇된 顚倒의 마음을 일으키고 고름이나 피 냄새 나는 몸을 아껴서 청정한 법신을 파괴하는 것을 정념을 망실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뜻 때문에 응당 병환의 경계를 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평안하고 건강하면 느긋하게 해이하고 태만한 상태에 잠시 빠질 수도 있지만, 만일 병이 급할 때는 다시 마음을 써서 온갖 일을 다 갖출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기근이 適宜함이 같지 않으니 깨달음은 마땅히 그 병에 의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것은 四悉壇의 인연을 병환의 경계에 응하여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병을 관찰하는 데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病相을 밝히는 것이고, 둘째는 병이 일어난 인연이며, 셋째는 對治법을 밝히는 것이고, 넷째는 損益이며, 다섯째는 지관을 밝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