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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라는 단어를 교부들은 한결같이 가증스럽게 여겼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인정하는 편인데, 문제는 이 자유가 과연 우리의 능력 안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자유의지라고 하기보다 차라리 도착되고 전도되고 변질되고 흔들리는 의지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자기 뜻에 맞는 그릇을 만들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자유의지를 그렇게 쓰십니다. 그것이 올바로 발휘되는 것은 우리의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련된 일에는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루터, 『루터의 탁상담화』, p.105.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자유의지가 루터에 의해 부인되었지만 이미 교부들의 때에도 있던 주장이었습니다.
네, 루터의 글이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노예의지론(De Servo Arbitrio, On Un-free Wil)은 마르틴 루터에 의해 1525년 12월 출판된 작품이다. 그것은 에라스뮈스가 1524년 9월에 루터를 첫번째로 공격하기 위해 출판한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 diatribe sive collatio)에 대한 답변이다. 논쟁은 인간의 타락후에 인간이 선과 악을 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루터와 에라스뮈스 사이의 논쟁은 종교개혁의 초기에 자유의지와 예정론에 대한 이슈가운데 하나였다. ...
루터는 인간이 자기의 구원을 스스로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전적으로 무능력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의지는 죄의 영향으로 덮여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에라스뮈스에 대한 반박의 핵심은 하나님의 힘과 완전한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루터의 신앙이었다.
이외 아래 위키백과 링크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B%85%B8%EC%98%88%EC%9D%98%EC%A7%80%EB%A1%A0
자유의지론에 대한 반론의 제목 및 요약이 노예의지론이군요. 알겠습니다.
인간의 의지란 멍에를 맨 짐승처럼 둘 사이에 위치해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위에 올라타신다면....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를 좇아 행할 것이다. 만일 사탄이 그 위에 올라탄다면 인간의 의지는 사탄이 원하는 바를 좇아 행할 것이다. 인간의 의지는 그 위에 올라탈 두 존재자를 선택하거나 찾아 나설 수 없고 오히려 그 위에 올라탈 두 존재가 인간의 의지를 소유하고 지배하기 위해 싸운다.
루터는 인간에게 “자유선택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의지나 사탄의 의지에 종속된 포로요 백성이요 노예"일 뿐이라고 본 것이다. 더군다나 인간은 부패한 존재이므로 자유선택에 의해 “스스로 선을 향할 수 없다.” 루터에게 "자유선택"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주권에만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선택 그 자체는 어느 누구의 영향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든지 자유롭게 선회할 수 있는 능력”이며,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에서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을 행할 수 있고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루터는 인간에게 자유선택을 귀속시키는 것을 "가장 큰 신성모독”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여기서 루터가 그 근거로 제시한 시편 115편 3절은 문맥적으로 볼 때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기는 해도 인간의 자유선택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한이나 금지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김용복, 『종교개혁의 픙경』(침례신학대학교 출판부).
@장코뱅 아, 침례교 측에서도 루터에 대한 연구는 활발한가 보네요. 좋습니다.
@노베 네, 그런가 봅니다.
루터의 자유의지 논쟁을 이해하려면 반대편임 에라스무스도 알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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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인문주의의 대가 에라스무스 사이에 공개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오래 전부터 분명했는데, 에라스무스는 루터를 자신이 혐오했던 격정적인 탁발 신학자의 유형으로 보았고 개혁은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은 공동의 찬양자 및 친구들과 유대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마지못해 논쟁에 임했다.
에라스무스는 〈자유의지론 De libero arbitrio〉(1524)이라는 글에서 루터의 교리를 노예상태의 의지라고 공격했다. 루터는 〈노예 의지에 관하여 De servo arbitrio〉(1525)라는 글로 이에 대응했다. 이 글은 격정적이기도 했으나 오늘날까지 많은 논쟁을 일으키는 심오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출처: Daum 백과사전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6r2441b
네, 에라스무스와의 논쟁 가운데 생긴 이슈이니 잘 알아놓으면 좋겠습니다.
에라스무스는 루터와 자유의지 논쟁에서 상호반대의 입장에 서있었지만... 큰 그림으로는 츠빙글리 등 종교개혁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일례를 들면 아래 글과 같습니다.
https://cafe.daum.net/1107/bzn6/21
다시 잘 읽어 보았습니다.
인간에게 원래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타락함으로 인해 스스로 선을 선택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 루터의 입장이네요. 작금의 인간의 의지는 변질되고 흔들리는 의지여서 하나님께 붙들리고 내맡길 때만 하나님께서 올바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거죠. 인간은 하나님께 복종할 때만 의지를 올바르게 쓸 수 있게 된다는 논리네요. 좋은 포착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
자유롭게 방종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마귀에게 노예가 되어 의지가 박약해진 인간의 나약한 상태를 루터가 잘 파악하고 신학으로 나타낸 것 같습니다.
맞아요.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