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건물 앞이다. 2022년 8월 21일까지 일본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In Memory>전시가 열린다. 그녀는 동일한 장소에서 2020년 8월 <Between Us>를 개최했었는데, 당시엔 빨간색 실을 사용했다. 이번엔 흰색이다. 동 전시는 한강의 소설 <흰>을 읽고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고 한다. 한강은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소설가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평창동 가나아트센터는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셸 빌보트(Jean Michel Wilmotte)의 설계로 이루어졌다. 그는 루브르박물관, 대영박물관, 그리고 인천국제공항 인테리어를 담당한 이력이 있다. 아래 사진과 같이 건축물은 좌 우 2동이고, 건물은 복도로 이어진다.
좌 우 건물 사이의 짜투리 공간에 작가 아르망(Arman)의 조각이 놓여 있다. 그 아래 사진은 조각의 뒷모습이다.
건물 베란다를 걷다 보면 다른 조각품이 있는데, 서명이 의미심장하다. 로댕이라고 되어 있는데 진짜인지 모르겠다.
아래 발판 서명에 A Rodin 오귀스트 로댕이라고 적혀 있다. 진짜 로댕 조각이런가 하여 검색해 보니, 로댕 작 <칼레의 시민>이라고 한다.
'흰'색의 방으로 들어서기 전, 1층에 전시되어 있는 치하루 전초전을 둘러본다. 그녀의 작품은 2020년 여름 동일한 장소인 가나아트센터에서 <Between Us>라는 전시 타이틀로 열렸었다. 두피디아여행기에도 올려져 있다. 그녀의 스케치를 보면 일단 인간이 어디에 얽매여 있어 답답해 보인다.
<Connected to the Universe> 인간은 우주에 묶여 있다는 숙명적인 것을 표현하는지, 홀로 있기도 하고, 두 명의 인간이 서로 묶여 있기도 하다.
캔버스에 이리 저리 실을 붙였다. <Second Skin>이다. 피부라고 되어 있지만, 나는 신경으로 보였다. 혹은 인간의 불규칙한 불확실한 삶일 수도 있겠다.
2년 전에 봤던 그녀의 작품들과 유사하다. 켜켜이 둘러쳐진 실들 사이도 둥둥 떠 있는 사진첩, 과거의 사실들이, 과거의 기억들이 둥둥 떠 있다. 분명히 왜곡되어 표현될 것이다. 기억은 과거의 사실이 아니니까^^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점박이 노란 호박의 일본 작가인 쿠사마 야요이가 생각난다. 뭔가 꿀렁꿀렁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해 보이는 공통점, 강박증처럼 보이기도 하고 현대인들의 자화상 같기도 하다.
위의 드로잉 작품이 구현된 것이 아래 작품처럼 보였다. 다만 스케치에 포함되어 있는 묶인 인간의 모습이 그녀의 설치 작품에서는 드러나 있지 않다.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한다면, 인간은 무수히 많은 다른 사물들과, 혹은 사실들과 연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자의적으로 그 끈을 잘라버릴 용기, 혹은 선택은 순전히 인간 그 자신이다.
스케치 말고도 아래처럼 실로 수놓은 작품도 있다. 내용은 같은데, 형식을 다양하게 구사한 것이다.
저 쪽에 거미줄처럼 흰색실이 겹쳐져 있는 방의 입구가 보인다. 이제 흰색 방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2018년 소설 <흰>으로 또다시 맨부커 최종 리스트에 올랐다. '흰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소금/눈/얼음/쌀/파도 등등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진 소설인데, 시오타 치하루가 동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꾸민 방이 오늘의 하이라이트이다.
시오타 치하루가 꾸민 '흰'의 입구이다. 2년전과 같이 입구의 벽부터 다닥다닥 스테이플러로 찍혀 있는 실들이다.
2020년 8월 <Beetween us>라는 전시 타이틀로 꾸며졌던 동일한 장소에서의 전시 사진을 참고로 업로드한다. 빨간색 실과 하얀색 실, 색깔의 차이가 무엇일까, 한땀 한땀 벽에 수놓는 작업을 하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을 엮고 있겠지 한다.
2년 전에는 의자들을 깔아 놓고 빨간 실로 묶어서 천장과 벽면에 이어놓았었다. 동일한 장소가 2년 후에 어떻게 변모했는지 그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2년 전에는 의자가 주요 테마였는데, 2022년엔 배이다. 배 안에 흰 드레스들이 3점 놓여 있다. 치하루는 암 때문에 유산을 경험했다. 한강의 소설 '흰'에 나오는 아이의 죽음이 그래서 공감 백배였다고 한다. 아이를 둘러싼 흰색, 죽은 아이에 대한 기억, 그래서 전시 타이틀이 <In Memory>이다.
한강의 책 '흰'에서 흰색의 테마는 총 65개이다. 한강의 흰색과 치하루의 흰색을 중첩해서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치하루의 남편은 부산 출신 한국인이다. 그녀는 독일 베를린에 살며 작품 활동을 한다. 두 번의 암 투병으로 인생의 쓴 맛을 일찌기 경험했다. 편두통과 암투병이라, 작가 한강과 작가 치하루의 공통점이 있다면 두 명다 아펐다는 것이다. 고통이 예술혼으로 승화된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이 두 작가에게는 확연하게 맞아떨어져 보인다.
휘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의 배로 보이는 치하루의 작품, 그 배가 땅과 벽과 하늘에 묶여 있어 결코 침몰할 것 같지 않다.
배 안을 보면 하얀 드레스 3점이 보인다. 한강의 흰 것은 상실, 애도, 부활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흰 배는 삶과 죽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통로가 있는 줄 알고, 흰 구멍이 끝나는 곳으로 나아갔는데, 문이 없다. 그냥 유리문이다. 또 속았다.
2년 전에도 동일한 장소에서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구가 있는 듯한데, 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상실감이란^^
소설가 한강은 자신의 소설을 읽고 슬펐다는 독자를 만났을 때 기쁘다고 한다. 인생이 슬프지 않으면 안되나 보다. 슬픔을 겪고 난 이후의 정화된 인간의 모습을 갈구할 수도 있겠다. 그런 면에서 치하루와 잘 어울린다. 삶이라는 배가 휘몰아치는 바다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실로 땅에 하늘에 묶여 옴쭉달싹 할 수 없어 보인다. 슬프다^^
관람을 마치고 위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어, 그대로 올라갔다. 일반적으로 출입금지면 못가게 팻말이 있기 마련이다.
올라가니 한 쪽은 수업 혹은 옥션 현장으로 보였다.
옥상으로 나가보니 작품이 있는데, 관리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전시가 되어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게 보이는 작품이 있다.
작가명과 타이틀도 없다. 바르셀로나 작가 하우메 플렌자의 작품과 기법이 유사해 보이는데, 모델이 동양인이다.
바닥에 놓여 있는 이것도 작품이 확실하다. 왠지 마음에 든다.
가나아트센터 옥상에서 바라본 평창동 전경이자 반대편 건물이다. 그 건물 옥상에 로보트 태권브이가 트롬본을 불고 있다. D.Space라는 건물이다.
옥상의 있는 작품으로, 마크 퀸 <행운의 여신 포춘 Fortune>(2007)이다. YBA 영국 작가 마크 퀸인가 보다. 설명에 따르면 케이트 모스를 보고 조각한 페인트 칠한 브론즈 조각상이다.
작가 문신의 1991년작 스테인레스 스틸 작품이다.
어떤 작품은 작품 자체로 감상하기 좋고, 또 어떤 작품은 배경이 함께 있을 때 감상하기 좋다. 상기 작품은 북한산을 배경으로 함께 보는 것이 낳다.
벤치로 보였는데, 작품이니 앉지 말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이것도 작품이리라. 이 옷장 맘에 든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겉모습은 아래와 같이 생겼는데, 가운데 공연장이 있고, 맞은 편에 이것과 같은 건축물이 하나 더 있는 형태이다. 옥상에도 자리한 스테인레스 스틸 작품의 작가 문신이 아래 사진 왼쪽에서도 놓여 있다.
폐 타이어 작가 지용호의 작품이다.
지용호 <For. Buffalo 1>(2012)
작품이라고 하기엔 위치가 영 그래보이는 곳이다. 길고양이의 휴식처, 그리고 에어콘 실외기와 함께 한 작품^^
실외기 앞의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품 오른쪽에 작가명과 타이틀이 적힌 푯말이 있는데, 다 지워져 있다. 세월의 흔적인가. 시간이 흐르면 타이틀은 없어진다. 그럼에도 살아남는 타이틀이 대단한 것이리라. 호메로스의 작품들처럼.
평창동의 오래된 집, 그리고 오래되었으나 반질반질하게 광 낸 벤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