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의 영화
왕과 나(The King and I, 1956)
초등학교 4학년 때 마산에서 서울로 전학을 갔다. 어머님과 함께 갔는데 연고가 없어 왕십리 꼬방동네 이모네집에 임시로 살게 되었다. 이종사촌 조카 중에 나보다 몇 살 많은 남자 조카가 있었는데 그도 초교만 졸업하고 후암동 동사무소에서 사환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번은 놀러오라고 해서 조카한테 갔더니 조카는 동사무소에서 명동극장으로 심부름을 가는 중이었다. 같이 따라갔더니 극장에서 우리 보고 심부름 온 김에 영화나 보고 가라고 해서 명동극장에 들어갔다. 그때 본 색채 화려한 영화가 바로 <왕과 나>였다. 뮤지컬이라 노래를 막 해대는데 여주인공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것 하고 왕으로 나오는 남주인공이 강하고 무섭게 생겼다는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들은 당대 스타들인 데보라 커와 율 부린너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왕과 나>는 율 부린너의 출세작이다. 그는 <왕과 나>로 시작해서 <왕과 나>를 공연하면서 죽었다. 폐암으로 죽기 몇 달 전에도 <왕과 나> 공연을 했다고 한다. <왕과 나>는 1940-1950년대 뮤지컬의 황금시대를 연 것으로 알려진 뉴욕 콜럼비아대학 출신들인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사가 오스카 해머스타인 콤비의 뮤지컬이다. 이들 콤비의 뮤지컬로는 이 <왕과 나> 외에도 <오클라호마>, <회전목마>, <남태평양>, <사운드 오브 뮤직>, <신데렐라> 등이 있는데 아카데미상을 15회나 수상한 최고의 뮤지컬 작곡팀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왕과 나>의 원작은 마거릿 랜든이 1944년에 쓴 소설 <안나와 시암의 왕>으로, 태국 왕 라마 4세(몽꿋왕)와 그의 왕자들의 가정교사인 영국인 과부 안나 또는 애너(Anna) 리어노웬스의 궁중 로맨스 드라마이다. 이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에서 1951년에 초연했는데 호평을 받아 3차례에 걸쳐 영화화되었다. 안나는 실존인물로 당시 태국 궁전에서 가정교사를 했으며 그 과정에 왕이 죽고 왕자가 라마 5세로 즉위하는 것도 모두 사실인데 그녀는 소설을 자기 시각으로 썼고 그 뒤 영화화 중 각색 때 많이 과장된 것들이 있었다. 라마 4세와 안나의 러브스토리는 검증되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지금도 태국에서는 이 소설과 영화가 역사왜곡으로 금지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여배우 안나 역의 데보라 커는 역사상 두 번째 최고의 연기를 해 냈으며(최고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 여러 번 오스카연기상 후보로 올라갔지만 한 번도 받지 못한 데보라 커는 이 연기로 그 아쉬움을 대신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가 있다. 영화 중 나오는 안나와 라마 4세가 함께 댄스를 할 때 나오는 Shall we dance?는 뮤지컬 사상 최고의 넘버로 지금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왕과 나>의 영화화는 세 번에 걸쳐 있었는데 첫 영화화는 1946년 잔 크롬웰 감독, 렉스 하리슨과 아이린 던이 나와서 흥행에 성공했고 아카데미의 오스카상도 2개나 수상했다. 두 번째 영화화가 1956년 월터 랑 감독, 율 부린너와 데보라 커의 <왕과 나>인데 흥행에 대성공이었다. 오스카상을 5개나 수상했으며 율 부린너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세 번째 영화화는 <애나 앤 킹>으로 앤디 테넌트 감독 주윤발, 조디 포스터가 나왔으나 그냥 범작에 그쳤다.
1862년 영국의 젊은 과부인 안나는 시암(Siam: 태국) 몽꿋왕으로부터 가정교사를 맡아 달라는 초청을 받고 아들과 함께 방콕에 도착한다. 안나는 왕실의 전통과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데 다소 거칠고 자기중심적인 왕과 매번 충돌하지만 그러는 중 시암국의 근대화를 위해 여러모로 애쓰는 왕에게 서서히 호감을 느끼게 된다. 궁중에는 크라라홈 총리가 있고 수많은 부인 중 정실부인인 티앙 왕후, 시암 왕에게 공물로 바쳐진 린버마의 공주이나 이제는 왕의 첩이 된 텁팀, 또 수많은 왕자들과 궁중에서 같이 지내게 된다. 안나는 텁팀이 수행인 룬타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게 되고 그들의 밀회를 주선해 주기도 하는데 이때 두 연인들은 사랑을 위해 도주를 계획한다. 몽꿋왕은 영국이 시암국을 보호령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소문에 고민을 하고 이에 안나는 영국 사절단에 유럽식 연회를 베풀어 그들에게 시암이 결코 야만국이 아님을 알리자고 왕에게 제안을 한다. 그 성대한 연회는 잘 이루어지고 연회의 하이라이트인 연극공연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의 시암식 버전을 텁팀의 연기로 성공적으로 끝나자 영국 사절단 일행은 깊은 감명을 받는다. 연극 중에 주인공 텁팀공주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시암 왕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그 내용이 노예를 쫓던 왕의 죽음을 찬미하는 내용이라 시암왕은 크게 분노한다. 그리고 연극 공연중 텁팀 공주는 자신의 수행인이자 애인인 룬타와 도망을 치지만 곧 잡히게 되고 그 애인 룬타는 죽은 채 발견된다. 왕은 안나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텁팀을 채찍질하려 하지만 안나가 그를 야만인이라고 비난하자 주저앉는다. 안나는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왕이 죽어간다는 소식과 함께 안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왕은 안나에게 방콕에 머물 것을 설득하고 맏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죽어가고 새 왕은 노예제도 및 엎드려 절하는 관습의 폐지를 선언한다.
실제로 몽꿋왕 라마4세는 재위기간인 19세기 중반에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식민지를 확장중인 서양의 제국주의 세력에 대해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고 1855년 불평등조약인 바우링조약을 영국과 체결하는 등 서양의 13개국들과 조약을 맺어 실리를 취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그 결과 다른 주변 국가들과는 달리 태국은 식민지가 되지 않고 주권을 지킬 수 있게 되어 지금도 태국에서는 라마 4세와 라마 5세는 그들의 근대화 업적에 대해 크게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영화사상 최고의 연기를 한 여주인공 데보라 커는 영국배우로 <킹 솔로몬>(1950), <풍운의 젠다성>(1952), <줄리어스 시저>(1953),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 <사랑의 종말>(1955), <쿼 바디스>(1955), <왕과 나>(1956), <차와 동정>(1956), <병사와 수녀>(1957), <잊지 못할 사랑>(1957), <세퍼리트 테이블>(1958), <슬픔이여 안녕>(1958), <여로>(1959) 등에 출연하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6번이나 올랐지만 불운으로 수상에는 실패하고 그나마 이 영화 <왕과 나>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연기한 scene중에서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에서 버트 랭카스터와 해변에서의 키스신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펌글
첫댓글 얼마전 또 봤습니다.
엄청 좋아했던 율브린너 코믹하고 즐거웠던 영화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