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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가을 걷기 그 세번째 길을 나섰다. 앞서 수서역에서 출발한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길나섬은 집과 멀리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대지가 더워지기 전 이른 아침부터 걷는 것이 가능했었다. 그렇지만 세번째 발걸음의 시작은 가양역이고 이곳부터 걷기 시작하려면, 일단 지하철이나 버스로 서울을 동서로 완전히 가로질러야 하기 때문에 길나섬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훤해진 이후였다. 그래서 가양역에 도착했을 때는 수서역에서 느끼던 시원함은 없었다.
그래서 이 세번째 코스가 살짝 만족스럽지 못하다. 물리적으로 요즘같이 폭염이 작열하는 시기에 좀더 일찍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좋은 점은, 해드렌턴 등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더운 여름에 부고라~ 늦은 오후에 어느 분 빈소에 갈 일이 생겼기 때문에, 이른 오후에 길나섬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완주까지의 잔여 구간을 고려하여 종점을 정하기로 했다. 완주하려면 한번 더 걸어야 하는데, 그때 너무 짧지 않게 어느 정도의 길나섬 코스가 나오도록 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 대중교통이 편리한 종점 옵션이 많았다. 왜냐면 북한산 둘레길 정릉 지역은 여러모로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명상길 중간쯤 되는 국민대학 뒤편은 북악터널과 가깝고, 솔샘길이 시작하는 북한산 정릉탐방 지원센터 근처는 여러 노선의 버스 종점 지역이다. 또한 솔샘길이 거의 끝나는 흰구름길 시작 지점 근처에는 길음역과 연계되는 1114번 버스가 있다. 그래서 컨디션을 봐서 종점을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결론은 역시 쌍금탕이었고 견물생심이라고 할까? 사실 흰구름길 시점까지 걸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정릉탐방지원센터 근처에서 143번 버스가 보이니 바로 승차를 해버렸다. 역시 시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니 아직도 멘탈이 튼튼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왠지 오늘 발걸음이 조금 무겁다. 아니 마음이 무겁다라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건 다름아닌 요즘 흉흉한 일들이 여러 곳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는데, 특히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둘레길에서 최근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울 둘레길 또는 북한산 둘레길은 아니었고, 삼성산 남편 안양 쪽과 가까운 곳의 둘레길이어서 조금 다행이지만 그건 단편적인 생각일 뿐 앞으로 어떤 둘레길이나 산길에서든 언제든지 그런 종류의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머리를 아프게 한다. 생각할 필요나 또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앞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그런 피곤함이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지 예전 대비 혼자 걷는 산행객이 줄고 함께 걷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걷는 차원이라면 함께 걷는 것이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안전 때문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둘레길에서는 특별히 안전 사항에 대해 크게 염두해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산행에는 적어도 3명 이상이 산행하라는 말이 있다. 혹시 환자가 발생 시 한 명은 구호하고 다른 한 명은 도움을 요청하고 등. 이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둘레길도 앞으로는 함께 걷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혼자 걸으시는 여자 산객들이 가끔 있었으며, 특히 사람도 거의 없었고 짙은 녹음 때문에 조금은 어둑어둑한 북한산 둘레길 명상길에서 혼자 걷는 여자분도 계셨다. 예전에야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에 자연히 마음이 쓰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혼자라서 괜찮을까? 내가 걷는 속도를 조금 늦추고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서 계속 같이 걸어야 하나? 그러면 내가 더 이상하게 보이나? 내 스스로도 걱정, 그리고 남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들.
이것도 이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뒤에 갑자기 다가오는 산객의 소리에 조금 더 놀라게 되었고 또한 마주 오는 산객의 손에 혹시 뭔가 이상한 것을 들고 있지 않는지 하며 주시하게 되었다. 물론 늘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이러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겠지만, 이런 일들을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머리 아프다.
기억해보면 나도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중 원톱은, 어느 해 장봉도 가막머리에서 해안 둘레길을 따라 유노골을 가고 있었을 때였다. 이곳 해안 둘레길은 굽이굽이 굴곡이 많고 길을 따라 잡목이 우거져 있어서 앞쪽이나 옆쪽이 잘 보이지 않는 곳들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길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기껏해야 오고 가는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
그 날도 혼자서 걷고 있었고 어느 굽이를 돌고 있는 어느 순간, 뭔가 옆쪽으로 좀 싸~하다 싶어 고개를 뒤로 돌려 보았다. 그랬더니 굽이 길 바로 위쪽에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었고 내가 지나가는 것을 빤히 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 소리 없이.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앞으로는 어쨌든 둘레길 걷기에서도 안전을 챙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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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걷다 보니 맨발로 걷는 사람이 지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대모산이 거의 맨발 걷기 성지였는데, 봉산/앵봉산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이 많이 걷는 북한산 둘레길 구름정원길에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난 주에 걸었던 우면산에도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맨발로 걷기의 효능이 뭘까? 궁금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도중 검색도 해보기도 했다. 발바닥에 오장육부가 있다고 하여 맨발로 걸으면 오장육부가 골고루 자극이 되고 또한 땅의 기운이 운동화나 등산화로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연결된다는 점도 있었다. 다만 땅이라는 뾰족하거나 피부에 위험한 것이 있으니, 사전에 파상풍 주사는 맞아야 한다고 한다. 나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견물생심이라고….^^
하늘 공원 부근에서는 문화비축기지는 따로 갈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주변을 돌아 불광천으로 가지 않고 대신 예전 길을 따라 걸었다. 상암경기장 앞에는 최근 잽보리 k-pop 공연 때문인지 여러 잔디 공사 차량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상암경기장으로 향하는 하늘 공원의 메타세콰어 길은 뛰는 사람들의 성지였다. 전부들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시간에 걷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만 뻘쭘~
이번 길나섬 중 가장 힘든 곳은 역시나 예상대로 평창 마을길이었다. 주된 원인은 그늘이 거의 없는 시멘트 길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평창 마을길을 걷는 때도 해가 남중 시간이어서 해를 피할 곳이 거의 없었다. 담벼락 이쪽도 땡볕, 저쪽도 땡볕. 아주 가끔 그늘이 있는 곳이 있었는데 가물에 콩나기였다. 구기동 입구에서 형제봉 입구까지 두 번이나 쉬기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힘든 길인 줄 처음 알았다.
그런데 더 놀랄 일은, 이런 폭염의 땡볕의 평창 마을길을 걷는 산객이 여럿 있었다. 나와 걷기 방향이 동일한 형제봉 입구를 향해 함께 걷고 있는 여자 산객 3명, 그 반대편으로 구기동 방향으로 하산하는 띄엄띄엄 5~6명. 오히려 명상길 속에서는 거의 없어서 앞서 언급한 여자 산객 1명만이 있었고, 그 밖의 다른 산객들은 형제봉으로 오가는 산행객들이었다.
자연히 내가 썩 내켜하지 않은 이 평창 마을길이 그리 좋은 길인가? 싶은 의문이 머리 속에 떠오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설마~ 단지 우연이었겠지 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우연히 숲길 보다 마을 길에서 산객들을 많이 만난 때 뿐일 것이라고..
이렇게 세번째 길을 마쳤다. 걷기 행사는 “서울 둘레길 가을 걷기 축제”인데, 가을을 체감하기는 아직 너무너무 덥다. 남은 발걸음에 가을을 느낄 수 있도록 폭염 주의보도 풀리고, 날 좀 시원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