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리 두류동 매표소 앞 주차장이 일반 차량의 통행 한계점이다. 그러나 비포장 도로는 매표소에서 두류교를 지나 동북쪽으로 꼬불꼬불 감돌며 계속 이어진다. 이 도로는 4㎞를 더 오른 끝에 ‘경상남도 자연학습원’과 맞닿아있다. 원래 이 도로는 군작전용으로 닦아졌는데 현재는 자연학습원에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 곧 중산리에서 법계사로 오르는 순두류(順頭流)의 등산구이다.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과 연결되는 등산로는 칼바위~망바위 코스 밖에도 순두류로 돌아가는 길이 있다. 중산리~망바위~법계사는 6km, 중산리~순두류~법계사는 8㎞로 순두류 쪽이 2km 더 멀다. 그러나 칼바위~망바위 구간이 가파른 비탈길인데다 등산로의 훼손 상태가 심해 미끄럽고 걷기에 까다로운 반면, 법계사~순두류는 경사가 완만하고 안전하며 계곡과 숲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행을 수월하고 편안하게 하려면 순두류 코스를 따르면 된다. 다만 두류교~순두류의 4km가 도로여서 등산객들에겐 지루한 느낌을 주는 것이 단점이다.
천왕봉 남북쪽은 한결같이 경사가 급하다. 그런데 천왕봉 중봉 써레봉에서 급경사가 쏟아지듯 흘러 내리다가 뜻밖에도 순탄한 평원을 이룬 곳이 있다. 약 3만평에 이르는 이 평원을 순두류라고 한다. 순두류란 이름도 두류산이 순하게 흘러 평지를 이루었다는 뜻으로 붙여졌다고 한다. 순두류는 '신선너들'로도 불리는데 예부터 이곳의 자연경관이 수려했음을 웅변해주는 것이다.
해발 700~900m, 경사 9~10도의 평원 둘레는 준봉들과 그 지맥이 감싸고 있고,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 내리는 수려한 계곡도 끼고 있다. 지리산을 찾아들었던 사람들이 이 순두류를 외면했을 까닭이 없다.
한때는 인삼 재배지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화전민 가옥이나 독립가옥들을 되도록이면 공원구역 밖으로 집단 이주시키기 이전에는 현재의 두류교 주변에 여러 채의 농가들이 있었다. 현재에도 논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순두류 깊은 산중에 본격적으로 정착했던 사람은 1888년 산중거사 김경덕(金景德) 일가족이라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훨씬 뒤에 개성(開城) 사람 이회겸(李會謙) 양덕열(梁德烈) 두 사람이 들어와서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토질과 기후가 인삼 재배에 적합하여 인삼의 생육 상태도 좋았다는 것. 두 사람은 '지리산 인삼'으로 성공하겠다는 큰 희망을 걸고 인삼재배 면적을 넓혀 갔으나 48년 가을 여순(麗順)반란사건에 이어 6. 25동란이 발발, 이 일대가 살벌한 전쟁터로 변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을 떠나버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는 곽말수(郭末壽) 성대석(成大石) 두 사람이 전쟁 고아들을 데리고 와서 이곳에 개척농장을 시작했다. 이상은 김경렬옹의 다큐멘터리 르포(智異山) 1권의 기록이다.
고아원이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순두류의 3만여 평의 땅은 십수년 전부터 덕산사람 곽병철씨 농장으로 관리가 되었다. 주요한 사실은 이 땅이 국립공원 지정 이전에 곽씨 소유 땅으로 등기가 돼 있었기 때문에 국립공원 구역 안의 섬과 같은 사유지로 남게 된 사실이다.
곽병철씨는 광활한 순두류의 초원에 주로 염소를 방목했고 약초와 고냉지소채 등을 재배하거나 벌통을 놓았다. 당시의 이 농장에서 일했던 사람을 이번에 기자가 만났다.
“곽씨는 집이 덕산에 있어 순두류에 한번씩 다녀 갔습니다. 염소를 키우는건 관리인이 염소를 풀어 놓거나 가두기만 하면 됐으므로 힘들지 않았지요. 염소가 많을 때는 3백마리가 넘어 그런대로 재미를 보았어요.”
국립공원 구역 안의 사유지 3만여 평, 더구나고 천혜의 자연 경관을 지니고 있는 곳, 자연 자원 또한 무궁무진한 곳이다.
그렇다면 이곳을 청소년의 심신수련장이나 레저타운으로 개발하면 일확천금에다 지상의 왕국이 될 것이 아닌가 부동산에 눈독을 들인 사람이나 관광자원 개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침을 꿀꺽 흘리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땅을 탐내 소유자인 곽병철씨에게 먼저 교섭을 벌인 주인공은 개인이나 단체가 아니라 경상남도였다.
1만5천평 기증
경상남도는 곽씨에게 순두류의 황금 땅을 팔라고 한 것이 아니라 기증해 줄 것을 권고했다.
한국 최대의 자연 천국인 지리산 국립공원 구역 안의 순두류 평원을 염소나키우는 곳으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경상남도 전체 청소년을 비롯한 도민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유용하게 활용하고 건전한 심신 수련과 정서를 함양할 수 있는 곳으로 가꾸자고 제의한 것이다. 그것이 8년쯤 전의 일로서 중산리로 들어가는 도로는 확장공사도 하지 않았던 때였다.
중산리 시외버스 주차장의 땅값이 물값이나 다름이 없었던 때였다. 지리산의 부동산 투기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요즘 같으면 씨도 먹히지 않을 얘기였다.
그러나 곽병철씨는 순두류 자신의 땅 1만 5천 평을 경상남도에 희사했다. 땅을 희사한 대가는 경상남도가 세우게 될 ‘경남 자연학습원’의 매점 운영권을 맡는 것 한가지였다.
부지를 기증받은 경상남도는 82년부터 자연학습원 조성공사를 시작하여 86년까지 마무리를 지었다. 87년 4월 16일 순두류의 ‘경상남도 자연학습원'이 개원했고 곽씨는 약속을 받았던대로 이 학습원의 매점운영을 맡게 되었다. 중산리의 한 주민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관리인을 두어 염소를 키우는 것보다 자연학습원인지 심신수련장인지 하는 곳의 매점 운영권을 얻는 게 수입도 더 좋을 것으로 곽씨가 생각했는지도 모르지요. 지리산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곽씨는 지금 크게 후회하는 눈치가 역력합니다.”
“좋은 뜻으로 기증했는데, 지금 후회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생각해 보십쇼. 가만 두었더라면 염소가 문제입니까. 땅값이 하늘보다 더 높게 치솟고 있지 않습니까. 또 자연학습원이란 곳도 겨울철이 긴데다 그 시기에는 연수생을 받지 않습니다. 연수생들도 국민학생이나 중학생이 대부분이고 학습원에서 급식을 하니까 매점 수익이라는 것도 뻔하지 않겠습니까.”어쨌거나 현재의 지리산 순두류는 개척농장이나 염소 방목장이 아니라 경상남도가 자랑하는 훌륭한 ‘자연학습원’으로 이름나 있다
학습원 부지를 기증했던 개인의 입장에선 후회나 안타까움이 따를 수도 있겠으나 지리산의 무궁무진한 자연 자원을 학습원과 심신 수련의 도장으로 활용하게끔 된 것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리산이 개인의 땅으로 버려지거나 투기의 대상으로 이용되어선 안되겠기 때문이다.
순두류에는 아직도 곽씨 소유 땅이 1만8천평 가량 남아 있다. 그러나 이곳 일대를 자연학습원으로 조성하는 동안 염소를 방목하던 초원이던 그 땅에는 삼림이 무성하게 들어차고 말았다. 이제는 염소를 키우기는 고사하고 들여보낼 틈도 없는 숲지대로 변모했다.
출처 :지리산 365일
첫댓글 순두류는 물론이고 중산리 소형주차장 부근도 두루동인데 두류에서 변형된 것이라 본다.
유교 두류산
도교 방장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