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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정신, 육체, 물질로 이루어진 인간과 아이의 몸(신체)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강의 메모한 내용을 살펴보면,
* 0세 전후 태어나면 에테르체는 각 기관과 장기에 생명력을 부여
- 아기는 초점주시 > 고개돌리기 > 뒤집기 > 고개들기 > 배밀이 > … > 서기의 과정을 거치며 사지-모방, 모범
- 머리, 가슴(0~3세) -> 가슴(4세~). 말이 많아짐 -> 사지 순으로 발달하다 다시 머리로
- 기억하기가 준비됨. 이갈이(앞니-물 수 있다, 송곳니-찢을 수 있다, 어금니-씹을 수 있다)
- 내 안의 나쁜 마음을 없앨 수는 없다. 이것을 잘 알아차리고 이타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임
* 7세부터는 아스트랄체가 감정으로 육화됨.
- 7세 이후의 에테르체를 통해 1) 기억, 2) 성향/경향(성), 3) 습관, 4) 기질, 5) 성격, 6) 충동(관심/무관심), 7) 양심/도덕성이 (위계적으로) 형성
- 각 단계의 문제들을 되짚어 나가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예) 안 좋은 습관을 고치려면, 좋았던 기억을 찾아야 한다.
도덕성을 키우는 별도의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업을 통해 기르는 것이다
* 어떤 기억들은 장기가 기억한다. 감정(아스트랄)이 각 장기에 육화한다 -> 3학년 의식주 교육의 필요성
계승과 권위의 중요성
* 세계의 에테르가 영향을 주기도 한다 : 주변인, 학급경영, 지역, 국가…
* 사춘기에는 자아체가 동작하여 '나는 누구인가?', '신은 있는가?' 등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짐
- 이 시기 분노의 원인은 "자기 존재감을 찾지 못해서"
- 팔다리가 다시 길어짐… 내 의지가 사지에 끝까지도 도달하지 못함
- 자아체는 완전하지 않음. 21세 이후라고 완전히 형성되지는 않음
발도프교육에서는 과거교육, 현재교육, 미래교육 모두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8~14세의 경우
- 과거교육: 물질육체(신체)의 형성과정...0~7세 물질육체의 형성과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음
- 현재교육: 에테르체를 통해 기억-성향-습관-기질-성격-충동-도덕성을 잘 형성함
- 미래교육 : 아스트랄체 - 감정의 육화 과정을 주시할 필요
교과는 지식의 형식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인류가 쌓아올린 지식의 보고로서의 교과(학문).
교재연구에서 나아가 아이연구합시다. 아이연구의 기반은 자기연구입니다.
<<과제>>
- 내 1학년 시기를 돌아보기
- 장선생님께서 별도로 나눠주신 프린트 자료(1학년 시기의 특징) 자료 읽어오기
- 내가 만난(날) 1학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생각해보기
2010년, 2년여 동안 진주교육대학교 입학사정관으로 근무할 때가 있었습니다. 예비 초등교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과연 초등교사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때 엄태동 선생님의 "초등교사의 재개념화"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초등교사의 전문성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던 터라 책에서 제시된 초등교육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이 신선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다소 사변적으로 보였던 저자의 생각과 논리 전개에 반감을 느끼고는 더 깊이는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때 해결되지 않았던 질문은 이후에도 다른 방식으로 변주하며 마음 속에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왜 혁신학교는 초등 단계에서 정착이 되는데 중등 이후에는 정착하지 못하는가? 고등학교 형태로 세워진 대안학교 중 많은 곳들은 결국 입시를 위한 학교로 변질되는가? 왜 우리나라 발도르프 학교의 상급과정은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이러한 고민들을 해 보며 다시 "초등교사의 재개념화"를 읽어봅니다.
교과교육과 국가 교육과정의 폐해에 대해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 설계에 있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결국 현장 교사가 아닌 소위 교과(학문)의 전문가들이고, 교육의 내용을 교과로, 그리고 교과 안에서 내용 요소들을 교수목표로 분절하여 시수를 편성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간의 경쟁과 관철의 결과물로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이 구성된다는 속사정을 접하고 한때는 교과가 아닌 역량중심으로 교육과정이 재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과를 역량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승규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교사가 교과를 접근하는 방법, 그리고 교과를 통해 아이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동시란 무엇인가'(1975)라는 글에서 동시와 시와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동시는 먼저 시가 되어야 하고, 그 위에 다시 동시로 되어야 한다. 앞의 동시는 시로 부정되고, 시는 다시 동시로 부정되어야 한다." 저는 이것이 마치 교과(학문)와 (초등)교육의 관계인 것처럼 보입니다. "교육은 먼저 학문이 되어야 하고, 그 위에 다시 교육으로 되어야 한다. 교육은 학문으로 부정되고, 학문은 다시 교육으로 부정되어야 한다." (초등)교육의 전문성은 결국 교과(학문)의 토대 위에서, 그러나 (아이들, 혹은 나와의) 만남 속에서 부정되고 재해석되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내 1학년 시절을 잘 떠올려 봐야겠습니다^^*
첫댓글 쓰잘 데 없는 제 얘기보다
파란 색으로 쓴 선생님 이야기가 훨씬 더 좋네요.^--^
다른 선생님들의 후기입니다.
http://m.blog.naver.com/thakd199/221913214880
http://m.blog.naver.com/dndus3356/221915054757
교육도 좋았는데 후기도 좋네요 무등학부모라서 행복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꾸벅
또 다른 후기~
http://m.blog.naver.com/badteachers/221917659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