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에게
문익환
오랜만에 손이라도 실컷 잡고 있었어야 하는 건데, 워낙 공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계제가 되어 버려서 아쉬운 생각 금할 길이 없었소이다. 그동안 당신의 엽서 3매, 호근, 의근, 은숙, 성근의 글도 골고루 읽을 수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소. 오랜만에 이 목사의 글에서 그의 육성을 듣는 것 같아서 반가웠구요. 이희호 여사를 따라 진주까지 갔었나 보죠? 영금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소.
나의 건강 때문에 모두들 지나친 염려들을 말기를 바라오. 2~3일 좀 아파서 몸을 움직이기(특히 잘 때) 불편했던 정도. 아직도 요가를 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어제는 가볍게 뛸 수 있을 정도는 되었소. 어제 여기서 3.4평 2층 방으로 옮겨 주어서 한결 생활 환경이 나아졌지요. 훨씬 조용하기도 하고. 한껏 독서라도 해야겠소. 전망도 좋구요.
다음 주간에는 우리 결혼 33주년이 돌아오겠는데 너무 센티하게 되지 마시오. 여기는 20년, 또 종신형을 살고 있는 사람도 수두룩하니까. “1주일만 있으면 만 17년이 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들겠소? 가정해서 하는 말이지만 말이요. 이 목사가 도중 하차해서 마음이 무겁다고 했지만 여기까지 왔어야(기결수로) 미결로 고생한 보람이 있는 건데. 문득문득 새로운 깨달음이 마음속에서 눈을 뜰 때면 내가 어쩌다가 이런 복된 자리에 왔나 싶은 생각을 하곤 하지요. 좀 일찍이 이런 경험을 했어야 하는건데, 이런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된답니다. 한 달째 제2이사야(40~55장)를 원전으로 읽고 있는데, 인제 안개가 슬슬 걷히며 멧봉우리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 같구려. 이 생활이 너무 즐겁고 보람찬 것이어서 바깥 사람들, 특히 당신을 잊고 그리워하지도 않게 되면 어쩌나 그런 생각마저 든다니까요.
아버지, 어머니, 당신도 다 자랑스럽지만, 아이들이 자랑스러워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리지요. 의근이 은행가로서 생을 굳힌다면, 교회음악을 생의 즐거움으로 공부하면서 교회 생활에 꽃피우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이들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기도하다가 떠오른 생각이니까 영감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곽상수 씨를 찾아 지도를 받고 Organ Lesson도 받으면 어떨지?
아버님, 어머님
1년 넘게 기도에서만 부르던 소리, 붓으로 쓰고 보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아들들 때문에 애를 태우지 마십시오. 하늘나라에 유학을 보냈다고 생각하시고 금의환향을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생각해도 너무나 큰 선물들을 안고 나갈 것 같습니다. 작년 4월 5일 어머님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제 기도가 태평양 상공에서 저희를 위해 비시는 어머님의 기도를 만나 도로 밀려오다가 서대문 상공에 쏟아지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다가는 번번이 갇혀 있는 다른 죄수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된답니다. 하느님이 다 맡아서 돌봐 주시는 내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시간이 있으면 하느님의 은총의 권외에 서 있는 이 불쌍한 사람들은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전주에만도 3천여 명이나 있습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나가서 이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들을 위해서 무얼 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저를 통해서 무언가 하실 수 있으시겠죠.
영환, 예학, 영주, 영희에게
작년 여름 훤하고 예쁜 예학의 얼굴을 법정에서 보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영환의 사업이 궤도에 오른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기왕 그 길에 들어섰으니 돈을 많이 벌어서 빛나게 쓰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Harvey Cox의 ‘바보제’ (영어 제목은?)를 읽으면서 영환이가 조카들과 Theater Church를 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한 번 그 책을 구해서 읽어보라고.
우리가 이런 몸이 되고 보니 부모님을 너희에게 맡긴 것이 다 뜻이 있어서 된 일 같이만 느껴진다. 영주, 영희의 예쁜 모습 날마다 들여다보고, 커다란 글씨들도 큰아버지를 기쁘게 해 준단다. 예뻐, 예뻐.
달현, 선희, 문규, 영규
부모님을 영환이네한테만 맡긴 것이 아니지. 너희에게도 맡긴 거야. 그리고 걱정 안 해.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는 걱정 터럭 끝만큼도 않는데, 선희 건강 걱정은 한다. 네가 ‘worry box’니까 내가 그 ‘worry box’를 ‘worry’하는 거야. 그러나 문규, 영규는 정말 자랑스럽다. 그 의젓한 모습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는지 모른다. 너희들 커서 아버지, 어머니 은덕 잊으면 개새끼다, 알았지? 문규 아빠 볼 기회가 없어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그 심정 알 수 있겠어? 맥주라도 같이 기울이는 건데. 그런 때도 오겠지. “Fighting Kang!” 지금 밖에는 비가 오고 있어.
영금에게
호근, 은숙, 의근, 성근이는 ‘아버님’ 이라고 편지하는데, 네 글은 ‘아빠’라고 시작되어서 내 나이 스물은 젊어진 것 같았다. 초등학교 다니는 네가 부르는 소리 같아서 말이다. 언제까지나 ‘아빠’ 라고 불러다오. 부쩍 성숙한 네 모습을 사진에서 보고 내가 정말 아버지 노릇을 못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라도 잘 먹고 잘 커서 행복한 소녀이기를 비는 아빠의 마음을 알 것 같으냐? 석사 과정 마치고는 어떻게 할 작정이냐? 계속 공부를 하지. 결혼한다고 공부를 계속 못 할 것은 아니리라 싶은데. 네가 그렇게 미워하던 영어로 대학원 공부도 하고, 조교도 한다니, 얼마나 기특하냐? 아빠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활짝 피어나며 만사에 자신을 갖고 살아라. 자신이라는 것, 다시 말하면 믿음이라는 것은 지난날의 실패까지를 엄청난 플러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그러니 이제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너희는 우리보다 얼마나 더 전진할 수 있겠니? 얼마 있으면 큰이모, 작은이모를 만나겠지. 큰이모님께 책을 보내주셔서 고맙다고 전해 다오. 커피도 나가서 먹을 날이 있겠지. 성근이가 금년 봄에 사춘기도 아닌데 봄의 ‘푸르름’의 아름다움을 새삼스럽게 느끼나 본데, 네게도 그런 아름다움이 열리기를 빈다.
김 목사님, 이 목사님, 그리고 교우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소리가 지금 밖에서 ‘좌르르, 좌르르’ 빗소리로 내리고 있습니다. Eliade의 책들을 그렇게 많이 보내 주셔서 무엇이라고 고마운 말씀 다 아뢸 수 없습니다. Eliade는 저희 시야를 많이 열어 주었습니다. 토착적인 사고를 하는데, 길을 열어 주었다고 하겠습니다. 두 분 목사님의 건투하시는 모습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212장, 하루에도 몇 번 부르는지 모르죠. 제가 나가서 불러야, 그 찬송을 참으로 부르는 방식을 사람들이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양의 만독(萬讀)하는 방식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닫습니다. 찬송가도 혼자서 부르고 또 부르는 가운데서 그 깊이와 높이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깨친 ‘기쁨의 신학’도 빌립보서를 읽고 읽고 또 읽다가 깨친 것입니다. 서구의 분석적인 방식을 극복하는 한 길이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귀 교회 교우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김 목사님, 건강하십시요. 이 편지를 쓰는 것을 지나가다 오다 보면서 60이 다 된 사람의 눈이 어쩌면 이렇게 좋으냐고 하지만, 김 목사님 앞에서 어림도 없죠. 건투를 빕니다.
1977.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