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닷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인간이 의로울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욥은 셋째 논쟁을 마무리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사람이 헤아릴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1-3절 빌닷은 주권과 위엄이 하나님이 계신 높은 곳에만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욥의 인생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고 비난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낮고 약한 인생 가운데 임재하시고, 고난 중에서 함께하시는데, 빌닷은 그 부분에 대해 무지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낮아지고 또 낮아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다스리고 계십니다.
4-6절 빌닷은 벌레 같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일면 겸손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시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벌레나 구더기가 아닌 천사에 버금가는 존재로 여기십니다(시 8:5). 하나님은 욥의 의로움을 칭찬하시고 그가 탄식할 때 경청하시고 소통하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우리가 존귀한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자녀의 위치에서 성령 안에서 주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26:5-14 빌닷의 주장에 맞서 욥은 하나님의 통치가 바다와 죽음의 세계, 그 너머까지 미친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찬송합니다. 하늘을 펼치시고, 땅을 매어 두시며, 물을 구름으로 싸 두시며, 바다의 경계를 정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창조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여기던 신화적 존재인 라합과 뱀까지 단속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측량 할 수 없이 크신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 너머에서도 다스리십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고난으로 혼란스러운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창조의 질서로 다스리시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26:1-4 욥의 친구들은 위로가 아닌 비난을 이어갔습니다. 사람의 지혜로 크신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는데, 자신들의 신앙관으로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사람의 분석이나 충고하는 말, 애를 쓴 위로가 와닿지 않는 고통과 고독의 순간이 있음을 서로 인정하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함께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매일성경, 2023.11/12, p.100-101,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 욥기 25:1-26:14에서 인용).
① 빌닷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인간이 의로울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욥은 셋째 논쟁을 마무리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사람이 헤아릴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빌닷은 주권과 위엄이 하나님이 계신 높은 곳에만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욥의 인생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고 비난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낮고 약한 인생 가운데 임재하시고, 고난 중에서 함께하시는데, 빌닷은 그 부분에 대해 무지합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낮아지고 또 낮아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다스리고 계십니다.
② 빌닷은 벌레 같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일면 겸손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시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벌레나 구더기가 아닌 천사에 버금가는 존재로 여기십니다(시 8:5). 하나님은 욥의 의로움을 칭찬하시고 그가 탄식할 때 경청하시고 소통하시는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우리가 존귀한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자녀의 위치에서 성령 안에서 주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③ 빌닷의 주장에 맞서 욥은 하나님의 통치가 바다와 죽음의 세계, 그 너머까지 미친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찬송합니다. 하늘을 펼치시고, 땅을 매어 두시며, 물을 구름으로 싸 두시며, 바다의 경계를 정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창조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여기던 신화적 존재인 라합과 뱀까지 단속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측량 할 수 없이 크신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 너머에서도 다스리십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고난으로 혼란스러운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창조의 질서로 다스리시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④ 욥의 친구들은 위로가 아닌 비난을 이어갔습니다. 사람의 지혜로 크신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는데, 자신들의 신앙관으로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사람의 분석이나 충고하는 말, 애를 쓴 위로가 와닿지 않는 고통과 고독의 순간이 있음을 서로 인정하고,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함께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