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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 것을 알고 그 일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잖아요. 하나님 만 구원이거든요. 하나님 만 구원되심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셨잖아요. 이렇게 은혜를 내가 받겠다가 아닙니다.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받고자 하는데 안 받으려고 해. 받고자 하는 만큼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일만 상관없는, 나는 은혜를 받고자 하는데 안 받을래요 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이게 도대체 뭔말이야?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 제가 오전에도 말씀 드렸죠. 종교와 복음의 차이가 뭡니까? 왜 종교는 구원이 없다고 그러죠? 복음만 구원이라고 하잖아요. 왜 복음만 구원이냐? 종교, 기독교 단체를 가장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이거거든요. 왜 너희들만 구원이 있다고 하냐, 왜 우리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냐? 간단하잖아요. 다른 종교의 교주가 죽었다가 살아난 일이 있습니까? 왜 자꾸만 억지를 피냐고, 복음만 그리스도, 그리스도 만 죽으시고 부활하셨잖아요. 저 유대땅, 예수의 빈 무덤이 역사의 사실로 우리에게 증거해 주고 있잖아요. 이 땅에 빈 무덤을 남긴자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어요. 그래서 종교와 복음은 시작도 다르고,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거예요. 시작 자체가 다르고 길이 다르죠. 우리에게 없는 길이에요.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열린 천국 문, 내가 들어가, 그 분이 찾아오셔서 길을 열어주신 거잖아요. 길도 다르고 방법도 달라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그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되는 날이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그럼 부활은 나도 내가 죽고 부활 해봐야지, 아니에요. 죽을 수도 없고 부활 할 수도 없어요. 하나님 만 구원, 지금도 그 구원은 유일한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죠? 방법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그래서 여러분, 복음은 지식으로 이해 될 수 있지만 이해 되도 나와 상관없어요. 그런데 그리스도를 몰라도 하나님이 어느 날 내 인생 속에 찾아오셔서,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그러면 구원 받았어요? 못 받았어요? 알 수 있어요? 없어요? 일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어요.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우편 강도, 좌편 강도는 조롱하잖아요. 그때 우편 강도는 그를 꾸짖으면서 저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는 것이라고, 신앙 고백 이라는 거거든요. 제가 볼 때는 이제 까지 살아온 강도의 인생 속에 보면 제 정신 못 차리고 하는 말이거든요. 똑같은 거예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제 정신 못 차리고 하는 말이거든요. 똑같은 거예요.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자입니다. 믿을 수 없는 자를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이해 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그 사실이 사실로 믿어지는데 어쩔 거야. 그래서 믿어져도 내 수준인줄 아시라니까. 살아온 세계관 속에서 제 정신 못 차리고 한 거라니까. 우편 강도도 지금 똑같이 예수님의 좌편 강도, 우편 강도, 똑같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는데, 한 사람은 구원 못 받고 한 사람은 구원하시고, 하나님이 작정하신 뜻대로, 하나님께서 두 강도의 평생 인생속에 하신 일인데 우편 강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의 일을 제 정신 못 차리고, 그런데 상관없이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는 예수님 우편 강도 맞아요. 모든 사람들이 말하죠. 우편 강도는 구원 받았다고, 그런데 정말 우편 강도가 구원 받은 줄을 알고 갔을까요? 알수도 있을 거야. 모를수도있어. 박목사님 헷갈리게 말해요. 박목사님 확실 하게 해주세요. 내 주관대로, 확신 속에서 얘기 하면 좋아. 여러분이 저를 신뢰한 만큼 아멘! 그럼 좋아. 믿어도 우리 수준이야. 잘 모르겠다? 그것도 우리 수준이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 만큼 하나님이 하신 구원의 실상이 믿음으로 나타 날수 있지만 그것도 우리 수준이고, 나타나 질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실상인 믿음이 없어져요? 영원한 거예요? 영원한 거 믿으십니까? 점점 믿어지거든요. 아멘. 그 믿음은 오전에도 말씀한 것처럼 행함과 함께 일하는 믿음이기 때문에 믿는 자의 삶속에 믿음으로 사는 만큼 자유해. 그 자유가 생명의 능력이 보여지는 육신 세계 관속에서 묶고 묶여온 만큼 과거에는 노예 생활, 종노릇하면서, 전부다 무릎 꿇고 사는 자들이 무릎이 안 꿇어지네, 종노릇이 안 되는 거예요. 점점 노예에서 해방되는 거예요. 그래서 몰라도 은혜 받았을 때 조금 체험은 되요. 체험 된 것을 더 체험하기 위해서 믿다 보니, 살다 보니, 그것마저도 없어지고, 점점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살아가는 세계관은 육신 덩어리다. 묶고 묶여가는 세계관을 몰라도 은혜 받았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생명의 능력 속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했던 하나님 나라가 점점 온데 간데없어지고 묶고 묶여가는 다시 종노릇하는, 그래서 여러분,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전에도 말씀 드린 것처럼 야곱을 하나님이 포기 하세요? 안 하세요? 그럼 끝까지 추격해요? 안 해요? 그래서 야곱을 통해 보여주신 게 야곱을 이스라엘 바꾼 분이 누구에요? 저와 여러분이 다 야곱이야. 나는 못해. 그런데 하나님은 하셔. 그걸 우리 지금 까지 잘 믿은게 아니잖아. 십자가의 원수로 믿고 살아왔던 복음만 가려졌던 우리 인생 속에 조금씩 우리 혼돈과 어둠속에 말씀으로 비춰주시고, 속일 수 없는 우리 인생 때문에 머리 끝 부터 발끝까지, 깨지고 터지는 인생의 살아온 고난 들은 있었는데, 고난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는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 구나. 어떻게 구원을 얻어가는 이 믿음 생활의 즐거움이 조금씩 되나요? 여러분이 살아가는 삶의 고통, 육신 속에서 아직도 자유 할 수 없는 만큼 고난은 받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구원의 은혜가 점점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은 행함과 함께 살아지는 생명의 능력의 삶속에서 육신의 나타나는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은 있는데 갈수록 비교가 없어집니까? 삶의 기쁨과 즐거움이 구원 때문에 살아지십니까? 그래서 우리는 참 복 받았어요.
나는 아까 한 집사님이 아니 저런 찬송은 장례식장에서 찬송을 해야지,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그렇잖아요. 저 분이 왜 그 찬송 부르시는지 아세요? 자기 인생과 공감이 되거든, 여러분 세상 노래, 트로트도 그 사람이 어떤 노래를 좋아하냐? 그 사람의 정서가 그대로 공감되는것 때문에 좋은 거예요. 나는 나훈아인가? 소크라테스형이라나? 진짜 공감되더라고, 왜 말해주지 않았냐고, 모든 인생들이 찾아가는 고민을 나훈아가수가 얼마나 인생의 고백처럼 와 닿더라고요. 또 김도향씨인가? 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은혜가 아니고 공감이 되는 겁니다. 제가 이전에 예수 믿기 전에 어떤 가수를 좋아했는줄 아세요? 김정호. 참 우울한 가수에요. 내 인생이 우울해서 그런지, 한 참 뜨다가 폐병인지 뭔지 걸려서 죽었잖아. 제대로 꽃도 못 펴고. 그 분이 부른 노래처럼 하얀 나비처럼 가더라고, 아 참 지금은 내안에서 반응이 일어나거든요. 갈라놓고 부르니까. 찬송도 이런 집회 같은 데는 불로, 불로 하면서, 이게 돼야 하거든요. 이런 집회는 국내에서 5-60년대 집회고, 참 우리가 안 맞는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까? 죽음과 삶이 떨어진게 아니에요. 우린 죽음이라는 것을 떨어트려놓고 살고 싶거든요. 몰라도 믿다보면 찬송도 그런 식이 되버리고, 인생도 그렇게 살고 있고 그런데 이게 떨어진 거냐고,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이 떨어진 거냐고, 죽음과 부활은 하나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쉽지 않게 조금씩 은혜 받아온 것이 뭡니까? 어느새 붙었어. 어둠과 빛이 하나네. 죽음과 삶이라는 것이 떨어진게 아니라, 죽음이 있기에 부활이 있는 것이지. 그러다 보니까 뭐가 발견되요? 나와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직도 육신 세계 속에 갇혀 있는 만큼의 여러분 안 그래야 되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모습도 있는데 아니 그것도 점점 하나님이 자유케 하시는데 어떻할거냐고, 이걸 누가 받겠냐고, 구원만 능력인데 그런 만큼 그리스도 구원의 능력 속에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지는 삶이, 나는 어둠과 빛가운데 이 사이에 끼어 있는 자구나. 그러니까.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 중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골 때리는 사람입니다. 은혜 속에 있을 때 가장 정상, 은혜 만 떨어지면 완전 꼴통들, 그러니 이런 인생이 먼저 내 안에서 부터, 두 세계관이잖아.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나라와 또 마귀는 계속 십자가의 원수로 계속 역사 할 수밖에 없는 혼돈과 어둠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둘 중에 하나가 되길 원하거든요. 다 빛, 누구도 죽음은 싫고 다 부활, 거기에 우리가 기독교 유일한 구원을 몰라도 이미 구원하시는 일 속에서 구원을 받아 놓고 서도 평생 또 구원을 이루어주시는 일 속에 몰라도 우리 세계 종교 생활은 사망과 생명을 점점 분리시키고 있었고 어둠과 빛을 점점 분리시키고 있었던 것들이 믿음 생활과 살아가는 믿는 자의 인생 속에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었는데 성경은 말하죠.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어느 분이 지난 주간인것 같아요. 전화가 밤늦게 왔어요. 그 분이 그 전주에 불과 한 두주도 안되서 10일 전쯤에 한두 달 어간에는 내가 이제 까지 그분을 봐도 하나님이 항상 은혜를 주셨고 주신 만큼 누림도 있었고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또 있는 만큼의 죄성을 통해서 쉽지 않은 과정 속에 조금씩 은혜를 받아왔으면서도 한두 달 어간에 이제 까지 제가 그 분을 봤을 때 가장 좋았어. 한두 달 어간에, 이제 까지 그런 모습이 없었거든 심지어 나한테 그런 짓을 안하는데도, 만들 수도 없지만 그냥 나와져.
그래, 하나님이 은혜 주시니까 그렇구나. 심지어는 목사님, 제가 전에는 사람들을 볼때 선악 속에 안 보려도 볼 수밖에 없는, 또 볼 수밖에 없는 만큼, 또 할 수밖에 없는 만큼 하고 나서 시달림 속에,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주시니까, 이번엔 달라요. 사람들이 나한테, 선악간에, 정도차이지만 선악 질을 하잖아요. 전에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봐야지, 알긴 아는데 안 되는걸 어떡하냐고,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선악으로 보여지니까, 선악으로 이게 보여지니까 선악 질을 안할래도 하게 되니까 어떡하냐고, 하고 나서 또 시달리니까 이걸 어떻하냐고, 상처 주고받고, 그런데 얘기하더라니까. 이제는 선악 간에 그러한 일들을 말과 행동들이 일어나도 나와 상관없이 유월절 넘어, 안 넘고 싶지? 그래 안 넘어가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어, 피가 안 발라져서 그래. 예수의 피, 그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 인생의 그러한 모든 일 속에 사망과 저주의 세력이 지금 틈을 찾으면서 피만 없는 집 그대로 타고 들어오거든요. 그 일을 통하여 정말로 주 예수의 구원 만 필요한것 아닙니까. 주 예수의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의 일이잖아요. 실제 적으로 은혜 주신 만큼만 피가 발라지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피 바르라고 하면, 여러분 은 뜯고 그 통 다 부을 거야. 많이 바르면 되는 줄 알고, 조금 발라도 되고, 많이 발라도 되고,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중요한 것은 구원은 누가 하시는 일이에요? 하나님, 우리는 은혜. 그럼 은혜 주신 만큼, 그걸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너희는 어린 양을 잡아 임방과 설주에 발라라. 그럼 사망의 사자가 그 집에 찾아 들어오다가 피를 보고 넘어, 가리라.
빨리 넘어가는 게 좋아요. 그런데 우리는 빨리 넘어 가고 싶은 거지. 그럼 그 만큼 치러야해. 그럼 빨리 치워서 빨리 넘어가려고 하니까 딜레이 시키는 거야. 할 수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자 해도 할 수 없고 지식으로 안 되고 노력으로 안 되고, 그 과정이 복음이 사람으로서가 아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사실, 지식이 아니고, 이해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하실 수밖에 없는 사실을 저도 여러분도 그동안 속일 수 없는 사실로 다 치루셨죠. 그게 한계, 그 한계가 내려놓음, 여러분이 내려 놓는게 아니에요. 그 분이 내려놓게 하시는 거예요. 그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되어지는 만큼, 그리스도의 부활도 믿는 자의 인생 속에 이것이 바로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그 분이 그래요. 이제는 그렇게 기분 나쁜 말을 해도, 넘어 가리라. 상관없어져요. 얼마나 좋겠어. 여러분도 그렇게 살고 싶죠? 그런데 안 살아지죠? 따라서 합시다. 그렇게 살아지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한계 올 때 까지 기다렸다가, 죽기 않을 만큼만 그때 와서 딱 은혜 주시고 그런게 아니야. 항상 은혜를 주고 계시고, 그분이 급해.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힘이 남아 있는 만큼 내가 해야 되잖아. 힘이 남아 있는 만큼 하나님 끌어 댕겨서, 그래야 내 힘도 있을 때 하나님 힘 있을 때 120% 복음은 전적 하나님이 하시는 일 일수 밖에 없다. 전적 믿는 자들에게는 은혜의 일 일수 밖에 없다. 이것을 저도 여러분도 다 치르게 하시면서, 여러분들 그분이 그 말을 하는데 내가 얼마나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그냥 좋은 게 아니야. 몰라도 하나님이 항상 하셨던 일인데, 우리는 다 치러야 되잖아. 그냥 내려놔지는 법이 없잖아. 절대로 하나님은 포기 하지 않고, 추격 하시면서 복음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 우리는 이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깨달아 가는 만큼 이건 발견이잖아. 몰라도 하나님이 하신 만큼만 이게 그리스도가 내 인생을 살아주신, 그 만큼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는 것인데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신년집회 2강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