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오직 믿음이 운명을 바꿉니다.
09/14토(土)요 9:1-7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요 9:3).
지금 여러분은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되는 환경을 체념하고 부정적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믿음으로 운명을 극복하려고 소망으로 살고 있습니까?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운명을 바꿉니다. 본문은 운명적으로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다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요 9:1). 그때 제자들이 저 사람은 누구의 죄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주님은 그것은 자신이나 부모의 죄가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어두운 운명을 바꾸는 믿음의 길을 깨닫게 됩니다.
운명을 바꾸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 자기 운명에 절망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요 9:3).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는 인과응보적인 사고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주님은 불행을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여기에서 믿음과 책임으로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절대 절망의 불행한 운명도 믿음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욥 42:5). 이런 욥과 같은 믿음은 불행을 꺾고 승리합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요 9:2-3). 주님은 인간의 불행한 환경 뒤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롬 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믿음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행하더라도 믿음으로 소명을 발견하면 운명을 이깁니다.
“우리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온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9:4-5).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이 세상에 할 일이 있습니다. 그 할 일은 빛이신 주님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소경에게 눈에 침을 뱉어 진흙을 발라 실로암에서 씻고 오라고 합니다. 이 사람의 소명은 주님이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 사람은 실로암에서 눈을 뜬 후 유대인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를 빛으로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만나 실로암에서 영적인 눈이 뜨면 예수를 증거하는 소명자가 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운명을 극복하고 주님을 증거하는 축복의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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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받아들이는 동 서양의 철학관이 다릅니다. 동양 사람들은 자기 운명을 체념하는 경향이 크고 서양 사람들은 운명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정복해야 한다는 개념이 강합니다. 아마 기독교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C단조’를 ‘운명 교향곡’이라고 합니다. 이 곡을 들으면 장엄하고 힘이 납니다. 베토벤은 청각을 잃은 상태에서 이 곡을 썼습니다. 그가 오스트리아 빈의 어느 공원을 지나갈 때 새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 다, 다와 긴 음 다아~를 듣고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운명 교향곡’을 베토벤이 당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자기의 불행한 운명의 목을 비틀고 극복하려는 믿음의 의지를 표현한 곡이라고 평론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운명 교향곡을 들으면 힘이 나고 용기를 북돋게 됩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주님은 나에게 제한을 받으십니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인격적인 주님이시기에 강제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내 속에서 제한받지 않을 때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내가 할 일은 주님이 내 속에서 일하시도록 나를 비워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속히 깨닫는 것이 축복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체험하는 만큼 주님의 강함을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적 믿음이 혼적 믿음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적 믿음으로 한 기도는 주님의 기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영적 믿음(하나님의 믿음)으로 기도하면 아직 현실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미 영적 세계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곧 현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영적 믿음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을 보았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영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현실 세계에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힘든 것과 의심하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내 믿음과 충돌하여 갈등이 생깁니다. 믿음은 생명체이기에 죽는 날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제는 늘 현재입니다. 그래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을 영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보인 것은 반드시 시간이 지나면 현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믿음, 운명을 바꾸는 믿음을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네
https://youtu.be/2nzRtQ6xl3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