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롬 !!
경항공기 지역 신우회 4월17일(수) 예배순서
오늘 말씀에 요지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분을 믿을 수 있으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셨으며 또한 인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며 또한 우리와 똑같이 육체에 아품도 고통도 슬품도 그리고 기쁨도 가질 수 있는 모습이 그리고 배가고파서 먹을 것을 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인성을 가지신분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시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아푸고 힘드셨을까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육신에 어머니인 마리아가 그 십자가 밑에서 그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푸셨을까요. 그런데 그 아들이 시신도 없어요. 그리고 천사가 말해줍니다. 부활하셨다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갑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질문합니다. 무슨일이냐 무슨말을 하느냐 예수님을 몰라보는 그들이 화를 냅니다. 너는 누구기에 우리가 말하는 내용의 소식을 듣지 못했느냐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시면서 신성을 나타내는 일도 많이 하시고 인성을 나타내는 일도 많이 하셨음을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로 행하시며 사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십니다. 이 말씀에 진정한 뜻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 십자가는 무엇인가요. 죽음입니다. 그분을 따르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이 세상속에 일하고 자고 먹고 그리고 모든 감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죽으라 하십니다. 어떻게 죽어야 하나요. 나는 죽고 주는 살고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왜요 우리가 죄인이니까요. 그런데 죽지 않으려고 나의 이성과 판단으로 살아가려합니다. 이 모든 것을 주앞에 내려놓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내가 죽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 왕이시고 만왕에 왕이 되십니다. 이 말씀에 무디지 않는다면, 다음에 말씀에 아멘이라고 하실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살아내야 합니다.
성경말씀 : 눅 24:17-25, 새번역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당신들이 걸으면서 서로 주고 받는 이 말들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때에 그들 가운데 하나인 글로바라는 사람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으면서, 이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당신 혼자만 모른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를 넘겨주어서, 사형선고를 받게 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분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있은 지 벌써 사흘이 되었는데, 우리 가운데서 몇몇 여성이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던 몇 사람이 무덤으로 가서 보니, 그 여성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사도적 공동체는 어느 누가 권세들이 되느냐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즉 교회는 어떤 사람이 권세를 잡으면 공동체가 복을 얻고 어떤 사람이 권세자가 되면 공동체가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후 1세기 고대 유대인의 정치 종교 권세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라고 로마 제국에 고발하고 전세계를 호령하며 다스리던 비유대인 세력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모든 사람과 온 창조 세계를 구속하시는 야웨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성취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타락한 권세들이 주님을 대적하여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오직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사도적 공동체는 이를 직접 보고 들었기에 누가 권세자가 된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거나 축소되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이 확신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 가르침을 받고 깨달았던 것처럼 오직 주님 말씀을 바로 앎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말씀선포 : 만왕의 왕이신 인자!
사람이 살면서 어떤 일이나 물건에 대한 경험이 많아졌을지라도 자만하지 말고 그 일과 물건 사용에 있어 항상 전문가의 지도를 묻고 따를 필요가 있음을 뜻합니다. 전문가가 어떤 일이나 물건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고 훈련을 해왔기에 사람이 이를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 경험만 신뢰한다면 일을 잘 수행하지 못하거나 물건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이 가진 교훈을 교회에 존재하는 스스로 선생된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성경말씀해석과 적용을 신뢰하며 오랜시간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에서 세운 신학교에서 지식을 배우고 이를 공동체에 적용하는 훈련을 해온 이들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선생님이 된 사람들은 자신이 다년 간에 쌓아온 여러 경험이 더 크다고 말하며 전문적으로 세워진 목회자들이 증거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주님이 주시는 더 큰 은혜를 놓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전문적으로 세운 목회자들이 전하는 주님 말씀에서 많은 사람이 그분이 주시는 크신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의 증언을 공통으로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들어가시기 전 자신과 몇 년 동안 동거동락했던 제자들에게 자신이 분부한 모든 것을 다른 주님의 제자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만왕의 왕으로 고백하지 않는 이단을 제외한 모든 주님의 몸된 공동체는 주님의 제자들, 즉 사도들이 전달한 주님의 가르침을 공통되게 배웠습니다. 그렇기에 사도신경 또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고백하는 모든 주님의 몸된 공동체는 자신들이 사도들의 증언을 잇는 공동체, 다른 말로 공교회임을 믿는다고 선언합니다.
무엇이 사도적 공동체가 올바른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증언할 수 있게 하냐면 바로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수여받으신 하늘(하나님의 직접 통치 영역)과 땅(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의 권세입니다. 사도적 공동체는 이를 다른 말로 ‘만왕의 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모든 사도적 교회 공동체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가지신 모든 권세를 힘입어 자신들이 이천 년 동안 내려온 예수님의 가르침을 증언한다고 고백합니다.
사도적 공동체는 초대 교회 때부터 자신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아 전하는 내용이 스스로의 고백들 사이에서도 부딪치지 않으며 고대 이스라엘부터 고대 유대교를 거치면서 이어진 주님의 백성이 가진 계시에서도 상충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서 활동하여 고대 유대인이 가진 성경에 기록된 예언자들이 말했던 그 구세주시며 만왕의 왕이신 인자와 같은 분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그들의 고백은 외부로부터는 고대 유대인으로부터, 내부로부터는 몇몇 성도들에 의해 틀렸다는 공격을 받았지만,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이 이사야 예언자가 말했듯이 오직 모든 사람과 온 창조 세계에 평화를 주시는 진정한 주님이시라는 고백을 변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변개하지 않았던 이유는 예수님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나님이 그를 살리심으로 진정한 권세자들의 권세자가 되셨음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니엘 예언자가 선언했듯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날부터 계신 분으로부터 권세를 수여받아 모든 이들의 경배를 받은 그 인자이심을 드러낸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사도적 공동체는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이 세상을 아직 심판하지 않으시고 타락한 권세들을 진정한 권세에 순복시켜 모두로 만왕의 왕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살게 하려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드러낸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몸된 공동체는 만왕의 왕이신 인자께서 온 세상을 샬롬, 즉 평화와 번영이 넘치게 하심을 믿으며 시편 62편 저자의 노래처럼 권세는 하나님의 것으로서 예수님께 주어졌고 한결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으로서 예수님 안에서 온 세상에 전해졌다고 고백합니다. 사도적 공동체에 있어 모든 권세들은 권세중의 권세이신 인자에게 순복하여 어떻게 하나님 샬롬을 모든 사람과 온 창조 세계가 누리게 해야 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하는 세력들입니다.
사도적 공동체는 어느 누가 권세들이 되느냐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즉 교회는 어떤 사람이 권세를 잡으면 공동체가 복을 얻고 어떤 사람이 권세자가 되면 공동체가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후 1세기 고대 유대인의 정치 종교 권세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라고 로마 제국에 고발하고 전세계를 호령하며 다스리던 비유대인 세력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모든 사람과 온 창조 세계를 구속하시는 야웨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성취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타락한 권세들이 주님을 대적하여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오직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사도적 공동체는 이를 직접 보고 들었기에 누가 권세자가 된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거나 축소되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이 확신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 가르침을 받고 깨달았던 것처럼 오직 주님 말씀을 바로 앎으로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