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시 50 : 22-23.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제목 : 하나님을 영화롭게,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은 미국식 표현이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맥추절로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출 23: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맥추절은 오순절, 칠칠절, 초실절 등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유월절로부터 오십 일째 되는 날 지킨다고 해서 오순절입니다. 칠칠절은 유월절로부터 일곱 안식일 다음이라고 해서 칠칠절, 초실 절은 한 해 농사의 첫 수확물이라 해서 초실 절입니다.
광야생활이 녹녹하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하여 무슨 건만 있으면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모세에게 대들고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건이 없으니까 나중에는 기력이 떨어져 못살겠다고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대듭니다.
민 11: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십니다. 육신의 것만을 보고 생각하면 평안도 감사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여기가 애급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여기 죄악 세상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창조하신 목적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모르는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은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나라전체가 가난하였습니다. 음식의 질은 상상도 못하고 양만이라도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구정이나 추석 명절에 고기 국에 배불리 먹으면 최상으로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고기가 씹을 시간이 없이 그냥 녹아서 넘어갔습니다. 그 당시의 욕망은 이와 같이 간단하고 소박 했습니다. 배만 부르게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더 이상의 소원이나 불만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배고픔의 문제가 해결되자 소원이나 불평불만이 열배, 수무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이것이 죄이고, 악이라고 지옥의 삶인 것입니다. 요사이 사건 사고 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엽기적이고 잔인한지 끔직해서 말이 안 나옵니다. 거의가 명품치장하고, 고급 아파트, 고급 외제차 타고 싶어서 즉 남에게 과시하고, 거들먹거리고 싶어서 아니면 나를 무시해서가 대부분입니다.
잠 30: 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6.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사람의 욕망, 탐심은 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탐욕을 채우려 남과 비교하고 피 흘리는 경쟁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니 감사가 있을 수가 없지요.
1. 감사가 무엇입니까?
감사란 은혜 받은 자들이 고마움을 느끼고 은혜를 주신 분에게 사례하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은혜 받은 사람만이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감사할 일이 생기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를 심으면 축복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감사는 주어진 자기 환경에 만족하며 살 때입니다.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한 감사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딤전 6: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 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온 우주 만물 창조물 중에 오직 사람만이 남과 비교를 하며 우월감에 남을 멸시하고 상처를 주고 또는 열등감에 상처를 받고는 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따듯해집니다. 그 사람은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 그 사람 됐어” 라고 평가합니다. 감사를 잘 하는 사람도 실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감사를 받은 사람은 실수한 사람을 변호하고 방어하게 됩니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수 안하는 사람 어디 있냐고 합니다. 감사가 몸에 배이도록 습관이 되도록 한다면 최고의 성공 줄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통의 삶을 살든, 고난의 삶을 살든 감사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1. 감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음식을 갖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감사하시자
오천 명이 먹고도 7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위하여 “ 아버지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기도 하실 때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분 꿈을 피지 못해 불만 입니까? 탤런트처럼 태어나지 못해서, 머리가 천재로 태어나지 못해서 입니까? 이런 불평 불만의 생각들은 악한 영들이 주는 것으로 스스로 좌절하고 절망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마음이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감사를 통해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 여러분이 잘 아시는 “나 가진 재물 없으나”라는 찬양을 발표하여 수많은 육신적, 정신적 장애인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시의 초점은 “ 공평하신 하나님인”데 무엇이 그렇게 공평 하길래 “공평하신 하나님” 이라고 노래를 불렀을까요? 그의 처지를 한번 보겠습니다.
나는 아홉 달 만에 세상에 태어났고, 태어나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하루 저녁 동안 숨이 멈추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목 디스크를 얻어 전신마비가 되었고 온 몸의 통증으로 시달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엄청난 통증, 자유롭지 못한 몸과, 가난한 집안 살림에, 여러 가지 억누르는 환경들이 나를 날마다 서글프게 했지만, 비록 남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하였으나 이 고통스런 환경으로 말미암아 천국을 보게 하신 하나님이 공평하시다는 것입니다.
- 이지선 자매는 어떻습니까? 방송에서 한두 번은 다 들어 보시지 않았습니까? 이화여대 4학년 때 그 싱그러운 청춘이 차가 뒤에서 들이 받아 전신에 화상을 입고 어렵게 목숨을 구했지만 얼굴과 온몸 흉하게 일그러져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고, 지금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다시 하나님을 모르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 또 TV에 여러번 나온 닉 부이 치치라는 분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양팔과 양발이 없는, 그저 몸뚱이만 덜렁 있는 장애로 태어나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는 몸뚱이를 굴려야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런 몸으로 태어나게 하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에, 수영에, 근자에는 결혼을 하여 귀여운 아들과 함께한 사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며 정상적이지만 온전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 이런 예화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본문 속에서 또 우리의 삶에서 두 종류의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과, 또 하나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들과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들입니다.
2. 감사는 변화를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혼인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고 하인들에게
정결예식에 쓰는 항아리에 있는 물을 떠다 연회에 갔다 주리고 하십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원수가 변하여 친구가 되고, 돌이 변하여 떡덩이가 되고, 쓴 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는 것처럼 감사에는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를 하면 사람도 변하고 환경도 변화됩니다. 감사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정상인이, 보통지능이 천재로, 못생긴 사람이 미인이 될 수는 없지만, 환경을 변화시키며 태도를 변화 시키고 감사하면 부족함이 없고 세상 어느 사람보다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감사는 훈련이고 학습입니다.
대상 16: 7.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먼저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8.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9.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차례 감옥에 걷히고 생사를 넘다드는
모진 고생을 다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바울은 원망불평하지 않고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모든 일에 감사를 했습니다. 바울의 옥중서신에 보면 한결같이 감사를 했습니다.
엡 1: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빌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러니까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 감사가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해서 견디기 힘든 조건과 상황을 뛰어넘게 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배우고 훈련 받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가진 것에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 많은 것을 누려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사십년 삶은
신 8:2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다르게 표현하면 감사하는지 안하는지 알려고 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애급에서 그들의 고통과 한숨과 신음소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귀에 들려서 하나님이 구출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옥 같은 애급에서 나오자마자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는 것입니다. 감사를 모르는 광야 1세대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 고난도 감사의 조건입니다. 늘 풍요롭고 위기가 없던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연이란 없습니다. 누군가는 땀을 흘리고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고 없이 닥치는 위기는 감사함을 기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입니다. 감사를 연습하고 훈련해서 어떤 상항에서도 감사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4. 감사는 명령입니다.
성경은 감사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살전 2: 13 끊임없이 감사하라, 5:18 범사에 감사하고,
엡 5:4 감사하는 말을 하고, 19, 감사로 찬송하고 20, 항상 감사하라고 합니다.
골 2: 7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4:2 감사에 깨어있으라고 하십니다. 또한
시 50: 14 감사로 예배드리며, 100:4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셀 수 없이 감사하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감사하고 찬송하는 자에게 천국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십니다.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감사는 우리 기준에 만사형통할 때 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명령하실 필요가 없지요. 고난도 환난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축복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 군사로, 백성으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날마다 감사하므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