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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일보-
[2025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아오키가하라* / 이지우
외로움이란 자꾸 발견되는 이상기후
나는 지금부터 나를 고백하는 것으로
숲에 도달할 수 있다
여름이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어떤 날, 나는 스스로를 바꿔 보기로 했다 노력과 사랑을 뒤섞어서
밥과 함께 삼켜 보기로 했다 문장 속으로 회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새벽을 참 좋아하고
이것은 글로 포기할 마음을 먹는다는 것
창 너머로는 고장난 실외기가 소음 없이 돌아간다
다리 사이로 차오르는 땀과 찝찝함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이
내게는 있다
사람이 너무 좋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안한 마음이 지속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녹아버린 빙하처럼
외로움은 누군가가 주목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중요해지는 것이다
나는 선풍기로 외로운, 혼자인, 함께는 불가능한 스스로를 견뎌낸다 곧이어 풀과 꽃을 기록했다
푸르다, 푸른 것이다 나무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죽어간다
아직 나 살아있어요, 하고서
#아오키가하라- 자살의 숲 https://naver.me/GqNPpf4t
일본 야마나시현 미나미쓰루군 후지카와구치코정 인근에 걸쳐있는 숲이다. 수해(일본어: 樹海 주카이[*]→나무의 바다)라고도 불린다.
-광남일보-
[2025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언어·감정·의미 잘 다스려…시적 짜임새 좋다
정끝별(시인·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한 편의 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언어와 감각과 사유와 통찰을 풀고 맺고 잇대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기와의 싸움을 견뎌내야 하는 걸까? 응모된 1200편이 넘는 공들여 쓴 시들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었다. 다양한 세대의 ‘일상과 시화’라 할 만한, 우리 삶 속에 시가 있다는 서정시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 경향은 크게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한 생활고, 늙음과 질병으로 인한 돌봄과 죽음,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풍자, 그리고 구어나 방언에 담긴 모어의 시적 실현으로 나뉘었다.
특히 한강의 노벨상 수상식이나 비상계엄령 선포 등을 시제로 다룬 시들도 간간이 있었는데, 시대의 첨예한 첨병으로서의 시의 역할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예비 시인들의 시를 읽는다는 건 늘 기껍고 설레는 일이다. 거기에는 우리 시의 과거와 미래, 그러니까 정전화된 시적인 것과 가능태로서의 시적인 것이 충돌하면서 내뿜는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뭉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가 무엇이었고, 미래의 시가 무엇이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담보하는 시들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신인에게 기대하는 시적 에너지로서의 열도(熱度), 시적 도전으로서의 신선도(新鮮度), 그리고 시적 훈련으로서의 완성도(完成度) 또한 심사의 기준이었다. 자신의 체험이나 현실적 서사에 함몰되어 시적 긴장과 응집력을 놓치는 작품들을 먼저 놓았다.
최종적으로 시적 개성이 뚜렷한 네 분의 작품이 남았다. ‘순환도로’ 외 4편은 순환도로, 회전교차로, 콘크리트, 주차선, 바퀴와 같은 도시 문명의 상징적 오브제들을 통해 도시인의 삶을 통찰한다. 굵고 간결한 직진의 시적 사유와 그 전개에 호감이 갔다. ‘나무 안에 소리가 산다’ 외 4편은 서정적 통찰을 발견의 묘사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 쓰기의 연륜이 읽혔다. 잘 조율되고 다듬어진 고백의 숨결이 자연스럽게 독자를 끌어당기곤 했다. 그러나 이 두 분의 시편들에서 아쉬웠던 것은 신인에게 기대하는 시적 도전으로서의 새로움이었다.
‘테트라포드’ 외 4편은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던 작품이다. 사물의 물질성과 구도를 투시하는 감각과 사유를 현실과 잇대 놓는 튼실한 연결고리가 미덕이었다. 그러나 다소 설명적이었던 다른 작품들과의 편차가 아쉬웠다.
최종적으로 ‘아오키가하라’ 외 4편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언어와 감정과 의미를 다루고 다스릴 줄 안다는 믿음이 갔다. 그것들을 엮는 시적 짜임새에 군더더기가 없고, 감각과 상상력은 물론 시적 시선이 새로웠다. “외로움이란 자꾸 발견되는 이상기후”, “외로움은 누군가가 주목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처럼, 감정과 의미와 묘사와 통찰이 어우러진 밑줄을 긋고 싶은 발견의 문장들 또한 매혹적이었다.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균질하면서 안정된 시적 열도와 완성도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비록 당선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최종 심사 대상자를 비롯해 응모자 모두에게 힘찬 정진을 당부한다.
-광남일보-
[2025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소감
오로지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창작
처음 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부터 지금까지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항상 바라던 것이었음에도 손에 쥐어지니 만져지지가 않아 곤란한 기분입니다. 당선을 축하해 주는 친구의 울먹임이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일주일 전에 피를 흘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온몸에서 솟구치는 피를 내뱉으며 울었는데, 그 울음이 제가 쏟을 눈물을 미리 쏟아 주었다 생각이 듭니다.
항상 무기력함에 이끌려 방에 박혀 있던 제가 활력을 되찾은 건, 중학생 때 홀로 글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였습니다. 단지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어 쓰기 시작한 제가, 이 활자를 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생각하다보면 마음이 가느다라지는 것만 같은 감각에 저는 창문을 열고 겨울 바람을 맞습니다. 다시 마음을 부풀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어떤 것이든 단면을 들여다보면 어둡고 축축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슬리퍼 밑창처럼 죽죽 끌어당겨지는 슬픔도, 몸 이곳저곳에서 숨쉬는 흉터들의 분주함도 나의 단면의 일부입니다. 쓰고 읽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단면에 숨겨진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싶기도 합니다. 세계의 단면에는 과거와 미래가 있고, 여름의 이중성이 있으며, 살다와 살아간다가 혼동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면들은 감각이 되고, 비유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들을 자주 하며 글을 썼습니다.
오로지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곳까지 발을 올렸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기대되면서도 두려운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예창작과라는 곳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제 하나뿐인 선생님, 내가 살아있도록 마음을 준 친구들, 외로울 때마다 소통해 주던 책들…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 차오릅니다. 제 당선 소감을 읽으시는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시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신 많은 분들과 읽게 되실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챗GPT 분석
1. 제목의 의미
**"아오키가하라"**는 일본 후지산 기슭에 위치한 숲으로, '자살의 숲, 죽음의 숲'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제목은 이 숲의 상징성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외로움과 자기 고백의 공간을 암시합니다.
2. 주제
외로움과 자기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를 모색하고, 고독 속에서도 스스로를 견뎌내며 살아 있음을 선언하는 이야기.
3. 상징의 분석
숲: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이 응축된 공간. 자기 고백과 치유의 장으로 작용.
외로움: 인간 존재의 필연적인 감정. 누군가의 주목과 관심에 의해 그 크기가 달라지는 가변적 감정으로 묘사.
녹아버린 빙하: 환경문제처럼 외로움은 공동체의 책임.
나무: 이름과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서, 죽음 속에서도 자신을 증명하려는 생명력을 상징.
선풍기: 불완전한 위로와 삶을 지속시키는 최소한의 기제.
푸르다, 푸른 것: 생명력을 상징하며, 삶에 대한 긍정적 가능성을 암시.
4. 연단위 분석
1연: 외로움과 자기 고백의 시작
"외로움이란 자꾸 발견되는 이상기후 나는 지금부터 나를 고백하는 것으로 숲에 도달할 수 있다"
외로움을 '이상기후'로 묘사하며, 고독한 감정이 반복적으로 자신을 찾아온다고 설명한다. 숲(아오키가하라)은 고백과 자기 성찰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내면의 공간으로 설정된다.
2연: 노력과 자기 변화의 시도
"여름이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어떤 날, 나는 스스로를 바꿔 보기로 했다 노력과 사랑을 뒤섞어서 밥과 함께 삼켜 보기로 했다 문장 속으로 회피하지 않기로 했다"
화자는 외로움과 삶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노력과 사랑, 그리고 일상적 행동(밥을 먹는 행위)을 통해 구체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3연: 새벽과 외로움의 고백
"나는 새벽을 참 좋아하고 이것은 글로 포기할 마음을 먹는다는 것 창 너머로는 고장난 실외기가 소음 없이 돌아간다 다리 사이로 차오르는 땀과 찝찝함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이 내게는 있다"
화자의 내면적 고백과 감각적 체험을 통해 외로움과 삶의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드러낸다.
1. 새벽의 의미: 새벽은 고요함과 고독의 시간이자 성찰의 순간으로, 화자가 삶의 복잡함 속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상징한다. 특히 "글로 포기할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새벽을 통해 내면의 혼란과 외로움을 글로 해소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
2. 고장난 실외기: 소음 없이 돌아가는 실외기는 기능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이는 외로움 속에서도 삶을 지속하는 화자 자신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살아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엿보인다.
3. 찝찝함과 아름다움: 다리 사이로 차오르는 땀과 찝찝함은 불편한 감각이지만, 화자는 이를 "아름다워지는 순간"으로 전환한다. 이는 불완전한 상황과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려는 화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삶의 작은 불편함조차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관조적 자세를 상징한다.
새벽이라는 시간과 일상의 불완전한 요소를 통해 삶의 긍정적 수용과 자기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화자가 내면적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소하는지 보여준다.
4연: 사람과 미안함
"사람이 너무 좋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안한 마음이 지속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화자는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상황을 고백한다. 이는 외로움과 인간관계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5연: 외로움과 주목
"녹아버린 빙하처럼 외로움은 누군가가 주목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중요해지는 것이다"
외로움의 본질과 그것이 타인의 관심과 연결된 상태를 탐구하는 문장으로 볼 수 있다.
1. "녹아버린 빙하처럼 외로움은 누군가가 주목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외로움은 윗 연에서 언급한 이상기후로서 공동체의 책임이다.스스로 생겨나거나 지속되지 않으며, 타인의 주목과 관심에 의해 형태를 갖추고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을 암시한다.
'녹아버린 빙하'는 눈에 보이지 않거나 잊히기 쉬운 외로움의 상태를 상징하며, 타인의 주목이 없으면 외로움은 더욱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취약한 본질을 표현한다.이상기후처럼 공동체에게 영향을 미친다.
2.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중요해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주관적 인식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에게 외로움은 중요하고 커다란 문제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거나 무의미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이는 외로움이 개인의 관점과 상황에 따라 달리 느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로움이란 타인의 관심과 인정 속에서만 의미와 존재감을 얻는 감정이라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외로움의 본질이 단순히 홀로 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의미화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동시에, 외로움의 의미와 무게가 타인의 주목에 의존하는 것은 개인의 감정과 관계가 타인에게 얼마나 취약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암시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존재 조건과 그것이 타인의 시선과 주목, 그리고 개인의 인식 속에서 의미화되는 과정을 탐구하며, 외로움이 단순히 고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구성되는 감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6연: 외로움 속 생존과 기록
"나는 선풍기로 외로운, 혼자인, 함께는 불가능한 스스로를 견뎌낸다 곧이어 풀과 꽃을 기록했다 푸르다, 푸른 것이다 나무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죽어간다"
고독과 자기 존재의 수용을 표현하며, 자연 속 생명체와 인간의 유한성을 연결하여 탐구합니다.
1. "나는 선풍기로 외로운, 혼자인, 함께는 불가능한 스스로를 견뎌낸다"
여기서 "선풍기로"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소박한 도구와 방편을 상징합니다.
"혼자인, 함께는 불가능한 스스로"는 외로움의 본질적인 상태와 타인과 연결되지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드러냅니다.
이 문장은 외로움이 단순히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 내면에서 자신과 씨름하며 이를 견디는 적극적인 과정임을 암시합니다.
2. "곧이어 풀과 꽃을 기록했다 푸르다, 푸른 것이다"
풀과 꽃은 자연의 생명력과 순환적 시간성을 상징하며, 외로움을 넘어선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기록하려는 화자의 노력을 보여줍니다.
"푸르다, 푸른 것이다"는 자연의 현재적 생명력에 대한 직관적인 깨달음을 나타내며, 외로움 속에서도 지속되는 자연의 존재를 강조합니다.
3. "나무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죽어간다"
나무가 "이름으로 죽어간다"는 것은 정체성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냅니다.
나무는 존재하지만, "나무"라는 이름으로 정의되면서 결국 그 고유성을 잃고 유한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는 인간 역시 자신의 이름과 역할 속에서 한계를 마주하며, 존재의 유한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은유로 읽힙니다.
4. 전반적인 해석
혼자서 자신의 외로움과 한계를 인정하고, 자연의 순환적 질서를 통해 위안을 얻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화자는 고독을 견디며 자연의 생명력과 자신의 유한성을 대면하고, 이를 기록하며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도를 합니다.
나무와 꽃의 이미지를 통해 자연과 인간 모두 이름으로 정의되고, 그 정의 속에서 소멸한다는 점을 암시하며, 외로움과 죽음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외로움과 유한성을 인정하며, 자연의 질서를 통해 내면의 조화와 평화를 찾으려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드러냅니다.
7연: 삶의 선언
"아직 나 살아있어요, 하고서"
마지막 구절은 외로움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선언하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다.
5. 이미지의 연쇄
외로움(이상기후) → 숲(내면) → 새벽(성찰의 시간) → 녹아버린 빙하(공동체의 책임) → 풀과 꽃(생명력) → 나무(죽음과 삶의 증명) → 살아있음(삶의 의지)
외로움에서 시작된 감정의 흐름이 자연과 생명, 그리고 궁극적인 삶의 의지로 이어진다.
6. 결론
이 시는 외로움을 중심으로 내면의 성찰과 삶의 의지를 탐구한다. 외로움은 삶의 필연적 부분이지만, 화자는 이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마주하며 자신을 변화시키고 기록한다. 나무와 풀, 꽃과 같은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외로움 속에서도 생명력과 희망을 발견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마지막 구절에서 외로움을 이겨내고 '살아있음'을 선언하는 모습은 고독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화자의 강렬한 의지를 드러낸다.
첫댓글 토끼가 살지 않는 숲 / 안희연
큰 나무와 밧줄이 있는 곳까지 왔다
나는 빵조각을 흘리며 걷지만
아무도 나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고
한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숲은 무성해지고 있다
발톱이 굵은 새들이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바닥이 찢어지는 구름들, 걸어 들어간 흔적은 있지만 돌아 나온 발자국은 없는
내가 숲의 한가운데에서 투명한 자물쇠에 대해 떠올리는 동안
그림자는 서서히 일어나 잰걸음으로 달아났다
나는 당신의 생각 속에서 죽은 사람
타다 남은 몸으로 숲을 떠돌아요
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쪽을 빤히 쳐다보던 것이 있는데 눈이 마주쳤을 때
풀숲으로 재빨리 사라져버린 것이 있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새빨간 눈에 대한 상상을 멈출 수 없었다
열 마리 스무 마리 백 마리
셀 수 없을 만큼 불어난 토끼들이
나는 큰 나무와 밧줄을 번갈아 보았다
잠시 뒤면 매달려 있을 사람이 보인다
- 안희연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2015,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