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남산(구월산) 동쪽 자락 봉의재(鳳儀齋)
kkhn54 ・ 2020. 3. 25. 10:14
상주 남산(구월산) 동쪽 자락 봉의재(鳳儀齋)
상주시 신봉2길 31-16
상주 남산(南山, 156.1m) 동쪽 자락에 장방형(長方形)의 큰 덤이 하나 있으니, 바로 상주의 토착 성씨(姓氏) 상산 김씨(商山金氏) 시조(始祖: 高麗甫尹 諱 需)의 단소(壇所)이다. 甫尹 公은 라말 여초(羅末麗初)의 인물로 생몰(生沒)은 알 수가 없으며, 가계는 “신라 왕족(王族)의 후예(後裔)로 시조 이전의 기록은 상고할 수가 없어, 후세로부터 출처를 소급(遡及)해서 추리하여,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통해 제반 사실을 참조 증험(證驗)할 뿐이다.”라고 한다. 설단(設壇)은 1962년이고, 명문(銘文)은 「高麗甫尹商山金公需之壇, 純宗甲辰三月 日」이라 새기고 있다.
보윤 공 대제 봉행의 준비와 문중 내외의 연락업무, 외래 참례 객 접대, 족보편찬, 선조님 문헌 연구, 뿌리 찾기 등을 총괄하는 재각(齋閣)은, 단소 옆에 자리한 봉의재(鳳儀齋)이다. 1967년에 창건(刱建)하였으며, 봉의(鳳儀)와 정문을 조양(朝陽)이라
이름한 것은 시경(詩經) 대아(大雅)의「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菶菶萋萋 雝雝喈喈」글귀에서 취한 것이며, 남쪽 협문(一脚門)의 아남(雅南)은 소아(小雅)의「鼓鍾欽欽 鼓瑟鼓琴 笙磬同音 以雅以南 以籥不僭」에서 취한 것이다.
동향(東向)으로 앉은 봉의재는 솟을삼문의 조양문(朝陽門)을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1.5칸의 목조 팔작 기와지붕, 겹처마로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고, 토석(土石)으로 담장을 둘렀다. 들어가면서 외부 전면은 퇴 칸으로, 원형 주초에 얹은 6개는 두리(圓)기둥이고, 좌우 뒤쪽 10개의 사각(方形)기둥은 제형(梯形) 초석이며, 양옆과 뒤편에는 쪽마루(장마루)를 놓았다. 대청의 문은 세살청판분합(細箭廳板分閤)으로 들어열개 문(門)이고, 문 위의 창은 광창(廣窓)이다. 방의 창은 세살단분합(細箭短分閤)이고, 아래에는 머름(遠音)으로 마감하여 목조 건물의 멋을 살렸다.
내부는 일 고주 5량가(一高柱五樑架)로 왼편에 방 2칸, 가운데에 대청 2칸, 오른쪽에 방 1칸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대청의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대청 뒤 벽면에는 역대 상산김씨 대종회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중보(中樑) 위에는 제형(梯形) 판대공(板臺工)을 얹었으며, 대청과 방의 문(門)은 3분합으로, 1분합씩 들어열개 문으로 등자쇠에 걸면, 오른쪽 방 1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한 칸으로 합해져서, 네 개의 공간이 쉽게 통합되거나 분리될 수 있는 가변성을 지니고 있어, 여러 형태로 사용이 용이해진다. 익공(翼工)과 선자연(扇子椽)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고, 솟을삼문은 왼편에 방을, 오른편에는 창고로 지었다.
재각 내에는 외후예(外後裔) 김황(金榥)이 지은 봉의재기(鳳儀齋記)와 봉의재사기(鳳儀齋舍記), 봉의재창설시찬조금방명록(鳳儀齋刱設時贊助金芳名錄)의 편액이 걸려 있고, 만송(晩松) 전윤석(全胤錫, 1892~1983)과 후손 상익(相益)이 지은 상량문(上樑文)이 있다.
만송(晩松)의 상량문은
「壇墠爰封用代乎千載不傳之隧羹墻如見以寓夫百世追慕之誠是所謂不忘其本源庸距非甚善底道理伏惟勝國甫尹商山金公寔惟新羅王之後孫允爲商山氏之始祖……城南二里之地蓍龜叶從撗枕於川上九月之岡臺鳳翔舞……材瓦於何地雖舊而如新陳圭臬之有方去偏而取正……伏願上樑之後天神降福地靈呈休時時花樹之筵共挹春風而雍睦歲歲芬苾之享咸將禮意而周旋不億麗之後孫於千世於東國.丁未端陽節沃川全胤錫撰(제단을 만들어 이에 무덤과 같이하여 불전의 묘도를 대신하고, 국과 담장에도 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이 백세토록 추모의 성정을 부친다. 이는 이른바 그 근본을 잊지 않음이니 어찌 매우 훌륭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엎드려 생각건대 고려조 보윤 상산 김공께서는 진실로 신라왕의 후손이며, 진실로 상산김씨의 시조이다.……상주성 남쪽 2 리의 땅에 터를 잡아 거북점과 시초점도 모두 따르니, 냇가를 가로지른 구월산 언덕은 봉황이 날아올라 춤추듯 한다.……재목과 기와를 어디에서 옮겨왔기에 비록 옛것이긴 하지만 새것과 같고, 표준이 되는 방법을 말하여 치우친 것을 제거하고 바름을 취하였다.……엎드려 바라건대 상량한 뒤에 천신이 복을 내리고, 지령이 아름다움을 비추며, 때때로 화수의 잔치는 모두 봄바람에 젖듯 화목하고, 해마다 제사모심은 모두 예의를 가지고 주선하며, 자손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천추만세토록 동국에 이어지리라. 정미년 단양절 옥천 전윤석이 짓다.)」라 적고 있다.
주련(柱聯)은 8기둥에「樓上從容曉月明, 春風隨處動郊坰, … (누대에 오르니 조용하고 새벽달 밝은 데, 봄바람이 곳을 따라 교외에서 불어오네 … )」이라 걸었다. 애초 이 건물은 목재가 좋아, 조선 십승지(十勝地)로 알려진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 마을의 고택(40坪)을 매입, 해체 운반하여 현재의 모습(25坪)으로 세웠다. 목재는 문경시 동로면의 황장목(黃腸木)으로 조선조 말에 세웠던 건물이라, 이미 100여 년이 지난 목재로 알려졌다. 그 후 지붕은 이미 수년 전에 번와(飜瓦)를 한 적이 있다.
상산 김씨 시조의 단소는 보기가 흔하지 않은 장방형(長方形) 봉분(封墳)이고, 문인석(文人石), 사자석(獅子石), 장명등(長明燈)이 설치되어 있으며, 단소 앙 옆에는 일백 년에 가까운 나이를 자랑하는 배롱나무 2그루가 운치를 살리고 있다.
2世에서 10世에 이르는 상계선조(上系先祖)는 그 전함을 잃어 합사제단(合祀祭壇)에 모시고 있으며, 상산김씨 유래비(由來碑)에는 상세한 내용과 함께 뒤편에는 11개 분파도(分派圖)를 새기고 있으며, 대제일은 양력 5월 5일이다. 단소 주위를 두른 벽면에는 11개 파 파별 주요 선조의 행적(行蹟)을 간단히 새겼다. 상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중에는 상산 김씨가 대표적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는 상산 김씨가 일찍이 뿌리 깊은 토착 성씨(姓氏)로 배위 혼맥(配位婚脈), 서랑 혼맥(壻郞婚脈)과 상산 김씨와 혼맥에 따른 여러 연관 혼맥(聯關婚脈)으로, 많은 성씨(姓氏)가 상주에 들어와 새로운 전통 세거 문벌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주변에 아파트단지와 주거시설이 많은 지역이고, 남산근린공원으로 오르는 길목이라 많은 시민이 다니고 있어, 상산 김씨 대종회에서는 단소 내 잔디광장은 항상 개방하고 있으며, 재각은 화재와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개방치 않고, 무인 경비(無人警備) 시스템(System)을 설치하였다. 인근에 남산, 상주 향교, 봉강 서원, 상주고등학교, 국민건강보험공단 상주지부 등이 소재하고, 신흥동사무소에서는 370m, 상주향교에서는 650m 정도의 거리에 있다.
봉의재 정면
대청의 출입문(세살청판분합)
방의 창(세살단분합)
건물 좌, 우, 뒤편의 쪽마루
대청의 연등천장과 판대공
대청 출입문 위의 광창
선자연의 모습
편액 "봉의재"
봉의재기문
퇴칸 기둥의 원형주초
건물 좌, 우, 뒤편의 제형주초
건물 뒤편의 합문
솟을삼문의 "조양문"
협문 일각문의 "아남문"
상산김씨 시조 단소
상산김씨 유래비
상계선조 합사제단
각 파별 주요 선조님의 행적
[출처] 상주 남산(구월산) 동쪽 자락 봉의재(鳳儀齋)|작성자 kkhn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