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627 / 나도 꿈을 꾸리라 (잠29:18-27)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 돼지에게 납치를 당해 돼지 나라에 끌려갔습니다. 수천 마리 돼지 떼에 둘러싸여 돼지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여 자기들 왕이 되어 달라는 청을 받게 되었는데 거절하면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았습니다.
한편 이 사람 집에서 키우던 충견 진도는 주인이 돼지에게 납치된 것을 알고는 동네 개들을 총동원하여 돼지 나라에 쳐들어가서 돼지들을 물리치고 주인을 구출해 냈습니다. 그러다가 잠이 깼는데, 그렇다면 여러분! 이 꿈은 돼지 꿈입니까? 개꿈입니까?
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잠자면서 꾸게 되는 꿈이 그 하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가슴으로 꾸는 꿈이 있습니다. 이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꾸는 것이고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꿈을 일컬어 비전이라고 하며 성경에서는 이런 꿈을 소망이라고도 합니다. 그랬기에 성경은 세상을 향해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사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이 말은 오늘 본문의 18절 말씀인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온 해석입니다.
본문에서 묵시란 말은 원어로 ‘카잔’인데 영어 성경에서는 주로 ‘비전’으로, 예전 우리 말 성경에서는 대부분 ‘꿈’이라고 번역했었습니다. 그러나 원래 의미는 ‘계시’라는 뜻입니다.
또한 ‘방자히 행한다.’라는 말의 원어인 ‘파라’도 정확하게는 ‘내버려 두다, 붙잡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말입니다.
결국 앞의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는 말은 뒤이어 나오는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는 말과 연결되어 ‘계시를 붙잡지 않는 자는 복이 없느니라.’는 의미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들을 놓고 볼 때 성도에게는 언제든 ‘계시와 복’이라는 두 가지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분명해야 합니다.
먼저 ‘복’에 대해 생각해 보지요. 혹 기억하십니까?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복의 개념은 뭐라 했는지를?
그들은 이러이러하니 복을 받았다가 아니라, 이러이러해서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즉 유대인들은 복을 말할 때 결과가 아닌 원인을 놓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항상 하나님이시고요.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복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계시’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는데, 먼저, 여러분은 계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전에 보면 계시는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깨우쳐 알게 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깨우쳐 알게 하시는 걸까요?
다시 말해 하나님의 계시와 우리의 믿음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요?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 계시라면 그것들을 우리가 알고 믿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비전이고 꿈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관련하여 계시와 꿈은 같은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계시를 주시는 것이라면 우리가 할 일은 꿈과 비전을 갖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사람이면 누구나 잠자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비전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비전의 꿈은 가슴으로 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 세상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이나 꿈이 있는 사람은 종종 있을지라도 계시를 믿는 꿈은 오직 성도만이 가질 수 있고 가져야만 하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묵시가 나의 꿈이 될 때에야라만 꿈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라면 누구나 이런 꿈을 가져야 합니다.
가슴속에 품은 인생을 건강하게 만들기 전엔 눈에 보이는 인생을 건강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가슴속에 있는 삶이 성공의 소망을 담고 있지 못하면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가슴속에 품은 가정이 행복을 꿈꾸지 못하면 눈에 보이는 가정조차 행복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가슴속에 품은 교회를 꿈과 비견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시가 있어야 꿈도 꿔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꿈꾸는 하나님의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가슴속에 하나님을 향한 나만이 소망하는 꿈이 없다 보니까 인생이 자꾸 불행해지고 다른 사람을 쳐다보고 비교하게 되는 겁니다.
내 속에 내가 가진 가능성을 봐야 합니다. 제가 아는 복음성가 중에 ‘할 수 있다 하신 이는’이라는 곡의 가사를 보면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의 능력 주 하나님. 의심 말라 하시고 물결 위 걸으라 하시네.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의 능력 주 하나님. 나를 바라보시고 능력 준다 하시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어렵고 힘이 들수록 더욱 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내일을 보며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오늘의 어려운 형편이 5년 후에도 이 모양이고 10년 후에도 이렇다고 한다면 절망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린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5년 후엔 달라질 것이라고, 10년 후엔 모두가 나를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라고.
왠줄 아십니까? 우리에게는 꿈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꿈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말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알려고도, 믿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역시 볼 수 없으니 믿지 않겠노라고 합니다.
말로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행동은 보이지 않기에 있는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향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복 되도다.’고.
복은 선택입니다. 복은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택하신다면 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는 그 자체로 이미 우리에겐 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합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꿈의 실현이 저절로 되지는 않습니다. 설사 실현되더라도 쉽게 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노력과 애씀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모든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는 경험이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다 있을 것입니다.
푸시킨의 시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하면서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고….
참 좋은 글입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참고 견디면 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면 현재 우리에게 즐거운 날이 없고 우리가 기쁜 날을 살지 못하는 것이 다 우리가 참고 견디지 못해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사막에서 물을 먹지 못하는 이유는 사막에는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없는 건 가질 수 없듯이 우리에게서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내 인생이 실패가 없는 인생이 되는 꿈을 가지세요. 내 가정에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는 꿈을 꾸세요.
꿈은 얼마든지 내 생각대로 가질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 꿈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기도가 된다면 저와 여러분에게서도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미국에서 젊은 부인이 아기를 출산했는데 조산인지라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일 수 없게 된 산모의 젖이 점차 말라 갔습니다. 산모는 나중에라도 자기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기의 사진을 찍어 와서는 늘 가슴에 품고 아기에게 젖먹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부터 젖이 말라붙지 않더랍니다. 아기에게 젖먹이는 꿈을 가졌더니 젖이 마르긴커녕 오히려 넘치더랍니다.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었지요? 무릇 성도라면 생각이 믿음이 되게 해야 한다고!
“아기에게 물려보기도 전에 젖이 말라붙으면 어떻게 하지 젖먹이기는 틀렸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생각대로 됩니다. 반면에 젖이 말라 갈지라도 아기의 사진을 보며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야 말겠다는 꿈과 비전을 가지면 그 역시 생각대로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꿈을 꾸며 어떤 생각을 하며 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세상에 복을 주시고자 할 때면 먼저 그들의 마음속에 꿈을 갖게 하시며, 그 꿈을 붙잡고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리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회자 되는 말 중에 ‘벌레의 눈을 가진 사람은 망하고 새의 눈을 가진 사람은 흥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인즉 벌레처럼 한 치 앞만 보며 살다 보면 결국 현실을 살아내기에만 급급하다가 그렇게 삶이 끝난다는 겁니다. 그러나 새처럼 높은 곳에서 멀리 내다보며 사는 인생은 더 넓은 것을, 더 많은 것을, 게다가 아직은 보지 못하는 것까지도 볼 수 있기에 결국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흥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남긴 “I have a dream.”이라는 유명한 설교가 있습니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해서 언제고 골짜기가 메워지며 언덕이 낮아지며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인간이 그것을 우러러보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는 대중들로 하여금 자기의 꿈을 공유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또한 월트 디즈니라고 하는 젊은이는 가난한 만화가였습니다. 집도 없이 예배당에서 지내며 밤이면 지하실에 내려가 만화를 그리곤 했는데 지하실에 쥐가 어찌나 많은지 밤이면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매일같이 쥐를 저주하던 어느 날 기도하던 중에 잠이 들었는데 자신이 쥐들과 친구가 되어 즐겁게 먹고 노는 꿈을 꾸다가 깼답니다. 깬 후부터는 꿈속의 쥐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만화 주인공이 유명한 미키마우스입니다.
가슴에 꿈을 품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기적으로 응답이 됩니다. 우리가 가진 꿈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겠다고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이니까요.
여러분도 꿈꾸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은 앞서도 말씀을 드렸지마는 꿈도 꿈 나름입니다. 말씀과 예수님 없이 꾸는 꿈은 모두 개꿈입니다. 하나님 없이 꾸는 꿈은 모두 헛되고 헛될 뿐이며 결국엔 죽어라고 수고해 봐야 깨고 나면 일장춘몽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 나를 향한 계시를 보여주시라고 기도하세요. 응답을 구하세요. 아니 어쩌면 이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응답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계시를 찾으세요. 그렇게 해서 응답을 확신하셨다면, 성경을 통해 계시를 만나셨다면 그때부턴 여러분도 이렇게 선언하세요. “나도 꿈을 꾸리라!”
주님께서 축복하신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조건이 좋았다거나 처세가 탁월했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굳이 남들과 비교하자면 낮아져도 바닥까지 낮아진 사람들이었고 나빠도 아주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남들에게 없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슴입니다.
그 가슴에 꿈을 심었고, 그 가슴속에 가정을 꾸몄으며, 그 가슴으로 사업을 설계했고, 그 가슴속에 하나님을 향한 비전과 잘되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담았기에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삶, 이런 꿈꾸는 성도를 외면하시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찾으셨기에 이제 찾았다면 반드시 응답하시고 복 주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도 말 할 수 있습니다. ‘꿈은 이루어졌다.’고.
하나님 나라를 꿈꿀 수 있는 사람만이 성도라 불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내가 하다 하다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꿈을 포기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꿈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요, 꿈을 실현시켜 주시기 위해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우리는 계속 꿈을 꾸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묵시를 놓치지 말고 그 꿈의 성취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오늘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 없다를 논하지 마세요. 꿈의 실현 가능성이 있다. 없다를 생각하지 마세요. 때론 내가 이런 꿈을 꾸는 것이 하나님 뜻에 맞는 건지 아닌지도 고민하지 마세요. 돼지 꿈이든 개꿈이든 우리가 할 일은 꿈을 꾸는 것뿐입니다. 꿈을 위해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응답은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앞서도 생각이 믿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생각 속엔 온통 하나님뿐이어야만 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이삭과 요셉을 보세요.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인간의 한계에 부딪혀 도저히 꿈을 이룰 수 없는 형편에 있다고 여기시면 반드시 찾아와 역사해 주십니다.
아닌 말로 우린 최소한 그때까지는 우리의 믿음으로 버티고 견뎌야 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끝까지 견디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전 어느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 한 분이 참가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느 호텔에 갔는데 10년 동안 호텔 식당에 전속되어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분이 계셨는데 정말 잘 치고 잘하시더라고. 그런데 그게 다였다고. 호텔을 나와서는 그를 잊어버렸다고.’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멋진 노래를 들었어도 감동이 없었던 이유는 그분이 꿈을 갖고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받기 위해 하는 것이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그렇습니다. 대가를 바라고 믿는 것은, 응답을 조건으로 기도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 아니어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꿈은 무한해야 합니다. 꿈이 없으면 아무리 잘 사는 인생 같아도 깊이 들여다보면 허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 두세요. 나의 삶이 나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이 나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매 순간을 감사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복이 있다’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와 동격이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우리에게 복은 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며 살지, 아니면 하나님을 내 인생의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존재로 놔둘지는 우리 각자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세요. 하나님만 생각하세요. 하나님을 믿고 이젠 자신 있게 꿈을 꾸며 그 꿈에 도전하세요.
예수님은 약속해 주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여길지라고.
모쪼록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원하는 모든 꿈들을 하나님께 구하고 받고 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