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여름철 보양식 그 맛의 추억
개암 김동출
오래전의 이야기다. 결혼하여 첫 여름방학에 처가에 갔더니 내 할머니 같은 장모님이 " 김 서방 이런 거 안 먹어 봤제" 하며 국물이 거무튀튀한 닭곰탕을 한 그릇 넘치게 퍼주셨다. 그때 처음 먹어보는 옻닭이었다. 장모님께서는 귀여운 막내 사위가 옻 탈까 염려하셨지만 나는 어릴 적에 산으로 소먹이로 다니면서 이미 옻나무 가지에 긁혀서 옻에 올라 면역이 생긴 터라 아무 걱정 없이 장모님 앞에서 맛있게 뚝딱 한 그릇 비웠다.
결혼한 후, 효도 한번 제대로 못 한 안타까움만 남긴 채 일찍 어머님을 여의고 아버지가 재혼하신 터라 방학 휴가 때면 우리 부부는 갈 곳이 없어 자연히 부산에 있는 처가에서 아웃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처가 식구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때만 해도 박봉이었던 초임 교사 월급으로 살기가 힘들어 처가댁에 갈 때면 반주를 즐겨 드시는 장인 어르신께 드릴 됫병 소주 한 병이나 거기다 여름방학이면 수박 한 덩이 사 들고 한걸음에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결혼하여 남매를 데리고 우리 부부가 처가댁을 찾을 때면 금방 이웃에 사는 처형과 처남들도 모여 잔치를 벌였다. 그때마다 음식 솜씨며 바느질 솜씨까지 뛰어나신 장모님께서는 통닭 두어 마리에 참옻 가지와 생마늘 듬뿍 넣고 작은 가마솥에서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철 내내 고아낸 옻닭 맛은 그야말로 진국이요 처가 집만의 특별한 보양식이었다.
거기다 겨울 방학이 되면 반건조 가자미 살에 갖은양념과 밥을 넣어 삭혀낸 살짝 달큼하고 시큼한 맛의 가자미식해(처가댁에서는 이를 '식기'라고 부름)는 장모님 상표의 또 다른 별미였다. 아쉽게도 아내는 장모님의 솜씨를 이어받지 못했지만, 장모님 생전에 고부간의 정이 각별했던 둘째 처남댁은 당신 시어머니의 솜씨를 제대로 이어받아 요즘도 추억의 장모님 손맛 보여 주시니 고마울 뿐이다.
나도 나이 먹은 탓일까? 요즘들어 양가의 양가의 부인 두 어르신께서 남겨주신 손맛이 더욱 더 그리워진다.특히 장모님께서 만들어 주셨던 [장모님 표 옻닭과 가자미식해] 와 어릴 적 生家에서 어머님이 한 여름철에 끓여 주셨던 여름철 별미 중의 별미였던 [엄마표 장어탕] 추억의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간혹 생각나면 장어탕 집을 찾지만, 혀끝에 남아있는 엄마표 ‘방아와 산초’ 향이 장어 육수와 어울려 내는 시원한 국물 그 맛은 ‘통영의 오래된 장어집’에 가서도 찾을 길 없는 추억의 맛이 되어 버렸다.
어머님 생전의 짧은 몇 해 동안 고부 사이가 각별하였지만 아쉽게도 아내는 우리 집의 여름 보양식이었던 장어탕의 그 맛은 이어받지 못했지만, 여름철이면 고구마 줄기 껍질 벗겨 데쳐서 멸치젓갈에 무쳐 먹는 방법은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웠던지 해마다 여름철이면 고구마 줄기 무침 반찬이 단골로 밥상에 오르니 참으로 고마울 뿐이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내려온 딸은 외할머니가 끓여 주셨던 옻닭 그 맛을 슬그머니 꺼냈다. 이에 아내는 장모님 표 옻닭을 끓여서 한 이틀 동안 잘 먹었다. 마침 그때 찾아온 아들도 외할머니를 추억하며 옻닭 그릇을 뚝딱 비웠다. 장가만 갔지, 불 앞에 내놓은 아이같이 철없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일제 강점기 오사카에 징용으로 끌려가셔서 온갖 고초와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고, 다시 고향 땅에 맨손으로 귀국하여 피나는 노력으로 삶의 터전을 일궈내신 考 경주 崔 씨 장인과 교하 盧 씨 장모님. 두 분은 결혼 후 어머님을 일찍 여의고 기댈 곳 없어 방황하는 당신의 막내 사위인 나에게 각별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신 내 생애에 최고로 고마운 분이요, 나의 생명을 주신 부모님과 같은 소중한 분이셨다.
2023-08-12.
첫댓글 고향의 맛 어머니의 손맛 그립지요.
선생님의 추억은 한결같이 저와 공유됩니다.
충청도와 거제도는 지리적으로 딴 세상일텐데요.
음식이며 생활패턴이 많이 겹칩니다.
저도 어머니 옻닭이 슬슬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