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상징 분석
1) 제목의 중의성
ㅇ 개인적 애도 - 죽을힘(死力)과 사력(砂礫, 작은 돌과 모래)
. 화자는 할머니의 죽음을 마주하며 "죽을힘을 다해도
돌아오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함.
. 죽을힘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의 무게와 그에 따
른 체념의 과정이 시의 주요 주제.
• "사력(砂礫)"은 작은 돌과 모래를 뜻함. 이는 부서지
고 흩어진 조각들을 상징하며, 할머니가 남긴 잔상과
화자의 조각난 감정을 암시.
• 소금밭과 꽃밭이라는 대비도 "모래"라는 상징 속에서,
흡어짐(소금)과 정리된 모습(꽃)의 대립을 함축
ㅇ 사람들의 애도 - 사력(事力,일이 되어 가는 형편과 내력)과 사력(事歷, 사물의 내력)
- 사력(事力): 일이 되어 가는 형편과 내력
. 사람들의 사력은 할머니의 죽음을 사회적,의례적으로 처리하는 모습에서 드러남
• 영정 앞에 국화꽃을 놓고 떠나는 행동은 죽음이라는 사건을 의식적 형식으로 마무리하려는 사회적 힘을 의미.
• 그들에게 죽음은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며, 할머니와 의 정서적 관계보다는, 장례식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 일이 완결되는 모습(꽃밭)으로 표현
- 사력(事歷): 사물의 내력
. 사람들의 사력은 할머니의 생애를 추억하거나, 삶의
흔적(내력)을 기리는 형태로 나타남
. 영정 앞에서 국화꽃을 놓는 행위는 할머니의 삶을 돌
아보며 그 내력을 사회적 차원에서 애도하는 방식.
•그러나 화자의 내밀한 감정과는 달리, 사람들의 추억
은 더 객관적이고 거리감 있는 방식으로 표현됨
2) 소금밭과 꽃밭의 대비
소금밭은 화자의 생생한 고통과 개인적 감정을 담고 있고, 꽃밭은 사회적 애도의 객관적이고 정제된 모습을 나타냄. 이 둘은 상실의 본질을 바라보는 주관과 객관의 차이로 대비되며, 화자와 사람들의 할머니 죽음에 대한 태도 차이를 더욱 부각
3. 문장 단위별 분석
[2025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사력 / 장희수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집에선
(도입부와 마지막 연이 회전하듯이 돈다. 수미상관)
( "할머니가 없는"이라는 부재의 선언은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대조를 이루며, 그 공간에 여전히 할머니의 흔적과 기억이 남아 있음을 암시)
손에서 놓친 휴지가 바닥을 돌돌 굴렀다
( "손에서 놓친"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암시하며, 할머니를 잃은 화자의 무력감을 드러낸다. 휴지가 바닥을 돌돌 굴렀다"는 할머니의 부재가 마치 멀어져 가는 휴지처럼 점점 화자의 손 밖으로 벗어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역동적인 움직임은 정적이고 비어 있는 "할머니 집"과 대조를 이루며, 화자의 감정적 동요를 암시한다.)
무언가 멀어져가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제어해주던 할머니가 없는 적막감을 표현한다. 화자에게서 멀어져 가고 생에서 멀어지는 할머니를 오버랩시킨다)
( "무언가 멀어져가는 모습"은 구체적 대상 없이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화자가 느끼는 감정의 보편성을 담고 있다. "이렇게 생겼다는 듯"이라는 문장은 비유와 단정을 통해, 상실의 모습을 명확히 형상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 "하얗게 펼쳐지고"는 부재의 공허함과 확산되는 슬픔을 묘사하며, 앞의 "휴지"와 연결되어 떠남의 이미지를 확장한다. 소금은 짠맛과 고통을 상징하며, 화자가 느끼는 상실의 날카로운 감정을 암시한다. 이 구절은 이후에 등장할 "꽃밭"과 대비되어, 상실의 개인적 고통과 의례적 애도의 차이를 더욱 부각시킨다.)
어떤 마음은 짠맛을 욱여가며 삼키는 일 같았다 그중 가장 영양가 없는 것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본 적 있다
( "짠맛을 욱여가며 삼킨다"는 상실을 견뎌내야 하는 화자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묘사한다.)
( "영양가 없는 것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표현은 상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화자의 마음을 보여주며 슬픔을 참아내는 것이다)
( 이 문장은 상실에 대한 화자의 고뇌를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드러내며, 이후의 "포기"에 대한 탐구를 예고한다.)
(소금밭이 등장한 이유는 휴지의 이미지를 연결한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랑했던 할머니에 대한 감정 표현이다. 벽돌쌓듯이 시적 대상에 대한 감정을 연상하여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전개확장하고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포기할 수 있었다면
또다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생길 리 없을 테니까
( "포기할 수 있었다면"이라는 가정법은 상실의 고통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 반복되는 "포기"는 상실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과정임을 나타내며, 화자의 내적 갈등을 심화한다.)
(이 문장은 화자의 철학적 성찰을 담아, 상실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철학자들이나 종교에 의하면 우리는 이 세계에 던져졌다. 저마다의 본질적 존재를 찾아 포기없이 살아야 하는 것은 의무이다. 그러므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옵션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은 선택지에 없으므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생길 리 없다. 할머니도 그렇게 살다 가셨다.)
할머니도 이제야 뭔들
관두는 법을 배운 거겠지
( 이 문장은 할머니의 죽음을 관두는 법을 배운 것으로 해석하며,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묘사한다. "뭔들 관두는 법"은 할머니의 삶과 죽음을 은유적으로 연결하며, 죽음이 단순히 끝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으로 암시된다. 죽음만이 포기라는 상징)
다 풀린 휴지를 주섬주섬 되감아보면 휴지 한 칸도 아껴 쓰라던 목소리가,
귓등에서 자꾸만 쏟아지는 것 같았는데
(휴지를 되감는 과정을 통해 할머니와 있었던 추억을 상기한다.
(영원히 잔소리를 해 줄 것만 같았던 할머니. '들려오는 것 같았는데'가 일반적인 문장이지만 ' 쏟아지는 것 같았는데'로 표현하여 그 음성을 물질화하여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 단순한 문장이 인생이다. 한 칸 한 칸 아끼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쏟아지면 쏟아지는 것들을 줍느라
자주 허리가 굽던 사람의 말은
(콩이나 들깨 등 쏟아지는 것을 줍던 생활력 강한 할머니. "쏟아지면 쏟아지는 것들을 줍느라"는 할머니의 삶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동과 헌신으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허리가 굽던 사람"은 할머니의 육체적 희생을 상징하며, 그분의 부재로 인해 화자가 느끼는 결핍을 강화한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쏟아지는 것을 주우며 허리가 굽는 것이다)
더 돌아오지 않는 거지
( "더 돌아오지 않는 거지"는 부재의 최종적 확인으로, 상실의 무게를 강조한다)
죽을힘을 다해본다 해도
( "죽을힘"은 화자가 심정적으로 상실을 되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허무함과 무력감으로 귀결되며, 상실의 불가역성을 암시한다.)
사람들은
영정 앞으로 다가와
국화꽃을 떨어트리고 멀어져 간다
(여기서 사람들은 죽음을 사회적 의례로 처리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 "국화꽃을 떨어트리고 멀어져 간다"는 죽음이 개인적 감정보다는 의례적, 형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화자의 내밀한 감정과 대조되며, 상실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정갈하고 하얗게 펼쳐지는
꽃밭처럼,
( "꽃밭"은 앞의 "소금밭"과 대조되는 이미지로, 죽음을 의례적이고 미화된 방식으로 표현한다."정갈하고 하얗게"는 사회적 애도의 상징으로, 죽음을 이상화하는 모습이다. 이는 화자가 느끼는 날것의 슬픔과는 대비되며, 상실의 이중적 측면을 드러낸다.)
(관계가 먼 사람들이 고인을 애도하는 방식은 조금 더 객관적 시각을 가진다. 한편 애도가 잘 완성되어야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무언가 떠나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 화자는 떠남의 모습을 다시 한번 단정하며, 상실의 이미지를 마무리한다. "이렇게 생겼다는 듯"은 떠남의 모습을 명확히 규정하려는 시도의 반복으로, 상실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화자의 노력이다.)
( 이는 앞의 "휴지"와 "꽃밭" 등의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연결하며, 상실의 본질을 강조한다.)
할머니가 있었던
할머니의 집에서는
( 마지막 문장은 시의 첫 구절과 대응하며, 상실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한다. "할머니가 있었던"은 부재와 존재의 대조를 다시 강조하며, 할머니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
( 나의 개인적 애도와 사람들의 애도는 죽을힘 (死力) 을 다해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事力)이다.)
( 수미상관적 시의 순환적 구조를 통해 상실의 지속성과 반복을 보여주며, 시적 여운을 남기고 리듬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