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자서전 전권(A4 301 pp) 압축파일(MW):
조지 폭스George Fox
초상화
영국 중부의 페니 드레이턴에서 한 방직공의 아들로 태어난 폭스는 12살이 되던 1636년 제화업자 밑에서 도제생활을 하다 열 아홉살때 잉글랜드 내전이 터지자 구도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인간의 허영, 사회의 부도덕, 신자들의 왜곡된 삶에 대하여 비판하였고, 신앙과 생활의 일치를 주장하였다.
폭스의 신앙관
폭스는 기성 교회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데 당시 영국 사회는 왕당파와 의회파로 나뉘어 싸움을 계속하고 사회는 혼란이 극심하였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은 웨스트민스터 총회로 모였으나 국교회자들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혼란기에 폭스는 묵상을 통해 스스로 영적인 각성을 하였다. 영적 체험을 한 후 폭스는 1643년 가족과 친우관계를 청산하고 영적 방랑 생활을 시작하였다. 폭스는 1649년부터 제도적인 교회를 부인했다. 그는 예배가 영적이어야 한다는 확신 가운데 기존 설교자를 강단에서 끌어내고 자신이 설교하다 1650년과 1651년 더비 교도소에 투옥되었고, 이후에도 7번 이상 체포되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메시지 전달자라는 의식을 사람들에게 전달함으로 많은 추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을 형제들이라 불렀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가난한 하층민들이었다.
초기 퀘이커교의 신학사상은 청교도와 재세례파의 요소를 포함했다. 신학자 조지 폭스는 신약 시대부터 가견 교회의 배교를 가르쳤고(딤후 3:1-5) 또 그리스도가 이미 오셔서 참교회를 모으신다고 주장하였다. 외형적인 신학은 구원할 힘이 없는데 그 이윤 우주의 내면의 빛(요 1:9-18)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도록 하고 계속해서 성경의 진리를 계시하고 (요 16:13) 비폭력을 요구하고 철저하게 동등할 것을 명하고 모든 인습적인 호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명령한다는 것이다. 그 빛은 불신자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구원의 활동을 하였다.
외형적인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순결한 내면의 예배에 부적절한 옛 예언의 잔존이라 배척하였다(요 4:24) 퀘이커 교도들은 신조들이 빛의 조명을 받지 않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지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였고 전가된 의와 전적부패와 같은 교리들을 부정하였다. 참교회는 예배에 모여서 조용히 성령께서 즉흥적인 기도나 설교나 증거를 하도록 감화해 주시길 기다렸다. 성직은 무급으로 임명없이 남녀 누구나 맡을 수 있었다.
이후 체계적인 신학적 사상이 갖추어진 것은 신학자 로버트 버클리에 의해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의 저서 Apology for the True Christion Divinity에 의해서 나왔다. 그의 저서에서 성경과 교부들의 글들을 인용하여 퀘이커교의 특징의 증거들을 신약의 기독교 핵심 진리라 주장하였고 이 증거들에서 다른 모든 공식적인 교리들의 타당성을 찾았다. 그리하여 이런 상황이 너무 확신되자 나머지 퀘이커 교도들은 재세례파의 교리와 유사한 것을 버리고 다른 지적인 분위기를 받아들이지 않게 된 19세기 초까지 중요한 신학적 발전이 없었다.
오늘날의 전세계 퀘이커교의 절반 이상이 정통 복음주의자가 되었는데 이것은 18-19세기초 신학자 조셉 존 거니의 영향이 컸다. 성경의 무오성과 그리스도의 신성은 전통적인 퀘이커교의 교리와 조화를 이뤘지만 계속적인 계시와 교리상의 평화주의 그리고 빛을 통한 속죄는 복음주의 원리와 조화시키지 못했다. 퀘이커교의 이 분파는 목사 청빙은 했으나 임명은 하지 않았고 교회 의식의 증거는 반대하나 프로그램에 의한 예배는 사용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비복음주의적 퀘이커교도 분파는 18세기 정적주의적 퀘이커교에서 일부 파생한 합리주의적 신비주의적 자유주의적 경향과 결합하였다. 보편적인 빛의 교리가 확장되었고 성육신 교리가 희석되었고 모든 종교의 기본적인 조화가 강조되었다. 인류가 하나라는 생각 아래 이 분파는 다른 퀘이커 교파가 선교에 적극적이듯이 사회적 참여에 관심이 많고 활동하게 되었다.
퀘이커교의 분열은 원 메시지가 변화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의 해석상의 대립에 따른 것이다. 오늘날의 자유주의 퀘이커와 복음주의 퀘이커는 현대신학적인 신학 사상에서 나오기 보단 17-18세기의 신학자들이 정립한 신학 정립이 퀘이커교의 논거로 여기는 양쪽 진형의 운동에 의한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니토베 이나조는 퀘이커이면서도 평화주의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신토와 불교적 가치에 긍정적이라 무사도를 집필하기까지 했다. 현대 서구권의 퀘이커교도들도 유니테리언처럼 종교혼합주의 성향을 띠는 경우를 숱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퀘이커의 교리는 보수적인 개신교계 정통교파에게 크게 비판받는다. 물질적인 장소로써의 교회, 종교개혁가 개인의 주장에서 비롯된 신학, 전통, 관습을 무조건 버리는 형태의 교회는 역설적으로 성경에 대한 자의적 해석, 더 나아가 주류 교단에 반하는 해석까지 용인하게 되고 모임과 교제에 소홀해져 신앙 자체가 자멸할 수 있는 치명적 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퀘이커 계열 목회자, 교회들은 이러한 단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점조직화되어서 교세가 매우 미약해졌다. 퀘이커 자체의 신학 연구가 매우 지지부진한 이유가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발 그만 좀 싸우고 신학 좀 연구해서 단점을 고쳐라."라고 자신의 교단을 비판하는 퀘이커교도가 많다. 너무 미약한 교세와 취약한 신학은 퀘이커교도들에게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인식되는 듯.
그나마 복음주의 퀘이커 목사나 신학자들은 한국에서도 좋아하는 신학자와 교회들이 많은 편이다. 복음주의 퀘이커에 호의적인 단체로는 대표적으로 대형 출판사이고 온누리교회에서 설립한 두란노가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방송국인 CBS와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기독교서회 등도 퀘이커에 대해 호의적이다.
▲영화 〈우정어린 설득〉에서 묘사된 퀘이커교도들의 예배의식. 중간중간에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이 삽입되어 나오는데 이는 퀘이커 교도인 주인공이 사는 동네의 이웃 감리회 교회의 예배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퀘이커들의 예배와 매우 대비된다.
이름의 유래와 달리 퀘이커교도들의 예배는 매우 조용하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서 마치 명상하듯 가만히 앉아있다가, 성경을 읽은 뒤 자신이 느낀 것을 말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배'(worship)라 부르지 않고 '모임'(meeting)이라고 부른다.[6]

영국의 조지 폭스가 1647년 몸이 진동하는 영적 경험을 한 후 창시했다는 개신교의 경건주의에서 시작된 한 종파이다. 퀘이커라는 명칭은 1650년 영국의 치안판사 베네트가 조지 폭스와 그를 따르는 무리를 '몸을 떠는 자들'이라 조롱한 데서 비롯되었다. 루터교나 빅뱅 이론처럼 원래 놀리려고 붙인 별명이 공식 명칭이 되어버린 경우다. 청교도 혁명 시대를 통틀어 사회적, 종교적으로 크나큰 지각변동을 겪었던 영국 사회에서는 기존의 성공회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회)가 군림하는 기성 종교에 큰 회의가 몰아쳐 다양한 비국교회 경향이 나타났다. 이들은 현대에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등으로 자리잡았으나 이에 환원되지 않은 비국교회 경향 중 브라운파(Brownists), 아담파(Adamites), 수평파(levellers), 개간파(Diggers), 가족애파(Family of Love), 제5왕조파(Fifth Monarchists) 등 대다수는 영국 혁명의 광풍이 지나가고, 사회도 안정되어 가면서 탄압과 회유, 재포섭 등을 통해 명맥이 끊겼다. 퀘이커 역시 영국 성공회 내부의 비국교회 경향의 일부로서 시작되었다.
모든 개인의 마음속에 '내면의 빛'이 있다고 보고 이를 통해, 평등, 정의, 평화와 같은 선(善)을 이루고자 하였다. 1947년 영국 퀘이커 봉사 협회와 미국 퀘이커 봉사위원회가 종교 단체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친우회(宗敎親友會)라고도 불리는데, 영어로 퀘이커의 원래 정식 명칭이 'Religious Society of Friends'이기 때문이다. 약 2-3천 명의 교도가 있다고도 하며, 현재 서울과 대전에서 정기적인 모임이 이뤄지고 있고, 1980년대까지 있었던 부산 모임은 2020년대 기준 모임 재개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퀘이커 계열은 아니고 초교파 선교단체인 예수전도단[3] 에서는 가끔 'QQ'[4]라는 교제 방식을 취할 때가 있는데, 퀘이커교도들이 서로의 친교를 위해 묻는 몇 가지 질문이라고 한다.
17~18세기 초기 퀘이커 신자들의 이름 목록이 있다. 이름이 이상한 게 많다는 평이 있다.
조지 폭스의 퀘이커 창립 이래, 1650년대 잉글랜드 북서부를 중심으로 퀘이커 운동이 일어났으며, 퀘이커 교도들은 청교도 혁명 당시 다른 종파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정부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1681년 윌리엄 펜(Wiliam Penn, 1644.10.14 ~ 1718.7.30)은 찰스 2세에게 일부 북아메리카 땅을 사서, 펜실베이니아라 명명하였으며, 퀘이커 교도들이 편히 지낼 수 있는 땅으로 만들었다.
퀘이커교 전도사인 존 울먼(John Woolman, 1720 ~ 1772)은 전도 여행을 하며 퀘이커교의 교리에 따라 남녀평등, 아메리카 원주민과 우호적인 관계, 노예 제도 반대, 전쟁 반대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퀘이커 정신은 그의 사후 1774년 발표된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교리상 노예 제도에 반대했기 때문에 남북 전쟁 전에 남부의 흑인노예를 캐나다로 탈출시키던 지하조직 지하철도에도 퀘이커 교인들이 다수 가담하였다. 그외에도 여성 참정권 운동 등 여러 사회개혁 운동에 적극적인 역할을 맡았다. 퀘이커는 일찍이 1986년에 코네티컷에서 결의를 통해 동성결혼을 받아들였다. 물론 여전히 동성애를 죄라고 보고있는 퀘이커 단체도 소수 존재하는데 주로 복음주의파 퀘이커들이다.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퀘이커가 평화와 성실, 정직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보니 정치나 마케팅에서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가령 미국에 존재하는 식품회사 브랜드 Quaker가 한 예.[5]
=============================
머리말.
조지 폭스의 일기는 위대한 종교 자서전 중 하나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성녀 테레사의 "생애", 버니언의 "죄인의 우두머리에게 넘치는 은혜", "자필로 쓴 마담 가이온의 생애", 그리고 존 웨슬리의 "일기"와 함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종교 심리학과 신비주의 연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도 탐구하는 영혼, 즉 승리하는 영혼의 내면적 상태와 과정을 드러내는 모든 자서전적 저술에 새로운 관심과 중요성이 부여되었습니다. 윌리엄 제임스 교수는 종교가 비범한 수준으로 발현되는 사람들을 통해 종교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며 잘 알려진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종교에 대한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 즉 종교가 삶의 거의 전부를 구성해 온 사람들을 찾아야 합니다. 조지 폭스는 이런 종류의 인물 중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최근 개인 종교를 연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요.
[10]
하지만 다시 한번, 그의 일기는 영연방과 왕정복고 시대의 내면을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데 현존하는 최고의 자료 중 하나입니다. 가죽옷을 입은 이 기묘한 남자가 항상 눈을 뜨고 여행하며 거리를 누비지 않는 외딴 마을이나 외딴 마을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이 풍요로운 시대에 번성했던 모든 종파와 종교적 색채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정신과 경향을 보여주는 어떤 경험 없이는 결코 멀리까지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결코 효과를 노리고 글을 쓰지 않으며, 만약 시도했다 하더라도 실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영국의 평범한 삶을 구성하는 소박한 것들로 자신의 페이지를 채웠습니다.
그의 활동이 활발했던 시절, 무대를 가로질러 빠르게 전개되었던 세계적 사건들은 그의 글에서 거의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들은 결코 스스로 이야기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개인적인 내면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라는 주된 목적을 가진 서사의 부산물로 등장했습니다. 카메라는 특정한 대상을 향해 설정되어 있지만, 그 대상과 함께 전체 배경을 포착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는 신성한 목소리를 따르는 데 온전히 헌신하는 예민한 영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영혼의 임무는 사막이 아닌, 위대한 역사적 사건들의 배경 속에서 완수됩니다.[11] 마스턴 무어와 던바의 병사들, 크롬웰과 그의 가족, 데스버러와 몽크, 그리고 왕의 시해와 찰스 2세 치하의 "새로운 시대"가 등장합니다. 법정, 감옥, 교회, 여관 등 모든 곳에서 생생한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온갖 계층과 부류의 사람들이 이 책에서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폭스는 극적인 힘은 거의 없지만, 그의 세속적 사명을 증진시키거나 방해하는 모든 것이 그의 관심을 사로잡고 그의 이야기에 녹아듭니다. 페피스와 에블린은 더 빠른 필력을 가졌지만, 폭스는 당시 영국과 자신들에게는 없었던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저널은 축약되지 않은 원래 형태로 많은 서신과 다소 험난한 길고 무미건조한 구절들을 담고 있어 항상 인내심 있고 충실한 독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러나 조지 폭스가 창간한 종교 단체 외에도 항상 독자층이 있었습니다. 이 독자층은 그와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동류였던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주로 방대한 분량의 편집되지 않은 자료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그 규모가 작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널은 완전한 형태로 13판이 발간되었는데, 그중 9판은 영국에서, 4판은 미국에서 발행되었습니다.
[12]
현재 편집자는 이러한 작업을 위한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여 요약 및 편집 작업을 착수했습니다. 생략된 부분은 (그 수가 많습니다) 현재로서는 생생하고 흥미로운 내용이 아니거나, 남아 있는 내용의 반복이었기 때문에 삭제되었습니다.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며, 어떤 식으로든 생략으로 인해 손상되지 않습니다. 이 저널의 필자는 관점이 부족했습니다. 새로 들어온 모든 내용은 똑같이 중요했으며, 1694년 그의 첫 편집자들은 이 글들이 너무 귀중하고 신성하여 함부로 수정하거나 심각하게 압축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출판된 적이 없는 원본 원고(현재는 영국 노스실즈의 찰스 제임스 스펜스가 소장)는 초기 편집자들의 소수 집단이 어법을 개선하고, 철자에 체계를 도입하고, 냉정한 독자를 놀라게 할까 봐 우려되는 일화를 삭제하는 데 만족했음을 보여줍니다. 원본 원고는 출판된 어떤 책보다 좀 더 생동감 있고, 신선하며, 더 그래픽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편집한 책에는 폭스가 쓴 내용을 충실하게 재현한 내용이 주로 들어 있습니다.
이 판본의 본문에 첨부된 주석은 해당 구절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13] 상황에 맞춰 최대한 간략하고 분량을 줄였습니다. 서론은 조지 폭스를 당시의 역사적 배경 속에 두고 그가 설파한 핵심 사상을 발전시키려는 시도이지만, 모든 세부 사항은 주석에 남겨둡니다. 그의 종교적 메시지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방대한 그의 저서들과 그의 동시대인 및 동료 연구자들의 저서들을 연구한 결과에 기반합니다. 편집자는 그의 친구인 노먼 페니, 존 빌헬름 로운트리, 조슈아 로운트리, 그리고 앨런 C. 토마스 교수로부터 받은 귀중한 도움에 감사를 표하게 되어 기쁩니다.
최근 작가들 중 George Fox의 저서에 감사하는 학생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Thomas Hodgkin의 "George Fox"; Spurgeon의 "George Fox"; Bancroft의 "History of America"; Barclay의 "Inner Life of the Religious Societies of the Commonwealth"; Arthur Gordon의 Theological Review 와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에 실린 George Fox에 관한 기사; Frank Granger의 "The Soul of a Christian"; Starbuck의 "Psychology of Religion"; William James의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Josiah Royce의 "The Mysticism of[14] 조지 폭스"; 캐논 커티스, "영국 교회와 관련된 반대"(5장 "퀘이커교도" 참조); 웨스트콧 "사회적 기독교"(119-133쪽 "퀘이커교도" 참조), 그리고 존 스티븐슨 로운트리, "조지 폭스에 대한 두 가지 강의."
[15]
소개.
개인의 초기 생애에는 "싹트는 시기"라고 불리는 신비로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힘이나 기능이 생겨나는 부화의 위기입니다. 기어 다니거나, 걷고, 흉내 내거나, 말하려는 싹트는 경향은 특별한 기능을 배우는 심리적 순간이 왔음을 나타냅니다.
인류 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시기들이 있습니다. 신비로운 잉태의 시기, 즉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시기가 있는데, 시대 자체가 그 고난의 의미를 아무리 희미하게 이해하더라도 말입니다. 이러한 인종의 "싹트는 시기"는 다른 시기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인류의 이전 역사가 가능하게 한 삶의 사건들이기에, 그 자체로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마치 새로운 오순절의 기운이 퍼져 나가는 듯, 분열된 장소와 다양한 삶을 통해 진리의 새로운 면모들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새벽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그 능력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16] 다른 사람들이 희미하게 또는 무의식적으로 느꼈지만,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것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떤 신성한 권리에 따라 그 시대의 예언자가 됩니다. 그는 그 시대의 사상을 강력한 힘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을 조직하고, 행동하거나 진실을 영속시키기 때문입니다.
앵글로색슨족의 역사에서 흔히 영연방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보다 더 중요한 시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용어는 1640년에서 1660년까지의 기간을 포괄하기 위해 느슨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잠복기 중 하나였던 바로 이 시기에 새로운 것이 의식에 자리 잡았고, 그에 못지않게 새로운 것들이 행동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글은 결국 엄청난 헌법적 변화를 초래한 정치적 투쟁을 묘사하거나, 한 국가의 핵심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시대에 뒤떨어진 왕권 개념과 확립된 자치 원칙에 맞서 일어섰는지 설명할 곳이 아닙니다. 시민적, 정치적 혼란은 훨씬 더 심각한 혼란의 결과였습니다. 한 세기 동안 뜨거운 논쟁은 종교적 문제였습니다. 당시 교회는 타협의 산물이었습니다. 교회는 중세 사상의 풍부한 유산을 물려받았고, 중세 전통의 상당 부분을 흡수했습니다.[17] 도덕적, 종교적으로 진지한 사람들이 새로운 개혁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억누를 수 없고, 결코 조용해지지 않을 듯한 분위기가 만연했습니다. 권위 있는 교회라는 옛 관념은 이미 낡아버렸지만, 하느님께 자유롭고 개인적인 접근을 허용하는 종교 체계는 그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물려받은 진리를 보존하고 전체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개인의 자유를 증진하는 어떤 형태의 조직을 찾는 것은 항상 매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영국에서 종교 개혁을 위한 오랜 투쟁은 두 가지 발전 경로를 따랐습니다. 한편으로는 장로교를 향한 명확한 움직임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자유로운 종교 생활을 향한 다소 혼란스러운 추구, 즉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장로교의 급속한 확산은 전반적인 종교적 동요를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켰습니다. 이것이 옛 교회 권위처럼 경직되고 관습의 신성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또 다른 형태의 교회 권위임이 곧 분명해졌습니다. 또한 당시 칼뱅주의 신학은 인간 본성 전체에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 연계된 논리는 지적인 동의를 강요할 수 있지만, 지성만큼이나 현실적인 인간에게는 무언가가 있습니다.[18] 영원한 진리를 융통성 없는 명제에 고정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영혼의 갈증과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영적 탐구의 필요성은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조지 폭스가 이러한 신학 하에서 영적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신학이 한 집단 안에서 고정된 형태로 굳어지는 동안,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점점 더 유동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종교적 권위는 과거처럼 더 이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종교적 조건들은 더 이상 최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만연한 불안이 점차 여러 기묘한 종파를 낳았습니다. 폭스는 당시 주요 종파 운동 중 적어도 네 개와 직접 접촉했으며, 그들이 그에게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중요한 첫 번째 "종파"이자 조지 폭스의 삶에 영향을 미친 첫 번째 종파는 침례교였는데, 당시에는 종종 재세례파라고 불렸습니다. 그의 삼촌 피커링은 이 종파의 일원이었고, 조지는 침례교를 다소 두려워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웠을 것입니다. 침례교는 이미 루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 대륙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전체 경력은…[19] 박해와 고난으로 점철된 그들은 "독립주의자"였습니다. 즉,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하며 각 지역 교회는 자체적인 독립된 삶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유아 세례에 완강히 반대하며, 어떤 행위도 의지와 신앙의 행위가 아니면 종교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에드워즈는 1646년 저서 "강그레나(Gangræna)"에서 당시 "고양이나 개, 닭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유아에게 세례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이다"라는 교리를 언급하며, 당시 널리 퍼져 있던 그들의 목회에 대한 견해는 참신했고, 폭스의 관심을 끌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평신도 목회를 장려했고, 구두 수선공, 가죽 상인, 재단사, 직조공, 그리고 적어도 한 명의 양조업자가 집회에서 설교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인 존 번연은 "설교할 사람을 갖추는 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게 증명했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들의 적들이 경멸적으로 "여성 설교자"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199가지의 "뚜렷한 오류, 이단, 신성모독" 목록에서 이 끔찍한 오류를 기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성이 설교하는 것은 합법적이며,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재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설교하며, 그 재능에 크게 의지합니다!"
더욱이 그들은 모든 십일조와 모든 정해진 봉급은 불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20] 설교자는 자기 손으로 일해야지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면 안 된다"는 에드워즈의 혼란스러운 목록에는 이 안타까운 오류가 등장합니다. "복음 사역자에게는 모든 정착된 생활비가 불법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침례교인들은 "첨탑이 있는 집"의 사용에 반대했고, 성령의 감동 없이는 누구도 설교하거나 예언할 자격이 없다는 견해를 견지했습니다 .
"구도자들"은 저널에 가끔 언급되며, 영연방 시절 영국 전역에 널리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들은 진지한 사람들이었지만 세상 어디에도 종교의 적절한 구현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교회가 없으며, 사도 시대 이후로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성례전도 거행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그러한 의식을 거행할 만큼 분명하고 확실하며 틀림없는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집회에 "수장"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는 "탁월함이나 권위의 길에서 서로 앞서 나갈 능력이나 은사"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펜은 그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모이지 않고 "침묵 속에서 함께 기다렸으며, 그들 중 한 사람에게 신성한 샘이 솟아오른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떠오르면, 그들은 때때로 말했다"고 말합니다.
[21]
우리는 에드워즈가 "강그레나"에 나열한 목록에서 그들의 특징적인 "오류" 몇 가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섞인 회중에게 성경을 읽어 주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16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에게서 위대한 진리를 찾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은 우리 안에 형성된 그리스도여야 한다 ." "사람들은 연구나 사전 숙고 없이 설교하고 자신의 은사를 사용해야 하며, 말하기 전까지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주어지고 성령께서 그들을 가르치실 것이기 때문이다." "설교자에게는 인간의 학문이나 저자들의 글을 읽을 필요가 없으며, 모든 책과 학문은 사라져야 한다. 사람들이 그토록 방대한 책을 쓰는 것은 성령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구도자들"은 빛이 곧 비칠 것이며, 배도의 시대가 끝나고 성령께서 새로운 계시를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이러한 기대에 비추어 볼 때, 폭스가 자신과 추종자들이 성경을 내어 주시고 사도들처럼 직접적인 명령을 받으신 동일한 성령 안에서 살고 있다고 자주 주장하는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폭스는 "제사장"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그랬듯이, 그리고 내가 그랬듯 이, 메시지를 받고 가지고 다니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말입니다.[22] 평범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훨씬 더 혼란스러운 "분파"는 "난폭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교리에는 아마도 작은 진실의 씨앗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적 열광의 흥분 속에서 그들은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한 극단으로 치닫고, 어떤 경우에는 제정신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계시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현현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하여, 그들의 잘못된 논리가 내린 결론, 즉 사람이 하는 일은 곧 하나님이 하시는 일 이라는 결론으로 끝맺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권위 위에 군림하며 실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에게 성령이 없으니 어찌 바울처럼 성경을 잘 쓸 수 없겠는가?" 그들은 성경을 "누군가가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확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믿었 습니다 .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은 그들에게 단지 일시적인 형상일 뿐이었고, 외적인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죄 없이도 하라고 하시는 대로 행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리처드 백스터는 "그 종파의 끔찍한 악행들이 그 종파를 순식간에 소멸시켰다"고 말했습니다. 호담 판사는 1651년 폭스에게 "하나님께서 그(폭스)가 전파했던 빛과 생명의 원리를 일으키지 않으셨다면, 나라는 난폭한 교만주의에 휩싸였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난폭한 교인들이 친구가 되었고, 일부는[23] 새로운 사회에는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한동안 사회 내부에 심각한 란터(Ranter)의 영향력이 작용했고 규율, 질서, 그리고 체계의 수립에 대한 격렬한 반대가 있었습니다. "제5 군주국 사람들"의 봉기는 특별한 언급이 필요한 유일한 다른 운동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했으며, 천년왕국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믿을 근거를 발견했습니다. 어떤 계산 체계를 통해 그들은 네 개의 세계 군주국 중 마지막 군주국, 즉 아시리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가 몰락을 향해 비틀거리고 있으며, 다섯 번째 세계 군주국, 즉 그리스도의 군주국이 곧 세워질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성도들이 통치할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군주국은 너무 느리게 도래하여 육적인 무기로 그것을 재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 봉기는 폭스에게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이전에 이 환상가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4개의 군주국을 산산조각 내셨다"고 아름답고도 분명한 언어로 말했었 거든요 .
천재는 주변의 수많은 것들 속에서 바로 생명력과 본질을 발견합니다. 그는 시간 속에서 영원한 것을 붙잡고, 그가 빌려온 모든 것을 창조적인 힘으로 융합하여[24] 새로운 전체. 이 창조적인 힘은 조지 폭스에게 있었습니다. 퀘이커 메시지에는 당시 수많은 종파 중 하나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진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반쪽짜리 진실과 오류의 혼돈 속에서 거의 사라져 버린 영적이고 영원한 요소를 보았습니다. 그의 메시지 속에서 이러한 흩어진 진리와 사상들은 새로운 전체로 융합되었고, 그의 살아있는 중심 사상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종교 개혁 이후 영국이 가장 복잡한 종교적 문제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천재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기이한 사실입니다. 진리를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보는 사람이나, 국민의 관심을 사로잡을 만한 개성과 메시지를 지닌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독창적인 타협이 이어졌지만, 뚜렷한 예언자는 없었습니다. 조지 폭스는 영국 종교 개혁의 진정한 첫 번째 예언자입니다. 그는 이 위대한 종교 운동의 본질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A] 아마도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25] 이것은 그의 노고의 주목할 만한 즉각적인 결과가 아니라, 이것들이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지난 100년 동안 종교적 진리의 진보가 그가 자신의 메시지에서 중심으로 삼은 진리를 향해 이루어졌다는 쉽게 검증 가능한 사실입니다.[B] 그러나 그의 나이가 그를 오해하였더라도 그는 오늘날 훌륭한 신자들의 교제를 발견할 것입니다.
이 책의 목적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말하게 하는 것인데, 그는 대체로 그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26] 그러나 그가 주창했던 원리를 미리 살펴보는 것이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의 삶의 초기 시기는 그의 마음을 만족시킬 무언가를 찾는 매우 고통스러운 탐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의 동시대 인물인 번연은 내면의 상태와 경험을 묘사하는 데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두 자서전을 비교해 보면 영적으로 고갈된 시절 폭스가 겪었던 고난이 번연보다 훨씬 더 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만 전자는 후자처럼 개인적인 죄에 대한 끔찍한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열한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순수함과 의로움을 알았습니다 ." 폭스는 자신이 죄의식에서 일찍 해방된 것에 대해 이렇게 보고합니다. 그가 아무런 위안도 찾을 수 없었던 그의 "절망"은 그의 영혼이 극도로 예민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심지어 교회조차도 사악함과 죄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그를 짓눌렀습니다. "나는 그 도시[런던, 1643년]의 위대한 교수들을 바라보았고, 모든 것이 어둡고 어둠의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말은 마치 죽음처럼 깊은 무게로 그를 덮쳤습니다. 온 세상에 세상의 어떤 것도 그에게 세상의 사악함만큼 실재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눈먼 채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는 외칩니다.[27] 내가 악과 허영심을 결코 보지 않게 하시고, 내가 귀머거리가 되어 헛되고 악한 말을 듣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이름이 모독받는 일이 없게 하소서."
하지만 그는 세상이 사악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사제들이 "텅 빈 통"이라는 사실, 그리고 영국에서 그가 발견할 수 있었던 종교는 모두 약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이면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힘으로 움직이는 역동적인 메시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더욱 압도당했습니다. 그는 신학과 이론을 충분히 찾아냈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어디에서나 놓쳤습니다. 종교는 그에게 신을 대체하는 교묘한 대체물 체계로 전락한 것처럼 보였고, 그의 영혼은 생명 그 자체를 찾기 전까지는 안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전환점은 그가 아름답게 "열림"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가 단지 한때 세상에 왔다가 영원히 물러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존재하는 신성한 존재, 인간을 통해 나타난 신이며, 이 그리스도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이 단순한 말에는 획기적인 내용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곧 그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가 다음과 같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28] 그는 자신의 깊은 인격 속에서 인간 영혼과 신의 영이 만나는 장소를 발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역사적 그리스도에 대해 어떤 의심도 품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에 대해 믿었던 모든 것을 그도 믿었습니다. 그의 오랜 탐구는 그리스도 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발견하는 것이 었습니다 . 신학 체계의 그리스도는 그에게 너무 멀고 비현실적이어서 역동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에 대한 모든 명제에 동의했지만, 그는 여전히 죄의 권세 아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살아 계신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그 갈등에서 벗어났습니다. 그의 경험에 담긴 더 큰 진리는 곧 그에게 분명해졌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다가간다는 보편적인 원리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경 곳곳에서 이 신-인 관계가 가르쳐지는 것을 발견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의식 속에서 그 일차적인 증거를 찾아보라고 도전합니다. 그는 마음의 모든 갈증, 자신에 대한 모든 불만, 모든 자기 비난, 모든 부족함에 대한 감각이 영혼이 신성한 영의 방문을 받지 않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원한다는 것은 그분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은[29] 어둠 속의 빛, 순간을 위해 사는 감각적 존재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 개인의 삶이 어느 시점에서는 무한한 삶과 접촉하고 있으며,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폭스는 온갖 부류와 조건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그들 내면의 "하나님의 존재"에 호소합니다. 때로는 그것을 가리지 않고 인간 내면의 "빛", "씨앗", 또는 "원리"라고 부릅니다. 흔히 "내면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는 모든 경우에 신성한 존재가 인간의 삶에 직접 작용하며, 새로운 탄생, 즉 진정한 영적 삶은 개인이 그분을 인식하고 그분께 순종하기로 결심할 때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마치 거품이 자신이 머물고 나온 바다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신성한 존재에 대한 명확한 의식 없이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심장 박동처럼 그에게 가까이 계시며, 우리는 단지 그분을 발견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진리 원리의 발견은 그에게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를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대신, 과거의 계시와 신성한 생명과 사랑의 지고한 현현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했습니다. 그는 수집된 계시에 비추어 자신의 내적 경험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30] 시대를 초월하여. 그의 동시대 사람들은 성경이 사라졌지만 조지 폭스의 입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곤 했고, 그의 일기에는 그가 성경이나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역을 과소평가했다는 내용이 단 한 줄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반대였습니다. 그는 과거 인류에게 직접 말씀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여전히 직접 말씀하신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라는 것은 내면에 "하나님의 씨앗"을 품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인간 삶의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온전히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면서 자유롭고 승리하는 영적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산다는 것은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죄와 불순종은 인간을 약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사람은 무한한 신적 자원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간 삶의 실제적인 요소로 전환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일이 가끔씩 일어난다는 것은 신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토록 드물게 일어난다는 것이 진정한 신비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성경을 전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자주 묻는 다소 순진한 질문인데, 마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것은 조지 폭스의 신앙생활에서 특징적인 것입니다. 그의 삶은 신과 직접 접촉합니다.[31] 삶. 바로 이 확신이 그의 모든 활동을 하나로 모으고 방향을 제시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찾으셨고, 그도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바로 이 경험이 그를 신비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신비주의 유형의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부정의 길을 통해 신을 찾기 위해 고통스럽게 노력해 온 신비주의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유한한 모든 것은 그림자, 환상이며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신을 찾으려면 유한한 것의 모든 흔적을 버려야 합니다. 무한한 것은 유한한 것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림으로써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모든 "사물"과 모든 "생각"이 영(0)으로 환원될 때에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종류의 절대적인 것은 절대적으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본질상 신은 발견 될 수 없었습니다 . 신에 대한 의식을 조금이라도 갖는다는 것은 유한하고 환상에 불과한 생각을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지 폭스는 오히려 이 유한한 인간 삶 속에 신의 현존을 깨닫고자 하는 긍정적 신비주의자들 중 한 사람입니다. 신이 모든 유한한 경험을 초월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모든 유한한 경험의 실체는 바로 이 사실에 있습니다. 살아 계신 신이 그 안에 계시고 그것을 통해 어떤 신적 목적을 표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조지 폭스의[32] 친구인 아이작 페닝턴은 "하나님의 생명과 권능의 기관이 되어" "세상에 하나님의 생명을 전파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신비가는 내면의 빛이 밝아오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길목에 놓인 분명하고도 분명한 의무를 수행하면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신비로운 통찰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다리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계시다는 것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견해를 분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는 진정한 조지 폭스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선포한 진리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열정, 열의, 그리고 빛나는 열정이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사도적 유형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악함으로 인해 수년간 절망에 빠져 있었지만, 빛이 진정으로 비추어지고 죄와 무지에 빠진 세상에 전할 메시지가 있음을 깨닫자마자, 그 이후로는 무덤만이 그를 침묵하게 했습니다. 그는 성당, 건초더미, 바위 절벽, 언덕 꼭대기, 사과나무와 느릅나무 아래, 헛간과 도시 광장에서 설교했고, 자신이 갇혀 있는 모든 감옥에서 서신을 보냈습니다. 구원해야 할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는 자신이 발견한 삶과 진리를 전했습니다.
[33]
폭스의 신비로운 인생관에 공감하든 그렇지 않든, 그가 신앙을 실천한 실제적인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신과 인간이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관점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정으로 새로운 것은 신의 현존을 진정으로 실천하고 자신의 삶이 신적인 환경 속에 있음을 아는 듯이 사는 사람의 등장이었습니다.
우리는 폭스의 근본적인 종교 원리를 다소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사회 개혁가이자 새로운 교회 정치 체제의 조직자로서 그의 위대한 업적이 이 근본 원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든 업적에는 하나의 핵심 사상이 흐릅니다. 그러나 그의 독창성은 그 원리를 발견하거나 재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두려움 없이 적용하는 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의 인도를 믿었고, 다른 기독교인들은 신이 인간의 삶에 꿰뚫어 보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조지 폭스는 자신의 확신을 논리적인 결론으로까지 끌고 갈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신뢰하고 음성을 따르라고 촉구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영혼의 시야 대신 외부의 권위를 앞세우는 자들은 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그 결과를 예상했고, 두 가지를 모두 실행에 옮겼습니다.[34] 그는 당시 사회생활과 종교생활에서 내면의 빛에 순종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통찰에 대한 용감한 충실함이 그를 사회 개혁가이자 종교 조직가로 만들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같은 반열에 들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종교를 하늘에서 땅으로 가져오는 어려운 과제를 시도했습니다.
1. 폭스는 자신의 종교적 발견에 비추어 인간을 사회 구성원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인간이 신과 직접 교제 한다면 고귀한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는 왕권 신수설을 인간의 신수설 이라는 확신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대우받아야 합니다. 그는 평등주의자 였지만 , 계급을 낮춘 것이 아니라 높였습니다. 모든 인간은 왕족의 혈통이 아니라면, 적어도 왕족의 운명이라는 가능성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폭스를 비할 데 없는 낙관주의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발견한 이 신성한 관계를 깨닫는 순간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했던 것처럼 이 확신의 힘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
그는 곧바로 평등의 원칙 , 즉 특권의 평등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는 인간의 진정한 본성을 스스로에게 숨기는 사회 관습이라는 정교한 그물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인간의 삶[35] 거짓된 말로 병들었고, 결국 인간은 인간 답게 행동하는 것을 거의 잊어버렸다 . 폭스는 자신에게 공허하고 인간 자신을 비하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사회적 관습을 스스로 거부했다. 신께 속한 명예는 어떤 인간에게도 주지 않았고, 어떤 인간에게 속한 명예는 모든 인간에게 주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thee(너)"와 "thou(너)"라고 부르는 이유였다. 복수형은 구별을 위해 도입된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호국경과 비천한 시골뜨기는 똑같이 불렸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눈여겨보았고, 인간을 사회의 구별할 수 없는 원자로 격하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든 여자든 모든 개인 안에 있는 개성이라는 보물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2.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그의 평가는 그를 개혁가로 만들었다. 그가 발견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종종 사람보다는 물건처럼 취급되었다. 사소한 잘못에도 교수형에 처해졌다.[C] 그리고 만약 그들이 이 운명을 피했다면, 그들은 감옥에 갇혔고, 그곳에서는 인간의 인간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끝없는 전쟁 속에서 일반 사람들은 거의 인간 주사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거의 잊혀졌습니다. 무역은 이 사람에게는 높고 저 사람에게는 낮은 가격의 등락하는 가격 체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상인들은[36] 정직해야 할 곳에서는 정직했고, 정직할 수 있는 곳에서는 부정직했습니다. 이 저널의 지면에서 끊임없이 보여주듯이, 법원은 극도로 불확실하고 불규칙했습니다. 인간의 신성한 권리를 인정하지 못하는 그러한 모든 부패한 제도에 조지 폭스는 맞섰습니다. 그는 법원과 예의상 감옥이라고 불리는 비인간적인 펜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리를 보장하거나 더 나은 감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인권의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개혁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무역 관계에 철저한 정직성을 적용하고, 모든 종류의 상품에 고정 가격을 정하고, 사업 원칙과 종교 원칙을 조화시키기 위해 침착하게 노력했습니다. 그는 음성이나 서신을 통해 이 지역의 모든 판사들에게 "그 안에 있는 신의 뜻을 생각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의 "찬성"을 맹세만큼 무겁게 만들기로 결심했기에 결코 선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형벌 제도의 야만성,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부당함, 전쟁의 사악함, 유행의 낭비, 술 취함의 사악함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으며, 주장과 행동을 통해 전장의 영웅심보다 더 나은 새로운 영웅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37]
3. 그의 원칙의 논리는 그로 하여금 교육을 소중히 여기도록 만들었다.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 여겨지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선한 일을 하도록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보잘것없는 기관이 되는 것은 큰 죄악 중 하나이다.[D]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사람들을 목사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 그에게 "공개"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이성은 역사와 자연의 확립된 사실들을 동시에 광범위하게 적용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목소리에 복종하고 빛을 따르라고 촉구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폭스 자신은 아주 일찍부터 남녀 모두를 위해 "창조에 있어서 모든 예의 바르고 유용한 것"을 가르치는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간의 미적 측면을 과소평가했고, 그것을 굶기려는 시도로 인해 고통을 겪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청교도적 성향을 공유했고, 모든 것을 비례적으로 파악하고 동시에 감각을 계발하여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38]
4. 독특한 종교적인 측면에서, 그는 신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발견하여 예배와 사역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자신과 예배자 사이에 어떤 대리자나 어떤 사람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이슬처럼 특별한 통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이 세상 보다 저 세상에 더 많이 계신 것처럼 특별한 성소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 그분은 다른 곳에서 오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영이시며, 오직 응답하는 영혼, 열린 마음만 있으면 발견 될 수 있습니다 . 예배는 영혼이 그분을 발견하고 그분의 임재를 누릴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영혼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평소처럼 낙관적인 태도로 그는 모든 남녀가 이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모든 목발을 버리고 모든 사람에게 성령 안에서 행하고 빛 안에서 살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의 예배소는 좌석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배하는 자들의 마음속에 셰키나가 있어야 했기에, 그곳에는 성소가 없었습니다. 제단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죄를 위한 제사를 드리셨기에 달래실 필요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세례반도 없었습니다. 그의 믿음에 따르면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생명 안으로 잠기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 속으로 내려가 그분과 함께 새 생명으로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39] 그는 참된 친교란 영혼의 영적인 빵, 곧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직접 나누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성찬식 식탁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고해성사도 없었습니다. 고요함 속에서, 외적인 삶의 소음과 소음을 잠재운 채, 영혼은 창조주께 자신을 드러내고 그분의 빛으로 자신의 참된 상태를 드러내야 했습니다. 오르간이나 성가대도 없었습니다. 용서받은 각 영혼은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기쁜 음조로 찬양해야 했습니다. 향로도 흔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오직 진실하고 기도하는 영의 향기만을 원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제관도 없었습니다. 참된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하나님께 제사장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공식적인 예복도 없었습니다. 집회에서든 밖에서든 삶의 모든 일은 성도다운 삶의 흰 옷을 입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직접적인 감사였고, 온 존재가 그분께 응답하는 적절한 활동이었습니다.
윌리엄 펜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느끼거나 본 것 중 가장 끔찍하고, 생생하고, 경건한 모습은 기도할 때의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기도할 때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리의 사역이 어떤 계층이나 성별에도 국한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발견하는 만큼, 그리고 그 발견이 그에게도[40] 그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그의 사명입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행하는 그의 능력은 하나님의 은사이며, 그를 목사로 만듭니다. 교회가 하는 일은 오직 그 은사를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말하도록 부르심을 느낀 모든 사람에게 완벽한 발언의 자유를 가져다주었는데 , 이는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실현된 원칙이었으며, 비록 종종 혹독한 시련을 겪었지만 말입니다.
그가 설립한 협회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그는 신자들의 사제직이 실재하는 기독교 단체를 조직하는 어려운 과제를 맡았으며, 그 안에서 교회의 일반적인 종교 활동은 회중을 통해 드러나는 성령의 인도와 통제의 힘 아래 있어야 했습니다.
폭스가 당대에 기여한 바는 인간의 삶을 마치 인큐버스처럼 휩싸이게 했던 견딜 수 없는 예정론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 교리는 논리에 얽매여 어쩔 수 없이 믿는 모든 사람에게 암울함을 안겨주었고, 예민한 영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야말로 끔찍했습니다. 폭스는 이 교리에 논증을 통해 맞섰지만, 논증을 넘어선 더 나은 방식으로 맞섰습니다. 그는 두 가지 사실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신의 은총과 빛은 무상하다는 사실과, 내면의[41] 하나님의 은총과 받아주심에 대한 확신은 모든 신자에게 가능합니다. 퀘이커교가 나아간 곳마다 이 내적인 확신도 함께했습니다. 두려운 불확실성의 그림자는 햇살과 기쁨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것이 영적 해방의 시작이었으며, 그 해방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평화로운 얼굴과 향기로운 삶이 그 결과입니다.
저널 독자라면 누구나 조지 폭스가 자신을 기적적인 힘의 현현 도구로 여겼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를 통해 질병이 치유되었고, 그는 다가올 사건을 예견했으며, 종종 정신과 마음의 상태와 상태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때때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직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적어도 세 번이나 놀라운 신체적 변화를 겪었는데, 마치 며칠씩 죽은 사람처럼 보였고, 그중 한 번은 피를 흘릴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누구에게도 문제가 될 필요가 없으며, 그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비범한 정신적 본성을 지녔고, 섬세하게 조직되어 있었으며, 새로운 종류의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심령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경험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정신적 조직력 덕분에 그가 그토록 건전하고 실용적이었으며, 수많은 파멸의 가능성을 안겨준 삶 속에서도 그토록 꾸준히 균형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42]
이 자서전보다 일지 전문에서 훨씬 더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점은, 그와 그의 업적에 악의적인 반대를 표했던 거의 모든 사람에게 "심판"이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신께서 곧 그를 잘라내셨다"는 표현은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현재 이러한 사건들을 조사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명백히 불가능하지만, 초기 친우들의 검증된 정직성은 사실들이 보고된 바와 실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습니다. 폭스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그의 대의를 방해한 것에 대한 직접적인 "심판"으로 불행을 겪었다는 추론은 당연히 우리에게 너무 성급한 결론으로 보일 것입니다. 이처럼 다사다난했던 시기에 그와 거래했던 많은 사람들이 급격한 운명의 변화를 겪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며, 물론 그는 이처럼 직접적인 심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도 간과했습니다. 물론, 이 친절하고 영적인 사람이 자신의 적들에게 신의 복수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즐길 뻔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이 신의 일이라고 영혼 속에서 믿었고, 따라서 그 일을 좌절시키는 것이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명명한 협회를 설립했으며, 분명히 그것이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고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바랐을 것입니다.[43] 보편화되다.[E] 모든 면에서 조직은 인간의 근본적인 영성을 인정했습니다. 모든 개인은 전체의 필수적이고 유기적인 부분이 되어야 했습니다. 자유로우면서도 전체의 이익과 교화를 위해 항상 행사되어야 하는 자유를 소유해야 했습니다. 이는 바울이 여러 지체로 구성된 보편적 교회 개념을 정확히 본떠, 외부에서가 아니라 한 영의 살아 있는 임재로 연합을 이룬 것입니다 . 이 모든 조직 활동은 폭스 자신이 말을 타고 마을마다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오랜 감옥과 지하 감옥 생활로 중단되기도 했고, 그의 기치 아래 모인 광신적인 반율법주의자들의 끊임없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거의 전례 없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아일랜드에 있던 5만 명의 추종자들이 활동하고 성장하는 단체로 성장했고, 네덜란드, 뉴잉글랜드, 뉴욕, 펜실베이니아, 메릴랜드, 버지니아, 그리고 캐롤라이나에서도 마찬가지로 잘 조직된 모임을 가졌다는 사실은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작은 증거가 아닙니다. 그의 개성과 그의 메시지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사로잡았으며, 일반 대중이 비천한 계층에 속해 있었다면,[44] 학식과 명성을 갖춘 남녀들도 있었습니다. 파리 학파 출신의 로버트 바클레이는 그의 저서 『변명』에서 새로운 신앙을 영구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윌리엄 펜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성스러운 실험을 통해 그 원리들을 구체화했고, 아이작 페닝턴은 그의 짧은 논문들을 통해 교리의 핵심인 신비로운 진리를 풍부하고 다채로운 표현으로 제시했습니다.
이곳은 비판이 아닌 설명을 위한 자리입니다. 이 사람에게서 그의 나이와 개인적인 특성이 부여한 한계와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데는 탐조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부분적으로 보았고 부분적으로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동시대 인물 크롬웰처럼, 그는 용감한 진실성, 그가 본 가장 높은 것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영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카버러 간수의 증언은 연구되지 않은 것만큼이나 진실합니다. "나무처럼 굳건하면서도 종처럼 순수합니다." 그에 대한 이 연구는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윌리엄 펜의 말로 마무리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저는 제 지식을 기록하는 것이지 보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증언은 사실입니다. 여러 차례, 특히 바다와 육지, 이 나라와 외국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활동적인 상황에서 그와 함께 몇 주, 몇 달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있는 곳 밖에서 그를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45] 모든 예배나 행사에 적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일에 사람답게 행동했습니다. 참으로 강한 사람, 새롭고 천상의 마음을 가진 사람, 신성하고 자연주의자,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의 완성이었습니다.[에프]
[46]
충실한 종에 관한 윌리엄 펜의 증언조지 폭스.
하나님의 이 시대에 축복받은 도구이자, 지금 내가 쓰려고 하는 사람은 조지 폭스입니다. 그는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데, 그 다른 사람은 그의 모든 글에서 그의 이름에 더 젊은이라는 단어를 덧붙였습니다. 그가 나이가 많았던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 시대에 합당한 사람, 하나님의 증인이자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지 폭스는 1624년경 레스터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자질이 뛰어난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부모는 다른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민족의 방식과 신앙에 따라 양육하고자 애썼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사는 곳에서 자신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는 다른 형제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듯했습니다. 그는 더욱 종교적이고, 내성적이며, 고요하고, 확고했으며, 나이에 비해 관찰력이 뛰어났습니다. 그가 하는 대답과 때때로 던지는 질문들은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특히 신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독특한 기질과 그에게서 아주 어릴 때부터 빛났던 진지함, 지혜, 경건함을 주목하고 유치하고 허영적인 장난을 거부했습니다.[47] 아주 어렸을 때 그녀는 그에게 친절하고 너그러웠기에, 그녀에게서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의 직업은 시골 사업으로 성장했고, 양을 가장 좋아했듯이 양 치는 데도 매우 능숙했습니다. 이 직업은 그의 순수함과 고독이라는 두 가지 면에서 그의 마음에 매우 잘 맞았고, 그의 후임 목회와 봉사를 보여주는 좋은 예였습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서 이미 언급된 내용, 즉 그의 출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되도록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그가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때, 친구들을 떠나 가장 은둔하고 신앙심 깊은 사람들을 방문했습니다. 그 당시 이 나라, 특히 그 지역에는 사가랴, 안나, 그리고 옛날의 선량한 시므온처럼 밤낮으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들에게 파견되었고, 주변 나라에서 그들을 찾아다니며, 더 큰 사역을 감당할 기회가 올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이때 그는 가르치고 침묵의 모범이 되어 사람들을 자기 행위에서 벗어나 그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증거하고 돌이키도록 노력했으며, 그들의 마음 속에서 그 빛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도록 격려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빛 속에서 발견되는 끝없는 생명의 힘 안에 서게 될 것입니다.[48] 그것이 사람 안에 나타났습니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말씀 안에 있는 생명, 사람들 안에 있는 빛, 그리고 그 빛에 순종할 때의 생명도 있습니다. 빛의 자녀들은 말씀의 생명으로 살아가며, 그 생명으로 말씀은 그들을 하나님께 다시 낳습니다. 이는 중생과 새로운 탄생이며,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생명에 이르면 요한보다, 즉 요한의 사역보다 더 위대합니다. 요한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역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자 복음 경륜의 시작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지역에서 여러 차례 집회가 열렸고, 그렇게 하여 요한은 몇 년 동안 시간을 보냈습니다.
1652년, 그는 평소처럼 요크셔 이편 어느 지역에 있는 아주 높은 산 위에서 주님께 은둔 생활을 하던 중, 제 생각에는 그의 마음이 주님께로 향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과 그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태양 아래 티끌처럼 작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와 온 세상에 단 한 명의 목자와 단 하나의 양 우리만 있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그의 눈은 북쪽으로 향했고, 그 지역에서 그와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이 산에서 그는 마치 큰 소리로 들린 것처럼 주님의 위대하고 주목할 만한 날을 알리도록 주님의 감동을 받았고, 주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대로 북쪽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하기 전이 아니라면, 그가 도착한 모든 곳에서 그는[49] 그에게 보여진 그의 특별한 활동과 봉사로 보아, 주님이 참으로 그의 인도자이셨음이 분명합니다. 그가 여행한 것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곳에서 세리와 냉정한 신앙고백자들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의 확신으로 그의 사명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들 중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저명한 사람들 중 일부는 쉬고 있는데, Richard Farnsworth, James Nayler, William Dewsberry, Francis Howgil, Edward Burrough, John Camm, John Audland, Richard Hubberthorn, T. Taylor, John Aldam, T. Holmes, Alexander Parker, William Simpson, William Caton, John Stubbs, Robert Widders, John Burnyeat, Robert Lodge, Thomas Salthouse, 그리고 여기서 적절하게 이름을 댈 수 없는 다른 많은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아직 첫 번째이자 위대한 확신으로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안에서 하나님의 정화 심판을 알고, 그분을 침묵 속에서 기다린 후, 위로부터 그분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느끼고 받았습니다(다른 누구도 같은 말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올바르게 할 수 없습니다). 신성한 움직임을 느꼈고, 특히 대중 집회를 방문하여 책망하고, 알리고, 권고하기 위해 자주 끌려갔습니다. 때로는 시장, 박람회, 거리, 고속도로변에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입으로 주님께로 돌이키고, 그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인도하여 그들의 길을 보고 살피고 숙고하게 하며, 악을 피하고 선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사랑과 선의 때문에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50] 정직하고 평판이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살던 곳에서 아내와 자녀, 집과 땅을 남겨두고 회개를 촉구하는 생생한 호소를 전하러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채찍질을 당하고, 돌팔매질을 당하고, 매질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하고, 투옥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대체로 그들을 반대하고, 그들을 비난하는 글을 쓰고,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거짓되고 추문적인 이야기들을 넌지시 퍼뜨렸으며, 특히 북부 지역에서는 치안 판사들을 선동하여 그들을 탄압하게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살아있는 능력으로 채우시고, 그분을 섬기는 데 있어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지역에 강력한 확신이 퍼졌습니다.
브래드쇼 판사와 펠 판사의 부드럽고도 특별한 관용 덕분에, 사제들은 애써 얻어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 목적은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었고, 가능하다면 헤롯처럼 잔혹한 공권력을 행사하여 그들을 단절하고 나라에서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펠 판사는 법적 절차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그들의 분노를 억누르고 마침내 이 민족을 지지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첫 번째와 같은 진실을 받아들인 것이 그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정의롭고 현명한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아내와 가족이 진리의 길에 반대하는 모든 민심을 완전히 반박하는 것을 보고,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감싸고 기꺼이 문을 열어주었으며, 무지하거나 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의 비난을 개의치 않고 아내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집을 내주었습니다.[51] 저는 이 자리에서 그와 그녀의 명예를 위해 이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그 이름과 가족 가운데 주님의 진리와 백성에 대한 부드러움, 겸손, 사랑과 열정을 지닌 사람들에게 영광과 축복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집은 이 섬 남부 지역에 진리가 자리 잡기 전까지 몇 년 동안 이 백성을 받아들이는 탁월한 장소였습니다. 그 북부 지역에 있는 명망 있고 재력 있는 다른 사람들도 주님께서 짧은 시간 안에 세우신 많은 전도사들에게 마음을 담아 그들의 집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선포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주님의 사자들이 자주 모여 예배와 사역을 전하고, 복된 사역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이전에 이 문제를 언급한 바 있으므로, 이 훌륭한 인물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형제들과의 대화와 하나님의 교회에서 드러난 그의 자연적, 도덕적, 신적 자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I. 그는 하나님께서 분명하고 놀라운 깊이를 부여하신 사람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영을 분별하는 사람이자 자신의 영에 대한 탁월한 통달자였습니다. 그의 이해력 중 세상과 맞닿아 있는 측면, 특히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좋은 귀에는 천박하고 유행에 뒤떨어진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제는 매우 심오하여 자주 숙고해 볼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럴수록 더욱 그러했습니다.[52] 더욱 무게 있고 교훈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의 신적인 것들에 대한 문장들이 때때로 갑작스럽고 단절적으로 쏟아지곤 했지만, 그 문장들이 종종 더 훌륭한 선언들을 위한 본문과 같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참으로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어떤 학문이나 부분도 그의 사역의 내용이나 방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가 인류에게 전파하기 위해 내놓은 수많은 위대하고 탁월하며 필수적인 진리들이 인간의 지혜나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모순을 넘어 보여주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그는 독창적인 존재였으며, 결코 다른 사람의 복제품이 아니었다. 그의 사역과 저술들은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지 않았고, 그가 말한 것을 연구하여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관념적이거나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회심과 중생,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분별력 있고 실제적인 진리였으며, 그 길은 바로 그의 사역이었다. 그래서 저는 여러 번 제 자신에 압도되어 주님과 스승님께 이와 같은 경우에 "하늘과 땅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당신께서 이 세상의 지혜롭고 총명한 자들에게는 이것을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으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제 영혼은 여러 번 주님께 겸손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롭고 학식 있는 사람을 택하지 않으시고, 높은 지위에 있지도 않고, 말솜씨가 뛰어나지도 않고, 이 세상의 방식에 따라 학식이 없는 사람을 택하셔서, 그분께서 그에게 맡기신 메시지와 일이 세상에 전해지도록 하셨습니다.[53] 인간의 지혜와 관심에 대한 의심이나 질투는 줄어들고, 진리를 사랑하며 그 길을 진심으로 찾는 이들의 양심에 더욱 힘과 명료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제 안에 열어 주신 마음의 눈으로, 이 간증 속에 하나님의 손가락과 손의 흔적을 분명히 바라보며, 그 원리의 명확함, 그 힘과 효능, 모범적인 절제, 솔직함, 열정, 흔들림 없음, 겸손, 엄숙함, 시간 엄수, 자선, 그리고 교회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 세심한 배려가 빛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역에 사용하신 그의 삶과 간증에서 이러한 점들이 빛났습니다. 이 사역은 제게 이 사역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시켜 주었고, 제 영혼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깊은 사랑, 두려움, 경외심, 그리고 감사로 가득 채웠습니다. 저는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제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러기를 바랍니다.
II. 그는 자신의 간증이나 사역을 통해 사람들이 진리를 이해하도록 돕고, 그들이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원칙과 원리 위에 기초를 두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질을 깨닫도록 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와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펼치는 데 탁월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물의 핵심을 파고들어, 그 정신과 조화를 이루고 그것들을 충만하게 이루는 모습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 주었고, 큰 위로와 교훈을 주었습니다.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의 신비,[54] 타락과 회복, 율법과 복음, 그림자와 실체, 종과 아들의 상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의 순종을 통해 그분의 모든 소유 안에서 성경이 성취되는 것 등이 그의 간증의 본질과 흐름의 많은 부분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증거받았으며,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고, 결코 오류나 실패가 없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기도에 탁월했습니다. 그의 내면과 무게, 그의 말투와 행동에서 느껴지는 경건함과 엄숙함, 그리고 그의 말투의 간결함과 풍부함은 낯선 사람들조차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듯 말입니다. 제가 느끼거나 목격한 가장 경외롭고 생생하며 경건한 모습은, 그의 기도였습니다. 참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주님께 더 가까이 살았고, 그 증거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경건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갈 가장 큰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순진한 삶을 살았고, 참견쟁이도, 이기적인 사람도 아니었고, 예민하거나 비판적인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서 나오는 말들은 그다지 해롭지 않았고, 오히려 교훈적이었습니다. 온유하고, 만족하며, 겸손하고, 편안하고, 꾸준하고, 부드러워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그는 악을 제외하고는 어떤 권위도 행사하지 않았고,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 대해 사랑과 연민, 그리고 오래 참음으로 행했습니다. 가장 자비로운 사람으로, 남을 용서할 줄 알면서도 남을 화나게 하거나 화를 내는 데는 서툴렀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진정으로 그가 훌륭한 정신을 지녔고 그들 사이에서 호감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55] 그리고 그 때문에 가장 뛰어난 영혼들은 거짓 없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일했습니다. 젊은 시절, 수많은 크고 깊은 고난과 여행으로 순회 봉사를 위해 몸이 약해지기 전에, 그는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서 말씀과 교리, 그리고 권징에 힘썼습니다.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진리를 확신하는 사람들을 굳건히 하며, 그들 사이의 교회 질서를 바로잡았습니다. 71세에서 77세 사이, 그의 순회 봉사가 끝나갈 무렵, 그는 미국, 영국 연합주, 그리고 독일의 농장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다음 일기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에게 확신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주로 런던 시내와 그 주변 지역에 거주했으며, 잦은 목회 활동 외에도 성찬례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 전반에 매우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종종 교회 업무 기록이 보관되는 곳에 있었고, 전 세계 하나님 백성의 수많은 집회에서 온 편지가 정리되어 있었고, 그 편지들이 가끔씩 왔습니다. 그는 그 편지들을 그에게 읽어 주었고, 매주 그곳에서 열리는 그러한 예배를 위한 집회에 전달했습니다. 그는 특히 고통받는 경우에 그 편지를 처리하도록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경우에 큰 동정심과 연민을 보였고,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56] 각각의 사례를 파악하고, 그 성격에 따라 신속한 구제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거기에 있다면 교회와 그곳에서 고통받는 교인들이 잊혀지거나 그들의 소원이 늦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 확실했습니다.
그는 지치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위한 봉사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노에 차 있는 것만큼이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더비, 리치필드, 애플비에서, 그리고 론세스턴, 스카버러, 우스터,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올리버 크롬웰 앞에서 보인 그의 행동은 다른 여러 장소와 행사에서도 그의 적들에게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원시 시대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사도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일어났듯이, 복음의 소망으로 돌아선 사람들 중에서도 그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하나님의 사람도 그에게 설득당한 사람들, 편견이나 실수로 양심을 지배하려는 자로 여겨 그를 대적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임재나 서신을 통해 교회 일과 사람들 앞에서의 삶에 대한 질서 있는 대화를 이끌어내는 선하고 건전한 것들에 기꺼이 열렬히 순응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악행에 크게 기여한 것은, 어떤 사람들은 이 온유한 사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랑과 존경을 싫어했고, 어떤 사람들은 근거 없는 강요와 맹목적인 순종의 제안에 속아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57]
그들은 모든 사람이 독립되기를 바랐습니다. 즉, 그 사람 안에 그 원리가 있으므로, 그 원리에 따라 서거나 넘어질 뿐 다른 것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리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고, 빛이나 은혜의 정도는 다를지라도 그 본질은 동일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같은 원리에 따라 인도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는 영적 통일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악한 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악하고, 한 사람에게 덕이 있고 정직하고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하나의 보편적 원리에 대한 감각과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며,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공언하는 바에 따르면) 모든 참된 기독교 교제의 근원이자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시고 영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한 마음과 한 영혼을 갖게 되는 정신입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 행정의 질서를 예배 규율로 약하게 오해했고, 그와 다른 형제들이 그렇게 강조하거나 권장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반대자들이 각자의 신조와 예배에 대한 순응을 강압적으로 강요해 온 국가 교회에 대해 매우 합리적으로 반대했던 것과 동일한 것을 기꺼이 반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전적으로 대화와 교회의 외적인, 그리고 (제가 칭하는 바대로) 예의 바른 부분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 원칙에 따라 살아가고 돌봄과 자선에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어떤 이들은 실수와 불합리한 고집, 심지어 편견 때문에 넘어지고 넘어졌지만, 하나님께 감사하옵소서,[58] 대다수가 처음 사랑으로 돌아왔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거나 저지할 수 있는 기회나 이점을 조금도 놓치지 않는 원수의 행위를 보았습니다. 또한, 교회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진리에 대한 그의 백성의 사랑과 서로에 대한 사랑을 식히려 하지 않습니다. 아직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경우에, 이 선한 사람만큼 불만을 품은 사람을 날카롭게 공격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는 그들의 모든 약점과 편견을 참고, 반성에는 반성으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약하고 쓰라린 말을 용서하고, 그들이 상처를 깨닫고 적의 교활한 꾀를 깨닫고 악의를 품지 않는 첫사랑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신성한 선호와 권위를 가시적으로 입히셨고, 실제로 그의 존재 자체가 종교적 위엄을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그것을 남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에서 큰 온유함과 가장 매력적인 겸손과 절제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고 말해야겠습니다. 그는 모든 경우에 그의 복되신 주님처럼 모든 사람에게 종이었으며, 그들을 모으신 보이지 않는 권능 안에서 장로직을 유지하고 행사했으며, 머리에 대한 경의와 몸에 대한 돌봄을 지녔고, 이 시대의 첫째이자 주요 장로이신 그리스도의 영과 권능으로만 영접받았습니다. 그는 그러므로 두 배의 존경을 받을 만했으므로, 오늘날의 신자들이 그에게 그러한 존경을 표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그의[59] 권위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었으며,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영원한 생명의 능력으로 그것을 얻고 지켰습니다. 저는 제 지식을 기록하는 것이지 보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증언은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 차례, 특히 가장 가깝고 가장 중요한 일들을 위해 그와 몇 주, 몇 달 동안 함께 지냈으며, 밤낮으로, 바다와 육지를 통해, 이 나라와 외국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제자리를 벗어나거나 모든 예배와 행사에 적합하지 않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일에 사람답게, 아니, 강인하고 새롭고 천상의 마음을 가진 사람답게 행동했습니다. 그는 신성하고 자연주의자였으며, 모든 면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분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자연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그는 쓸모없고 궤변적인 과학에는 무지했지만, 유익하고 칭찬할 만한 지식의 토대를 가지고 있었고, 모든 면에서 그것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의 행동은 모든 종류의 교양을 초월했습니다. 매우 절제력이 강했고, 덩치가 컸지만 적게 먹고 적게 잤습니다.
그는 이렇게 우리 가운데 살며 머물렀고,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일으키고 지켜준 영원한 권능을 느꼈습니다. 그는 확신으로 가득 차 죽음을 이겼습니다. 마치 죽음이 거의 주목받거나 언급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온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 보내기 직전에 쓴 서신과 자신의 저서들을 함께 배포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60] 아일랜드와 미국에 있는 모든 친구 여러분, 그리고 모든 친구의 친구 여러분, 두 번이나 말했습니다. 아일랜드와 미국에 있는 불쌍한 친구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들어와서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경고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능력은 모든 약함과 죽음을 이기고, 씨가 통치합니다. 주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이 대답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 약 네다섯 시간 전이었습니다. 그는 그 주의 첫날 롬바드 거리 근처에서 열린 큰 집회에 참석했고, 그 다음 날 밤 열 시쯤, 같은 안뜰에 있는 H. 골드니의 집에서 우리를 떠나셨습니다. 그는 여러 세대에 걸쳐 진리 안에서 자손을 본 후, 좋은 노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짧은 병환으로 위로를 받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맑은 감각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옛 하나님의 사람처럼 "죽었지만 여전히 말씀하신다"라고 진실로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몸은 떠나 있지만 영으로는 함께 계십니다. 어떤 시간이나 장소도 성도들의 교제를 방해하거나 의로운 자들의 영들의 교제를 없앨 수 없습니다. 그의 행위는 그를 통해 일하신 분께 찬양을 돌리기 때문에 그를 찬양합니다. 그의 기념비는 축복받았고 앞으로도 축복받을 것입니다. 서문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의 이름에 이 짧은 비문을 남겼을 때 이미 다뤘습니다. "오늘날 많은 아들들이 덕행을 쌓았지만, 사랑하는 조지, 당신은 그들 모두를 능가합니다."
[61]
자서전 목차 Contents
| 페이지 | ||
| 서문 , | 9 | |
| 소개 , | 15 | |
| 충실한 종 조지 폭스 에 관한 윌리엄 펜의 증언 | 46 | |
| 나. | — 소년 시절—탐구자 , | 65 |
| 1624-1648년. | ||
| 2. | — 사역의 첫 해들 , | 90 |
| 1648-1649년. | ||
| 3장. | — 도전과 감옥의 첫 맛 , | 109 |
| 1648-1649년. | ||
| 4. | — 더비 감옥에서 보낸 1년 , | 118 |
| 1650년-1651년. | ||
| 다섯. | — 한 사람이 10마일 동안 나라를 뒤흔들 수도 있습니다 . | 132 |
| 1651-1652년. | ||
| 6. | —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 | 150 |
| 1652년 | ||
| 7. | — 다시 감옥에 갇히다 , | 179 |
| 1653년 | ||
| 8. | — 올리버 크롬웰 방문 , | 197 |
| 1653-1654년. | ||
| 9. | — 론세스턴 감옥에서 끝나는 남부 카운티 방문 , | 222 |
| 1655-1656년. | ||
| 엑스. | — 웨일즈에 씨앗을 심다 , | 269 |
| 1656-1657년. | ||
| [62]11. | — 언약자들의 집에서 , | 297 |
| 1657년 | ||
| 12장. | — 런던의 멋진 이벤트 , | 317 |
| 1658-1659년. | ||
| 13세 | — 찰스 왕 1년 , | 331 |
| 1660년 | ||
| 14세 | — 노동, 위험 및 고통 , | 363 |
| 1661-1662년. | ||
| 제15조 | — 욕설을 하지 않아 감옥에 갇혔고 , | 392 |
| 1662-1665년. | ||
| 제16조 | — 스카버러 성에서의 1년 , | 436 |
| 1665-1666년. | ||
| 제17조. | — 조직 작업에서 , | 459 |
| 1667-1670년. | ||
| 제18조 | — 미국에서의 2년 , | 482 |
| 1671-1673년. | ||
| 19. | — 마지막 투옥 , | 536 |
| 1673-1678년. | ||
| 더블 엑스. | — 씨앗은 죽음을 지배합니다 . | 562 |
| 1679-1691년. | ||
| 색인 , | 579 |
[63]

[65]
제1장
소년 시절 - 탐구자.
1624-1648년.
모든 사람이 주님께서 나를 대하신 방식과, 주님께서 나를 인도하여 여러 가지 훈련과 시련과 고난을 겪게 하신 이유를 알게 하시고,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준비하고 준비시키기 위해 겪게 하신 일들을 알게 하시고, 이를 통해 주님의 무한한 지혜와 선하심에 감탄하고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해 (진리를 위해 내가 했던 공개적인 여정을 이야기하기 전에) 어린 시절의 나와 주님의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린 시절부터 점차적으로 계속되어 왔는지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1624년 7월, 드레이튼인더클레이에서 태어났습니다.[1] 레스터셔 출신입니다. 제 아버지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폭스였습니다. 그는 직업이 직조공이자 정직한 사람이었으며, 그에게는 하나님의 씨앗이 있었습니다. 이웃들은 그를 의로운 크리스터라고 불렀습니다.[66] 나의 어머니는 고결한 여인이셨습니다. 그녀의 처녀 성은 메리 라고였고, 라고스 가문 출신이었으며 순교자의 혈통이었습니다.[2]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겐 흔치 않은 진지함과 침착한 정신과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서로에게 가볍고 방탕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마음속으로 그런 것을 싫어하게 되었고, 속으로 "내가 어른이 된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거고, 그렇게 방탕하지도 않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열한 살이 되었을 때, 저는 순수함과 의로움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순수함을 유지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모든 일에 충실하라고, 두 가지 방식으로, 즉 속으로는 하나님께, 밖으로는 사람에게 충실하게 행동하라고, 그리고 모든 일에 “예”와 “아니오”를 고수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입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변덕스러운 말이 가득하지만, 저는 모든 일에 “예”와 “아니오”를 고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제 말은 적고 맛있으며 은혜로 맛을 내야 하며, 제 자신을 방탕하게 만들기 위해 먹고 마시지 말고, 건강을 위해 피조물에게 필요한 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3] 그들이 섬기는 일에서, 곧 그들을 창조하신 이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의 자리에서 종들이 되는 것입니다.
[67]
내가 자라면서 친척들은 나를 신부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4]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반대 의견을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구두장이에게 소개되었습니다.[5] 그는 양모를 팔며 방목도 하고 가축도 팔았는데, 내 손을 거쳐간 것이 많았습니다. 내가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복을 받았지만, 내가 떠난 후에는 쇠약해져 허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저는 남자든 여자든 누구에게도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저와 함께하시고 저를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봉사 기간 동안 저는 제 관계에서 "진실로"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저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지가 진실로 말한다면, 그를 바꿀 수 없다"라는 말이 흔했습니다. 남자아이들이나 무례한 사람들이 저를 비웃을 때면, 저는 그냥 내버려 두고 제 갈 길을 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저의 순수함과 정직함에 반감을 품었습니다.
[68]
내가 열아홉 살이 되어 박람회에 출장을 갔을 때, 브래드포드라는 이름의 내 사촌 중 한 명이 또 다른 교수를 만났습니다.[6] 그와 함께 와서 나에게 맥주 한 병을 같이 마시자고 청했습니다. 나는 목이 말랐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들어갔습니다. 나는 선한 감정을 가진 사람과 주님을 찾는 사람을 모두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각자 한 잔씩 마셨을 때, 그들은 건배를 하기 시작했고, 더 마시라고 하면서 마시지 않으려는 사람이 모두 내기로 합의했습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 그렇게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전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로부터도 그런 제안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이 저를 매우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어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1그로트(약 1.7리터)를 꺼내 그들 앞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떠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떠났고, 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은 잠자리에 들지도 못했고,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위아래로 걷기도 하고, 가끔씩 주님께 기도하고 부르짖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들이 함께 허무 속으로, 늙은이들이 함께 땅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네가 보았구나. 젊은이든 늙은이든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모든 사람에게 낯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다가 1643년 7월 9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나는 친척들과 헤어지고 헤어졌습니다.[69] 젊은이든 노인이든 모든 친밀함이나 교제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저는 러터워스로 가서 얼마간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노샘프턴으로 가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런 다음 뉴포트-파그넬로 갔고, 거기서 잠시 머물다가 6월(June)이라고 불리는 넷째 달에 바넷으로 갔습니다.[7] 1644년에.
내가 이렇게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교수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넷에 있는 동안 절망에 빠지게 하는 강한 유혹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그때 저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유혹받으셨는지, 그리고 제가 얼마나 큰 고난에 처해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제 방에 틀어박혀 있기도 하고, 종종 주님을 섬기기 위해 체이스에서 홀로 걸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제게 일어나는지 의아했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며 "과거에 내가 이런 적이 있었던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제가 친척들을 버렸기 때문에 그들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낸 모든 시간을 떠올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혹은 점점 더 커졌고 나는 거의 절망에 빠질 뻔했습니다. 사탄이 그런 식으로 나에게 계획을 이룰 수 없게 되자, 그는 나를 끌어들여 어떤 죄를 짓게 할 올가미와 미끼를 놓았고, 그것을 이용하여 나를 절망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70]
이러한 수행을 시작했을 때 저는 스무 살쯤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그 상태로 계속 고통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떨쳐버리고 싶었습니다. 위로를 얻으려고 여러 사제들을 찾아다녔지만,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위로도 얻지 못했습니다.
바넷에서 런던으로 가서 하숙을 했는데, 그곳에서 엄청난 비참함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런던 시의 위대한 신앙인들을 바라보니 온통 어둠과 어둠의 사슬에 묶인 듯했습니다. 그곳에는 피커링이라는 침례교인 삼촌이 계셨는데, 침례교인들은 온순했습니다.[8] 그러나 나는 그에게 마음을 전할 수도, 그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다. 젊은이든 노인이든 모두가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친절한 사람들은 내가 머물기를 바랐지만 나는 두려웠다. 나는 부모님과 친척들을 생각하며 레스터셔로 돌아갔다. 그들이 내가 없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을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반환됨[9] 레스터셔로 갔을 때 친척들은 나를 결혼시키려 했지만, 나는 아직 어리고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군인들 사이에서 보조 부대에 들어가기를 바랐습니다.[G] 하지만[71] 나는 거절했고, 그들이 나에게 그런 제안을 해서 마음이 아팠다. 어린 나이였기에 그랬다. 그런 다음 코번트리로 가서 한 교수의 집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 마을에는 나약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사람들이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나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약 1년 동안 깊은 슬픔과 괴로움 속에 머물렀다. 그리고 여러 날 밤을 혼자 걸었다.
그때 내가 태어난 드레이튼의 신부, 나다니엘 스티븐스라는 분이 자주 나를 찾아오셨고, 나도 자주 그분께 갔으며, 다른 신부님도 가끔 그와 함께 오셨습니다. 그분들은 내 말을 들으려고 자리를 비켜주셨고, 나는 그들에게 질문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스티븐스 신부님은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는지, 그리고 왜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는지 물으셨습니다. 나는 그분께 그 당시 온 인류의 죄와 그들의 불의와 허물이 그분 위에 있었으며, 그분은 그 죄들을 짊어지시고 사람으로서 제물이 되셔야 했지만, 하나님으로서는 죽지 않으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시고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셨기에, 그분은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나는 그때 그리스도의 고난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제는 매우 훌륭하고 충만한 대답이며,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대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칭찬하고 극찬했습니다. 그리고 평일에 내가 그에게 설교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72] 첫날,[10] 그래서 나는 그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제는 나중에 나의 큰 박해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나는 또 다른 고대 사제에게 갔습니다.[H] 워릭셔의 맨서터에서 그와 절망과 유혹의 근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 상황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제게 담배를 가져다가 시편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담배는 제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고, 시편을 부를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오라고 하며 많은 것을 말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갔을 때 그는 화를 내고 심술궂어했습니다. 제가 전에 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 고민과 슬픔, 비통함을 하인들에게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들은 우유를 짜는 아가씨들에게까지 퍼졌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야 했던 것이 너무나 마음 아팠습니다. 그들이 모두 비참한 위로자라는 것을 알았고, 이는 제 고민을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탬워스 근처에 사는 한 신부에 대해 들었는데, 그는 경험 많은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그에게 7마일을 갔지만, 그는 마치 텅 빈 통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또한 Coventry의 Dr. Cradock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73] 그리고 그에게 갔습니다. 저는 그에게 유혹과 절망의 근거가 무엇이며, 어떻게 인간에게 고난이 찾아오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제게 "그리스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구였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마리아가 그분의 어머니였고, 그분은 요셉의 아들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의 정원을 함께 걷고 있었는데,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니, 우연히 발이 침대 옆에 닿았습니다. 그 남자는 마치 집에 불이 난 것처럼 격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모두 끊어졌고, 저는 슬픔에 잠겨 돌아섰습니다. 처음 왔을 때보다 더 심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불쌍한 위로자로 여겼고, 그들이 제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제 상황에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나는 또 다른 곳, 마참으로 갔습니다.[저는] 높은 지위에 있는 제사장입니다. 그분께서 제게 약을 처방해 주시고 피를 흘리게 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제 팔이나 머리에서 한 방울의 피도 뽑을 수 없었습니다(그들이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말입니다). 제 몸은 슬픔과 근심, 그리고 고난으로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나 컸기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악과 허영심을 보지 않았을 것이고, 귀머거리로 태어났더라면 헛되고 사악한 말이나 주님의 이름이 모독당하는 것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날이 왔을 때, 다른 사람들이 잔치를 벌이고 흥청망청 놀고 있을 때, 나는 가난한 과부들을 집집마다 찾아가 돈을 주곤 했습니다. 결혼식에 초대받았을 때 ([74]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나 그 직후에 나는 그들을 방문했고, 그들이 가난하면 약간의 돈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궁핍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1]
1646년 초, 내가 코번트리로 가서 성문에 다다르자 “모든 기독교인은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 모두 신자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12] 만일 모든 사람이 믿는 자라면 다 하나님에게서 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요, 그런 자가 아니면 참된 믿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믿는 자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참된 믿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또 어느 날, 내가 첫날 아침 들판을 걷고 있을 때,[75] 주님께서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 자란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될 자격을 갖추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제게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믿음이었기에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게 그것을 열어 주시자 저는 그것을 분명히 깨달았고, 만족하며 그날 아침 이 사실을 제게 열어 주신 주님의 선하심에 감탄했습니다. 이 말씀은 스티븐스 신부님의 사역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 자란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될 자격을 갖추기에 충분하지 않다." 제 안에서 열린 그 깨달음은 신부님의 사역에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친척들은 제가 그들과 함께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지 않겠다고 해서 몹시 걱정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들고 혼자서 과수원이나 들판에 가곤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사도가 신자들에게 기름 부음으로 가르치는 대로만 하면 된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성경이고 사실임을 알았지만, 제가 이 문제에 대해 그들과 함께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러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했습니다. 저는 진정한 신자가 된다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 자란다고 해서 어떤 사람이 자격을 갖추거나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76] 그리스도의 목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서 저는 그들과 다른 어떤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낯선 사람처럼 지내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의지했습니다.
또 다른 때에,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손으로 만든 성전에 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제 안에서 밝혀졌습니다. 처음에는 이 단어가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제사장들과 백성들 모두 성전이나 교회를 무서운 곳, 거룩한 땅,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명령하고 세운 성전에 거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하신다는 것을 제게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스데반과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손으로 만든 성전에 거하지 않으시고, 심지어 한때 건축하라고 명령하셨던 성전에도 거하지 않으신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끝내신 후에는, 그분의 백성이 그분의 성전이 되었고, 그분은 그 성전 안에 거하셨습니다.
들판을 지나 친척 집으로 걸어가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나다니엘 스티븐스 신부가 그곳에 있었다며, 새로운 빛을 좇는 저를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그와 그의 형제들에 대해 제 안에 열어 주신 것을 알고 저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친척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부들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을 들으러 갔고, 제가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해서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성경을 가져갔습니다.[J] 그리고 그들에게 사람 안에는 그를 가르치는 기름부음이 있으며, 주님께서 친히 그의 백성을 가르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7]
저는 또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들에 관해 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들을 하면 사제들과 교수들은 그것이 봉인된 책이라고 말하며 저를 그 책에서 떼어놓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스도께서 그 봉인들을 뜯어내실 수 있으며, 그것들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서신들은 과거 시대에 살았던 성도들에게 기록되었지만, 요한계시록은 장차 올 일들에 대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나는 여자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만났어요.(가볍게 덧붙여 말하자면) 거위보다 나을 게 없다고요.[13] 그러나 나는 그들을 책망하며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내 영이 나의 구원자 하나님을 기뻐합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꿈에 크게 의존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에게 꿈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면 모두 혼동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꿈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이 꿈을 낳기도 하고, 밤에는 사람 안에서 사탄의 속삭임이 들리기도 하며, 꿈속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러한 일에서 벗어나 마침내 친구가 되었습니다.[14]
이제, 나는 큰 기회를 가졌지만, 큰 어려움과 유혹이 여러 번 나에게 닥쳤습니다.[78] 낮이 되면 밤을 바랐고, 밤이 되면 낮을 바랐습니다. 그리고 제 고난 속에서 열린 문들 덕분에 다윗이 말했듯이 "낮은 낮에게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열린 문들을 볼 때마다, 그것들은 서로에게 응답하고 성경 말씀에 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경 말씀을 크게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고난에 처했을 때, 하나의 고난은 다른 고난에 응답했습니다.
1647년 초쯤, 저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더비셔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몇몇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 다음 피크 지방으로 들어가면서,[15] 나는 더욱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 중 일부는 헛된 높은 관념에 빠져 있었습니다.[16] 레스터셔의 일부 지역을 여행하고 노팅엄셔로 들어가면서 나는 온화한 사람들과 매우 온화한 여성을 만났습니다.[79] 이름은 엘리자베스 후튼이었습니다.[17] 나는 이들과 몇 차례 모임을 갖고 강론을 나누었으나 나의 고민은 계속되었고 나는 종종 큰 유혹을 받았습니다.
나는 많이 금식하였고, 여러 날 동안 외딴곳을 걸었으며, 종종 성경을 들고 밤이 될 때까지 움푹 들어간 나무와 외딴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자주 혼자서 슬프게 걸었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서 처음으로 역사하셨을 때 나는 슬픔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모든 시간 동안 저는 어떤 사람과도 신앙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악한 교제를 버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다른 모든 친척들과 작별 인사를 한 후, 주님께서 제 마음을 인도하신 대로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녔습니다. 제가 도착한 마을에서 제 방을 따로 마련하여, 때로는 더 오래, 때로는 더 짧게 한 곳에 머물렀습니다. 두 가지가 두려워서 한 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80] 교수와 세속적인 사람 사이에서 갈등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연약한 젊은이로서 두 사람 모두와 많이 대화하다 상처받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낯선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간직하며 하늘의 지혜를 구하고 주님께로부터 지식을 얻었고, 외적인 일에서 벗어나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겪은 수고와 고생은 매우 컸지만, 그 일들은 끊임없이 이어져 가끔 중단되기도 했고, 때로는 천상의 기쁨에 휩싸여 마치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겪은 비참함을 말할 수 없듯이, 그 비참함은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하나님의 자비를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큰 고난을 겪었을 때, 제 영혼에 베푸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여! 제 고난과 고통이 컸을 때, 그분의 사랑은 지극히 컸습니다. 주님, 당신은 비옥한 밭을 황무지로 만드시고, 황무한 광야를 비옥한 밭으로 만드십니다! 무너뜨리시고 세우시고, 죽이시고 살리십니다! 영광의 주님, 모든 존귀와 영광을 당신께 돌립니다! 영으로 당신을 아는 지식은 생명이지만, 육신의 지식은 죽음을 이룹니다.[18]
[81]
육신에 이 지식이 있는 한, 기만과 자아는 무엇이든지 따르고, 알지 못하는 것에는 예, 예라고 할 것입니다. 세상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한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육적인 지식입니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있었던 삶에서 배교한 자들은 그들의 말씀, 즉 성경을 형식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내어준 생명이나 영으로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혼란 속에 놓여 있으며,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육신을 위해 준비하지만,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 안에서 그분의 법과 명령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즉 그것을 기쁨으로 행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으로부터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한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의 목사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을 듣고 나니, 나는 사제들을 덜 존중하고 비국교도들을 더 돌보기 시작했습니다.[K] 그 중에 내가 본 것은[82] 어느 정도 부드러움이 있었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나중에 설득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도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사제들을 버렸듯이, 따로 설교하는 사람들과 가장 경험 많은 사람들로 여겨지는 사람들도 떠났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모든 사람에 대한 제 모든 희망이 사라져서, 외적으로 저를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 오, 바로 그때, 저는 "네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분은 한 분, 바로 그리스도 예수이시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19] 내가 그것을 듣고 마음이 기쁨으로 뛰었느니라
그러자 주님께서는 왜 이 땅에 내 상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즉, 내가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죄 아래 갇히고 불신앙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으뜸이 되시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빛을 비추시고 은혜와 믿음과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누가 그것을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것을 경험적으로 알았습니다 .
주님을 향한 나의 갈망은 더욱 강해졌고, 어떤 사람이나 책이나 글의 도움 없이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만을 아는 순수한 지식에 대한 열정이 더욱 커졌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성경을 읽었지만, 나는 그분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계시하신 대로 그분을 알게 되었습니다.[83] 열쇠를 가진 자가 누구였는지, 생명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저를 아들에게로 이끄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저를 부드럽게 인도하시어, 끝없이 영원하고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가진 모든 지식이나 역사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을 능가하는 그분의 사랑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제가 그분 없이 있는 제 모습을 보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모든 교제를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이 있는 곳을 정확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제 자신을 보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 사제나 교수, 또는 어떤 종류의 분리된 사람들과도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열쇠를 가지시고 제게 빛과 생명의 문을 열어 주신 그리스도와만 교제했습니다. 저는 모든 육적인 말과 수다쟁이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저는 오직 부패한 것들만 볼 수 있었고, 제 삶은 부패의 짐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깊은 수렁에 빠져 모든 것에 갇혔을 때, 저는 제가 결코 이길 수 있다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 고난과 슬픔, 유혹이 너무 커서 여러 번 절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유혹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같은 마귀에게 어떻게 유혹을 받으시고 그를 이기시고 그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는지, 그리고 그분과 그분의 능력과 빛과 은혜와 영을 통해 저도 이길 수 있음을 제게 보여주셨을 때, 저는 그분 안에서 확신을 가졌습니다. 제가 갇혀 소망도 믿음도 없었을 때, 그분께서 제게 열어 주셨습니다. 저를 비추신 그리스도께서는 믿을 수 있는 빛을 주셨고, 그분께서 친히 제 안에 계시하신 소망을 주셨으며, 깊은 수렁과 약함 속에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그분의 영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84]
그러므로 가장 깊은 고통과 가장 큰 슬픔과 유혹 속에서도, 여러 번 나를 괴롭혔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 나를 지켜 주셨습니다.
제 안에 두 가지 갈증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피조물에게서 도움과 힘을 얻고자 하는 갈증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주이신 주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갈증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제게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왕의 음식과 궁궐, 시중을 들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 외에는 아무것도 제게 위로를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때에 저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보았고, 그 무한함에 감탄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외롭게 걷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분의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동안 영원한 빛과 능력이 나에게 그 사랑을 열어 주었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루어질 것임을, 그리고 그분이 어떻게 이 유혹자 마귀와 그의 모든 일을 정복하고 파괴하며, 그 위에 계시는지, 그리고 이 모든 고난이 나에게 유익하며, 그리스도께서 내게 주신 믿음의 시험을 위한 유혹임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을 열어 주셔서 이 모든 고난과 유혹 속에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제 살아있는 믿음이 자라나 모든 것이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임을 깨달았고, 그분을 믿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내 상태가 가려져 있을 때마다 내 비밀스러운 믿음은 확고히 유지되었고, 그 아래에 있는 희망은 바다 밑의 닻처럼 나를 붙잡아 주었고, 내 불멸의 영혼을 주교에게 고정시켜 주었습니다.[85] 바다 위로, 세상 위로, 온갖 거센 파도와 악천후, 폭풍우와 유혹이 가득한 곳으로 헤엄쳐 가십시오. 하지만 오! 그때 저는 제 고난과 시련, 그리고 유혹들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빛이 나타나자 빛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나타났습니다. 어둠, 죽음, 유혹, 불의, 불경건한 자, 모든 것이 빛 안에서 드러나 보였습니다.
랭커셔에 사는 한 여인이 22일 동안 금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만나러 갔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 보니 그녀가 유혹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께 받은 말씀을 전하고 나서, 그녀의 아버지는 신앙심이 깊은 분이셨기에, 저는 그녀를 떠났습니다.
그 후, 저는 더킹필드와 맨체스터의 교수들 사이로 가서 잠시 머물며 그들에게 진리를 전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확신을 얻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가르침을 통해 그들은 확증을 받고 진리 안에 굳게 섰습니다. 그러나 교수들은 격분하여 모두 죄와 불완전함을 호소했고, 완전함이나 거룩하고 죄 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습니다.[20] 그러나[86] 주님의 권능은 모든 것 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둠과 죄에 얽매여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간청하였고, 그들 안에 있는 부드러운 것을 꺼버렸습니다.
이 무렵, 레스터셔 브로턴에서 침례교도들의 큰 모임이 열렸습니다. 침례교도들 중 몇몇은 침례교에서 분리되었고,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그곳으로 갔으며, 저도 그곳에 갔습니다. 침례교도들은 많이 오지 않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제 입을 열어 주셨고, 영원한 진리가 그들 가운데 선포되었으며, 주님의 능력이 그들 모두를 압도했습니다. 바로 그날 주님의 능력이 솟아나기 시작했고, 저는 성경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부분에서 여러 사람이 확신을 얻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섰으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수들과 다른 사람들과 토론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확신을 얻었습니다.
나는 노팅엄셔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겉으로는 해로운 것들이 내면, 곧 악한 자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개, 돼지, 독사, 소돔과 이집트의 악, 파라오, 가인, 이스마엘, 에서 등의 악의 본성들. 비록 사람들이 겉으로는 보고 있었지만, 나는 이러한 악의 본성을 내면에서 보았습니다. 나는 주님께 부르짖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어찌하여 이러이러하리이까?"[87][L] 내가 결코 그런 악행을 저지르도록 중독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모든 상황에 대한 감각을 가져야 하니, 그렇지 않고서야 모든 상황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에서 나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또한 어둠과 죽음의 바다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바다 위로 무한한 빛과 사랑의 바다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도 저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았고, 큰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자 멀리서나 가까이에서 사람들이 저를 보러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끌려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털어놓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브라운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임종 직전에 저에 대한 위대한 예언과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제가 이루어낼 도구로 삼으실 것에 대해서만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예언은 당시에는 그저 과시적인 존재였던 어떤 사람들에게 성취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묻혔을 때, 주님의 위대한 역사가 제게 임했고,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제가 죽었다고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이 약 14일 동안 저를 보러 왔습니다. 마치 제 몸이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변화된 것처럼, 제 얼굴과 모습이 크게 바뀌었습니다.[88][21] 나의 슬픔과 근심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기쁨의 눈물이 나에게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겸손과 상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밤낮으로 울 수 있었습니다.
나는 끝이 없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과 무한함을 보았습니다. 나는 어둠과 죽음의 바다를 통과했고, 사탄의 권세를 뚫고 이겨냈으며, 그리스도의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권능으로 말미암아 인도되었습니다. 심지어 온 세상을 덮고 모든 것을 쇠사슬로 묶고 죽음 안에 가두었던 그 어둠을 통과하여 인도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겪게 해 준 바로 그 하나님의 영원한 권능이 후에 나라들과 제사장들과 교수들과 백성들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영적인 바빌론, 소돔, 이집트, 그리고 무덤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으로 나는 그곳에서 나와 그곳을 정복하고, 그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능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추수가 희어지고 하나님의 씨앗이 땅에 빽빽이 심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겉으로 심은 밀이 거두어들여진 것처럼, 아무도 그것을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눈물로 애통했습니다.
내가 분별력 있는 젊은이라는 소문이 퍼져 나갔고 이에 많은 사람이[89]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교수들, 사제들, 그리고 백성들이 나에게 찾아왔다.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자 나는 큰 계시와 예언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들은 주의 깊게 조용히 듣고는 떠나가 그 명성을 퍼뜨렸다.
그러자 유혹하는 자가 나타나 다시 나를 공격하며 내가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지었다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죄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의 상태가 떠올랐습니다. 그가 셋째 하늘로 들려 올라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본 후, 사탄의 사자가 그를 때리려고 보내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저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그 유혹도 이겨냈습니다.
[90]
제2장.
사역의 첫 해들
1648-1649년.
그 후[M] 저는 맨스필드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교수들과 신자들이 큰 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기도하게 되었고, 주님의 능력이 너무나 강해서 마치 집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기도를 마치자, 교수들 중 몇몇은 지금이 사도들 시대처럼,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집이 흔들렸다고 말했습니다.[22] 내가 기도한 후에 한 교수가 기도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죽음과 베일을 가져왔습니다. 다른 교수들은 그를 슬퍼하며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시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와서 다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의 뜻대로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들의 또 다른 큰 회의가 있었고, 아모르 스토다드라는 이름의 대장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91] 보이지 않는 성령, 곧 그리스도의 피가 직접 열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 가운데서 외쳐 말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피를 보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과 양심에 뿌려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을 너희 마음에 두고 보라." 새 언약의 피가 어떻게 마음에 임하는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23]
교수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피가 그들 없이만 존재하기를 바랐고, 그들 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토다드 대위가 다가와서 "젊은이가 말하게 하라. 젊은이가 말하도록 하라."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여러 말로 나를 압도하려 드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또한 온유한 사제들로 구성된 무리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켈렛이었고, 온유한 몇몇 사람들이 그들의 말씀을 들으러 갔습니다. 저는 그들을 따라가 주님의 가르침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라고 권하고 싶었습니다. 켈렛 사제는 당시에는 목사관에 반대했지만, 나중에는 큰 목사관을 얻어 박해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지역에서 어느 정도 근무한 뒤 더비셔를 거쳐 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92] 레스터셔에서도 여러 명의 친절한 사람들이 설득되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다가 워릭셔에서 많은 교수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들판에서 기도하며 성경을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성경을 주었고, 저는 마태복음 5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해석하시는 것을 보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내면의 상태와 외면의 상태를 모두 열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격렬한 다툼에 빠져 결국 갈라섰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장로교인, 독립교인, 침례교인 및 공동기도자들이 모여서 논쟁을 벌이는 레스터에서 큰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N]은 모두 참여했다고 합니다. 모임은 첨탑이 있는 집에서 열렸는데, 저는 주 하나님께 감동을 받아 그곳으로 가서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담화와 논증을 들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신도석에, 어떤 목사는 설교단에 앉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마침내 한 여인이 베드로에게 질문했습니다. “그 탄생이란 무엇입니까? 썩지 않는 씨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히 살아 있고 거하는 거듭남입니까?” 그러자 사제가 그녀에게 “저는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전에 누구에게나 말할 자유를 주었지만 말입니다. 그러자 저는 마치 황홀경에 빠진 듯 주님의 권능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제에게 “이곳(첨탑)을 교회라고 부르십니까? 아니면 이 섞인 무리를 교회라고 부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질문한 여인에게 사제는 누구에게나 말할 자유를 준 후 대답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대답하는 대신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93] 교회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에게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며, 살아있는 돌들, 살아있는 지체들,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영적인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섞인 무리의 머리도, 석회와 돌과 나무로 지어진 낡은 집의 머리도 아니었습니다.[24]
이 일로 그들 모두가 불타올랐습니다. 신부는 설교단에서 내려왔고, 다른 사람들도 신도석에서 내려왔습니다. 그곳에서의 논쟁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저는 큰 여관에 가서 신부들과 교수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쟁했는데, 그들은 모두 불타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모두 포기하고 도망칠 때까지 참된 교회와 그 교회의 참된 우두머리를 그들의 머리 위에 두었습니다. 한 남자가 사랑하는 듯 보이며 잠시 저와 함께하려고 했지만, 곧 저를 등지고 한 신부와 함께 유아 세례를 간청했습니다. 그 자신도 전에 침례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저를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여러 사람이 설득당했습니다. 질문을 한 여자와 그녀의 가족도 설득당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권능과 영광이 모든 사람 위에 비쳤습니다.
그 후 나는 다시 노팅엄셔로 돌아와서 비버 계곡으로 들어갔다.[25] 내가 가다가[94] 사람들에게 회개를 전파했습니다. 비버 계곡의 여러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했습니다. 제가 그들 가운데 몇 주 동안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침, 불 옆에 앉아 있는데 거대한 구름이 저를 덮치며 유혹이 저를 에워쌌습니다. 저는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자연에서 비롯된다"라는 말이 있었고, 원소와 별들이 저를 덮쳐 마치 구름에 가려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만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집 안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 아래 가만히 앉아 구름을 그대로 두자, 제 안에서 살아있는 희망과 진실된 목소리가 솟아올랐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다."[26] 그러자 구름과 유혹이 곧 사라지고 생명이 그 모든 것 위에 솟아올랐습니다. 내 마음이 기뻤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신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자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들과 큰 논쟁을 벌여 그들을 뒤집어, 그들 중 몇몇에게 살아 계신 신이 계시다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그제야 제가 그런 훈련을 받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깨달았습니다.[O] 우리는 그 지역에서 큰 집회를 가졌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그 나라 그 지역에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노팅엄셔로 돌아와 보니, 그곳에서 뿔뿔이 흩어진 침례교도들과 그 외 다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강력하게 역사하여 많은 사람들을 모아주셨습니다. 그 후 맨스필드로 가서 그곳을 떠났습니다.[95] 주님의 능력이 맨스필드와 그 주변의 다른 마을에서 놀랍게 나타났습니다.
더비셔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놀라운 방식으로 역사했습니다. 더비 근처 마을인 이튼에서 친구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27]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타나 그들이 크게 흔들리고 많은 입이 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감동을 받아 첨탑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영원한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제가 맨스필드에 있을 때, 어느 날 판사들이 하인 고용에 관한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판사들에게 가서 하인들의 품삯을 압제하지 말라고 말씀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앉아 있는 여관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있는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침에 와서 그들과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고, 저는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멀었습니다. 저는 여관 주인에게 그날 판사들이 어디에 앉을지 물었습니다. 그는 8마일 떨어진 마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96] 시력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해서, 나는 최대한 빨리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있는 집에 도착했을 때, 많은 하인들과 함께, 나는 판사들에게 하인들의 품삯을 압제하지 말고, 그들에게 옳고 정당한 일을 하라고 간곡히 권했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도 의무를 다하고 정직하게 일하라고 간곡히 권했습니다.[28] 그들은 다 내 권면을 친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내가 주님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저는 맨스필드와 다른 곳들에 있는 여러 법정과 첨탑들을 찾아가 압제와 맹세를 버리고, 거짓에서 주님께로 돌이켜 정의를 행하라고 경고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맨스필드에서 법정에 다녀온 후, 저는 그 나라에서 가장 악한 사람 중 한 명, 즉 흔한 술주정뱅이에 악명 높은 매춘부, 그리고 시를 짓는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의 악행을 질책했습니다.
내가 말을 마치고 그를 떠나자, 그가 내 뒤를 따라와서는 내가 말을 건넨 후 너무 충격을 받아 기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남자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악행에서 돌아서서 정직하고 냉정한 사람으로 남아, 그를 전에 알았던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일은 계속 진행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섰습니다.[97] 1646년, 1647년, 1648년의 이 3년 동안 여러 곳에서 다양한 교우 모임이 열렸고, 그들은 하나님의 빛과 영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점점 더 놀랍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영으로 불타는 칼을 통해 하나님의 낙원으로 올라갔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고, 모든 창조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전과는 다른 향기를 제게 주었습니다. 나는 순수함과 결백함, 그리고 의로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되어, 타락하기 전 아담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창조물이 내게 열렸고, 만물이 그 본성과 덕에 따라 어떻게 이름이 지어졌는지 보여졌습니다.
주님께서 만물의 본질과 미덕을 제게 열어 보이셨기에, 인류의 선을 위해 의사 일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즉시 영으로 들려 올라가 아담의 무죄함보다 더 확고한 상태, 곧 결코 타락하지 않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상태를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권능과 빛 안에서 그분께 충실한 자들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상태로 회복될 것임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상태에서 창조의 놀라운 업적과 그 미덕들은 그것들을 만드신 지혜와 권능의 거룩한 말씀이 열어 보이심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대한 일들로 인도하셨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깊이가 나에게 열렸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복종하게 되면서[98] 하나님의 영을 받고 전능하신 분의 형상과 능력으로 자라나면, 모든 것을 열어주는 지혜의 말씀을 받고 영원하신 존재 안에 숨겨진 일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29]
이렇게 저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주님을 섬기며 나아갔습니다. 제가 노팅엄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그곳 친구들 가운데 함께했습니다.[30] 거기서 나는 레스터셔의 클로슨, 비버 계곡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강력한 힘이 그곳에도 나타났고, 친구들이 모인 여러 마을과 도시에도 나타났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는 동안 주님께서는 세상의 세 가지 위대한 직업, 곧 법학, 의학, 그리고 신학(소위 신학)에 관한 세 가지 사실을 제게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의사들이 피조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99] 피조물들의 덕목을 알지 못하였으니, 그들이 지음받은 지혜의 말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제사장들이 그리스도께서 창시하신 참된 믿음, 곧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고 승리를 주며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믿음에서 벗어났음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 믿음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그 믿음의 신비는 순수한 양심 안에 간직되어 있다. 그는 또한 율법 학자들이 형평성, 참된 정의,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에서 벗어났음을 내게 보여 주었다. 이 율법은 첫 번째 범죄와 모든 죄를 극복하고 사람 안에서 근심하고 범한 하나님의 영에 응답한다. 그리고 이 세 사람, 즉 의사, 제사장, 율법 학자들은 하나님의 지혜, 믿음, 그리고 형평성과 율법으로 세상을 다스린다. 한 사람은 육체의 치유를 주장하고, 다른 한 사람은 영혼의 치유를 주장하며, 세 번째 사람은 백성의 재산을 보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지혜, 믿음, 형평성과 완전한 율법에서 벗어났음을 보았다.
주님께서 제게 이러한 것들을 열어 주셨을 때, 저는 그분의 능력이 모든 것 위에 임하여, 모든 사람이 그 능력을 받아들이고 그 능력에 복종한다면 변화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제사장들은 변화되어 하나님의 선물인 참된 믿음으로 인도될 수 있었습니다. 율법사들은 변화되어 하나님의 율법으로 인도될 수 있었는데, 그 율법은 하나님의 [내주하시는 영]에게 응답하는 것이었습니다.[31] 이는 모든 사람 안에 있는 것이니 범하는 것이니라[100]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하지만 이 원칙에 귀 기울이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이는 사람이 이웃에게 해를 끼치면 자신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임을 깨닫게 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도록 가르칩니다. 의사들은 개혁되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 안으로 인도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피조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고, 피조물을 창조하고 지탱하는 지혜의 말씀이 그들에게 주신 미덕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에 관하여 풍성함이 열렸습니다. 곧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람이 처음에 창조되었을 때의 의로움과 거룩함에서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빛을 믿고 빛 안에서 행하니, 이 빛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신 빛이며, 빛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날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신성한 빛, 곧 모든 것을 창조하신 영적인 천상의 사람으로 말미암아 보입니다.
더욱이 내가 그분의 형상으로 양육되었을 때[101] 의로움과 거룩함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낙원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담이 어떻게 산 영혼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즉 여러 시대와 세대로부터 감춰져 있던 신비를 보게 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말하기 어렵고 많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가 대화했던 기독교계(소위)의 모든 종파 중에서 아담의 완전함, 즉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형상, 의로움과 거룩함에 이르러 아담처럼 깨끗하고 순결하며 죄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견딜 수 없는 사람을 아무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지상에 있는 동안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지녔던 것과 같은 능력과 영으로 나아갈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도 견딜 수 없는 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분량에까지 자라날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 글을 기록할 때 사용된 동일한 영 없이는 아무도 그들의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이제 주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성한 빛으로 깨달음을 받았다는 것을 나에게 열어 주셨습니다.[32] 그리고 나는 그것이 모든 것을 통해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자들은 정죄에서 나와 생명의 빛으로 그것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미워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그것에 의해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공언했지만 말입니다.[102] 그리스도의. 나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순수한 빛의 열림 속에서 이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에서 그것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몰랐지만, 나중에 성경을 탐구하여 발견했습니다. 성경이 주어지기 전에 존재했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경을 전하도록 인도했던 그 빛과 영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나 그리스도, 또는 성경을 올바르게 알고자 한다면, 성경을 전한 사람들이 인도받고 가르침을 받았던 그 영에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어느 날, 들판을 걷고 있을 때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름은 창세 전부터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느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저는 믿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탄생을 보았습니다. 얼마 후 주님께서는 가시덤불이 우거진 광야와 같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강력한 권능으로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갔을 때, 세상은 부풀어 오르고 바다의 거센 파도처럼 요란했습니다. 제가 그들 가운데 주님의 날을 선포하고 회개를 전파하러 갔을 때, 제사장들과 교수들, 행정관들과 백성들은 모두 바다와 같았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빛 안에서 그분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 권세는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얻었던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을 성경을 주시는 성령께 인도하여 모든 진리로 인도해야 했습니다.[103] 그리고 그것들을 내어준 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나는 성경을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나에게 매우 귀중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성경이 주어진 그 영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 안에 열어 주신 것이 나중에는 성경에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내용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었고, 여러 권의 책을 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 짧아서 하나님께서 나를 임명하신 봉사를 위해 준비시키고, 적합하게 만들고, 공급해 주신 무한한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다 설명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탄의 심오함을 깨닫게 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의 영원한 왕국에 숨겨진 신성한 신비를 열어 주셨습니다.
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어 그분의 영원한 복음과 왕국을 전파하게 하셨을 때, 나는 사람들을 내면의 빛과 영과 은혜로 돌이키라는 명령을 받고 기뻤습니다.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고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신성한 영이 그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할 것이며, 나는 그 영이 결코 누구도 속이지 못할 것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33]
그러나 나는 이 신성한 능력과 하나님의 영, 그리고 예수님의 빛으로 사람들을 이끌어내야 했습니다.[104] 그들 자신의 모든 길에서 벗어나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이신 그리스도께로,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고 모은 그들의 교회에서 벗어나 하늘에 기록된 총회, 곧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로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세상 사람들이 만든 교사들로부터 이끌어 내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배우게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신 그분을 말입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예배에서 벗어나 내면에서 진리의 영을 알고 그 영의 인도를 받게 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안에서 영의 아버지를 예배하게 되었는데, 그분은 자신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나는 진리의 영으로 예배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예배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을 세상의 모든 헛된 종교에서 이끌어 내어 순수한 종교를 알게 하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며 세상의 오물에서 스스로를 지키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완악함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내 마음을 자주 슬프게 했던 거지들이 그렇게 많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들을 세상의 모든 교제와 기도와 노래에서 데려내어, 권능이 없는 형태로 서 있는 그들의 교제가 성령과 하나님의 영원한 영 안에 있게 하고, 그들이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영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오는 은혜로 노래하며, 그들의 마음으로 주님께 찬양을 드리게 하려 하였습니다.주님께서는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을 그들의 구주로 보내셨고, 그분의 하늘의 태양이 온 세상에 비치게 하셨으며, 그분의 하늘의 비가 의롭고 거룩한 자들에게 내리게 하셨습니다.[105] 불의는, 그분의 외부에서 내리는 비와 그분의 외부에서 내리는 태양이 모든 사람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유대교의 의식과 이교의 우화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했습니다.[34]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을 이리저리, 종파에서 종파로 이리저리 휘두르던 사람들의 발명품과 세속적인 교리들로부터 벗어나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초보적인 기초와 그리스도의 사역자를 만들기 위한 학교와 대학들로부터 벗어나십시오.그들은 사실 그들 스스로 만든 사역자이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형상과 십자가와 유아 세례와 모든 성일(소위)과 사도 시대 이래로 그들이 제정해 온 모든 헛된 전통들로부터 벗어나십시오.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항하여 권능을 주셨습니다.나는 이 권능의 공포와 권위 속에서 그들 모두에게 대항하여 선포하도록 감동을 받았고, 그리스도에게서 값없이 받지 않은 자로서 값없이 전파하지 않은 모든 자들에게 대항하도록 감동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주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을 때,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도 모자를 벗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자든 가난하든, 크든 작든 관계없이 모든 남자와 여자에게 당신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35] 내가 위아래로 여행할 때 나는[106]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도, 누구에게도 절하거나 다리를 긁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종파와 신앙 고백자들이 격노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능이 저를 모든 것을 그분의 영광으로 인도하셨고, 많은 사람들이 짧은 시간 안에 하나님께로 돌아섰습니다. 주님의 하늘의 날이 위로부터 솟아올라 빠르게 밝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 빛으로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 우리가 사람들에게 모자를 벗지 않았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구타와 주먹질, 매질, 그리고 투옥을 당했는지! 어떤 이들은 모자를 잔인하게 빼앗겨 내던져져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우리가 받은 욕설과 악의적인 언사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이 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위험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자신들이 진정한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 위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눈에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모든 교수와 사제들 사이에는 놀라운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감사드리며 많은 사람들이 남자들에게 모자를 벗는 그 관습의 허무함을 깨닫고 진리의 증거의 무게를 느꼈습니다.[P] 그것에 반대합니다.
이 무렵 나는 정의를 위해 그들의 법정에 가서 외치고, 판사와 재판관들에게 정의를 위해 말하고 글을 쓰고, 오락을 위해 술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데 몹시 열중했습니다.[107] 그들은 사람들에게 유익 이상의 술을 마시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밤샘 파티, 잔치, 5월 게임, 스포츠, 연극, 쇼 등에 대해 증언하면서, 이런 것들은 사람들을 허영심과 방탕함으로 길들이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휴일로 정해진 날들은 대개 이런 일들로 하나님을 가장 모독하는 때였습니다.
또한 박람회와 시장에서도 그들의 사기적 상품과 사기, 강탈에 대하여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대하고, 진실을 말하고, '예'는 '예'로, '아니오'는 '아니오'로 하며,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올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에 대하여 미리 경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온갖 종류의 음악과 무대에서 장난치는 광대들을 반대하며 외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순결한 삶에 짐을 지우고 사람들의 마음을 허영심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학교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들을 만나 많은 연습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절제를 가르쳐 경박함, 허영심, 방탕함으로 길들여지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가정의 부모들과 교장 선생님들에게도 자녀와 하인들이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교육받고, 스스로 그들에게 절제와 덕행의 본보기가 되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사제들의 세속적인 정신이 내 삶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종소리가 사람들을 첨탑 집으로 모으는 것을 들었을 때, 그것은 내 삶을 강타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을 모으는 시장의 종소리와 같았습니다.[108] 제사장들이 자기 물건을 팔아 치우도록 말입니다. 아, 그들이 성경을 파는 장사와 설교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은 얼마나 막대한지! 가장 높은 주교부터 가장 낮은 사제까지! 세상에 이와 비교할 만한 장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은 값없이 주어졌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역자들에게 값없이 설교하라고 명하셨으며,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돈을 탐하는 모든 삯꾼들과 점쟁이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의 이 자유로운 영으로 나는 생명과 화해의 말씀을 값없이 선포하도록 보내졌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값없이 주시고, 남자와 여자가 타락하기 전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께 나아와서,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앉을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109]
제3장
도전과 감옥의 첫 맛
1648-1649년.
첫날 아침, 친구들과 함께 노팅엄으로 가던 중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자 거대한 첨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저 거대한 우상과 그 안에 있는 예배자들을 향해 외쳐야 한다."
나는 함께 있던 교우들에게 이 사실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모임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주님의 강력한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있었습니다. 나는 교우들을 모임에 앉아 있게 한 후, 첨탑으로 갔습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묵은 땅처럼 보였고, 사제는 (큰 흙덩어리처럼) 위층 설교단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의 이 말씀을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더욱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등불과 같아서 새벽이 밝아오고 새벽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이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옳도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성경이며, 이를 통해 모든 교리와 종교와 의견을 시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능력이 나에게 너무나 강력하게 임했고, 내 안에서 너무나 강해져서 나는 붙잡을 수 없었고, “아니요, 그것은 성경이 아닙니다!”라고 외치게 되었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즉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을 통해 전하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110] 성경을 제시하여 의견, 종교, 그리고 판단을 시험하게 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진리로 인도하여 모든 진리에 대한 지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령을 거역하고 밝은 새벽별이신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을 박해하고 성경으로 그들의 교리를 시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판단에서 오류를 범했고, 성령 없이 시험했기 때문에 올바르게 시험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관리들이 와서 나를 끌고 가서 더럽고 냄새나는 감옥에 가두었습니다.[36] 그 냄새가 내 코와 목에 너무 많이 들어와서 몹시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날 주님의 권능이 그들의 귀에 너무나 강하게 울려 퍼졌기에 그들은 그 목소리에 놀랐고, 그 후로도 한동안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첨탑 위에서 주님의 권능에 깊이 감동되었습니다. 밤이 되자 그들은 저를 시장, 시의원, 그리고 보안관 앞으로 데려갔습니다. 제가 그들 앞에 끌려갔을 때 시장은 짜증스럽고 화를 잘 냈지만, 주님의 권능이 그를 진정시켰습니다. 그들은 저를 심문했고, 저는 주님께서 저를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하셨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들과 저는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저를 다시 감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얼마 후, 보안관장인[111] 이름은 존 레클리스였고, 저를 그의 집으로 부르러 오셨습니다. 제가 집에 들어가자 그의 아내가 현관에서 저를 맞으며 "구원이 우리 집에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제 손을 잡았고, 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남편과 자녀들, 그리고 하인들은 주님의 능력이 그들에게도 역사하심으로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나는 보안관 댁에 묵었고, 그의 집에서 중요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세상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가진 몇몇 사람들이 그들을 찾아왔고, 주님의 권능이 그들 가운데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 보안관은 다른 보안관과, 그들이 거래했던 한 여자를 불러왔습니다. 그는 다른 보안관 앞에서, 그들이 그녀와 거래하면서 그녀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습니다(다른 보안관과 그는 동업자였습니다). 그들은 그녀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쾌활하게 말했지만, 다른 보안관은 부인했고,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친절한 보안관은 사실이며, 다른 보안관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한 그는 여자에게 배상하고 다른 보안관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이 친절한 보안관과 함께했고, 그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큰 기회를 얻었습니다.
다음 장날, 그가 나와 함께 방을 걷다가 "시장에 가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설교해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슬리퍼를 신고 시장과 여러 거리를 돌며 사람들에게 회개를 설교했습니다. 마을의 다른 몇몇 사람들도 감동을 받아 설교했습니다.[112] 시장과 치안판사들, 그리고 시민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러자 치안판사들은 매우 화가 나서 보안관 관저에서 저를 불러들여 일반 교도소에 보냈습니다.
순회재판이 시작되었을 때, 한 사람이 와서 나를 위해, 몸으로 몸으로, 아니 목숨으로 자신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판사 앞에 끌려가야 했을 때, 보안관이 저를 법정으로 데려가는 데 시간이 좀 걸렸고, 판사는 제가 도착하기도 전에 일어섰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판사는 기분이 상해서 "그 청년이 제 앞에 끌려왔다면 훈계했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수감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 일반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주님의 권능은 친구들 사이에서 위대했지만, 백성들은 매우 무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성의 관리가 병사들을 보내 그들을 해산시켰습니다. 그 후로 그들은 조용해졌습니다. 사제들과 백성들 모두 그 놀라운 권능에 놀랐습니다. 몇몇 사제들은 마음이 부드러워졌고, 어떤 이들은 주님의 권능을 고백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노팅엄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그곳에서 풀려난 후에도 예전처럼 주님의 사역을 위해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맨스필드-우드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한 의사가 머리카락을 귀까지 풀어헤친 채 정신없이 움직이는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의사는 그녀의 피를 흘리게 하려고 했습니다.[37] 그녀가 먼저 묶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에 있었습니다.[113] 그는 그녀를 폭력으로 붙잡았지만 그녀에게서 피를 얻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그녀의 속박을 풀어주고 내버려 두기를 바랐다. 그들은 그녀를 괴롭히는 그녀의 영을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의 속박을 풀어주었고, 나는 그녀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주님의 이름으로 조용히 하라고 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했다. 주님의 권능이 그녀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고, 그녀는 회복되었다. 그 후 그녀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그 진리 안에 거했으며, 주님의 이름은 영광을 받았다.
그 당시 하늘의 권능으로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전능하신 팔을 드러내시고,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시는 치유의 능력으로 그분의 권능을 나타내셨으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큰 병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마귀들은 그분의 이름으로 복종했습니다. 이 불신하는 세대가 감당하거나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주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내가 Mansfield-Woodhouse에 있는 동안 나는 그곳의 첨탑집으로 가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게 되었습니다.[114] 사제와 백성들에게 진실을 전했지만, 백성들은 격노하여 저에게 달려들어 저를 때리고 거의 질식시켜 숨 막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손과 성경, 막대기로 잔인하게 구타당하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제가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끌어내어 수갑을 채웠습니다. 저는 그 수갑에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 채찍과 말 채찍을 들고 와서 저를 때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저를 한 기사의 집에서 치안판사 앞에 세웠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얼마나 악하게 이용당했는지 보고 여러 차례 위협한 후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례한 사람들은 제가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저는 받은 심한 학대 때문에 거의 움직이거나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마을에서 약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마음속으로 상처받은 저를 위로해 줄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권능이 곧 저를 다시 치유해 주었습니다. 그날 몇몇 사람들이 주님의 진리를 확신하고 그분의 가르침으로 돌아섰고, 저는 그 사실에 기뻤습니다.
그 후 저는 몇몇 교우들과 함께 레스터셔로 갔습니다. 그 지역에는 침례교도들이 몇 명 있었는데, 저는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공적 예배에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주요 교사 중 한 명인 오츠와 다른 지도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다른 몇몇 사람들이 배로에서 우리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믿음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하자 나는 그들에게 믿음이 무엇이고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115] 그것은 사람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외면하고 물세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들에게 죄의 산이 그들 안에서 무너져 내려 낮춰졌고, 그들의 거칠고 굽은 길이 평탄하고 곧아졌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외적인 산과 길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38]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런 것들을 그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의아해하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누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주었고, 누가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나머지 사도들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물으며, 성경을 근거로 이들이 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린 유다가 스스로 목을 매달았는데, 바울이 말한 멸망의 아들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이라 불리는 모든 것 위에 높여진 그 유다는 누구였습니까? 그리고 이 멸망의 아들이 앉아 있던 하나님의 성전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저는 그들에게 자기 안에서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자가 밖에서 그리스도를 배반한 유다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Bagworth에 도착하여 첨탑이 있는 집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몇몇 친구들이 있었습니다.[116]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은 사제와 함께 그들을 가두고 자신들도 가두었습니다. 사제가 문을 닫자 그들이 문을 열었고, 우리도 들어가 그들 가운데서 주님을 위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후 우리는 마을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몇몇은 높은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다가 종교 때문에 코번트리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옥으로 걸어가는 동안 주님의 말씀이 제게 임했습니다. "내 사랑은 항상 너에게 있었고, 너는 내 사랑 안에 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꼈고, 제 속사람은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수들이 있는 감옥에 도착했을 때, 강한 어둠의 권세가 저를 덮쳤습니다. 저는 가만히 앉아 제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모여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 죄수들은 고함치고, 욕설을 퍼붓고, 신성모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영혼은 매우 비통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런 일들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잠잠해지자, 저는 일어서서 그들에게 그런 일들을 몸짓으로 하는지, 아니면 성경 말씀으로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성경 말씀으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성경이 놓여 있었는데, 저는 그들에게 그 성경 말씀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보자기가 내려졌던 곳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거룩하게 된 것을 속되다거나 부정하다고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그 성경 말씀이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자, 그들은 또 다른 성경 말씀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자신과 화해시키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성경 말씀도 인정한다고 말했지만, 그 말씀 역시 그들의 목적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117]
그들이 스스로를 신이라고 말하자, 내일 비가 올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신은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항상 그런 상태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알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말했습니다. "신은 알 수 있고, 변하지 않으시네요. 당신은 신이라고 말하면서도, 변할지 안 할지 알 수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러자 그들은 당황했고, 그 순간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들의 신성모독적인 표현을 질책한 후, 나는 그들이 횡설수설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떠났습니다. 전에는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가기 전에 주님께서 나에게 그렇게 나타나신 것에 감격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횡설수설하는 자들 중 조셉 살몬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는 글을 출판했고, 그로 인해 그들은 석방되었습니다.
[118]
제4장
더비 감옥에서 보낸 1년
1650년-1651년.
시장과 박람회, 그리고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주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흔들지 못한 모든 사람들 안에 죽음과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레스터셔를 지나가다가 트와이크로스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세무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감동을 받아 저는 그들에게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마을에 오랫동안 병들어 누워 있던 큰 사람이 있었는데, 의사들이 그를 포기했습니다. 마을의 몇몇 친구들이 저에게 그를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방으로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그의 기도에 감동하여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간청을 들어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제가 아래층 아래 방으로 내려가 하인들과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을 때, 그의 하인 한 명이 다른 방에서 미친 듯이 뛰쳐나와 손에 칼집 없는 레이피어를 들고 제 옆에 놓았습니다. 저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 불쌍한 사람아! 네 육신의 무기를 어떻게 하려는 거냐? 내겐 지푸라기나 다름없어." 구경꾼들은 크게 당황했고, 그는 격분하여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이 그의 주인에게 전해지자, 그는 그를 일에서 쫓아냈습니다.
[119]
그리하여 주님의 능력이 나를 보호하시고 그 약한 사람을 일으켜 주셨는데, 그는 나중에 친구들을 매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다시 그 마을에 갔을 때, 그와 그의 아내가 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 후 저는 더비셔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친구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체스터필드로 갔는데, 그곳에서 한 영국인이 사제로 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제들을 넘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부분적으로 확신했고, 그곳에서 사제가 되기 전에 진리를 위해 많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을의 사제가 죽자 그는 사제직을 얻었고, 그것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저는 그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으로 말하도록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모든 사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나아가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를 시장 앞에 불러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교도소로 보내겠다고 협박하고는 밤늦게까지 감금했습니다. 그러자 경비원들과 경찰관들이 우리를 마을 밖으로 내쫓고, 마음대로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 한두 명을 데리고 더비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가는 길에 많은 교수들을 만났고, 키드시 공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설득당했습니다.
그 후 더비에 도착하여 한 의사의 집에 누워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마을에도 여러 의사가 더 있었습니다. 제가 방을 걸어가는데, [첨탑 집] 종이 울렸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제 목숨이 위태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주인에게 종이 왜 울렸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그날 그곳에서 큰 강연이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고, 많은 군 장교들과 사제들이…[120] 설교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고, 설교자였던 대령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저에게 감동을 주셔서 그들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자 저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주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한 관리가 와서 제 손을 잡고 저와 함께 있던 다른 두 사람이 치안판사들 앞에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들 앞에 도착한 것은 정오가 지나고 한 시간쯤 지난 후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왜 그곳에 왔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이끄셨다고 말했고,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성전에는 거하지 않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모든 설교와 세례, 그리고 제사도 결코 그들을 거룩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사람이 아니라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여러 말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논쟁하지 말고 그분께 순종하라고 말했습니다.[39]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 가운데 우레처럼 울려 퍼졌고, 그들은 그 앞에 겨처럼 날아갔습니다. 그들은 저를 자주 방 안팎으로 끌고 다니며 앞뒤로 재촉했습니다. 밤 1시부터 9시까지 저를 심문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그들은 제가 휴거에 들렀다고 조롱조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제가 거룩해졌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네, 저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게 죄가 없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네, 저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121] "나의 구주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없애셨으니, 그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중 누가 그리스도냐고 유혹하듯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전부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 도둑질하면 죄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40]
그들이 나를 심문하는 데 지쳐버린 후, 그들은 나와 다른 한 사람을 신성모독죄로 6개월 동안 더비의 교도소에 보냈습니다.[41] 미티무스에 의해 나타날 수 있듯이 여기에 그 사본이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여기 감옥에 있는 동안 여러 교수들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러 왔습니다. 그들이 말하기 전에, 저는 그들이 죄와 불완전함을 변호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신자이고 믿음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누구 안에서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만약"이라고 대답했습니다.[123] 너희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자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만일 사망에서 옮겨졌다면 사망을 가져오는 죄에서도 옮겨진 것이요, 만일 너희의 믿음이 진실하다면, 죄와 마귀를 이길 것이며, 너희의 마음과 양심을 깨끗하게 할 것이요(참된 믿음은 깨끗한 양심에 있기 때문이라), 너희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시 그분께 나아갈 수 있게 할 것이니라."
하지만 그들은 순결함, 죄와 마귀에 대한 승리에 대해 듣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덤 이편에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거룩한 사람들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 중얼거리는 것을 그만두라고 명했습니다. 그들은 불경건함을 옹호했습니다.
또 다른 때 교수들이 와서 죄를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소망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네,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당신은 무슨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광의 소망이십니까? 그분이 정결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정결하게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에서 정결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거룩한 사람들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거룩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마음과 삶, 그리고 대화에서 거룩함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마귀에게서 비롯된 부정과 죄를 호소하는데, 그 거룩한 사람들의 말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감옥장은 고매한 자칭 목사였기에 나에게 크게 분노하여 매우 악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께서 그를 치시기를 기뻐하셨기에, 그는 큰 곤경에 빠지고 심한 정신적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방 안을 거닐고 있을 때,[124] 나는 슬픈 소리를 들었고, 그가 가만히 서서 아내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내, 나는 심판의 날을 보았고, 거기서 조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목사와 교수, 판사, 선술집과 술집에서 그를 비난하는 말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저녁 무렵, 그가 내 방으로 들어와서 내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자처럼 너를 대적하였지만, 이제는 어린 양처럼, 바울과 실라에게 떨면서 온 간수처럼 온다." 그리고 그는 나와 함께 묵고 싶어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내가 그의 손아귀에 있다고 말했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니오."라고 말하며 내 허락을 구했고, 항상 나와 함께 있고 싶지만 나를 죄수로 두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는 나 때문에 자기가 병들었고, 그의 집도 병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나와 함께 묵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으며, 내가 말한 참된 믿음과 소망이 사실임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감옥에 갇힌 다른 사람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며, "그 사람은 옳지 않았지만, 당신은 정직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내가 주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러 나가게 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가 나를 보내주지 않아 내가 그 짐을 그에게 짊어졌을 때, 그는 항상 큰 괴로움과 놀라움에 시달리고 한동안 거의 정신을 잃고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에 빠져 거의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그는 일어나 판사들에게 가서 그와 그의 가족이[125] 나 때문에 재앙을 당했습니다. 판사 중 한 명이 (내게 보고했듯이) 나를 가두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재앙이 내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더비 출신의 베넷 판사였는데, 제가 주님의 말씀에 떨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우리를 퀘이커교도라고 처음으로 부른 사람이었습니다.[42] 이것은 1650년이었습니다.
그 후 판사들은 제가 1마일을 걸을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결말을 알고 간수에게 1마일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가끔씩 걸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제가 떠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간수는 그들이 저를 떠나게 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의도로 그렇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교도소에 있을 때 친척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걱정하며,[126] 그들은 나를 감옥에 가둔 재판관들에게 가서 나를 자기들과 함께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하며, 자신은 백 파운드에 묶이고, 더비의 다른 사람들은 각자 50파운드에 묶이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더 이상 그곳에 가서 사제들을 비난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판사들 앞에 끌려갔습니다. 저는 그들이나 다른 누구도 저를 위해 결박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런 죄도 없었고, 그들에게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베넷 판사는 격노하여 일어섰습니다. 제가 무릎을 꿇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려고 기도하려던 순간, 그는 저에게 달려들어 두 손으로 저를 때리며 "간수야, 그를 없애라! 간수야, 그를 데려가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후 저는 다시 감옥으로 끌려갔고, 6개월의 수감 기간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혼자 1마일을 걸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자유를 느끼면서 그 자유를 활용했습니다. 때때로 나는 시장과 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악행을 회개하라고 경고하고 돌아왔습니다.[127] 다시 감옥으로. 감옥에는 여러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때때로 첫날 모임에 그들을 방문하곤 했다.
제가 아직 교도소에 있을 때, 한 병사가 와서 말했습니다. 그가 첨탑에 앉아 사제의 말씀을 듣자 엄청난 고통이 그에게 닥쳤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음성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이 감옥에 있는 것을 모르느냐? 그에게 가서 지시를 받아라." 그래서 저는 그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의 이해력이 열렸습니다. 저는 그에게 그의 죄를 드러내고 그 죄 때문에 그를 괴롭히는 것이 곧 그의 구원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그의 죄를 드러내는 분이 바로 그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에게 말하는 동안 주님의 능력이 그의 마음을 열어, 주님의 진리를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진영에서 병사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에 대해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성경이 그에게 매우 많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지휘관이 "느부갓네살처럼 눈이 멀어 주님의 종을 감옥에 가두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일로 그의 대령은 그에게 앙심을 품었고, 그로부터 이듬해 우스터 전투에서 두 군대가 서로 가까이 접전하던 중, 왕의 군대에서 두 명이 나와 의회군 중 아무 두 명에게나 도전장을 내밀자, 그의 대령은 그와 다른 한 명을 선택해 도전에 응하게 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그의 동료가 전사하자, 그는 권총 한 발도 쏘지 않고 두 적을 모두 마을 근처까지 머스킷 총격으로 몰아냈습니다.[128] 그가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입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이 끝나자 그는 장교들의 기만과 위선을 목격했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자신을 보호해 주셨는지 깨닫고, 싸움이 끝날 것을 직감한 그는 무기를 내려놓았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될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고, 많은 신병들이 징집되자, 위원들은 저를 지휘관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병사들은 저 외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교도소 소장은 저를 시장에 있는 위원들과 병사들 앞으로 데려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저에게 소위 승진을 제안하며, 찰스 스튜어트에 맞서 연방을 위해 무기를 들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제임스의 교리에 따라 모든 전쟁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심지어 정욕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모든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는 그 생명력과 힘의 미덕 안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43]
하지만 그들은 제게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간청했고, 제가 그저 그들에게 칭찬의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쟁과 분쟁이 있기 전, 평화의 계약에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제 덕망 때문에 사랑과 친절로 제게 제안했다고 말했고, 그런 아첨하는 말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만약 그것이 그들의 사랑과 친절이라면, 저는 그것을 제 발로 짓밟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서 "그를 데려가라"고 말했습니다.[129] "교도관님, 저를 쫓아내어 사기꾼과 중범죄자들과 함께 감옥에 가두십시오." 그래서 저는 침대도 없는 형편없고 냄새나는 곳에 30명의 중범죄자들과 함께 갇혔고, 거의 반년을 그곳에 갇혀 있었습니다.[44] 그러나 때때로 그들은 내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정원으로 걸어가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들이 나를 더비 교도소에 가두었을 때, 사람들은 내가 결코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그분의 시간에 구출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내가 아직 그곳에서 옮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하셨고, 그곳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곳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 감옥에 있는 동안, 주인의 물건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갇힌 젊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목숨을 건 재판을 받게 되자, 저는 판사와 배심원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옛날에 도둑질을 한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에 얼마나 어긋나는 일인지를 설명하고, 자비를 베풀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형 선고를 받았고, 그녀를 위한 무덤이 마련되었으며, 정해진 시간에 그녀는 처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몇 마디 글을 써서 모두에게 탐욕이나 탐욕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탐욕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주님을 경외하고 세상적인 정욕을 피하며, 시간이 있는 동안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저는 이 글을 교수대에서 읽도록 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그녀를 사다리 위에 천으로 감싼 채[130] 그녀의 얼굴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고, 꺼질 듯했지만 그들은 그녀를 죽이지 않고 다시 감옥으로 끌고 갔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나중에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 감옥에는 악하고 불경건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마술사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는 저와 이야기하겠다고 위협하며 자신이 할 일을 자랑했지만, 결코 저에게 입을 열 힘은 없었습니다. 간수와 그가 다투자, 그는 악마를 일으켜 그의 집을 무너뜨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리하여 간수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감동을 받아 그분의 능력으로 그를 꾸짖으며 "와서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자.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짓을 해 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악마가 이미 그의 안에서 충분히 높이 올라갔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묶어 놓았기에 그는 저에게서 살금살금 도망쳤다고 말했습니다.
우스터 전투가 다가오자, 베넷 판사는 제가 자발적으로 명령을 수락하지 않자 순경들을 보내 저에게 병사를 보내 달라고 압박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외전에서 끌려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와서 저에게 압박 자금을 주었지만, 저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홀스 경사에게 끌려가 한동안 머물렀다가 다시 내려갔습니다. 그 후 순경들은 저를 다시 위원회 앞으로 데려갔고, 그들은 저에게 병사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저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살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시기와 증오가 있는 곳에는 혼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두 번이나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실망한 그들은 화가 나서 보석금도, 현상금도 없이 저를 가두었습니다.
[131]
이 마을에 만연한 악행 때문에 이곳에 갇혀 있는 동안 제가 겪은 정신적 고통과 수고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비록 일부는 확신했지만, 대부분은 완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에게서 떠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을 애통해했습니다.
마을에는 큰 심판이 내려졌고, 치안판사들은 저를 불안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를 어떻게 할지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때는 저를 의회에 보내려 했고, 어떤 때는 아일랜드로 추방하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사기꾼, 유혹자, 신성모독자라고 불렀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자, 그들은 저를 정직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호평이나 악평은 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한 쪽은 저를 높이지 않았고, 다른 한 쪽은 저를 떨어뜨리지 못했습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마침내 1651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저는 감옥에서 석방되었습니다. 저는 더비에서 거의 1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6개월은 교정소에서, 나머지 기간은 일반 교도소에서 지냈습니다.
[132]
제5장
한 사람이 10마일 동안 나라를 뒤흔들 수 있다
1651-1652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