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와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면책특권을 일부 갖는다고 1일(현지시간) 판결했다. 연방 출범 이후 전직 대통령까지 면책특권을 갖는지 여부를 따져 결론을 내린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전직 대통령에게 면책 특권이 적용될 사안인지 판단하라며 하급심 법원으로 책임을 넘겨 2020년 대통령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의회 폭동을 사주했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판은 대선 이후에나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들은 내다봤다.
연방 대법원은 전직 대통령은 재임 중 공식적 행위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면책 특권이 있다고 봤다. 6-3으로 대법관들의 의견은 갈렸는데 다수의견은 "대통령의 결정적이고 배타적인 헌법적 권한 안에서 이뤄진 행동에 대해 전직 대통령은 형사기소로부터 절대적인 면제를 받는다"고 밝혔다. 다만 대통령 재임 중이라도 비공식적인 (개인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면책 특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 쪽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균형을 맞춘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영국 BBC는 대법원이 노골적으로 트럼프 기소 내용을 기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핵심 요소들을 제거한 것은 맞다고 지적했다
6-3 결정은 연방 대법원의 보수 대 진보 구도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보수 성향 대법관 6명은 모두 다수의견으로 뜻을 모았다. 반면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전원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대표 집필한 소수의견을 통해 "우리 민주주의를 위한 두려움"을 토로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우리 헌법은 전직 대통령이 범죄 및 반역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며 "이제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하는 왕"이라고까지 적었다.
이로써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결과 불복 및 전복 시도 관련 4개 혐의 중 당시 법무부 당국자들과 논의한 내용들은 면책이 적용됐다. 하지만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대선결과 인증을 거부할 것을 압박한 혐의, 가짜 ‘트럼프 지지’ 선거인단 구성 관련 역할, 2021년 1월 6일 미 의사당 폭동에 관한 사주 및 방조에 관한 문제는 하급 법원이 판단하도록 했다.
또 트럼프의 2021년 1월 6일 연설과 소셜미디어 행위 모두 공식 행위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트럼프의 개인 기록들과 자문관들의 기록들도 "재판에 증거로 제출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겉으로 균형을 맞춘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속을 뜯어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손을 완벽하게 들어준 궤변 같은 대법원 판결이란 불평이 터져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대통령의 면책 특권을 들어 재임 기간 했던 행위는 퇴임 이후에도 면책 대상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심과 2심 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을 기각했지만, 연방 대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하급심이 다시 이 사안을 들여다보게 돼 사법 리스크 부담을 상당 부분 덜게 됐다. 전직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폭넓게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이 사건이 하급심으로 되돌아가 오는 11월 대선 이후에나 재판이 시작될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AP통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전에 재판을 받을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직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우리 헌법 및 민주주의를 위한 큰 승리"라며 "미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대선 캠프는 이날 성명을 통해 "오늘 판결로 달라지는 사실은 없다"며 "트럼프는 2020년 선거에서 진 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폭도들을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대법원이 트럼프를 독재자로 만들었다"고 격분했다고 BBC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