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획특집-2026년 8.15 독도는 외롭지 않다
한·일 영유권 논쟁 70년, 독도를 둘러싼 외교전
일본은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제기 영유권 주장
한국은 장기적·공세적 전략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영유권 논쟁은 해방 이후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사진작가 박용득작)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이를 외교·교육·국제홍보를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으로 관리해 왔다. 반면 한국은 독도를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로 규정하고 실효적 지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두 나라의 대응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영유권 주장을 제도화해 왔다. 반면 한국은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바탕으로 일본의 주장에 대응해 왔지만, 국제사회와 국제법의 장에서 일본에 맞서는 장기적·공세적 전략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은 독도를 한·일 간 영유권 문제로 규정하고 국제법에 따른 평화적 해결을 주장한다. 반면 한국은 독도는 애초부터 대한민국 영토이므로 영유권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독도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누구의 땅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독도를 어떻게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국제법적으로 입증하며,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인식시키느냐의 문제이다.
1905년 일본의 편입, 그리고 전후 독도 문제
일본은 1905년 1월 내각 결정을 통해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명명하고 시마네현에 편입했다. 같은 해 2월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편입 사실을 공표했다.
일본은 이를 국제법상 무주지 선점에 따른 정당한 영토 편입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은 1905년의 편입이 러일전쟁과 을사늑약 등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한국의 영토주권을 침해한 불법적인 편입이라고 주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면서 독도의 지위는 다시 국제적인 문제로 등장했다.
1952년 이승만 정부는 평화선을 선포하고 독도를 그 안에 포함시켰다. 이후 일본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독도 문제는 한·일 간 외교 현안으로 본격화됐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했고, 한국 역시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지속적으로 행사했다.
독도에 대한 정책의 변곡점을 4단계로 정리하면 이승만시대는 독도의 실효지배를 확립했으며,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시대는 독도를 한일관계 속에서 관리했다. 김영삼,이명박 시기는 독도를 적극적인 주권 문제로 전환했으며, 김대중·노무현 이후는 독도 영유권과 한일협력을 어떻게 병행할 것인가가 핵심 정책논쟁으로 변화했다.
미국의 ‘공동등대’ 제안에도 독도 문제 양보하지 않은 박정희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에서 독도 문제는 실제로 중요한 걸림돌이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자료가 미국 국무부가 공개한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4–1968, Vol. XXIX, Part 1, Korea』이다.
자료에 따르면 1965년 5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을 만났다. 이 회담에서는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의 진전 등이 논의됐지만, 공개된 회의록에는 존슨 대통령이 독도 공동등대나 공동소유를 제안했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독도 문제가 직접 등장하는 것은 다음 날인 5월 18일 박정희 대통령과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의 면담이다.
미국 국무부 공식 기록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독도 문제를 한·일 양국 사이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제기했다. 이에 러스크 장관은 공동으로 운영하는 등대를 설치하고 양측이 섬의 몫을 갖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 방안에 대해 “just would not work”, 즉 “그런 방식은 도저히 성립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다.
한·일협상의 마지막 장애물 독도
1965년 6월, 독도는 한·일협상의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더 중요한 기록은 6월 15일 주한 미국대사 윈스럽 브라운이 박정희 대통령과 만난 뒤 작성한 전문이다.
미 국무부 문서에 따르면 당시 일본 측은 독도 문제에 대한 합의를 한·일 협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미국 측은 당시 독도 문제를 “the sole remaining major obstacle to an agreement”, 즉 “합의에 이르는 데 남은 유일한 중대한 장애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독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에는 “there was no give”, 즉 어떠한 양보도 없다는 점을 거듭 분명히 했으며, 미국에 일본 측에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독도 문제는 실제 한·일 협상의 핵심 쟁점이었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협정에 명시하려 했으며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도 문제에서 양보하지 않는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미국은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해 양국에 타협을 촉구했다.
박정희 정부의 독도정책을 “독도를 일본과 공동관리하려 했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당시 미국이 제안한 공동등대·공동운영 방안에 대해 박 대통령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는 것이 공식 기록으로 확인된다.
박정희 정부의 독도정책은 한·일 국교정상화는 추진하되, 독도 영유권에서는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 독도정책이다.
김대중 정부 독도 영유권과 어업 문제를 분리
1990년대 후반 독도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사진, 26년 8.15 독도 방문한 소비자주권임원)
1994년 유엔해양법협약이 발효되면서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새로운 해양질서가 본격적으로 적용됐다.
한·일 양국의 해안 간 거리는 400해리에 미치지 않기 때문에 양국이 각각 200해리 EEZ를 주장할 경우 상당 부분이 중첩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1996년 EEZ를 선포했고 기존 1965년 한·일어업협정의 종료를 통보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어업질서를 마련할 필요성이 커졌다.
당시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겪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로서는 일본과 장기간 어업분쟁을 계속하기보다는 한국 어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어업질서를 조기에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했다. 이에 따라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됐고 1999년 발효됐다.
독도 문제’와 ‘어업 문제’를 분리한 김대중 정부
독도 영유권은 영토주권의 문제이고, 신한일어업협정은 어업질서에 관한 협정이므로 두 문제를 분리했다. 따라서 협정에서 독도의 영유권을 직접 다루거나 결정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문제는 독도를 협정문에 명시하지 않았음에도 실제 해양수역의 설정 과정에서 독도 주변이 중간수역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신한일어업협정은 지금까지도 독도 문제와 관련한 가장 큰 논쟁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비판론자들은 “독도라는 이름을 협정문에서 제외했지만, 실제 지도상으로는 독도 주변 해역이 한·일 중간수역에 포함된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문서상의 영유권과 실제 해양관리의 문제가 분리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반면 정부 측 논리는 달랐다.
이에 대해 DJ정부는 신한일어업협정은 영토나 영해의 귀속을 결정하는 협정이 아니라 어업에 관한 협정이며, 이 협정으로 독도의 영유권을 일본에 양도하거나 공동영유권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독도 영유권은 포기하지 않되, 영유권 문제와 어업 문제를 분리해 한·일 간 어업질서를 먼저 안정시키려 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간수역’은 김대중 정부의 가장 큰 논쟁으로 남은 것 또한 분명하다.
김대중 정부의 선택에는 분명한 현실적 배경은 ▲일본이 기존 어업협정을 종료한 상황이며▲새로운 EEZ 체제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고▲한국 어민의 일본 수역 의존도가 높았던 상황이고▲IMF 외환위기로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필요해
한·일관계 개선이 절실했다.
즉 독도 문제 하나 때문에 전체 한·일관계를 악화시키기보다는 영유권 문제와 경제·어업 문제를 분리해서 관리하는 전략이었다.
그 결과 독도 주변 해역이 중간수역에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였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것이 이후 정부와 정치권에서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됐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영유권 문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업질서를 안정시키고 한·일관계 개선을 추진했지만 비판적 평가는 독도를 기점으로 한 한국의 독자적인 EEZ를 확보하지 못했고, 독도 주변 해역을 중간수역에 포함시키는 결과를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김대중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일본에 양도하거나 공동영유권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어업협정의 조기 타결을 위해 독도 주변 해역이 중간수역에 포함되는 결과를 수용했다.”
신한일어업협정, 그리고 ‘쌍끌이 어업’ 논란
신한일어업협정 과정에서는 어업협상 자체에 대한 논란도 발생했다.
특히 쌍끌이 어업 문제 등이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정부에 대한 국내 여론의 불신이 커졌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의 어업정책은 단순히 독도 문제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협정을 조기에 체결해 무협정 상태의 피해를 줄이려는 전략”이라는 현실적인 목표가 있었지만, 협상 결과와 세부적인 어업권 문제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신한일어업협정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에도 여러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에서 중요한 점은 신한일어업협정이 독도의 영유권을 일본에 양도하거나 공동영유권을 설정한 협정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따라서 독도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확인된 사실은 ▲독도는 협정문에서 직접 명시되지 않았으며▲ 독도 주변 해역이 중간수역에 포함됐고▲독도를 기점으로 한 한·일 EEZ 경계는 확정되지 않았으며▲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협상 결과를 받아들였다.
독도 문제에서 일본은 ‘분쟁’으로 한국은 ‘비분쟁’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한·일 양국의 독도 주장은 한,일이 각각 고유 영토로 주장하고 있다.
역사적근거로 한국은 조선의 문헌·지도 및 대한제국 칙령 등을 근거로 제시했으며 일본은 고지도·문헌 및 과거 이용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1905년 편입과정은 한국은 일본의 한국 침탈 과정에서 이루어진 불법적 편입이라고 했지만 일본은 국제법에 따른 정당한 영토로 편입되었다고 주장한다.
2차세게대전 이후 영토처리는 한국은 독도는 일본에서 분리된 한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가 일본의 포기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일본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한국의 지배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정당한 영토주권 행사라고 하지만 일본은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불법 점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영토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다고 하지만 일본은 한·일 간 영유권 분쟁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ICJ 회부문제는 한국은 회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일본은 국제법에 따른 ICJ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독도 영유권은 향후에도 실효적 지배 유지·강화 및 일본 주장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외교·교육·국제홍보 통한 영유권 주장 지속
일본 외무성은 현재도 다케시마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고 한국의 지배를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점거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국제법에 따른 평화적 해결을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사진 이명박대통령 독도방문)
반면 한국은 독도를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로 규정하고 있으며, 일본이 독도를 영유권 분쟁지역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본은 ‘주장’을 국가전략으로, 한국은 ‘실효지배’를 중심으로 두고 있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외교·교육·홍보의 장기적 국가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외교정책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국제법에 따른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기반으로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 방어적 대응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두어 왔다. 따라서 향후 독도정책은 단순히 일본의 도발에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역사자료의 체계적인 정리, 국제법적 논리의 정교화, 국제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설명, 교육과 공공외교의 강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역대 정부의 독도정책과 대응
| 이승만 | 실효지배의 제도화 |
| 박정희 | 한·일 국교정상화 속 독도 문제 관리, 영유권은 양보하지 않음 |
| 전두환/노태우 | 저강도 관리와 실효지배 유지 |
| 김영삼 | 실효지배 강화와 적극 대응 |
| 김대중 | 한·일협력과 어업 문제의 분리, 신한일어업협정 및 중간수역 |
| 노무현 | 적극적인 독도 주권정책으로 전환 |
| 이명박 |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통한 정상급 주권 과시 |
| 박근혜 | 독도 원칙 유지와 한·일관계 관리 |
| 문재인 | 역사·강제동원·영토 문제와 연계 대응 |
| 윤석열 | 한·일관계 정상화와 독도 원칙 병행 |
| 이재명 | 실용적 한·일관계와 독도 주권 원칙의 병행 |
독도는 결코 외로운 돌섬이 아니다
독도 문제를 단순히 “한국 땅인가, 일본 땅인가”라는 영토 논쟁으로만 바라보면 해방 이후 70년 넘게 이어진 한·일 외교전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일본은 독도를 역사·국제법·외교·교육·홍보를 연결한 장기적인 국가전략의 대상으로 만들어 왔다.
반면, 한국은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라는 강력한 현실적 기반만을 뼈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자료와 국제법적 논리, 국제사회에 대한 설명 능력, 교육과 공공외교를 더욱 체계화하는 것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의 신한일어업협정이 보여준 것처럼 영토주권과 경제·어업·생태환경,외교 협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도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 할 과제다.
독도는 결코 외로운 섬이 아니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주장은 과거의 역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외교와 국제법, 교육과 국민 인식, 그리고 미래의 동북아 질서까지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선언을 넘어, 왜 우리 땅인지 설명하고 증명하고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능력이 필요한 오늘이다. 다음에는 독도와 울릉도의 생태환경과 지질구조에 대한 기획기사를 담는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