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에 대한 이해
사전적(辭典的)으로 중세(Middle Ages)는 서(西)로마가 붕괴(崩壞)한 5세기부터 비잔틴제국(Byzantine Empire)이라고도 불리는 동(東)로마가 멸망(滅亡)한 15세기까지 약 1,000여 년의 시기(時期)입니다.
시간(時間)이 흐르면 문명(文名)과 문화(文化)가 발전(發展)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現狀)입니다.
그런데 중세는 전반적(全般的)으로 퇴보(退步)한, 엄밀(嚴密)히 말하자면 정체(停滯)된 시기였습니다.
르네상스[Renaissance, 문예 부흥(文藝復興), 학예 부흥(學藝復興)]를 이끈 인문주의(人文主義)자들이 중세를 극렬(極烈)히 비난(非難)한 이후부터 암흑기(暗黑期, the Dark Ages)라고 통칭(統稱)하기도 합니다.
↑1521년 독일 보름스에서 열린 국회에 참석한 마르틴 루터
↑중세는 종교에 의해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가 극도로 억눌려졌던 시대였습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중세를 그렇게 부정적(否定的)으로만 볼 수 없다는 새로운 해석(解釋)이 나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소수 의견(小數意見)에 불과(不過)합니다.
단지 보이는 유적(遺蹟)이나 유물(遺物) 그리고 저작(著作)만 놓고 비교(比較)해도 분명히 중세가 고대보다 뒤진 것은 부인(否認)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자유(自由)롭고 다양(多樣)했던 인간(人間)의 사고(思考)가 어떻게 그 정도로 경직(硬直)될 수 있었는지 의문(疑問)이 들게 만든 점 자체(自體)가 인류사(人類史)가 후퇴(後退)했다는 확실(確實)한 증거(證據)입니다.
↑독일 뉘른베르크 전통의 수염 달린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페스티벌을 주제로 그린 그림, <Nürnberger Shembart Buch>(17세기) 중에서,
출처 - 'Lazer Horse'
↑중세시대의 선전(宣傳)이며, 과학(科學), 예술(藝術), 종교(宗敎)이고 윤리(倫理)다. 아래 그림은 영국의 헨리8세 시대에 기사로 추정(推定)되는 인물이 '타라스크(Tarrasque).'라는 괴물(怪物)을 길들이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중세 시대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리처드 사자왕과 그의 신료들을 그린 그림.
문학과지성사 제공
↑중세를 새롭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보편적인 인식은 부정적입니다
사회 구조(社會構造)와 질서(秩序)가 봉건제도(封建制度, Feudalism)로, 그리고 인간의 사고(思考)가 기독교(基督敎)에 바탕을 둔 헤브라이즘(Hebraism)으로 획일화(劃一化)되다 보니 다른 다양(多樣)한 시도(始睹)와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문명(文名)도 함께 정체(停滯)하는 결과(決科)를 초래(招來)했습니다.
현재의 이란(Iran),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처럼 이슬람 근본주의(根本主義)자들이 강압적(强壓的)으로 통치(統治)하는 일부 국가를 보면 이해(理解)할 수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사회, 문화적(文化的)으로 분명히 1970년대 보다 후퇴(後退)했습니다.
↑이슬람 혁명 이전인 1970년대 이란 여대생의 모습
그런데 중세(中世)를 열거(列擧)하는 이러한 여러 특징(特徵)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共通的)으로 살펴볼 수 있는 현상(現象)이 아닙니다.
오로지 서(西)유럽만 퇴보(退步)했습니다.
하다못해 서유럽과 가까이 접해 있는 비잔틴 제국이 지배(支配)하던 동(東)유럽도 가톨릭의 영향(影向)을 받는 서유럽과 상황(狀況)이 전혀 달랐습니다.
서유럽이 어둠에 묻혀 있는 동안 동양(東洋)이나 중동(中東)을 비롯한 수많은 세계의 여타 지역에서 인류(人類)의 발전(發展)은 중단(中斷)이 없었습니다.
↑이슬람교와 사라센제국
↑동양의 중세는 유럽과 크게 달랐습니다
앞서 언급(言及)한 것처럼 현재의 일부 중동국가(中東國家)는 종교(宗敎)를 교조적(敎條的)으로 신봉(信奉)하는 이들에 의해 인간(人間)의 사고(思考)가 억압(抑壓)받고 있지만 흥미(興味)롭게도 그들의 선조(先祖)라 할 수 있는 사라센(Saracen)은 서(西)유럽의 암흑기(暗黑期)에 찬란(燦爛)했던 고대(古代) 로마의 문명(文名)을 지키고 발전(發展)시키는 역할(役割)을 담당(擔當)했습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中世)의 특징(特徵)은 전세계적(全世界的)인 현상(現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극히 일부의 현상을 전부인 것처럼 인식(認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유럽 암흑기에 동로마는 옛 로마의 문명과 문화를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괴리(乖離)가 나타난 이유는 19세기이후 급속(急速)히 패권(覇權)을 넓혀 세계를 지배(支配)하는데 성공(成功)한 서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세계사(世界史)를 정의(定意)했기 때문입니다.
지구 전체의 역사를 나누어 별도로 중세(中世)라는 시대 구분(時代區分)이나 특징을 정의하는 것 자체(自體)가 어쩌면 상당히 오만(傲慢)한 시각(視覺)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사에서 언급하는 중세의 특징은 가톨릭을 믿던 서유럽에서만 나타난 현상으로 한정(寒庭)하는 것이 옳습니다.
↑중세의 특징은 서유럽의 시각(視覺)으로 역사를 제단(梯團)하면서 생긴 오해(誤解)입니다
그런데 역설적(逆說的)이지만 문화나 문명의 둔화(鈍化) 혹은 퇴보(退步)가 긍정적(肯定的)으로 작용(作用)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기의 발전도 함께 정체(停滯)되면서 고대(古代)와 비교(比較)하여 전쟁의 규모(規模)가 축소(縮小)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코끼리를 이끌고 험준(險峻)한 알프스(Alps)를 넘어 적(敵)의 배후(背後)를 유린(蹂躪)하던 한니발(Hannibal)의 영웅담(英雄譚)이나 레기온(Legion)이라 불리던 거대한 밀집대형(密集大形)으로 적을 공략(攻略)하던 로마 중장보병(重裝步兵)들의 이야기는 중세에 들어서는 전설(傳說)로 취급(取扱)되었습니다.
↑중세에도 전쟁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졌습니다
그렇다고 욕심(慾心) 많은 인간이 싸움을 멈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세계사 책자에서 전쟁을 제외(除外)하면 그다지 쓸 만한 내용이 없을 만큼 인간이 싸움을 멈춘 시기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당연히 중세에도 그랬고 나름대로 남을 죽이기 위해 노력(勞力)을 경주(競走)해 왔습니다.
더불어 나름대로 싸움의 방식(方式)과 기술(技術)의 변화(變化)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소개(紹介)할 내용(內用)은 서양사(西洋史)에서 암흑기(暗黑期)로 거론(擧論)되던 중세시대 전쟁(中世時代戰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