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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8장 1절 ~ 11절
같은 해에 유다의 시드키야왕의 치리가 시작되어 제사년 다섯째 달에 주의 전에서 기브온 출신 선지자 아술의 아들 하나냐가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의 면전에서 내게 고하여 말하기를 1)
And it came to pass the same year, in the beginning of the reign of Zedekiah king of Judah, in the fourth year, and in the fifth month, that Hananiah the son of Azur the prophet, which was of Gibeon, spake unto me in the house of the LORD, in the presence of the priests and of all the people, saying, 1)
하나냐의 예언은 예레미야에게 하는 것이었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앞에서 행해진 것입니다. 이는 하나냐가 예레미야에게 예언을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예언을 한 것입니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하노라. 내가 바빌론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2)
Thus speaketh the LORD of hosts, the God of Israel, saying, I have broken the yoke of the king of Babylon. 2)
이러한 공적 예언의 내용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선언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주께서 바빌론왕의 멍에를 꺾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하나냐 자신의 것인지는 오직 하나님과 하냐냐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언은 사람이 판단하여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조금 이상한 부분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빌론왕에게 순종하라는 멍에를 꺾는다(broken)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즉 지금 이스라엘이 침략을 받고 있는 것이 멍에라고 느끼는 것은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입장인 것입니다.
바빌론왕에게 굴복하라는 것을 멍에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인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바빌론왕이 하나님과 대적하는 입장이 아니라 종으로 쓰임을 받는 입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냐의 예언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바빌론왕에게 순종하라는 멍에가 꺾여져 자신들이 침략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우상 숭배를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실 것이라고 수차례 경고한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당장 자신들에게 닥친 침략당함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호야킴과 여호야긴 시드키야로 이어지는 왕들이 모두 자신들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들이 평화로울때나 번영을 할때나 혹은 고통속에서 힘들어 할때나 모두 동일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며, 그들이 평화로울때는 자신들의 생각대로 평안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고, 재앙에서도 자신들의 재앙이 저절로 복구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평안할때나 힘들때나 자신들의 삶의 방법을 고집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백신 사태와도 일치합니다. 사람들은 평안할때에 정부가 사람들을 속이겠나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살다가 정말로 사악한 정부의 모습을 목격하고도 그것을 외면하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는 스스로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의 재앙의 원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조건들이라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데 이러한 자기 생각대로의 삶은 그러한 기회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바빌론의 느부캇네살에게 굴복하라는 조건 제시라는 멍에는 재앙이 아니라 기회였던 것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일로 백신 사태로의 교훈으로 지금의 세상이 악한 자들의 권력에 놓여있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의 삶을 살아지는 대로 살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음이 우리의 복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경고의 말씀과 무서운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져도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거나, 그것을 설명하는 사람의 말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의 일에 매달려서 앞을 바라보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보아도 잘못산 아파트로 인하여 몇억이 없어지는 것은 순식간이고, 백신으로 몸이 아프면 그 치료도 안되는 치료비가 수천만원에 그 고통 또한 매우 큽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아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더 소중한 가치입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향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며, 삶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의 결과는 죽음인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경고를 묵살하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신들의 길을 가고자 하는 중에 재앙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의 한국의 모습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교회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교회문화를 숭배하고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지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이스라엘과 대칭될 수 있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한국교회입니다.
재앙은 이스라엘이나 그 이방민족들이 모두 받지만 하나님의 경고의 대상은 이스라엘이며, 하나님을 믿는 자가 경고의 대상이지만 재앙은 모든 사람이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재앙을 바빌론왕의 침략 그자체로 생각하는 모습은 하냐냐의 예언이 그의 생각이라는 것을 부분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지금의 백신사태가 일루미나티나 사탄숭배자들의 인류에 대한 침략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어떤 경고의 메세지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이 이곳에서 취하여 바빌론으로 가져간 주의 전의 모든 기명들을 내가 만 이년 이내에 이곳으로 다시 가져오며 3)
Within two full years will I bring again into this place all the vessels of the LORD'S house, that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took away from this place, and carried them to Babylon: 3)
그 기간까지 정하는 대담한 예언을 하나냐가 하고 있습니다.
또 바빌론으로 갔던 유다의 여호야킴왕의 아들 여코냐를 유다의 모든 사로잡혀간 자들과 함꼐 이곳으로 다시 데려오리니 이는 내가 바빌론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주가 말하노라." 하더라. 4)
And I will bring again to this place Jeconiah the son of Jehoiakim king of Judah, with all the captives of Judah, that went into Babylon, saith the LORD: for I will break the yoke of the king of Babylon. 4)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준 바빌론왕에게 굴종하라는 멍에를 스스로 꺾는다라는 것은 주께서 자신이 하신 일을 뒤집는 경우가 됩니다. 이런 경우가 딱 한번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부활하는 방법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러한 번복하심의 경우도 그의 말씀을 번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그대로 이루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값으로 그 값을 치르고, 부활이라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신 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빌론에게 굴종하라는 이스라엘의 멍에를 스스로 번복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회개하지도 않았으며, 예레미야의 말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듣지도 않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실현이 되어 그들에게 이 민족의 침략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예레미야의 예언이 일치하는 것을 보면서도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이 있기 이전부터 백신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면 백신접종의 위험성을 알렸던 사람들의 메세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의 생각이 우선입니다. 고통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백신접종으로 몸이 아파도 이 병원 저 병원을 해메고 있는 것입니다.
백신접종으로 몸이 아파 답을 구하는 대상이 그들에게 백신을 접종한 의사들이라는 것을 지금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의사들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도 그 자신도 당신을 구해줄 수 없을 것입니다.
O 그러자 선지자 예레미야가 주의 전에 서 있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의 면전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하였으니 5)
Then the prophet Jeremaih said unto the prophet Hananiah in the presence of the priests, and in the presense of all the people that stood in the house of the LORD, 5)
예레미야도 공적인 예언에 공적인 답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냐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기를 "아멘, 주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주께서는 네가 예언한 너의 말들을 이루시어 주의 전의 기명들과 사로잡혀 끌려갔던 모든 사람들을 바빌론으로부터 이곳으로 다시 데려오시기를 원하노라. 6)
Even the prophet Jeremiah said, Amen: the LORD do so: the LORD perform thy words which thou hast prophesied, to bring again the vessels of the LORD'S house, and all that is carried away captive, from Babylon into this place. 6)
예레미야의 그의 마음은 하냐냐의 말대로 실행되기를 원함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뜻일뿐 사람이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너는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들의 귀에 고하는 이 말을 들으라 7)
Nevertheless hear thou now this word that I speak in thine ears, and in the ears of all the people; 7)
나와 네 앞에 있었던 선지자들이 옛날부터 많은 나라들과 큰 왕국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8)
The prophets that have been before me and before thee of old prophesied both against many countries, and against great kingdoms, of war, and of evil, and of pestilence. 8)
화평을 예언하는 선지자는 선지자의 그 말이 이루어진 뒤에야 주께서 참으로 보내신 선지자로 알려지느니라." 하더라. 9)
The prophet which prophesieth of peace, when the word of the prophet shall come to pass, then shall the prophet be known, that the LORD hath truly sent him. 9)
여기서 재앙을 예언하는 예언자와 화평을 예언하는 예언자가 구분됩니다. 화평을 예언하는 예언자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재앙을 경고하는 자는 그의 예언이 틀려도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요나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그들의 멸망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결과적으로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화평에 대한 예언이 틀리게 되면 죽음의 곤경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을 예언하는 대언자는 그 결과를 미리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맞을 때에 인정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도 같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이 모두 구원을 받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이는 정확하게 화평을 예언하는 대언자의 모습입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하면 아무래도 구원받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하냐냐와 같은 목사인 사람의 주장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 결과에 따라 신뢰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판단할 주장이 절대로 아닙니다.
O 그때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집어서 그것을 꺾으며 10)
Then Hananiah the prophet took the yoke from off the prophet Jeremiah's neck, and brake it. 10)
저는 위 말씀에서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주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를 순종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묶는 띠와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그것들을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인의 왕과 투로 시돈 왕에게 보내되 예루살렘으로 유다의 시드키야왕에게 온 사신들의 손에 들려 보내고
그들의 주인들에게 말하라고 명하라.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너희 주인들에게 이같이 말하라.
예레미야 27장 2절 3절 4절
예레미야는 그가 예언을 하면서 묶는 띠와 멍에를 메고 하나냐와 그들앞에서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민족의 사신들에게 선물처럼 나눠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냐앞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냐는 그런 모습의 메세지를 알고 예레미야의 목에 있던 멍에를 벗겨 꺾어버린 것입니다.
이는 하냐냐의 대담한 성격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 되어 그에게는 독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냐가 모든 백성들의 면전에서 고하여 말하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만 이 년의 기간이 차기 전에 모든 민족들의 목에서 바빌론 느부캇넷살왕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니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더라. 11)
And Hananiah spake in the presense of all the people, saying, Thus saith the LORD; Even so will I break the yoke of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from the neck of all nations within the space of two full years. And the prophet Jeremiah went his way. 11)
하나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지금으로보면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며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화평은 사람들을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가짜의 기쁨은 우리를 더 큰 슬픔으로 인도합니다.
이러한 하나냐의 주장에 대한 예레미야의 대응방식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말대로 화평을 이야기하는 선지자는 그 결과로 판단하는 모습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냐를 평가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만약에 제가 그 입장이었다면 아마도 이전에 들었던 하나님의 메세지로 그를 반박하고 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냐를 판단할 수 없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냐의 메세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오직 하나냐와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화평의 메시지는 경계하되 우리가 판단하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냐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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