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4장 1 - 3절
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3.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두 사람이 고기를 사려고 푸줏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서오십시오.” 주인은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여봐라, 고기 한 근만 다오.” 이렇게 말을 했고 주인은 “예, 그러지요.” 이렇게 대구를 했습니다. 함께 온 다른 사람이 “여보게, 나도 고기 한 근 주게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금 전보다 공손한 태도로 답변한 주인은 이 두 번째 사람에게 고기를 더 넉넉하게 잘라서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먼저 말한 사람이 화를 내며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내 것보다 크게 자르는 것이냐?” 호통을 치자 고기집 주인은 “예, 별것 아닙니다. 손님 고기는 ‘여봐라’가 잘랐고, 이분 고기는 ‘여보게’가 잘랐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은 겸손해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겸손함으로 무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 중에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똑같이 기도를 했지만 겸손했던 세리만 기도의 응답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겸손해야 우리의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겸손이 우리의 몸에 배어서 우리의 성품이 될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상황이 어려워진 것을 알게 되자 일단 겸손함을 하나님 앞에 보여 드렸습니다. 갈급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옷을 찢었을 뿐만 아니라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굵은 베 옷은 염소털로 만든 옷을 말합니다. 출애굽기에서 봤던 것처럼 염소털은 천막을 지을 때 사용을 했던 재료였기 때문에 절대 편한 옷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보잘 것 없는 옷을 입고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재를 뒤집어썼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천한 존재인가를 보여 주기 위한 행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끼리 비교해 보면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평가해 보면 우리는 모두 먼지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능한 하나님,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사실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없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찬양 받지 못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찬양해야 할 시간에 찬양하지 않으면 길거리에 떨어진 돌들을 통해 찬양을 받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03편 14절에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한 민족의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었던 사람이었고 딸처럼 생각하며 키운 에스더가 왕비가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깨를 우쭐거리면서 교만한 모습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염소털로 된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모르드개는 겸손으로 무장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모르드개가 쇼를 한 것이지 않을까? 이런 의심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겸손한 척 한 것이지 않느냐? 이런 의심을 품을 수 있는데 지금 상황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황이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의 목숨뿐만 아니라 한 민족이 몰살을 당하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무슨 쇼를 하겠습니까? 사실 이런 복장으로는 왕궁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런 위기에서 자신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에스더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무슨 쇼를 한다고 이런 모양으로 대성통곡이나 하고 있겠습니까? 이 당시 관례로 보면 개인적인 슬픔을 왕궁 안에서는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관례 때문에 모르드개는 왕궁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고 왕궁 안으로 들어가야 에스더와의 만남을 통해 대책을 세울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의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잘 보여 주고 있는 믿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물질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기 때문에 모르드개는 이런 믿음의 모습으로 에스더를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도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방법이 더 쉬워 보이고 더 빨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나 물질이나 세상 권력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경우들이 많은데 그 방법은 절대 올바른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조금 시간이 더디고 그 과정이 힘들더라도 모르드개처럼 하나님만 신뢰하면서 하나님께 대성통곡을 해야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믿음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선택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정말 겸손한 모습인가? 아니면 겸손한 척 하고 있는 쇼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런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때로는 재를 뒤집어쓰겠다는 각오로 살아야 하고 그런 자세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보여 준 모르드개의 방법을 통해 우리의 굳건한 믿음을 하나님 앞에 보여 드리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아버지 하나님을 쉴 새 없이 부르다가도 문제가 해결되면 안면몰수 하는 배은망덕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도록 모든 일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기본이고 기도의 기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자세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고 오늘도 이런 마음으로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문제가 해결되는 큰 복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