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방위산업과 화학산업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하면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화학 부문 계열사를 물려받을 것이라는 관측은 엇나가게 됐다.
지
금껏 재계와 증권가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이 전자ㆍ금융ㆍ건설 부문을 맡고, 이부진 사장이 호텔과 상사와 화학 부문을, 이서현 사장이
패션과 미디어를 맡는 시나리오를 예상해왔다. 그러나 이번 매각 건으로 이 시나리오는 힘을 잃고, 승계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더욱 큰 무게추가 실리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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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더 확고해진 이재용 체제 삼성과 한화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매각 건은 한화 측이 먼저 삼성
측에 거래를 제안했으며, 이재용 부회장이 거래를 사실상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재계 관계자들 역시 이번 매각에 4개 기업이
엮여있는데다, 삼성 계열사들의 지분 처리 문제 등이 얽혀 있어 그룹 최고위층이 아니면 결정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섰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이번 매각 건은 삼성의 지배구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매각되는 회사들은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4개사인데 타 계열사 지분을 거의 보유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테크윈이 삼성중공업 지분 0.1%, 삼성벤처투자 지분의 16.7%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승계구도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3남매 중에 유일하게 화학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이부진 사장이다. 이
사장은 지난해까지 삼성석유화학 지분 33.19%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이후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이 합병하면서 지분율은
4.95%가 됨) 이 때문에 그가 이 지분을 지렛대 삼아 화학 계열사를 지배하고, 장기적으로는 화학과 건설 부문을 가져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이 사장은 이번 매각으로, 갖고 있던 삼성석유화학 지분 4.95%를 모두 매각하게 됐다. 재계 전문가들은 그룹 승계 과정에서 그의 입지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으로 이를 해석하고 있다.
사
실 이런 징후는 이건희 회장의 와병(臥病) 이후 조금씩 보여왔다.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생명의 대주주 변경
신청을 승인할 때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적이 있다. 당시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취득이, 이 회사 지분을 상속받을 때를 대비해
대주주 자격 심사를 미리 거치는 모습으로 비쳐지며, 이 부회장이 자신의 영역에 분명한 선 긋기를 하고 있다는 말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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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후계 과정서 입지 줄어든 이부진, 930억원 현금쥔 것 상속세 납부 쓰일 듯 그 동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그룹 안팎에서 오빠인 이재용 부회장 못지 않게 ‘보여준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2011년 호텔신라를
맡고, 사업을 확장하며 회사 몸집을 네 배가량 키운 공을 인정받았다. 이 때문에 ‘리틀 이건희’란 타이틀 역시 이 부회장 보다는
이 사장에게 붙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이부진 사장이 남편인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과 이혼 소송에 들어간 것이 알려지면서, 이것이 승계 작업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만큼 이 사장에게 쏠리는 시선이 많았다.
삼성의 승계 구도는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 건설 등 그룹의 주력 사업부문을 이부진 사장은 호텔과 유통, 상사 부문을 맡는
것으로 정리가 돼 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문 사장은 광고와 미디어 사업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건희 회장과는 달리 이재용 부회장이 모든 계열사가 1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이 없는
사업에서는 과감히 철수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던짐에 따라 향후 승계구도 역시 이것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남아있다.
한편 이번 매각으로 이부진 사장은 936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됐다. 최근 상장한 SDS의 지분도
3.9% 갖고 있다. 이 돈이 어디에 쓰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재계 관계자들은 이건희 회장이 가진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 승계로 인한 상속세에 활용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