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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컬쳐에세이 - 미우라 아야코
2016 8 31
그래도 내일은 온다
내가 절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내일
은 온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내일일지는 모르
겠으나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내일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게 생
각하면 용기가 솟았다.
미우라 아야코 三浦陵子의 "그래도 내일은 온다" 에서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 간 일본 방문은 홋카이도北海道였다.
서울에 폭염이 계속되었고 일본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섬으로 여름에 선선하다는 곳이다.
우리 여행사의 홋카이도 관광코스에는 아사히가와가 빠져있어 늘 못갔는데 이번에는 마음먹고 하루를 빼어 기차를 타고 아사히가와를 찾았다. 매일 폭우와 태풍이 몰아쳤으나 아사히가와 가는 날만은 화창했다. '그래도 내일은 온다' 는 구절은 거기에서 만난 작가 미우라 아야코三浦陵子 (1922- 1999)의 수필 제목이다.
아 지금 이 시점 그것은 얼마나 나에게 필요한 문장인가.
유학에서 돌아오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져 있었다. 상상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어이 없는 일들이어 지치고 지쳐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귀결이 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불안과 긴장 속에 보낸 하루하루였다.
거기에 불현듯 만난 것이 미우라 아야코였다.
60년대 70년대, 한국에서도 '빙점'氷點은 물론, 여러 번역 에세이집이 선풍을 일으켰었다. 지금의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일본 서적이 우리나라에서 그리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삶의 근원인 원죄, 사랑, 용서와 화해를 주제로 한 '빙점'은 한국에서 드라마로도 방영이 되었다.
'길은 여기에' '이 질그릇에도' '빛이 있는 동안에' 에세이집을 나도 여학교 시절감명깊게 읽은 기억이 있다.
20대에 폐결핵과 척추질병으로 13년이나 입원을 했고 병원에서 남자친구 마에가와 타다시에게 예수 복음을 받게 된다. 그가 결핵으로 죽자 그와 얼굴이 닮은 시공무원인 미우라 미쯔요三浦光世가 기독 잡지 인터뷰로 방문하게 되는데 절대로 결혼을 하지않으려던 미우라 미쯔요는 3번의 만남에 미우라 아야코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사흘을 함께 살아도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결혼 후,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을 구술로 70 편이나 받아 적은 연하 남편의 헌신적인 외조와 뒷바라지는 거룩한 경지라는 생각마저 든다. 미우라 아야코가 먼저 단가를 짓고 후에 미우라 미쯔요도 지어 함께 부부 단가집을 내기도 했다. 그들은 커다란 한 책상에 서로 마주 앉아 기도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해 다 하고 나면 다시 기도로 마감을 했다.
아사히가와 집 아래층에 잡화점을 하던 중 1963년, 42세 되는 가정주부가 추운 방에서 이불을 머리까지 쓰고 매일 밤 10시에서 2시까지 써내려간 천장의 원고가 아사히 신문의 당시로선 엄청난 금액인 1천만엔 현상에 당선이 되었고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마감날에 미우라 미쯔요가 원고를 직접들고 먼 북쪽 홋카이도에서 동경 아사히 본사까지 가서 그 날의 직인을 두번이나 찍어 받았다고 했다.
"몸으로 전도를 못하니 소설로 전도를 하려고 했다. 뽑히지 않더라도 심사하는 분들이 읽으실 것이니 그 분들게 만이라도 전도가 된다고 생각하며 나는 '빙점'을 썼다." 미우라 아야코의 당선 소감이다.
그가 가기 1년 전, 1998년에 완성된 문학관은 일본 전국의 그의 팬들이 정성을 모아 지은 것이다. 눈이 많은 고장답게 눈모양으로 지은 6각형의 건물은 아담했으나 남긴 80편 작품들의 친필 원고와 방대한 취재노트 등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그의 집필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영상으로 그의 차분하고 지적인 음성도 들었다.
언젠가 어머니와 이야기하다 미우라 아야코의 이름이 나오게 되자 그가 편지를 내게 보낸 적이 있는데 ~ 하시어 깜짝놀라 어디에 그 편지가 있느냐고 하니, 그런 편지가 일본에서 많이 오니 다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 이제는 없다고 했다.
어머니의 '무궁화' 단가집의 단가를 자신의 수필집에 인용해도 좋은가 고 물어 왔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단가집이 출간될 때마다 일본 신문들에 나는 것은 알았으나 어머니는 나에게 그냥 엄마일 뿐이었다. 그 귀한 편지를 버리다니, 아니 그럼 엄마가 내가 동경하던 미우라 아야코보다 격이 높단 말인가, 그때까지 어머니 시 한 줄도 보지 않은 이 딸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 어머니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미우라 아야코의 선물이다.
그게 무슨 시였느냐고 어머니 가실 때까지 물어보지 못한 나는 몇 해 전 서강대에서 미우라 아야코의 원작 소설 '총구'라는 일본 연극을 할 때에 거기에 온 작가의 남편, 미우라 미쯔요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온화한 인상이었다.
그 생각을 하며 미우라 아야코 문학관에 들어서서 미우라씨를 찾으니 지난 해 돌아갔다고 한다. 아쉬웠으나 그 말을 하자 담당자가 어느 시인지 찾아드리겠다고 하며 나를 친절히 안내하기 시작한다.
작가 부부의 이야기를 하던 중 미우라 아야코의 외모가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는가 고 물으니. 작가 자신도 자기가 인물이 없다고 글에 썼지만 그와 대화를 하게 되면 그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았다는 안내인의 말이 인상적이다.
엄청난 고통에도 그런 재능의 힘과, 그 예술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그 복음을 전한 문학적 영향력 이상의 힘이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곁에서 한결같이
헌신한 파트너가 있었다. 그 헌신의 파트너가 지난 해 가면서 집과 모든 것을 문학관에 기증한 중에는 미우라 아야코에게 보낸 11통의 뜨거운 러브레터도 있었다.
고민을 안고 간 나에게, 더한 고통을 신앙에 근거한 무게 있는 작품과 사랑으로 승화하여 수 많은 사람에게 힘과 위안을 주는 그의 문장이 다가왔고 그 속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이 보였다.
놀고 쉬고 힐링을 한다는 여행에 가슴 깊이 와닿는 이런 의미가 깃들여진다면
여행은 할만한 것이다.
'아무리 긴 터널이라도 끝이 보인다'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미우라 아야코의 삶, 처음 보는 그의 또 다른 수필집의
제목이다.
병든 내 손을 잡고 잠이 든 그대, 잠든 얼굴도 정겹기만 하네
미우라 아야코의 단가
들판의 흰 후쿠라베 꽃을 따는, 지금도 소녀같은 아내라는 생각이
미우라 미쯔요의 단가
미우라 미쯔요 三浦光世 와 미우라 아야코三浦陵子, 양켠에 서로를 향한 사랑의 단가
문학관에 전시된 미우라 아야코의 문학작품들
미우라 아야코, 미우라 미쯔요의 공동 단가집 '함께 걷는다면' 도모니 아유메바
문학관과 연결되어 있는 '빙점' 소설의 무대, 미홍림見本林의 숲과 강 - 2016 8 18
미우라 아야코 기념문학관
작가 부부가 함께 기도하고 글을 쓴 책상 = 아사히가와 2016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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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 시인, 에세이스트, 손호연단가연구소 이사장
이대영문과, 와싱톤 죠지타운대학원 뉴욕 시라큐스 대학원, 교토 동지사대학
방송위원회 국제협력위원, 삼성영상사업단 & 제일기획 제작고문
저서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에서, 숨을 멈추고, 오키나와에 물들다
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그대의 마음있어 꽃은 피고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