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3장 모세의 축복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행복한 사람임을 알고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행복은 환경의 차이라기보다 그 환경을 대하는 그 사람의 마음 차이다. 행운은 우연히 만나는 것이지만 행복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신명기의 마지막은 모세의 노래- 모세의 축복-모세의 죽음으로 연결된다. 자기 민족을 자기 목숨보다 사랑했던 사람 모세, 이제 그가 그 사랑했던 민족과 이별을 고하려는 순간이 왔다. 그러니 어찌 그들에게 축복의 말 하나 없이 떠날 수 있겠는가? 모세는 한 지파 한 지파 이름을 불러가며 축복의 말을 남겼다.
(신 33: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신 33: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그런데 신명기와 이사야에만 등장하는 한 단어가 나온다. 바로 “여수룬”이라는 단어다. 본 장에 2회 32장에 1회 이사야(사 44:2)에서 1회 나온다. 여수룬은 이스라엘의 지칭하는 일종의 고유명사다. 그 의미는 “의로운 자” “의로운 백성” 뜻하는 낱말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의로운 백성이라는 의미로 부르는 말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 부르기를 좋아했다.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고, 재림 성도들이 스스로 “남은 무리”라고 인식하길 좋아하는 것과 같다.
(신 33: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하나님은 그 여수룬을 도우시기 위해 하늘 위에 임하신다. 그 강하신 팔로 대적을 물리치시고 그 백성을 안으시며 암탉이 그 새끼들을 그 날개 그늘 아래로 모으듯이 감싸시고 돌보신다. 그런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이스라엘은 얼마나 행복한 백성인가? 모세는 그것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이 여호와의 기업, 야곱의 총회인 지파의 이름을 불러가며 축복을 전하는 것이다.
르우벤에게는 자손의 번성을, 유다에게는 승리를, 레위에게는 경건한 삶을, 베냐민에게는 안전을, 요셉에게는 풍족을, 스블론은 확장을, 잇사갈은 내실을, 갓은 광대함을, 단은 용맹, 납달리는 은혜, 아셀은 기름짐을 선포한다.
(신 33: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이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손에 넣은 것처럼 이스라엘을 축복하면서 모세의 설교는 끝을 맺는다. 마치 한편의 장중한 설교를 끝내고 마지막 축도로 마무리하는 것처럼 신명기는 끝이 난다. 결론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비록 그들이 인지하는지 모르나 모세는 그들이 참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 세상에 누가 우리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여전히 뭔가 가지지 못해서 염려하고 근심함으로
하나님 백성의 행복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눈을 열어 하늘을 보게 하시고
영원한 기업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우리의 복이 되게 하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팟캐스트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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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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