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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야호♬ (lil_ili@hanmail.net)
친정 ★ 야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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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빌려주세요!
Please, Lend me your name. <2>
“아아아악! 아아아악! 아아아악!”
벌써 한 삼십분쯤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들으면 놀라서 신고해주겠지 하는 마음과
내 목청에 놀라 날 납치한 분들께서 날 좀 풀어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진 채.
하지만 목은 벌써 따끔따끔 아파오는데도 불구하고 신고해주는 이 하나 없는 듯 했고, 날 납치한 분들은…….
“아우, 저게 기차통을 삶아먹었나! 야, 저것 좀 조용히 시켜.”
아침부터 포카를 치며 귀찮다는 듯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뱉은 그 말 때문에 문을 지키고 서있던 덩치가 인상을 찡그리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주머니에서 꼬질꼬질 때가 낀 손수건을 꺼내 둥글게 뭉쳤다.
서, 설마 그걸 내 입에 넣으려는 건 아니겠지? 너무 더럽잖아!
“그, 그거 입에 넣으실꺼에요?”
“…….”
“소, 소리 안지를께요!”
“…….”
덩치는 묵묵히 손수건을 뭉치더니 내 입을 향해 그것을 점점 가져오기 시작했다. 더, 더러워!
“싫어! 더럽잖아, 이 돼지야!”
나도 모르게 냅다 지르고 본 한 문장으로 인해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포카를 치던 분들은 웃기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고
덩치는 얼굴이 울긋불긋 해지더니 인상을 잔뜩 쓴 채 날 바라보았다.
이런, 돼지라는 말은 하지 말 걸.
“죄, 죄송해요. 하지만 너무 더러워서…….”
“소리 한번만 더 지르면 그땐 진짜 입에 물릴 줄 알아.”
덩치는 그 한문장을 툭 내뱉더니 꺼냈던 손수건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어휴, 살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앞을 바라보자 포카를 치던 말끔하게 생긴 남자가 재밌다는 듯 픽 웃으며 말했다.
“한채수 취향 특이하네. 교복 입은 어린애인 걸로도 놀라운데 성격 독특한 애를 좋아하네. 웃긴 애를 좋아하는 건가.”
“저 안웃긴데요.”
나 웃긴 애 아닌데.
날 비하하는 듯한 말끔 남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발끈하여 대꾸를 하고 말았다. 말끔 남은 내 대꾸에 또 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엄마야. 때리려는 건 아니겠지?
“오빠가 웃기다면 웃긴 거야. 한채수는 너 웃기다는 말 안하냐? 하긴 뭐 그새끼 표정 변화 없는 걸로 유명하니까.”
말끔 남은 그러면서 어깨를 으쓱. 나도 말끔 남을 따라 어깨를 으쓱 거리며 말했다.
도저히 안되겠다.
내가 나 때릴까봐 한채수 애인 아니라는거 안밝히려고 했는데, 차라리 몇대 맞고 여기서 탈출하는 게 낫겠어.
“저……실은요, 저 한채수씨 애인 아닌데요.”
“뭐?”
“저 한채수씨 애인 아니라구요. 저 그사람 누군지도 모르고요 경찰서에 배달갔다가 이름 보고 냅다 애인이라고 한 거에요.”
“응? 아가 뭐라고? 오빠가 말을 잘 이해 못하겠는데……. 니가 애인이 아니라구? 어디서 뻥을 치고 그래.”
“지, 진짜에요! 저 진짜 애인 아니에요!”
“걱정마, 걱정마. 오빠들이 너한테 해코지는 안할거야. 그냥 한채수 오면 얘기 좀 하려구 그래. 한채수 오면 너 바로 풀어줄게.”
“아악! 진짜 아니라구요! 아니라는데 사람 말을 왜이렇게 못믿어요! 애인 아니야! 아니라구!”
내 발악에도 불구하고 말끔 남은 씨익 웃으며 내 머리를 두어번 톡톡 두드렸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놔, 어제 한 거짓말이 이렇게까지 큰 파동을 일으킬 줄은 몰랐는 걸.
학교에 있는 사름이랑 수리가 걱정할 텐데…….
얼레? 내가 지금 학교에 안갔으니까 사름이랑 수리가 당장 나한테 연락을 해야하는거 아닌가? 이것들이 왜 연락이 없지?
설마 학교 등교하자마자 내가 안왔다는 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 둘이 숙면 중인가? 하하하, 설마!
……아냐, 걔들은 그러고도 남아. 점심 시간 전까지 절대 안 일어날 애들이야. 그래, 걔들은 그런 애들이였어!
“채수 애인은 표정 변화도 다양하네.”
“아닙니다. 채수 애인 아니에요.”
“응, 그래그래. 좀만 더 참아. 채수 오면 풀어줄께.”
“아, 글쎄 그사람 애인 아니라구요! 그래서 그 사람 안올거라구요! 안와, 안온다고! 그사람 절대 안온다구요! 아악!”
나 이러다가 홧병 나겠다.
의자에 묶인 채 온 몸을 흔들며 ‘한채수 애인 아니오!’를 외쳤으나 말끔 남은 그저 웃으며 ‘그으래?’하고 장난만 쳐댔다.
이눔시키, 그래 너 기달려봐라. 한채수가 오나 안오나. 그 사람 안와, 안온다고!
그 사람이 미쳤냐? 애인도 아닌, 생판 모르는 나 때문에 여길 오…….
“형님! 한채숩니다. 애들하고 같이 왔는데요?”
헐!
한채수가 왔다구? 그 사람도 미친 거 아니야? 여길 왜 와. 웃긴 놈일세? 아니, 생판 모르는 나 때문에 여길 왔다구?
혹시 그 사람도 생긴 거만 멀쩡하고 완전 미친 사람 아냐?
나 구해주고서 나한테 막 이상한 요구 하는거 아니겠지? 아니면 자기 고생시켰다고 날 외딴 섬에 팔아버린다던지…….
“얼레? 야, 채수 애인아. 너는 애인이 구해주러 왔는데 왜 안색이 허옇게 질렸냐? 아가, 좋다고 팔짝팔짝 뛰어야지.”
말끔 남이 이상하단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하지만 난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아씨, 나 진짜 팔려나가는거 아냐? 어떡하지? 그냥 말끔 남이랑 한채수랑 얘기할 때 토낄까……?
“야, 이 아가 좀 풀러줘라. 피가 안통하나? 애가 점점 허옇게 질리네. 손 끝 하나 안건드렸다고 채수한테 확인 시켜줘야지.”
“아,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제가 나중에 따로 채수씨 만나서 괜찮다고 얘기할게요! 저 학교 늦어서 가봐야하는데…….”
“쓰읍, 그르냐?”
말끔 남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길래 난 어색하게 웃으며 ‘학교……’하고 답했다.
그러자 말끔 남도 씨익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희망이 있어! 희망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활짝 웃어보이려던 찰나, 말끔 남이 씨익 웃는 얼굴로 잔인하게 말했다.
“애인이 너 때문에 왔는데 그러면 쓰냐. 채수한테 얼굴은 보여주고 가야지. 아가, 학교 쯤이야 뭐 하루 째도 괜찮아.”
아악! 정말 뜻대로 되는게 없네, 없어!
난 원망의 눈으로 말끔 남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했다. 이윽고 덩치들이 내 곁으로 다가와 밧줄을 풀러줬고
그덕에 몸은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아, 어떡한담. 이 위기를 어떻게 해쳐나가야 한단 말인가! 오, 신이시여! 제발 제게 아이디어를 주소서!
“……아이디어는 무슨, 줄 턱이 없지.”
내가 온갖 걱정에 빠져 점점더 안색이 하얗게 질려갈 때쯤 창고 문이 열리며 나에게만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참 잘생겼던 그분, 그러나 지금은 두려움의 대명사인 그분, 한채수씨였다.
쓰읍, 다시봐도 잘생기긴 잘생겼네.
“영광아, 내 애인은 어디있냐? 얼굴 좀 보자.”
“채수야, 너는 아무리 젊은 여자가 좋아도 그렇지 애랑 사귀는 건 심하지 않냐? 그건 범죄야 임마.”
“별로.”
한채수는 여유롭게 담배를 입에 문 채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말끔 남은 한채수의 대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군, 말끔 남의 이름이 영광이였어. 영광스러운 말끔이로군.
내가 별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말끔 남, 그러니까 영광이를 바라보자 그는 픽 웃으며 날 향해 ‘나와.’라고 말했다.
나오라면 나와야지 내가 뭐 별 수 있나?
난 반쯤 포기한 상태로, 이제 어느 섬으로 팔려갈 것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하며 창고 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두운 창고에 있다가 갑작스레 쏟아지는 햇빛을 보아서 그런지 눈이 시려서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자, 채수야 니 애인이다. 봐라, 나 손 끝 하나 안건드렸다. 근데 니 애인 목청이 진짜 좋더라. 기차 통을 삶아 먹은 줄 알았어.”
“그래? 내 애인이라 이거지…….”
한채수는 그렇게 말하며 약 오십걸음 쯤 떨어진 곳에서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뭐, 들리진 않았겠지만.
“어린애군.”
한채수는 그렇게 말하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땅 위로 버렸다. 가볍게 담배를 발로 비벼 끈 한채수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말끔 남과 나는 한채수의 다음 반응을 기다리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거봐, 내가 나 한채수 애인 아니라고 했잖아.
“일단 내 애인을 납치한 이유나 들어보자. 이영광, 돌았냐?”
“니들이 저번에 구역 싸움 할 때 우리 순지 납치했잖아!”
“우리가 납치 한거 아니거든? 순진지 순잔지 그 개새끼가 우리 차에 타고 있었던거야. 그리고 나 개 싫어해.”
“뻥치지마! 내가, 내가 우리 순지만 생각하면……크흑!”
“그 개새끼 살 포동포동하게 찌워서 돌려보내줬잖아. 얼마나 쳐먹었는지 우리 사무실 애들보다 더 많이 쳐먹었어.”
뭐냐 이건. 난 ‘순지’라는 ‘개’의 복수 차원에서 납치 된거냐, 지금?
내 몸 값이 지금, 그러니까 그 개랑 똑같다는 거냐?
뇌의 모든 회로가 정지된 듯한 멍한 상태로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이영광이라 불린 말끔 남은 ‘크흑, 순지야!’를 외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말끔 남의 반응에 내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다 못해 그의 정강이라도 한대 차주려는 심보로 발을 들려는 찰나,
한채수가 꽤나 여유로운 톤의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덕에 균형을 잃은 난 뒤뚱거리다가 자빠질 뻔 했지만, 다행히 자빠지진 않았다. 다만 아주 약간 웃긴 몸개그가 되었을 뿐.
“어쨌거나 니가 내 애인을 납치했으니까 나도 조용히는 못 넘어가겠다. 저번에 내가 너네한테 빌려준 구역, 내놔.”
“크흑, 순지야!”
“안들리는 척 하지마라 이영광. 내가 애들 괜히 끌고 온 줄 알아? 여기 개판 만들려고 그런거야. 실행에 옮겨줄까?”
“……새끼, 까칠하긴.”
말끔 남은 언제 ‘순지야!’를 외치며 훌쩍였냐는 표정으로 능글맞게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내 시선을 의식한 듯 말끔 남은 날 향해 어깨를 으쓱이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가, 애인한테 가봐. 그리고 다음에 시간나면 우리 따로 좀 만날까? 우리 아가가 오빠한테 준 큰웃음이 안잊혀질 것 같아.”
“아, 전 수험생이라서 바쁜 몸이라 따로 만나뵐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안녕히 계세요. 폐 많았습니다.”
마지막까지 공손하게.
사람이 언제 어디서 다시 어떤 루트를 통해 만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그런 내 행동에 말끔 남은 아주 크게 ‘푸하하!’하고 웃으며 눈물까지 머금은 채 한채수를 향해 외쳤다.
“한채수, 니 애인 대박이다! 아, 진짜 웃겨! 너 여자 취향 진짜 독특한가부다?”
말끔 남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한채수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는 단지 터벅터벅 느린 걸음으로 자신을 향해 걸어가는 날 물끄러미 응시할 뿐이었다.
아무런 반응 없이 날 바라보는 한채수의 시선에 딱히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땅만 보고 걷던 나는 내 시야의 끝에
한채수의 발 끝이 들어오자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 슬그머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뿌연 담배 연기를 입 밖으로 내뱉으며 천천히 날 훑어보았다.
“니가 내 애인이라고? 재미있군.”
한채수는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옮겨 말끔 남을 바라보았다. 말끔 남은 한채수의 덤덤한 반응이 재미없었는지 살짝 인상을
쓴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한채수의 애인인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니라고 악을 박박 써댔는데 절대 안믿는구먼.
“난 진짜 니 애인한테 손 끝 하나 안건드렸다. 뭐, 순지는 핑계고 사실은 니 애인이 궁금해서 데려왔던거다.”
“그리고.”
“그래, 그리고 니네 구역은 돌려주지. 조만간 다시 찾으러 갈거다.”
한채수는 말끔 남에게 원하는 답변을 얻은 듯 ‘좋군.’이라는 짧은 대꾸를 남겼다.
이윽고 그는 타고왔던 검은 차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가 걷자 그의 쫄따구, 그러니까 부하로 보이는 덩치들도 걷기 시작했다.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치만 살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지만.
그러다 문득 뒷통수가 따끔거려 뒤를 돌아보자 한채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서, 설마 날 죽이진 않을꺼야. 그렇지? 내 이 가엾은 표정을 보면 날 죽이진 못할 거야. 섬에 팔, 팔긴 해도…….
“어린애, 타라.”
“넵.”
찍소리도 못하고 도살장 끌려가는 처량한 동물처럼 그의 검은 차에 올라탔다.
납치 될 때처럼 타느니 못타느니 행패를 부렸다간 팔다리 똑똑 부러트린 다음 태울 것 같아서 아주 조용하고 민첩하게 탔다.
한채수는 그런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차에 타려는 듯 몸을 숙였다.
바로 그때, 말끔 남이 아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형님이 너 좀 보자더라. 매정한 아들이라고 섭섭해하시던데, 이제 좀 들어와서 효도 해야지? 언제까지 철부지 아들처럼
아버지 귀찮게 할거냐? 오죽하면 형님이 니 애인이라도 납치해서 널 보고싶어 하셨을까.”
“…….”
“형님이 니 애인 못보는 걸 아쉬워하시던군. 부산에서 일만 안터졌어도 지금 여기에 계셨을텐데. 그럼 조심히 가게나, 친구!
그리고 채수 애인! 다음에 또 봐. 즐거웠어.”
난 하나도 안즐거웠어.
말끔 남의 능글맞은 인사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홱 돌렸으나 얼른 웃는 얼굴로 표정을 바꿔야 했다.
때마침 한채수가 그쪽 방향에서 차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왜 하필 내 옆자리에 앉는거지?
난 어색하지만 생글생글 웃으며 한채수를 바라보았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날 바라보더니 나즈막히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못봐주겠군.”
아놔…….
찍소리도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야 했다. 아, 서러운 청춘아.
*
“앉지.”
“넵.”
검은 차에 태워져 도착한 곳은 아주 커다란 빌딩이었다. 어찌나 번쩍번쩍거리는지 눈이 부실 지경이였다.
빌딩 속에 있는 한채수의 사무실, 그러니까 아무대로 그들 조직의 근거지는 꽤 깔끔했다.
조직이 생활하는 사무실이니까 좀 쾌쾌하고 더럽고 지하 으슥한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보통 회사의 사무실보다 더 깔끔해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설명 좀 하지.”
“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나? 내가 왜 널 데리러 거기까지 갔는지 설명 좀 하라구.”
“한채수씨가 날 데리러 창고까지 어떻게 왔는지 제가 어떻게 알고 설명을 해요? 전 계속 창고에 있었는데…….”
덤덤하게 내뱉어진 내 말에 맞은 편에 앉아있던 한채수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지간하면 표정 변화 없는 사람이었는데 진짜
짜증났나보다.
괜히 머쓱해진 내가 주위를 둘러보자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와 한채수를 지켜보던 다른 덩치들이 황급히 내 시선을 피했다.
뭐, 뭐냐?
“나도 모르는 새에 어떻게 나한테 어린 애인이 생겼는지 설명 좀 해보라구. 그건 너밖에 모르잖아.”
한채수가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귀찮다는 투로 말을 내뱉었다.
굉장히 차분하게 말을 내뱉었는데도 무섭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진짜 섬에 팔아버리는거 아냐, 이거?
난 힐끔 한채수를 쳐다보았으나 그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아주 긴 설명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러니까요, 저희 엄마가 그 도리고 아시죠? 도리고 근처에 그 먹자 골목 있잖아요? 거기서 포장마차를 하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밤마다 엄마를 돕거든요? 근데 어제 경찰서에서 배달이 들어와서 배달을 나갔다가 거기서 한채수씨 관련된 서류를
제가 좀 봤어요. 이름하고 사진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보는데, 형사 아저씨들이 한채수씨가 조직에서 오른팔이라고 설명을
해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아, 그렇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
“길군.”
“네? 아, 네. 좀 길죠? 아무튼 그래서 배달을 하고 다시 포장마차로 돌아왔는데 아, 글쎄 아까 그 창고에 있던 덩치들 중 몇명이
포장마차를 개판으로 만든거에요. 장사세를 내라고. 근데 그렇게 개판으로 만들면 장사를 못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화가 나서
좀 뭐라고 했어요. 그래서 싸움이 붙었는데, 그 엄청난 덩치들이 제 머리 끄덩이를 붙잡고 막 흔드는거에요. 그러면 아프잖아요?
그래서 제가 딱 생각난게 한채수씨 이름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한채수씨 이름을 좀 팔았어요…….”
“내가 한채수 애인인데, 너네가 나한테 이렇게 하면 안된다?”
“네! 어떻게 거기 계시지도 않았는데 잘 아시네요? 네, 제가 그렇게 얘기했거든요? 그랬더니 순순히 가더라구요? 그래서 얼른
포장마차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하고 잤어요. 다음 날 학교를 가야하잖아요? 보다시피 전 학생이니까. 어이구, 근데
오늘은 엄청나게 지각을 했네. 지금 몇시에요? 벌써 11시에요? 우와, 나 큰일났다. 몇교시 할때지?”
“그리고.”
“아, 맞다. 얘기중이었지. 아무튼 그래서 제가 아침에 늦잠을 잤어요. 그래서 같이 등교하는 친구들한테 먼저 등교하라고 했거든요?
근데 이게 참 타이밍도 기가막히죠? 하필이면 오늘 아침에 납치를 당한거에요! 그 덩치들한테! 한채수씨 애인이라고.
아니라고 계속 얘기했거든요? 근데 그 이영광씨? 그분이 안 믿으시는 거에요.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죄송해요.”
말을 다 끝내면서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사과를 했다. 한채수는 말 없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테이블에 놓여진
컵을 내 앞으로 쓱 밀어줬다.
냉수였다. 냉수 먹고 속차리라는 건가? 아니면 여기에 독을 탔나?
내가 힐끔 한채수를 바라보자 한채수는 짧은 한숨과 함께 귀찮다는 투로 말했다.
“말을 많이 해서 목 탈텐데 마시지. 아직 긴장도 덜 풀렸을테고.”
“아,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냉수를 벌컥벌컥……마시다가 사례가 들려 다시 기침을 켁켁 해댔다. 물 마시다가 체할 뻔 했어!
한채수는 꽤나 한심한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버리더니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잘생긴 얼굴이 다가오자 저절로 긴장이 됐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한채수가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야기는 다 들었고……. 이제 흥정을 좀 해볼까?”
“네?”
흥정이라니? 여기가 시장 바닥이야 흥정을 하게?
헉! 설마, 혹시 내 몸 값? 진짜 날 섬에 팔아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응? 그렇지?
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채수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내 표정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무심해!
“내 이름을 무단으로 썼고, 날 귀찮게 만들었으니 그 값은 지불해야하지 않겠어? 아무리 어려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 쯤은
알겠지. 설마 내 이름을 팔아놓고 공짜로 입 닦겠다는 건 아니겠지? 응?”
“네, 네 그러믄요. 설마요! 얼마쯤을 생각하시는지……?”
한채수는 내 반응에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는 새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더니 사무실을 쭉 훑어보았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부엌이었다.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부엌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오피스텔을 개조한 건가? 부엌까지 딸려있는거보면. 무슨 사무실이 우리 집보다 더 좋냐? 우리 집의 굴욕이다 정말.
“너 요리는 좀 하냐?”
“네? 네, 조금.”
“청소는?”
“잘합니다.”
“그래?”
한채수는 담배를 깊게 한모금 빨아들이더니 후 하고 뿌연 연기를 뱉어냈다.
뿌연 연기 너머에 있는 그의 얼굴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가 없어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너 없으면 포장마차가 안돌아가냐?”
“네? 아니요, 그렇진 않은데 자꾸 덩치들이 와서 행패를 부려서요. 또 배달도 가야하고…….”
“앞으로 행패는 못 부릴거다. 구역 관리자가 바뀌었으니까. 그리고 배달은……”
한채수가 말 끝을 흐리더니 사무실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사무실 끝 쪽에 있던 제법 날렵해보이는 사내를 향해
외쳤다.
“달수야, 너가 포장마차 배달 좀 해라. 어차피 너 구역 관리 해야하지? 하는 김에 배달 좀 해. 경찰서 가서 인사도 좀 하고.”
“예, 형님.”
뭐여? 우리 엄마 포장마차 배달을 지금 저 사내에게 시킨 것이여? 얼레? 날 섬에 팔아도 모자랄 지경인데 일을 도와준다고?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한채수를 바라보자 한채수는 덤덤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그것이 태풍이 오기 전 그 고요함일 줄. 그 덤덤한 표정에서 어찌 그리 잔인함이 나올 수 있는지!
“넌 학교 끝나자마자 여기로 출근해서 요리하고 청소 좀 해라. 어치파 애들 밤에 출근하니까. 딱 두 달만 해.”
“네? 저 학교 끝나면 10신데…….”
“그때부터 바로 뛰어와서 해. 도리고에서 여기까지 십분이면 도착해. 아주 빨리 뛰면.”
내가 너무 놀란 나머지 멍청한 표정으로 한채수를 바라보자 그가 손을 뻗어 헤 하고 벌려진 내 턱을 닫아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 침 흘린다. 더럽게. 무튼 두 달이면 길지도 않잖아? 구역 싸움 중에 사무실이 습격을 받아서 전에 일하던 아주머니가
다치셨거든. 그덕에 한 두 달 쉬셔야 한다는데 그때까지만 일해. 어때? 좋지?”
만약 싫다고 대답하면 가만 안둘건데 라는 표정으로 물어오는 한채수 때문에 난 울며 겨자 먹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랑 청소 진짜 못한다고 할 걸…….
“요리랑 청소라도 잘해서 다행이네. 그거라도 못했으면 어디 섬에 팔아야 하나 했는데. 그럼 학교 가봐, 늦었다며.
출근은 내일부터다. 오늘은 놀랐을 텐데 쉬어.”
요리랑 청소라도 잘해서 진짜 다행이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채수를 향해 구십도 가까이 인사를 했다. 허리를 얼마나 깊게 숙였는지 모른다.
내가 진짜 학교에서도 선생님한테 이렇게 인사 안하는데…….
“네, 안녕히 계세요.”
“아, 가기 전에 잠깐.”
“네?”
“핸드폰 번호는 찍고 가야지.”
한채수가 건네는 핸드폰을 받아들고 조심조심 핸드폰 번호를 찍었다. 내 번호가 혹시라도 틀렸을까봐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한채수는 자신의 핸드폰에 남긴 내 번호로 전화까지 걸어 진짜 내 번호가 맞는지 확인한 뒤에야 내게 ‘가봐.’라고 말했다.
너무 철저해!
“안녕히 계세요.”
한채수는 내 인사에 별 말 없이 손만 훠이 저어보였다.
하지만 사무실에 있는 다른 덩치들은 내가 사무실 문 밖을 나설 때까지 손을 흔들며 아주 기쁜 듯 인사를 해주었다.
뭐냐, 나 지금 조폭한테 배웅받고 있는거냐…….
사무실 문을 닫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빌딩 밖으로 나올 때까지도 난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빌딩 밖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난 참아왔던 숨을 한번에 내쉬며 몸을 돌려 빌딩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높은지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꺾어야 그 끝이 보일락 말락 했다.
“나 지금 살아는 있는거지?”
양 손으로 더듬더듬 몸을 확인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 앉았다.
머리 속에선 아직도 한채수가 ‘딱 두 달만 일해. 어때? 좋지?’하고 물어오던 음성이 생생하게 울렸다.
어쩐지 어마어마한 일을 겪은 것 같은데…….
“괜찮겠지?”
그래, 괜찮을거야. 암, 괜찮고 말고! 안죽고 살아있는게 어디야? 외딴 섬에 팔리지 않은게 어디야?
괜찮다, 나한이! 넌 해낼 수 있어!
고작 두 달인 걸? 두 달만 버티면 넌 자유야! 자유라고!
……근데 아까 원래 일하던 아주머니가 습격을 받아서 두 달은 쉬어야 한다구 했지? 그럼 나두 그럴 수 있다는 거…….
에이, 괜찮아! 괜찮아!
“아악! 괜찮을 리가 없잖아!”
학교로 걸어가는 내내 나는 내 닭털을 뽑는 사람처럼 내 머리털을 쥐어 뜯어야만 했다.
가능하다면, 어제 한채수 이름을 팔았던 내 이 주둥이를 뽑아버리고만 싶다.
아악!
***
눈에 다래끼가 났어요T_T. 아웅, 어쩌지 안과에 가야하나.
흑흑.
앞에 편수에 꼬리말 달아주셨던 분들께 모두 감사해요. 어쩐지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네요 흐흐.
날씨가 보송보송 봄이에요. (사실 여름에 가깝게 느껴지지만)
건강 조심하세요.
야호♬ 올림.
첫댓글 ㅋㅋ 신선해서 좋습니다 ㅋㅋㅋ 재미있구요 설정이 귀여운거 같아요^^
좋아요 ㅋ 주인공이 귀엽네요
ㅋㅋ 재밌어영 ㅋㅋ 다음편도 기다릴게여 ㅋㅋ 얼른 오셔요 ㅋㅋㅋ
앜ㅋ너무좋습니다....요런스토리좋아요...ㅋㅋㅋ잘읽고갑니다!
여쥔공 말투가 생생하다생생햌ㅋㅋㅋㅋㅋ
우왕ㅋ굳ㅋ 재밌어요 ㅋㅋ
너뮤 재빗어요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