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간 토요일 강론>(2025. 3. 1. 토)(마르 10,13-16)
복음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3-16 그때에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1) 여기서 ‘어린이’는, 작고 가난하고 힘없고 보잘것없는 ‘소외계층’ 사람들, 즉 복음서에 보통 ‘작은 이들’로 표현되어 있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영적인 소외계층 사람들’도, 즉 죄인이라고 무시당하는 사람들과 ‘잃은 양’ 취급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포함됩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라는 말씀에서 ‘그냥 놓아두어라.’는 “내버려두어라.”가 아니라, ‘인도해 주어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소외계층 사람들이(‘작은 이들’이) 나에게 올 수 있도록(나를 만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인도해 주고, 안내해 주어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신앙인들은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는 소외당하지 않도록, 즉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일에(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더욱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하고,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신앙인들이 실천해야 할 중요한 ‘사랑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이 기도는, 인간 세상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서는 소외당하지 않고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기도입니다.
2)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 신자들을 매우 엄하게 꾸짖은 일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내가 지시하려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이 이익이 아니라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1코린 11,17.20-22).” 이 말은, ‘아가페 만찬’을 하려고 신자들이 교회에 모여 있는 상황에서, 부자들이 자기들끼리만 어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킨 것을 꾸짖는 말입니다.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라는 말은, “가난한 이들은 굶고 있는데, 부자들은 배불리 먹고 술에 취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 짓은 ‘사랑’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고, 가난한 이들을 교회에서 밀어내는 일이기 때문에 ‘큰 죄’가 됩니다. 그렇게 ‘사랑 없는’ 식사였기 때문에, 그 만찬은 ‘아가페 만찬’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 부자들의 위선만 가득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식사였습니다.
3) 야고보서에 있는 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야고 2,1-4)” 만일에 교회 안에 빈부차별이 있다면, 그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절대로 빈부차별이 없다.” 라고 큰소리치기 전에 먼저, 교회 운영과 제 단체 운영을,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여유 있게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늘 ‘베푸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잘난 체 하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늘 ‘받기만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 생각하면서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중요한 직책을 모두 ‘사회적인 기득권층 사람들’이 차지하면서, 그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4)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라는 말씀의 ‘어린이’는, 산상설교의 ‘참 행복 선언’에 언급되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마태 5,3-12). 하느님 나라는 가진 것이 많다고, 배운 것이 많다고, 신분과 지위가 높다고 우쭐거리는 교만한 자들은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15절).
그 나라는, 하느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뿐이다.” 라는 것을 깨닫고, 진심으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