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 79년 역사상 광복절 기념식이 두 곳에서 열리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정부주관 기념행사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회와 관련단체들의 행사는 백범기념관에서 열려 언론으로부터 대한민국이 양분되었다는 강력한 지적을 받았는데 그 원인을 살펴보면 부모와 조상을 잘 만난 덕에 호의호식하며 광복회장의 감투를 쓴 이종찬(이하 이종찬)의 무모한 야욕과 자기도취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종찬의 몽니로 사실상 광복절 기념식이 두 곳에서 열렸는데 이종찬이 몽니를 부린 것은 독립기념관장 임명 때문이었는데 김구 맹신자인 이종찬은 김구의 손자 김진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앉히려고 적극적 밀어붙였는데 임명되지 않자 비겁하고 야비하게 몽니를 부린 때문이다.
광복회 구성원 대부분이 과거 일제강점기 35년 동인 빼앗긴 국권(주권)을 되찾기 위해 고귀한 생명까지 바치며 독립투쟁을 한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후손들이다. 그러므로 독립을 위해 몰을 바친 후손들이 선대들의 숭고한 정신과 얼을 잇기 위해 광복회의 구성원이 되고 임직원이 되는 것은 당연하기에 어느 국민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번 8·15 79주년 광복절을 맞아 이종찬이 보인 추태는 자신의 훌륭한 선대의 애국정신·독립정신·애민정신을 송두리째 불명예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이종찬은 자기들만 모여서 개최한 광복절 기년행사에 정치인들 참여는 반대한다면서 민주당과 曺國당 등 ‘자유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진보를 가장한 추악한 종북좌파(이하 종북좌파)’ 정당 소속의 국회의원 이 100여명 참석했는데 왜 쫓아내지 않고 받아들였는가! 결과적으로 이종찬은 자신이 종북좌파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데일리안은 「이종찬, 중정 공채 1호-7번 당적 변경…마지막 변신」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자유기고가 정기수 칼럼을 인용하여 “(이종찬은)도대체 무슨 욕심이 남아 거짓 선동과 억지 주장으로 야당의 친일파 장사에 기름을 대며 나라의 경축일인 광복절 행사를 두 쪽으로 찢어 놓고 싶었을까? 이종찬이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만에 새 광복회장이 되었을 때, 이제 좀 그 동네가 조용해지고 꼴사나운 종북좌파 짓 보지 않게 됐구나 하고 안심했었다. 6.25를 민족해방전쟁이라 하고 안익태 선생을 민족 반역자라 칭하며 애국가 없는 광복절 기념식을 주도했던 김원웅 후임이었기 때문이다.”면서 “그것은 헛된 기대였고 틀려도 많이 틀린 예상이었다. 이종찬은 김원웅보다 절대 못 하지 않은 반(反) 애국자유 보수였고, 반 윤석열이었다. 그는 한낱 김구 맹목 숭배자였으며 이승만을 결사적으로 증오하는, 그래서 1948년 정부 수립(건국)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 종북좌파의 아류였다. 그가 살아온 행적을 보자. 일관성이 전혀 없는, 변절 입신양명 주의자의 그것이다. 어쩌면 전임자 김원웅과 그렇게 닮았는지 깜짝 놀라게 된다.”고 비판했다.
또 하나 이종찬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건국(정부수립)을 인정하든 말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을 결사적으로 증오하는 것이 모순인 것은 김구를 중심으로 조직된 중국의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이었고, 해방 후 건국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도 이승만이었다는 사실을 무시(부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종찬은 독립과 광복 관련 단체들의 수장은 반드시 독립투사들의 후손이 맡아야 한다는 즉 전유물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능력이 t는 후손이 있다면 당연히 맡을 수도 있지만 능력이나 소양이 있는 인물이 아닌데도 중책을 맞는다는 것은 기득권을 누리려는 모순일 뿐이다.
그리고 이종찬의 추악한 인생 역정에 대하여 “이종찬은 육사를 졸업하고 중앙정보부 공채 1호로 들어가 정보부(안기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전두환 5공 때 민정당 권력 서열 2위로 한때 후계자 소리도 들었으며, 3당 합당으로 김영삼이 민자당을 장악하면서 그의 변신(변절)이 시작됐다. 김대중의 민주당으로 옮겨가 그의 대선 승리에 기여, 인수위원장도 맡았다. 공신(功臣)으로 국정원장이 됐다. 이후 문재인 대선 후보 선대위 고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7개 당(민정-민자-새한국-국민회의-국민회의(탈당 후 복당)-민주)에 적을 새로 두었다.”고 비난하였다,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순 없습니다.”라는 이종찬의 발언에 대해서도 “그가 언제부터 피 운운하는 투사였나? 김대중 당에서 배운 선동 웅변술이다. 지금 2024년이다. 88세 노옹(老翁)이 피로 쓰인 역사 외쳐봐야 들어 주는 이 한 명도 없다. “저 할아버지가 무슨 소리 하나?”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라며 신랄하게 이종찬의 같잖은 언행에 대한 비판을 했다.
광복회원 전부는 아니지만 이종찬을 비롯한 일부는 대한민국 건국을 1919년 중국의 상하이에 세워진 임시정부부터라고 주장을 하는데 이는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번 79주년 8·15 광복절 행사가 두 곳에서 열린 건도 건국을 1919년 중국의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부터냐 광복이 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세계에 공포한 날부터냐에 대한 이견 때문인데 상식적으로 생각으로 생각해도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의 국가가 성립되려만 국민·영토·주권의 3요소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국민·영토는 있었지만 주권을 일본제국주의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독립투사들이 일제에 빼앗긴 주권을 피를 흘린 것 아닌가! 만일 상하이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면 주권을 찾기 위해 독립투사들이 피를 흘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서울대 명예교수 이인호(서양사, 하버드대 박사)는 이종찬이 건국의 해와 관련하여 벌린 소란을 보고는 1919년이 건국 해라는 동갑(1936년생)내기 이종찬이 들으라고 “나는 정말 그분(이종찬)이 전혀 이해가 안 된다. 우리는 당시 일제의 호적을 받았다. 그때 우리가 (1919년 건국해) 한 나라의 ‘국민’(國民) 이었다면, 우리에게 나라가 있었다면 왜 일제하에서 우리가 식민지로 신음하고 독립운동을 해야 했겠는가?”라면서 이종찬의 무식함을 비판하였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춘천에서 열린 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광복회 강원도지부장 김문덕이 기념식에서 “건국절 제정 시도는 여러 번 있었으나 그때마다 전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면서 “우리나라가 1948년 건국했다면 이는 반헌법적이고 일제의 강점을 합법화시키려는 핑계”라며 이종찬 광복회장 기념사를 대독하자 김 지사는 경축사에서 “어떤 분들은 3.1 독립선언과 임시정부 수립이 이뤄진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주장히는데, 국가는 국민·주권·영토가 있어야 하지만 1919년에 건국이 됐다고 하면 나라가 이미 있기 때문에 독립운동도 필요 없고 광복 자체도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1948년에 자유민주주의 헌법에 입각한 공화국을 선포한 것을 1948년 건국은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반헌법적이고 일제강점기를 합법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면서 “이들은 궤변으로 1948년 건국을 극구 부인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자학적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김문덕 도지부장은 대꾸할 말이 없으니까 “말을 그런 식으로 하냐”고 강력하게 항의하며 광복회원들과 함께 행사장에서 퇴장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행위가 바로 종북좌파들의 상투수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