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쿼터의 사나이, 캥거루 슛터, 한국 최고의 클러치 슛터
180이 채 안되는 단신이었지만 조성원선수는 한국 농구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였습니다. 키에 걸맞지 않게 SF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조성원선수는 빠른발과 최상급 돌파력,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볼수 없을정도의 긴 체공시간을 바탕으로 환상적인 더블클러치와 점프슛을 구사하는 선수였습니다. 특히 그의 점프슛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짝발인 상황에서 예고없이 시도되었고, 그보다 키가 월등히 큰 수비수들도 막지 못했죠. 그래서 생긴 별명이 캥거루 슛터, 그리고 파이널의 사나이, 클러치 슛터, 4쿼터의 사나이등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위기를 즐기는 그런 선수였습니다.
이(상민)-조(성원)-추(승균)라인업
명지대를 나온 조성원선수가 상무에 입단해 있던 동안, 97년 프로농구가 탄생했었습니다. 당시 조성원선수가 들어와 있던 팀은 현대 다이넷이었고, 당시 다이넷은 이상민, 김재훈, 조성원이라는 핵심멤버들이 모두 상무에 들어가 있으면서, 7위(당시 8팀)에 머물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인 97-98시즌, 현대 다이넷은 한양대의 에이스 추승균선수가 합류하고, 이상민, 조성원, 김재훈선수가 전역하면서 그 이름도 유명한 이-조-추 라인업이 탄생했습니다.
참 싫었던 현대
이조추라인과 함께 한국에서만 7년을 뛴 당시 19순위로 뽑힌 맥도웰과 2순위 제이웹은 한국농구에 빠른 적응력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전년도 우승팀 기아 엔터프라이스,허동만라인을 자랑하는 기아와 맞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우승을 차지 합니다. 당시 기아를 응원했던 필자는 허재의 눈에 피가나고 손이 다친채 플레이하던 투혼을 응원했었고, 그래서 더욱더 이조추가 싫었습니다. 컴퓨터 가드라는 별명답게 적시적소에 패스를 넣어주는 이상민이나, 신인이라곤 생각할수 없을정도로 침착한 미들슛을 자랑한 추승균이나, 별로 유명하지도 않는 단신 PF맥도웰이나, 모두 맘에 안들었습니다. 그중 가장 싫었던 선수는 기아가 역전할려고만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말도안되는 점프슛으로 3점을 성공시켰던 조성원선수였습니다. 도대체가 상식적으론 막을수 없던 선수같았습니다. 현대는 98-99시즌에도 이조추와 맥도웰의 활약으로 기아를 4-1로 꺽고 2연패를 거뒀습니다. 정규시즌 33승 12패를 기록하는등 명실상부한 최강팀이었습니다.
토탈농구의 피해자
99-00시즌때도 정규시즌에 우승한 현대는 SK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고, 그래서 '신산'신선우 감독이 해결책으로 내민것이 바로 토탈농구입니다. 5명이 모두 뛰며, 서로 포지션에 상관없이 포스트업을 하며 상대와의 미스매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포지션 파괴의 농구였습니다. 기본적으로 키가 큰선수들이 가드급의 패스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수 있는 농구로써 키가 작은 조성원선수는 키가 큰 LG의 양희승선수와 트래이드 되고 맙니다. 이후 현대는 이상민-양희승-추승균-맥도웰-데이먼 플린트의 라인업으로 토탈농구를 시도했지만 원년이후 3년연속 진출해오던 챔피언 결정전 진출마저도 실패하고 맙니다. 그후 01-02시즌에 전주KCC이지스로 연고지를 옮긴 현대는 이상민-양희승-추승균-이현준-재런콥-재키존스-정재근이 로테이션 돌아가며 전원 포스트업을 하며 포지션 파괴농구의 진수를 보여줬고, 당시에 센터중심의 농구많이 강팀의 지름길이라던 농구 풍토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00-01시즌의 LG에서 MVP 조성원
현대는 조성원을 포기하고 선택한 토탈농구로 고전을 면치못했던 반면, LG는 말그대로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조성원은 LG에서 에이스 역활을 해냈고, 팀은 정규시즌 2위에 이어서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25.7점 4어시스트를 기록한 조성원선수는 MVP를 수상하며 최고의 선수로 우뚝섰습니다. 자립 1년만에 대성공이었고, 앞으로 깨지기 힘들 최고의 득점력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삼성에게 져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조성원이 에이스 오브 에이스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준 시즌이었습니다.
시련속에 다시 뭉친 이조추
00-01시즌의 화려함속에 조성원선수는 단신인 이유로 수비에서 문제점을 많이 일으켰고, 결국 SK로 트래이드 되고 맙니다. SK에서도 나름대로 득점력을 뽐냈지만 뭔가 수비문제가 커보였고, 부진하다는인식이 강했습니다. KCC에서도 오리온스에서 야심차게 대려온 전희철선수가 토탈농구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면서 골치덩어리로 전략했고, SK와 KCC는 이해타산적인 트래이드로 전희철-조성원선수를 서로 맞바꾸게 됩니다. 2003년 12월에 다시한번 이조추 라인업이 탄생했던 겁니다. 2003트라이아웃에서 찰스민랜드라는 이스라엘리그에서 대활약한 용병을 건진 KCC는 파죽지세로 잘나갔고,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모비스의 R.F 바셋마저 데려오면서 막강 전력을 구축, 챔피언 결정전에서 김주성을 앞세운 전녀도 우승팀 TG삼보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우승을 차지, 이조추 라인만으로도 3번의 우승을 이끌어내는 쾌거를 이룩합니다.
무릅부상으로 접은 아쉬운 은퇴
04-05시즌에도 결승전에 진출한 KCC는 TG삼보에게 아쉽게 졌지만 이때까지 이조추 라인업이 뭉쳐서 모두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던 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번 2005-06시즌에 처음으로 챔피언 진출전에 도달하지 못했죠. 이미 3선수 모두 노장이엇고, 특히 조성원선수는 고질적인 무릅부상으로 2005-06시즌 내내 부진했습니다. 이제 무릅으로 인해 느려진 순발력으론 상대 가드를 막기에도 역부족이었고, 점점 노쇠화 한다는게 느껴지는시즌이었습니다. 그리고 5월 음주운전에 걸리는듯 평소조성원답지 않던 일도 일어났습니다. 결국 무릅부상으로 은퇴를 결정, 이제 지도자 수업을 받으러 갑니다.
현대시절 너무 나도 싫었던. 아니 무서웠던 조성원선수, 현대가 KCC로 바뀌면서 전주에 오면서 어쩔수 없이 구경간 필자는 KCC이지스 팬이되었고, 그 싫었던 조성원선수의 가장 열광적인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71년생의 나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를 결정했고 KCC팬으로써 매우 아쉽지만 어쩔수 없는거 같습니다. 클러치 상황이 가장 즐거웠다는 조성원선수, 어설프게 공부해서 지도자 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조성원선수의 지도자 인생이 활짝 피길 바랄겠습니다.
정말 제 인생의 최고의 클러치 슛터는 바로 조성원선수였습니다.
첫댓글 자유 칼럼 고고~
어렸을적 선수들도 제대로 모를 시절 기억에 남는건 이상민의 컴퓨터 패스와, 조성원 선수의 기가 맥힌 3점..
아.....정말 멋진 선수죠~엄청난 노력끝에 얻은 3점능력~!! 결정적 순간에 한방~! 98~99KBL 플옵과 파이널에서는 정말 쏘면 다들어 갔었는데....그 포스를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겠네요..
저에게는 조던도 밀러도 아닌 조성원형님이 저에게 최고였습니다. 고등학교때 한창 현대 다이넷이 우승할때 조성원 선수가 너무좋아서 존경하는 인물란에 조성원이러고 썻다가 울 학주한테 귓방망이를 맞았던 기억이...
아 저랑 똑같네요. 저는 조성원LG시절에 가장 좋아하는 인물란에 조성원썼었는데 그당시 창원에 조성원선수인기많아서 우리반 반정도는 조성원을 썼던 기억이나네요..
마지막 음주운전만 아니었다면 더 멋있는 은퇴가 되었을...아쉽지만 멋진 선수.
저에게 KBL 선수로는 최고였는데..그 고탄력으로 더블클러치 할때 완전 반했다는..너무 아쉽습니다..당연히 또 뛰실줄 알았는데..코치로도 좋은 모습 보여주시길..^^
전 그래도 LG시절의 조성원이 제일 좋았습니다
토탈농구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이-조-추 의 연봉문제가 크지 않았나요? 물론 토탈과 섞이면서 다른 선수가 아닌 조성원선수가 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