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과 용서 (연중 제8주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9-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타인에게는 가혹할 만큼 그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너무나 정확히 보고 판단합니다. 자신 스스로에게 칼날 같은 비판없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위선입니다.
다른 사람 눈 속의 작은 티끌을 보는 것이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보는 것보다 쉽습니다. 또한 내 눈의 들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수 많은 이유를 들어 변명하면서까지 자신에게만은 관대합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자신의 관점을 바꾸고,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자신을 바꾸면 더 이상 형제들의 눈에 있는 티끌을 치우고 싶어하지 않게 되고 형제들에게 더 관대해질 수 있습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우리는 내가 그 보다 더 나쁘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립니다. 나 또한 나쁜 습관들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형제들을 비난할 때 자신은 마치 면죄부를 받은 사람처럼 다른 사람을 판단해도 되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어떤 수도자가 다른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수도승이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그는 그 수도승을 비난했습니다. 그가 사막에 있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천사가 막았습니다. “당신은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신께서 나를 보내서 당신에게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수도승을 어디로 밀어냈습니까?”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천사가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심판하시기 전에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고 있거나 무심코 행동들이 비난받는다면 정말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싫어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마십시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서로 해치지 않고, 서로 돕고, 서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열정적으로 섬기되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마십시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가르침을 우리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오늘 복음의 ‘티끌’과 ‘들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2.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도,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걸까요?
3. 내 눈 속의 ‘들보’를 없애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진 설명>
견진 성사를 받는 청소년들
하노이대교구의 Yên Duyên 성당은 2020년 공소에서 본당이 된 곳으로 매년 20-30명의 청소년들이 견진 성사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55명의 청소년들이 견진 성사를 받았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