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백두대간 5회차 빼재~덕산재 구간을 종주할 때 배낭 안에 들어 있던 소설 '잘못된 만찬'을 쓴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가 1일(현지시간)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무려 15차례나 후보로 추천됐다. 그는 이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것으로 사람들이 오해한다고 농을 한 적이 있다)이자 2019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고인은 심장마비를 일으켜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1936년 1월 28일 알바니아 남부 지로카스터르(Gjirokaster)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카다레는 알바니아가 공산 독재 치하이던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나중에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아누크 에메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그 뒤 ‘돌의 연대기’ ‘꿈의 궁전’ ‘부서진 사월’ 등을 썼고, “그의 조국 알바니아보다 유명하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국제적인 명성을 누렸다.
카다레는 1990년 민주화를 촉구하며 알바니아 정부를 비판한 뒤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파리에서 생활하다 2022년에야 고국으로 돌아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알바니아를 찾았을 때 그의 목에 레종 도뇌르 훈장을 걸어줬다.
카다레의 소설은 전 세계 45개 나라에서 번역 출간됐다. 2005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2015년 예루살렘상, 2019년 박경리문학상, 2020년 노이슈타트 국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국내에도 그의 주요작들이 번역됐으며 최근엔 산문집도 출판됐다.
고인은 1946년 집권하면서 1985년 사망할 때까지 스탈린에 버금가는 철권 통치를 휘두른 엔베르 호자의 전횡에 맞서 펜을 보이지 않는 무기로 썼다는 세평을 듣는다. 정교한 스토리텔링과 메타포나 아이러니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은 종종 조지 오웰이나 프란츠 카프카와 닮았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생전에 AFP 통신 인터뷰를 통해 "어두운 시대는 유쾌하지 않은 일들도 가져오지만 아름다운 놀라움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털어놓은 일은 유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자는 카다레와 같은 마을 출신이었다. 호자의 미망인 Nexhmije는 회고록에서 문학을 좋아한다고 자랑하곤 하던 남편이 생전에 카다레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여러 번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호자 시대의 문서들에 따르면 카다레는 체포될 뻔한 위기를 여러 차례 맞았는데도 용케도 빠져나갔다. 물론 카다레는 잔혹한 독재자와 어떤 특별한 인연도 맺지 않았다고 부정했다. 그는 "내가 항거한 엔베르 호자가 날 보호했다고? 그렇게 엔베르 호자에 맞섰는데?"라고 AFP 통신에 되물었다.
같은 통신사와의 각기 다른 인터뷰를 통해 남긴 말도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내 일은 오직 문학의 법에만 복종한다. 어떤 다른 법에도 복종하지 않는다."
"난 문학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내게 불가능한 일을 극복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난 겸허해지지 않는다. 왜냐,,, 전체주의 정권일 때 겸허함은 복종을 부르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