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됐건...징하게 멋졌던 (평생 기억 될) 눈 산행
설국의 풍물을 배경으로 관능과 남녀간의 섬세한 심리를 잘 묘사한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어 일본 문학의 위상을 드높였던 소설, 雪國.
지난 눈 많이 내린 날... 책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순전히 그 제목, 하얀 "눈 나라"가 떠올려진 하루였다.
그러나...이렇게 글의 시작은 그럴싸한 서두속에 마치 눈에 홀린듯 허둥지둥한 나의 좌충우돌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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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향하여~
새벽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창 밖을 보니 밤 새 흰 눈이 소복히 쌓였네.
대뜸 오가는 길 걱정부터 되더군.
밖에 나오니 가지가지마다 탐스런 눈들- 도심 속에서 보는 흰 눈에 마음이 흐뭇해 진다.
오늘 가려는 덕유산의 일부인 월성치~삿갓봉~무룡산~동업령~칠연계곡은 지난 가을철 산불방지 기간에 걸려
오늘 땜빵으로 가는 산행.
차는 중부고속도로를 예상과는 달리 씽씽 달린다.
그러나 딱 1시간 지나면서 부터 정체-도처에 사고차량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리고 약 30분 정도 지체한 후 다시 속력을 낸다.
촌락을 지날 때 소곤한 농가들과 정겨운 앞 동산들은 눈에 폭 파묻혀 마치 크리스마스의 카드처럼 보이는군.
등산길.
11시. 드디어 산행이 시작된다.
준비없이 차 안에서 가만히 앉아있다 갑자기 "하차!"란 말에 허둥지둥 내가 만든 특수복(?)으로 갈아입고
준비를 마치니 첨부터 젤 꼴찌. "그래! 오늘 꼴찌로 천천히 가자! " 첨부터 그렇게 맘먹고
아이젠은 상황봐서 차기로 하고 후미쪽으로 따라붙어 '양악호'라는 호수까지 올랐는데...아차! 스틱을 차에 두고 왔네.
제법왔는데...갈까말까~ 망설이다...에이~ 눈 오니까...하며 결국은 다시 차에 간다.
그리곤 다시 헐레벌떡 저~ 멀리 보이는 꼬리를 잡기위해 뛴다.
그리곤 첫 번째 만나는 개울가에 왔는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 내리는 눈은 가랑비 수준을 넘어 엄청 오는군.
"이거 안되겠네" 개울을 건너기 전 방풍옷 하나를 꺼내 입는다.
그 바람에 다시 떨어진 대열을 부지런히 쫓아 잡았는데 "어라? 이번에 다시..."
아까 옷 갈아입으며 바로 그 자리에 또 스틱을 두고 왔구만. 우짠일이랴~?
'LEKI 스틱'...비록 닳아 손잡이가 반질거리지만 얼마나 나와 정이 든 놈인데...잃어버리긴 아깝지~
그래, 또 '빽'. 다시 개울을 건너 가보니 어느새 눈 쌓인 채 그놈은 얌전히 누워있네.
그 바람에 묵묵히 전진만 하는 대열 - 후미와의 거리가 또 벌어진다.
"헉헉 헥헥"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속보로~ 아니, 반은 뛴다. 이미 등과 이마는 땀으로 촉촉하다.
그 와중에도 경치는 정말 '환타스틱' 그 자체. 지난번 한창 불붙은 단풍을 보며 내려왔던 계곡인데
이젠 목화 같은 눈꽃들의 무게를 이기고 있는 가지들과 그 뿌려진 꽃가루들로 온 천지는 하얗다.
아하~ 드디어 저기 후미가 보인다.
"에헴!" (숨 고르고) 막 여유를 잡으며 모자위에 걸쳐놨던 고글을 쓰려고 보니..."어허~! 이거야 원~~! 내 오늘 왜 이러지?"
"뛰어오느라 또 어디에다 고글을 흘렸군. 이번이 세번째 빠꾼데... 그냥갈까?"
"찾기를 포기할까? " 그러나 그놈이 이런저런 사연 많은 고글인고로 다시 "빠꾸!"
내려내려 가다보니 다시 개울을 건너고 맨 처음 옷 갈아입은 장소까지 다시 왔군.
그런데... 고글은 없다.
"아이고~ 이 모꼬~?" 맥이 쭉 빠지네. 고글은 못 찾고 이미 일행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벌어졌을텐데...
정말이지 내려가고 싶다. 허나, 우리 하차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봐야 버스는 하산지점으로 이미 떠났을테고...
달리 방법이 없기에 다시 또 뛴다. 숨은 턱까지 차오고 3번의 '뺑이'를 친 뒤라 이미 다리는 뻑뻑하다.
그러다 두 번째 개울을 만나는데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내려온다.
저 사람들이 개울을 건널 때까지 기다릴 형편이 아닌고로 먼저 건너고자 바위에 체중을 싣는 순간 ,
앗! 미끄러지며 물속으로 (텀벙!) 빠지며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다행히도 두 팔로 바위를 지지하고 멈추는 순간
내 가슴쪽에 차고 있던 디카가 찍찍이 케이스를 뚫고 빠져나와 물속으로 멋지게 슬라이딩!
"으악! 저게 어떤 디카인가? "
지난번 태풍 '산산'과 함께 지리산 만복대를 넘으며 디카 하나를 잡아먹고 얼마전 새로 산 놈인데...
내 발이 물에 빠진것은 신경도 안쓰고 장갑을 낀 것도 잊은 채 물속에 손을 쑥 집어넣어 바위밑에 안착한 그놈을 꺼집어 낸다.
그 사이 내려오던 그 등산객들이 내 주위로 몰려와 "어디 다친덴 없냐"며 걱정을 해 주는데 내려오는 행렬은 계속되지요,
난 이미 양말, 장갑, 소매등이 다 젖어 뻣뻣하게 얼어버리는데 산행의 의지가 상실된다.
그래 그 사람들에게 간곡한 눈빛으로 묻는다.
"어디서 오셨나요?" 대전에 있는 산악회라 하더군. 대전까지라도 같이 갈 요량으로
"차에 자리가 빕니까?" 물으니 자기들은 지금 당장 떠날게 아니라는군.
에잇! 애절한 눈빛도 소용없네. 정말이지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고...진퇴양난...
서양속담에 "비는 오면 퍼붓는다"(It never rains but it pours.)라 했던가? 정말 울고싶은 심정이 되더군.
그러니 어쩔껴? 천상 죽으나 사나 우리 일행을 뒤 쫓는 수 밖에...
이때부터 정말 죽기 살기로 달렸다. 휴대폰도 안되어 "조난"이란 단어도 떠 오르더라. "적어도 삿갓재 대피소 정도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길게 생각하며...124군 부대나 실미도의 북파공작원처럼 아마 달렸으리.
그렇게 한 30분을 쫓아가는데....저쪽 모퉁이로 돌아서는 우리 후미의 꼬리가 보이는 게 아닌가?
오우~! 하느님 부처님....감사합니다!!! 이때처럼 우리 후미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결국은 따라붙었다.
이제부턴 정상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후미 일행들은 눈 위에 서서 점심을 먹겠다는데 난 땀으로 식은 몸을 뎁히기 위해 걸어야 한다. 그들을 추월한다.
드디어 계곡으로부터 다 올라와 황점과 월성치가 갈리는 능선에 섰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눈바람이 무척 거세다. 김밥이 딱딱하게 굳어있고 손도 얼어 대충 몇 개만 먹고는 또 걷는다.
후드를 하지 않은 볼을 강타하는 눈바람은 매서워 볼때기가 떨어져 나가는 거 같은데 그냥 견디기로~.
그러나 휘몰아치는 그런 눈바람에도 견디고 있는 나무들은 너무나 멋진 자태를 연출한다.
어떤 가지들은 마치 '사슴의 뿔' 같아 보인다.
사진 1장을 찍고 더 찍으려는데... 결국 아까 물에 빠진탓인가? 카메라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네.
카메라도 아깝지만 ...이 아름다운 경치들을 담지 못하는 것이 더 안타깝다.
사진도 못 찍겠다. 볼은 얼얼하겠다. 빨리가자! 능선에서 자빠지고 엎어지고 구르면서 또 뛴다. 앞이 안 보인다.
드디어 삿갓재 대피소.
3년전 여름, 이곳서 잔 적이 있는터라 여러모로 반갑네.
안에 들어가니 사람들로 바글바글. 고통끝이라 실내가 너무나 안온하다.
보온병의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고 과일먹고 다시 여유를 찾는다.
하산길...
가지가지마다 살포시 내려앉아 켜켜이 쌓여진 눈꽃들...
인공적으론 흉내애기 어려운 정말 멋진 자연의 크리스마스 츄리다.
산 오르며 많은 고통을 맛 봤기에 더욱 하산길이 평온하고 멋지게 느껴지는 그런 설경이다.
밑으로 내려오며 계곡을 만난다. 아직은 얼지않아 졸졸 흐르는 맑은 물...
그리고 그 개울가에 놓여진 바위들 위로 눈들이 소복히 쌓여있다.
눈이 만들어놓은 여러 형상들...
개울가 바위 위의 눈들 "장독위의 흰 눈" 같기도 하고 "돼지새끼들" 같기도 하고 "물개들이 모여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저녁식사
아래에 다 내려왔다.
저녁장소는 비닐 하우스를 전세낸다.
야~ 오늘 저녁 푸짐하다.
배추 된장국, 오삼불고기, 브로콜리와 오징어 데친거...소주가 술술 들어간다.
어려운 산행뒤엔 성취감이 더 크다. 사람과 술, 분위기... 다 좋다.
웃고 마시고 북적북적~~ 시끌시끌~~ 왁자지껄~~
비록 오늘 산행의 전반전은 리듬이 깨져 봉변(?)을 당했어도 후반전은 모든게 좋네.
아마도 평생 '힘듬과 멋짐'으로 추억되는 겨울산행으로 기억되리~
질주하는 버스의 김서린 차창을 통해 본, 고속도로 주변 풍경
꼴찌로 출발~! 하늘은 뭔가가 잔뜩 불만이데...
양악호 ↕ (예까지 왔다가 빠꾸)
폭설 1
폭설 2.
폭설 3. -첫 번째 개울 (예까지 2번이나 되돌아옴)
폭설 4.
폭설 5
묵묵히...
루돌프 사슴 뿔?
그래도 웃으며 찍자!
첫댓글 오호 통재라 ! 명진이 분신이나 다름없는 디카가 물에 빠졌다니 안타깝구나. 그래도 사진을 올린 것을보니 작동이 되는가보다. 다행이다... 너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겠지... 강철체력이니 걱정이덜된다. 새해 건강하시게...
디카는 결국 A/S받았지... 귀를 가렸는데도 귓볼에 얼음이 박혀 3일간 아프고 간지럽더라. 지금은 오케이 ~ 쌩스 재한! 해피 뉴 이어~~!
엄청 고생했구먼.... 사진에 박힌 설경이나 명진이 모습은 완죤 해탈한 분위기고...이럴 걸 대비해서 총동창회에게 상품으로 디카를 탔나?? ㅋㅋ 글~~구~ 이 글을 보면 그 녀가 엄청 걱정하겠네~~?? ㅋㅋ
우와~ 명지니 화이팅이다.... 니 글 읽는 내 가슴이 다 떨렸네. 우쨌든 잘 해 내서 다행이다. 멋진 사진 만이 못 찍은 건 좀 아쉽지만..
내..너에게 그렇게 타일렀구만....앞으론 덤벙데지 말어~~
명진이,멋장이다. 조께 부럽네.
명진이는 추운데 왜 그렇게 돌아댕겨? 나 처럼 따뜻한데서 맥주나 마시지....어젯 밤에 마눌이 하노이로 쳐들어 왔다. 몇번이나 한국에 간다고 하고는 빵꾸를 냈거든. 아마 지금 집안 구석구석 뒤지고 있을거다, 뭐 수상한거 없나 하구....
이 글을 이미 읽었는데 아직 답글을 달지 않고 있었네.. 이제야 알았다.. 죄송.. 눈속에 파묻히지 않는 너의 열정이 부럽다..
결국 구글은 못 찾은 거네. 사람이 살았으면 됐지, 뭐. 명진, 홍순 말 좀 들어 봐라. 추운데 왜 그리 돌아댕기냐 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