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는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빌립보서 2:1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2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에베소서 4:1-2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야고보서 2:17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에베소서 5:8-9 |
이단에 속해 있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결과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갈라디아서 5: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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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구원파라고 어거지로 간판은 달았지만, 구원을 받지 못했으니 구원받은 자 다운 삶은 나타나지 못히는 거죠. 칭의의 결과는 성화이다. 명심해야 합니다.
맞아요. 그리고 이단에게 구원이 없는 것이 당연하죠.
구원은 단순한 고백에 머물지 않고 삶의 열매로 증명되는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주권 앞에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며 구원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세속적 가치관을 거절하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분별해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답게 겸손과 온유함으로 서로를 용납하며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 갑니다.
행함이 결여된 가짜 믿음을 경계하고 참된 회개에 합당한 실천적 삶을 도모합니다.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로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의 경고처럼 이단과 분열에 빠지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육체의 열매입니다.
변질된 복음과 거짓 가르침을 단호히 배격하고 오직 진리 되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봅니다.
구속받은 성도는 성령의 임재 안에서 육체의 정욕을 죽이고 거룩한 삶을 위해 애씁니다.
나의 공로가 아닌 오직 은혜로 얻은 구원이기에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성화로 고백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일방적인 구속 은혜를 입은 성도는 마땅히 그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한 열매로 삶을 증명하게 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며, 이 세대의 혼란과 이단의 거짓 가르침을 단호히 배격하고 진리 위에 서야 합니다.
내 유익과 정욕을 도모하던 육체의 방식을 버리고, 성령의 조명하심 아래 겸손과 온유로 서로를 섬기며 나아갑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의 안일에 빠지지 않고, 날마다 참된 회개를 통해 빛의 자녀다운 착함과 의로움을 나타냅니다.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을 의지하는 빈 그릇의 심령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뜻을 분별하며 담대히 걸어갑니다.
아멘!
십자가의 피 흘리신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연약한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거짓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도록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의 영혼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부르심에 합당한 빛의 자녀로서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게 하사, 겸손과 온유로 서로를 섬기며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참된 회개와 순종으로 주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삶의 주인 되시는 복음의 능력을 온 세상에 담대히 선포하게 하소서. 아멘!
아멘!
장 칼뱅은 빌립보서 2장 12절을 해설하며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이 인간의 공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에 대한 경건한 순종의 자세를 뜻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성도가 갖는 '두려움과 떨림'이 구원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공포가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을 자각하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만을 겸손히 의지하는 경건한 자세라고 강조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대해 칼뱅은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부패했으므로 오직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한 마음의 혁신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만든다고 주석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절에서 2절의 말씀처럼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에게서 나타나는 필수적인 성화의 열매라고 보았습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에 관하여 칼뱅은 참된 칭의의 믿음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반드시 행함이라는 살아있는 결과로 스스로를 증명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과 9절을 묵상하며 성도가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진 신분적 변화는 삶 전체에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는 열매로 드러나야 함을 피력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21절의 육체의 일에 대해 칼뱅은 이단과 분열이 단순히 지적 오해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부패한 인간 본성의 파괴적인 열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거짓 교리나 이단에 사로잡혀 회개하지 않는 자는 성령의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증거이며,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칼뱅은 구원받은 성도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육체의 정욕과 거짓 가르침을 단호히 배격하고 십자가의 진리 안에서 날마다 자신을 죽여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결국 구원은 인간의 열심이나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은혜로 주어지며, 구원받은 자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인간의 공로나 열심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다시금 깊이 자복합니다.
구원의 두려움과 떨림은 불안함이 아닌, 나의 무능을 자각하고 전적으로 십자가만을 의지하는 경건한 자세임을 깨닫습니다.
참된 칭의의 믿음은 결코 홀로 있지 않고 삶의 거룩한 열매로 증명되기에, 성령의 조명하심 아래 날마다 마음의 혁신을 이룹니다.
거짓 가르침과 육체의 정욕을 단호히 배격하며,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빛의 자녀다운 진실한 순종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존 오웬은 빌립보서 2장 12절의 '두렵고 떨림'을 성도의 거룩한 경외심이자, 자기 신뢰를 완전히 깨뜨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성화의 핵심 동인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성도가 구원을 스스로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의 주권적 역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하는 것이 성화의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관하여 오웬은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를 새로이 할 수 없기에, 오직 성령에 의한 지속적인 마음의 갱신만이 세속화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절과 2절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에 대해 오웬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이 반드시 성도의 성품과 인격 가운데 겸손과 온유라는 실체적 변화로 열매 맺어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을 해설하며 오웬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참된 믿음의 모조품에 불과하며, 오직 죄 죽이기(Mortification)와 거룩한 순종이 동반되는 믿음만이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믿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과 9절의 빛의 자녀다운 삶에 대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빛이 영혼 안에 비추어질 때 비로소 내면의 부패가 드러나며 동시에 의와 진실함의 실천적 열매가 맺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21절의 육체의 일에 대해 오웬은 이단과 정욕에 사로잡히는 것은 내면의 죄성을 죽이지 않고 방치할 때 나타나는 영적 사망의 증상이라고 엄히 경고했습니다.
특히 그는 거짓 교리와 이단적 사상에 빠져드는 근본적 원인이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는 정욕과 영적 교만에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오웬은 성도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자범죄(Indwelling Sin)를 매일 십자가에 못 박는 '죄 죽이기'의 과정 없이는 결코 구원받은 자다운 거룩한 삶을 살아낼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결국 존 오웬의 견해에 따르면 구원은 그리스도의 완벽한 속죄 사역에 기초하며, 그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죄와 싸워 이기는 삶으로 자신을 증명하게 됩니다.
자기 신뢰를 완전히 깨뜨리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주권적 역사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성화의 본질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를 새로이 할 수 없기에, 매일 십자가 앞에서 마음의 지속적인 갱신을 이루며 세속화에 맞섭니다.
행함이 없는 모조품 믿음을 경계하며, 내면의 잔재하는 죄성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는 '죄 죽이기(Mortification)'의 경건을 실천합니다.
그리스도의 완벽한 속죄 은혜에 기반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싸워 이기며 성품의 겸손과 온유라는 빛의 열매를 맺어 가길 기도합니다.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는 그의 조직신학을 통해 구원의 적용과 성화, 그리고 구원의 확신과 삶의 열매에 대해 철저히 청교도적·개혁주의적 전통을 계승하며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힙니다.
벌코프는 빌립보서 2장 12절에 대하여 성화가 오직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로 시작되고 유지되지만, 은혜를 입은 성도는 성령의 역사 안에서 능동적으로 책임 있게 순종해야 한다고 해설했습니다.
그는 성도의 '두려움과 떨림'이 구원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불신앙적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자신의 무능을 인지하고 은혜를 갈망하는 경건한 성령적 경외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의 마음의 갱신에 관하여 벌코프는 거듭남(전적 부패로부터의 신분적 변화)이 단회적이라면, 심령의 변화와 분별력의 역사는 일생에 걸쳐 지속되는 중화(성화)의 과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절과 2절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에 대해 그는 그리스도와의 사법적 칭의가 반드시 실제적 성화로 이어지며, 성령의 내주하심이 성도의 신앙적 인격과 덕성으로 열매 맺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을 해설하며 벌코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참된 생명이 없는 '지적 동의'나 '일시적 믿음'에 불과하며, 오직 구원하는 참된 믿음만이 사랑과 순종의 행위를 유출한다고 보았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과 9절의 빛의 자녀다운 행함에 관하여, 성도는 영적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그 상태와 신분이 완전히 바뀐 존재이므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당연한 결과라고 피력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21절의 육체의 일과 이단에 대해 벌코프는 이단과 분열이 단순한 사상적 오류가 아니라 배후에 부패한 인간 본성과 사탄의 역사가 존재하는 육체의 명백한 산물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참된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교리를 강조하면서도, 이단과 정욕의 삶을 돌이키지 않고 거하는 자는 애초에 참된 은혜에 참예하지 못한 증거이며 하나님 나라를 받지 못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벌코프는 인간의 공로나 열심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은혜로 얻은 구원은 반드시 성도의 삶 가운데서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한 거룩한 삶으로 실증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결국 루이스 벌코프의 견해에 따르면 구원은 초두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Sovereign Grace(주권적 은혜)로 이루어지며, 구원받은 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거짓 교리를 배격하고 십자가의 복음에 합당한 거룩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단회적인 거듭남에 그치지 않고 일생에 걸쳐 심령의 변화와 분별력을 이루어 가는 성화가 참된 구원의 증거임을 깊이 깨닫습니다.
지적 동의나 일시적 믿음의 관성에 머물지 않고, 사법적 칭의가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실제적인 신앙적 인격과 순종의 열매로 증명되기를 원합니다.
초두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Sovereign Grace)로 이루어진 구원 앞에 겸손히 서며, 거짓 교리와 육체의 정욕을 배격하고 거룩한 삶으로 복음을 증명하게 하소서.
"한번 패줘? 독사 같은 계집"…목사 딸의 가혹행위 증언
https://news.jtbc.co.kr/article/NB12289550?influxDiv=NAVER
성화의 원인인 칭의가 없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 사건은 구원파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될 만하네요. 인상을 보니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못나고 비뚤어지고 폭압적인 군주가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도저히 기독교인의 얼굴이라 할 수 없고, 신앙이 없는 자들도 저 정도는 아닐 겁니다. 저 정도면 단장 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 재단, 교회 등이 결부된 총체적인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에효~ 다들 정신 차려야지 이게 뭡니까!!!
겸손함과 두려움과 떨림으로 끝까지 구원을 이루는 것,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옷깃을 여밉니다.
네, 매우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