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이민정책의 그늘 보여주는 프랑스 폭동
유럽 국가 중에서는 영국이 가장 먼저 대규모 이주민 인종 폭동을 겪었다. 지금은 대(大)런던(Greater London)으로 통합된 옛 런던의 남쪽 브릭스턴과 북쪽 토트넘은 카리브해 출신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1981년, 1985년, 1996년에는 브릭스턴을 시작으로, 2011년에는 토트넘을 시작으로 폭동이 발생했는데 다 범죄 혐의를 받던 흑인 청년이 경찰 총에 맞아 죽거나 다친 사건이 원인이다.
▷영국이 과거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출신을 이주민으로 많이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과거 식민지였던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의 북아프리카계 무슬림을 이주민으로 많이 받았다. 영국은 노팅힐 폭동 등 1950년대부터 이미 이주민 폭동을 겪었다. 프랑스는 북아프리카계 이민 수용이 좀 늦었고 1960년대 들어서는 학생혁명이 전면에 부각돼 노동자와 이주민의 불만까지 흡수하는 모양새였지만 이주민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도 1980년대 들어 직접적인 인종 폭동의 영향권에 들었다. 잦지만 대규모에는 이르지 못하던 폭동은 2005년 북아프리카계 소년이 파리 북쪽 클리시에서 경찰 추격을 받다 감전사한 사건을 계기로 커지고 장기화하면서 큰 충격을 줬다. 2007년에도 파리 북쪽 빌리에르벨에서 오토바이를 타던 북아프리카계 소년 2명이 경찰차와 충돌해 사망한 사건으로 폭동이 일어나는 등 크고 작은 폭동이 수년마다 이어졌다. 최근에는 낭테르에서 북아프리카계 소년이 경찰 단속을 피하다 숨진 뒤 확산되는 폭동이 벌써 2005년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커져 프랑스를 뒤흔들고 있다
▷파리는 런던이 대(大)런던이 된 것과 달리 대(大)파리(Grand Paris)가 되지 못하고 순환도로 안쪽의 파리와 바깥쪽의 교외가 분리돼 있다. 교외에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그중에는 이주민이 많다. 경찰과의 충돌은 가난 때문에 범죄 행각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인종 폭동은 근래로 올수록 영국은 줄어들고 프랑스는 심해지고 있다. 프랑스가 말로만 톨레랑스(관용)를 외치고 있는 사이 영국은 교외 지역까지 런던으로 포섭하면서 실질적 통합에 애쓴 결과다.
▷영국 프랑스 독일 중에서 이주민 인종 폭동을 피한 나라는 독일밖에 없다. 독일은 작은 기업이라도 전문성을 높여 그 분야에서도 자국민이 취업해서 먹고살 수 있는 임금 등의 조건을 만들면서 이민을 수용했다. 한국의 당국자들은 심화하는 출산율 저하와 노동력 부족을 극복하는 방법은 이민밖에 없다고 말하기 전에 비슷한 인구 규모를 가진 유럽 국가들이 겪었던 이민 정책의 명암(明暗)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