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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시작은
1957년 7월 6일 동네 교회 축제에서 시작해
1957년 7월 6일
바로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만나는 날
존의 폴 첫인상: 엘비스처럼 잘생겼다
폴의 존 첫인상: 술냄새 폴폴 나서 아저씨같애
리버풀 동네 교회축제가 있었는데
비틀즈의 전신이 되는 밴드
쿼리맨이 그 축제에서 공연을 함
그당시 사진이 이거
기타든 체크셔츠남자가 존 레논임
당시 17살, 쿼리맨 리더
그리고 폴 매카트니가 우연히 교회에 왔다가
이 공연을 봤음
당시 존과 폴, 둘다 친구였던 이반이
축제 뒷풀이에 폴을 데려가
존에게 소개시켜줌
소개받을 당시엔 관심도 안 주던 존은
폴이 기타연주를 시작하자
곧장 관심을 가지고 폴의 어깨에 기대서 감상함
존은 좀 취해서, 술냄새를 풍기며 내 어깨에 기대었다. 모두들 꽤 취해 있었다.
난 ‘맙소사, 이 녀석은 뭐야?’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C코드로 연주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 폴 매카트니, 비틀즈 앤솔로지
1957년 7월 6일.
바로 그날이었다.
모든 것이 시작된 날.
내가 폴을 만난 바로 그날이었다.
존 레논, 본인의 자필일기
재밌는 건 폴은 이미 존 레논을 알고있었다고
정식으로 소개받은 게 이때인거지
저 둘의 집은 단 400m떨어져있음
폴은 동네 유명인사였던 존을
버스에서 종종 보거나 같이 탔다고 함
역시 같은 동네사는 조지 해리슨이 말하길
우리 동네에서 존 레논 모를수가 없다면서
엄청 유명인이었다함
피쉬앤칩스 가게가 신장개업했을 때
줄서있는것도 봤다고 하고
콘서트장에 간 것도 봤다고 하고
스쿨버스위에 올라가있는것도 봤다함
정작 존은 교회에서 둘이 처음 봤다고 알고 있음
술냄새나는 아저씨같다고 해놓고
폴은 존에게 잘 보이려고 다이어트를 시작함
(폴 남동생 피셜)
역시 존도 폴에게 잘 보이려고
만나러가기전 맨날 거울보고 머리손질함
(존 이모 피셜)
레논앤쇼튼이라고 불릴정도로
존은 피트 쇼튼과 친했지만
폴과 만난 이후로 폴이랑만 다님
이게 얼마나 신기한거냐면
당시 영국은 나이서열문화가 쎘음
제2차세계대전 직후세대였고
징병제시절이라 군대꼰대문화가 극심했음
그래서 같은 나이가 아니면
절대 같이 놀지 않던 시절임
하지만 존은 주변말 다 무시하고
폴을 자기 밴드에 넣었고
매일매일 둘이서 붙어다니기 시작함
대중음악에서 제일 위대한 작곡가콤비이자
상업적으로도 제일 성공한 작곡가콤비
레논매카트니가 탄생함
이 둘은 공책을 하나 사서
겉면에 레논매카트니의 작곡노트라고 쓰고
무슨 곡이든 레논매카트니 명의로
함께 내기로 약속하고
돈도 명예도 언제나 둘이서 하나고
늘 반씩 나눠가지자고 맹세함
실제로 존 레논은 이 맹세를 잊지 않아서
자기 솔로앨범 낼때도
그냥 레논매카트니로 표기하려고 했었음
근데 폴이 정치적인 곡에
내 이름 넣지말라고 거부해버려서
결국 존 레논 명의로 내버림
이거 아니었으면
존 레논의 이매진도 레논매카트니 명의였겠지
몇십년이 지나도 음악지에서
앞면은 레논, 뒷면은 매카트니로 나오는데
앞으로도 그럴 듀오임
폴 매카트니의 말을 인용하면
존과 나는 서로를 발견했기에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그런데 재밌는게
폴 매카트니 아버지는
존 레논을 못마땅해했고
존 레논 이모는 폴 매카트니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함
미미 이모가 니넨 분필과 치즈급으로
서로 안 맞는데 무슨 친구야 이래도
존이 그거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분필과 치즈! 분필과 치즈! 하면서
폴 만나러가기 전엔 엄청나게 신나했다함
폴 아버님은 이해가는게
동네 유명 양아치랑
곱게 키운 모범생인 내 아들이 노는게
마음에 안 들었을 거임
폴은 공부 잘하는 편이었다가
둘이 만나고 성적 급 추락해버림
폴의 아버지가 엄청 엄했음
머리, 입는 옷 이런거 다 정해줬다함
존이랑 노는 게 너무 싫었던 폴 아버지는
심지어 통금시간까지 만들음
시간지나면 대문 잠궈버링
그래서 그때마다 파이프타고 올라왔다고 함
존과 폴은 어떻게든
서로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어서
학교사이의 중간지점을 정하고
학교 종치자마자 거기로 최단루트로 뛰어가서
통금지나기직전까지 둘이 놀았다고
거기가 바로 나중에 비틀즈 노래가 되는
버스정류장 페니레인
https://youtu.be/S-rB0pHI9fU
더 놀고싶은 나머지
저녁에 존이 폴 집 밖에서 기다리다
창문으로 돌 던져서
나 왔어!! 하고 신호보내면
아빠가 방에 들어간 걸 확인한 폴이
올라오라고 고양이울음소리를 냄
그러면 존이 바로 파이프타고
폴 방에 올라가서 놀았다함
나중엔 아버지가 밴드하는 폴이 너무 못마땅해서
밴드같은 비안정적인 일말고
차라리 이거해라하고
트럭운전수 일을 알아봐줌
말 잘 듣는 폴이 그래서 밴드를 관둬
그러니까 득달같이 달려온 존 레논이
아버지야 나야?
하는 일도 생겼음
폴은 당연히 존 레논이랑 밴드하기 선택했지
안 그랬으면 비틀즈가 없었겠죠?
https://youtu.be/HgD82ZnnBz4
그때쯤에 둘이서 만든 곡
되게 초창기 로큰롤다운 노래인데
그것보다 가사가 더 웃김
A long time ago I called you Johnny boy.
I don’t know what to tell the fellas.
Please, oh please, Johnny.
폴 : 오래전부터 나는 너를 조니보이라고 불렀어.
난 내 친구에게 뭐라고 말해야될지 모르겠어
제발, 오 제발 조니
Well I’ll tell the fellas that I do love you.
존 : 글쎄 난 너를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겠어
I don’t know what I’m gonna do.
I don’t know what I’m gonna do
when I tell my father
You love me Johnny, I love you Johnny
I’m not gonna let you go.
폴 : 난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내 아버지께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너는 날 사랑하고, 나는 조니 널 사랑해
난 네가 떠나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don’t know what I’m gonna do
when I tell my father
You wore me down, you wore me down.
You’re gonna leave, you’re gonna leave me
Please, oh, I’m not gonna let you go
폴 : 난 내 아버지께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너는 날 힘들게 해, 너는 날 힘들게 해
너가 떠난다면, 너는 날 버리는 거야
제발, 난 너가 떠나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Take the next bus out of town
Then you won’t let your father down.
I don’t know what good I am
since I see life in front of us
존 : 다음번에 오는 버스를 타고 마을을 떠나자
그러면 너는 네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는거야
이후 우리 앞에 삶이 얼마나 좋을지는 나도 몰라
Well get out of town,
don’t hold me down.
I don’t care.
폴 : 그래 마을을 떠나자
날 말리지마.
난 상관없어
둘이서 리버풀 이 촌구석을 벗어나자
아버지를 실망시키지말고
둘이서 도망가자 라는 곡ㅋㅋㅋㅋ
비틀즈 팬들이 얘네 뭐냐🙄
하게 만든 1등공신곡이기도 함
저는 폴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어요.
“아버지와 맞서야 해. 아버지에게 ‘꺼져’라고 말해 봐. 아버지는 널 못 때려. 넌 그를 죽일 수도 있어. 그는 노인이라고.”
폴의 아버지는 그를 아이처럼 다루었어요. 머리를 깎아주고 열일곱, 열여덟 살에는 뭘 입으라는 이야기까지 했죠.
그런데 폴은 항상 말을 듣더라고요.
(함부르크에서 돌아온 후) 그의 아버지가 직장을 구하라고 하자 그룹을 그만두더니
“안정적인 일을 해야 해.” 라며 화물 트럭을 몰기 시작하더군요. 우리는 믿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전화로 폴에게 “같이 하던가 그만두던가” 라고 말했어요.
폴은 저와 아버지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어요. 결국 저를 선택했죠.
존 레논, 1972년 인터뷰
아버지야 나야? 인터뷰는
해체 이후 72년에 있던 인터뷰인데
진짜 당시 존이랑 폴은
해체 직후 냉전기에 디스전 시기였는데도
폴이 자기를 선택했다면서
행복하게 말했던 존 레논ㅋㅋㅋ
존은 자기가 음악에게 했던 가장 큰 공로가
폴 매카트니가 음악을 업으로 삼게 한 것
이라고 생각했다함
평생 뿌듯해했음
1958년
폴 매카트니는 존에게 쿼리맨 기타로
자기 중학교 친구를 소개함
그 사람이 바로
조지 해리슨
하지만 존 레논이 너무 어리다고 거절
폴도 처음 봤을때 10살인줄 알았는데
조지는 더 어려 보여서 놀랐다고
위에 언급한 나이서열문화때문에
조지를 넣는 걸 꺼려했던거
폴은 존에게 있어 예외였지만
조지는 계속 거절함
조지는 폴은 되고 나는 안 되나?
하고 시무룩했고
폴이랑 조지랑 친구였는데
나중에 폴이 존이랑 친구가 되서
자기가 아닌, 존이 폴의 파트너가 되어버린것도
조지는 시무룩했음
그럼에도 조지는 존을 동경했음
밴드 가입 못 했어도
조지는 존을 계속 따라다녔다함
심지어 데이트까지ㅋㅋ
계속 따라다니는 조지가 짜증났던
존의 여친이 쟤 좀 어디다 떼어놓고 와ㅡㅡ 했는데
존 레논은 귀엽잖아 하고 냅뒀다함
존 레논에겐 이부 여동생만 있어서
남동생있으면 좋겠다~ 가 말버릇이었다고 함
근데 조지를 만난 뒤로
남동생있었으면~ 을 안 하게 됨
나중에도 전 남자형제는 없었지만
조지가 있었어요 이랬음
결국 조지 기타실력이 좋아서 멤버행
52살이 되어도
조지는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뛸 듯이 기뻤다함
이렇게 쿼리맨 멤버에
존 레논 (당시 한국나이 19살)
폴 매카트니 (당시 한국나이 17살)
조지 해리슨 (당시 한국나이 16살)
이렇게 모이게 됨
1959년
존 레논은 리버풀 예술 대학에
학교장추천 전형으로 입학
(미대생임)
대학친구이자 절친이 된
스튜어트 서프클리프를 쿼리맨으로 영입함
이유는 스튜어트가 탄 장학금으로
베이스사게 꼬시려고
존 레논의 친구였을뿐
음악에는 소질이 없던 스튜는
베이스를 맡았음
그렇지만 실력이 늘지 않았어
애시당초 스튜의 재능은 미술에 있었음
폴 매카트니가 이 사람을 질투한 걸로 유명한데
이유는 존 옆의 내 자리를 뺏긴거 같아서
그 당시 존 레논은 스튜네 자취방에서
같이 동거하며 대학다녔고
매일매일 폴이랑 작곡하던 시간 중 몇몇이
스튜랑 같이 그림그리는 시간으로 바뀐거
비틀즈 전기작가들은
레논매카트니에 침범한 건
오노요코가 처음이 아니다
스튜어트가 처음이다
이러고 평가하기도 함
폴은 조지도 같이 질투했다고 하지만
조지는 폴만 질투했다고 딱 잘라말해ㅋㅋㅋ
웃긴건 존은 폴이 왜 스튜를
싫어하는 지 몰랐다고 함
눈치코치없기는..
1959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스튜어트가 밴드에 합류했어요. 우리는 그에게 조금 질투심을 느꼈는데 나는 거기에 잘 대처하지 못한 것 같아요.
우리는 항상 존의 다른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약간 질투심을 느꼈어요. 그가 형같은 역할을 했으니까요. 스튜어트가 합류하자 마치 조지와 내 자리를 빼앗긴 것처럼 느껴졌어요. 우리는 조금 물러서야만 했죠.
스튜어트는 존과 같은 나이였고 예술학교에 다녔으며, 매우 훌륭한 화가였고,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을 갖고 있었어요. 우리는 조금 어렸으며 중등학교에 다녔고 그다지 진지하지 못했고요.
폴 매카트니, 비틀즈 앤솔로지
1959년 후반
존 레논은 드디어 밴드 이름을 바꾸고자 함
쿼리맨은 자기네 고등학교에서 따온 이름이었음
쿼리뱅크 고등학교 학생의 밴드여서
쿼리맨
그래서 자신들만의 이름으로 바꾸려했음
당시 인기밴드인 the cricket을
본따서 짓고자 했는데
이때 스튜어트가 딱정벌레는 어때?
하고 제안을 함
스튜가 싫던 폴은
비틀즈? 그게 뭐냐고 유치하다며 극딜
하지만 존 레논은 마음에 들어하며 채용함
간지나게 실버비틀즈 하자해서
실버 비틀즈가 되는데
나중에 실버가 사라지게 됨
드디어 밴드 이름인 비틀즈가 등장함
비틀즈라는 이름은
딱정벌레(beetles)에서
존 레논이 드랍더비트 할 때
그 비트(beat)를 넣어
말장난을 친 이름임
1960년
비틀즈는 함부르크로 돈벌러 가게 되는데
드러머가 없던터라
급히 피트 베스트라는 멤버를 영입함
조지는 아직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이라
퇴학하고 따라옴ㅋㅋㅋ
그렇게 간 함부르크는
폴이 말하길 약과 섹스가 난무하던 곳이었다함
멤버들 다 저기서 마약을 건네받아서
맛있는데? 하고 빨고 다니고
조지는 2층 침대 밑에서
첫경험도 하고...
2층 침대 위엔 존이랑 폴이 있었는데
조지가 다 할 동안
조용히 있어주다가
끝나고 박수쳐줌 👏
이 세대는 2차세계대전 직후+히피라서
모랄이 0에 수렴해^^
비틀즈는 그 진흙탕같은 함부르크에서
자신들과 같은 리버풀 출신의 밴드를 만나게 됨
로리 스톰 앤 허리케인즈
(Rory Storm and Hurricanes)
당시 리버풀에선 제일 인기가 많은 밴드
그 와중에 존 폴 조지는
피트 베스트와 불화가 심했음
머리를 다같이 내리자고 할 때도
자기 혼자만 꿋꿋이 올리고 있다던가
고집이 심했다고 함
존 폴 조지는 자기네랑 잘 맞던
로리 스톰 앤 허리케인즈 드럼한테
야 우리 팀 안 올래? 하고 꼬시기 시작
그 드러머가 바로
링고 스타
하지만 그때엔
링고가 하하... 하면서 거절했다고함
1961년
비틀즈의 함부르크 생활은
조지가 미자인걸 걸려서 끝나게 됨
거기에 폴이 춥다고 건물 밖에서
콘돔을 태웠는데 생각보다 크게 불이 나서
건물 겉이 그을려버림ㅋㅋㅋ
방화미수로 유치장에 잡혀간 폴
결국 비틀즈는 리버풀로 돌아와
1월달부터
리버풀의 캐번클럽에서 계약을 맺었고
그 클럽에서 성공적인 공연과
즉흥연주로 이름을 알려
그래서 정기적으로 출연하기 시작
캐번클럽이 홈그라운드가 되었음
인디밴드시절 비틀즈의 홈그라운드였기에
인디밴드의 성지기 되었음
락스타면 밴드라면 한번씩 공연하러가는 곳이
캐번클럽임
비틀즈는 4월엔 다시 함부르크로 떠나
함부르크의 탑텐 클럽에서
매일 밤 7시~ 새벽 2시까지 공연했음
(토요일은 새벽 3시)
밤을 세우는 걸 버티려고
카페인 잔뜩 든 각성제를 마시기 시작해
고3 취준생들이
핫식스 박카스 버무린거 먹듯이
(실제로 얘네 나이 존 21 폴 19 조지 18)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런 일화가 있는데
친구가 새벽까지 연주를 한 존이랑
같이 밥을 먹는데
존 레논이 갑자기 접시에 코를 박고 자기 시작
친구는 장난치는 줄 알고있다가
시간 지나기 시작하니까
이거 진짜구나 깨워야하나 싶다가
본인도 피곤해서 냅뒀다고
저렇게 냅두니까
존 오른손에 있는 담배가 타버렸고
담배불때문에 손가락 지져버림
썅욕을 내뱉으면서 일어난 존 레논
아무렇지도 않게
계란 후라이 먹기 시작했다고 함
1961년 10월
존 레논은 친척한테
생일선물로 100파운드를 받음
당시 가치로 330만원 정도
존은 워킹클래스지만
이모손에 커서 사실상 미들클래스
비틀즈 멤버중에 제일 부유하게 컸음
집이 크고 이쁜 양옥집
(나중에 존 레논의 집은
오아시스 live forever의 싱글표지가 됨)
그걸 받자마자
폴 매카트니와 단둘이서 여행을 떠남
21살, 성인이 되는 해였고
그 해의 생일은 뜻깊게 보내고 싶었다함
파리에 갔다가 스페인까지 가려고 했는데
파리가 너무 좋기도 하고
스페인이 너무 멀어서 다음에 가자며
파리에서만 있었대
폴에게 돈 한 푼 쓰게 안하고
모든 경비는 존이 다 냈고
거기에 바나나 밀크 쉐이크를
폴이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먹고 싶어 할 때마다
존이 가서 사줬다고 함
폴 매카트니가 입맛이 까탈스러워서
좋아하는 먹을게 생겼으면
계속 먹이고 싶었나봄
존은 분명 그 돈을 써줄 정도로 나를 아꼈던 거에요. 그는 내가 원하는 만큼 바나나 밀크쉐이크를 먹게 해주었어요.
-폴 매카트니, 비틀즈 앤솔로지 1995
비틀즈 활동 중에도
폴이 혼자 편식때문에 못 먹고 있으면
존 레논이 나가서 샌드위치사와서
폴 먹였다고 함
여자친구도, 스튜어트도 아닌
폴에게만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던 존
이 때를 기점으로
폴 매카트니가 스튜어트와의 기싸움에서
완전승리하면서
완전히 존 레논의 파트너가 됨
그럼에도 스튜는 늘 존의 절친이었지만
곧 다음해에 뇌문제로 요절하게 됨
62년에 스튜어트가 요절하자
존의 원래있던 애정결핍과
우울증이 극에 다다름
삼촌도 일찍 죽고
엄마도 뻥소니로 요절
친구도 요절
늘 자기가 사랑한 사람은 사라진다는
그 강박이 있었다고 함
조지가 슬퍼하던 존을 위로하며
내가 있잖아 늘 니 옆에 있어줄게
라고 했다함
위 사진을 찍은 스튜의 아내이자
사진가 아스트리드가 증언함
아스트리드는 이후
비틀즈 멤버들의 사진를 찍는데
그걸 잡지나 신문에 공짜로 그냥 주니까
아스트리드를 걱정한 멤버들이
사진 팔아도 되니까
어디다 돈주고 팔라고 함
1961년 말
비틀즈 음반 없나요? 하고
팬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함
수완이 좋아 음반판매로 성공한 남자가
비틀즈가 누군데 이렇게 난리야?
하고 궁금해하며 보러감
그리고 감명을 받고 매니저를 자처하게 됨
그 사람이 바로 위 사진 속 정가운데에 앉아있는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
에피는 비틀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환골탈태를 시키는데
양아치 스타일에서
이런 풀정장을 입히게 시킴
(정장 안 입으면 티비못나오던 시절)
그래서 흔히 동세대인 롤링스톤즈는
단정함 → 양아치 컨셉이었다면
비틀즈는 양아치 → 단정함
테크트리라서 비교를 많이 함
에피가 요구한건 여러가지가 있는데
크게는 2개
1. 카메라앞에선 음주 금지
2. 무대 끝나면 무조건 인사
와인마시려다 카메라보고
머쓱하게 찻잔으로 바꾸는 존레논씨
비틀즈의 꾸벅 유교인사
1962년 1월 1일
런던의 데카레코드에서
비틀즈는 오디션을 봄
15곡을 1시간동안 계속 연주를 하는게
오디션 내용이었다고
하지만 오디션에서 탈락함
이유인 즉슨 락은 이미 쇠퇴하고 있는 장르라서
(락윌네버다이🤘🏻인걸 얘네가 몰랐네)
비틀즈는 공연 사업에서 미래가 없기 때문에
이는 대중음악사상 최악의 오판으로 뽑히고
아직까지도 까이는중
락을 다시 대중음악 한 복판으로 끌고와서
대중음악=락의 시대로 만든게
바로 비틀즈라서ㅇㅇ
그래서 비틀즈의 성공을 보고
배아팠던 데카레코드는
나중에 한 밴드를 데뷔시키는데...
바로 롤링스톤즈
비틀즈의 라이벌밴드하면
롤링스톤즈
그렇지만 영국 밴드 라이벌관계하면
제일 유명한 오아시스와 블러와 달리
비틀즈랑 친했음
수완이 좋은 브라이언 앱스타인은
데카 레코드만이 아닌 EMI 레코드사와도
이미 연락을 취하고 있었고
비틀즈는 EMI의 하위 회사와 계약을 맺고
조지 마틴과 앨범에 대해 논의를 하기 시작함
1962년 8월 중순
피트와 존폴조지간의 갈등으로 인해
메이저데뷔직전
존이 피트의 탈퇴를 요구함
존폴조지는 진짜 어릴때부터 아는사이라서
저 셋이서 워낙 끈끈해서
결국엔 피트랑은 잘 화합이 안 됨
조지는 이때 링고 스타의 영입을 강력히 주장
심지어 링고 어머니까지 만나
우리 밴드오라고 설득했다고
이미 꽤 인기가 많았던 피트의 팬들이 항의하고
링고한테 뭐 던지고 그랬는데
그거 대신 맞고 싸워준 것도 조지
그때 오른쪽 눈에 멍이 들었는데
조지는 그걸 명예로운 훈장이라면서
엄청 자랑스러워해
1962년 10월 5일
비틀즈가 love me do로 데뷔하게됨
https://youtu.be/0pGOFX1D_jg
당시 차트 17위를 기록하며
신인으로선 대성공을 하게 됨
Love me do가 폴 매카트니의 곡이라면
두번째 곡 please please me는
존 레논의 곡
https://youtu.be/czw8eqepir8
플플미로 신인상을 차지
이 두곡으로 돈 벌어서
데뷔앨범을 내
데뷔앨범은 30주 1위 차지
더 1위를 할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비틀즈가 2집을 내서
1위를 뺏김ㅎㅎ
레논매카트니는 데뷔하자마자
천재 작곡가콤비로 주목을 받고
비틀즈는 최고의 라이징스타가 됨
첫댓글 와 ㅈㅅ한데 이거 BL인가요?
포타보다 더 포타같다
이와중에 글 마지막에 스크랩표시 없어서 놀람,,,,글쓴방석 쩐다...
이거 사랑인데
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