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늑대와 어린양, 개소리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양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어린 양에게 호통을 쳤다.
“이 어린놈아! 내가 마실 물을 왜 흐리고 있느냐?”
어린 양은 자기가 물을 마시던 위치와 늑대가 선 곳을 찬찬히 살펴본 후,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저는 하류에 있는데 어떻게 제가 늑대님이 마실 물을 흐릴 수 있나요?”
늑대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순순히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굴리더니 다시 호통쳤다.
“네 이놈, 어디서 봤다 했더니, 작년에 날 욕하고 도망갔던 그 녀석이로구나!”
어린 양은 기가 막혔다.
“저는 작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또 할 말이 없어진 늑대는 잠시 생각한 후 외쳤다.
“그렇다면 네 형이 날 욕했구나. 그 대가로 널 잡아먹을 테니 원망하지 마라!”
프랑스의 우화 작가 장 드 라퐁텐이 쓴 ‘늑대와 어린 양’의 내용이다.
늑대는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폭력을 정당화하려 든다. 어린양은 논리적으로 대응하여 상대방 말문을 막는다. 하지만 늑대가 한 말이 거짓임을 확인해도 소용이 없다.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는 늑대는 또 다른 이상한 소리를 하며 계속 어린양을 위협한다. 이런 식의 말하기를 뭐라고 할까?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미국의 분석철학자 래리 G. 프랭크퍼트에 따르면, 늑대가 하는 말은 ‘개소리(bullshit)’다. 프랭크퍼트는 1986년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 라는 짧은 논문을 펴냄으로써 일상 언어 사용에 대한 철학적 분석의 한 획을 그었다.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진리인지 아닌지 관심이 없다. 영어 단어 ‘bullshit’만 봐도 그렇다. 철학자는 그 안에 포함된 ‘똥(shit)’이라는 단어를 성찰한다. “대변(똥)은 설계되거나 수공예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냥 싸거나 누는 것이다.” 개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개소리는 ‘싸지르는’ 것이다. 똥과 마찬가지로 “어떤 경우에도 ‘공들여 만든 것이 아니다.”
영어 단어를 통한 분석이지만, 우리말에서도 같은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가 개소리를 내뱉는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짜증이 난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사람 입에서 공기와 함께 언어를 내뱉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전혀 공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항문에서 나오는 방귀와 다르지 않다. 말하는 사람 스스로가 거짓말을 안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들이지 않는다. 가끔 거짓말쟁이들도 느끼는 작은 양심의 가책조차 없다. 아무렇게나 내뱉고 되는대로 지껄이면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개소리는 거짓말 보다 윤리적으로 더 해롭다. 거짓말은 참과 거짓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을 전제로 하는 반면, 개소리는 그조차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 그것이 프랭크퍼트가 말하는 개소리의 본질이다.
그런 개소리가 오늘날 우리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개소리를 마구마구 싸지른다.
순진한 공무원은 그냥 어린양에 불과하다.
개소리를 하던 늑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으니 말이다.
첫댓글 공감이 되네요
성투하세요